천팔백팔십 년 오 월 며칠의 저녁이다. 2년 만에 아스나야 폴랴나를 찾은 Ivan Turgenyef는 주인인 Tolstoi 백작과 함께 바론카강 너머의 잡목림에 도요새 사냥을 나갔다.
사냥 일행 중에는 이 두 늙은이 이외에도 아직 젊음을 잃지 않은 톨스토이 부인이나 개를 끄는 아이들이 더해졌다.
바론카강으로 향하는 길은 대부분 밀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몰과 함께 불어온 미풍은 그 보리잎을 흔들며 조용히 흙냄새를 옮겨왔다. 톨스토이는 총을 어깨에 짊어진 채로 선두서 걸었다. 그리고 이따금 뒤를 돌아보고는 톨스토이 부인과 걷고 있는 투르게네프에게 말을 걸었다. 그때마다 "아버지와 아들"의 작가는 살짝 놀란 듯이 눈을 뜨며 기쁜 투로 매끄러운 대답을 했다. 때로는 또 폭이 넓은 어깨를 흔들며 갈라진 웃음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건 무뚝뚝한 톨스토이에 비하면 품위 있는 정취가 느껴지는 동시에 어딘가 여성스러운 답이기도 했다.
길이 원만한 경사길이 되었을 때 형제로 보이는 마을 아이 둘이 건너편에서 달려왔다. 둘은 톨스토이의 얼굴을 보고는 한 번 걸음을 멈추고 목례를 했다. 그러고는 다시 원래대로 맨발의 뒤축을 보여주면서 기세 좋게 언덕을 올랐다. 톨스토이의 아이들 중에는 뒤에서 그들을 향해 무슨 일이냐고 묻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마저도 들리지 않는 듯이 서서히 밀밭 너머로 사라져 갔다.
"마을 아이들은 재밌는걸."
톨스토이는 저녁노을의 잔광을 얼굴에 받으며 투르게네프 쪽을 돌아보았다.
"저런 애들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는 생각도 못할 직설적인 표현을 알게 될 때가 있지."
투르게네프는 작게 웃었다. 지금의 그는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과거의 그는 톨스토이의 말에 아이 같은 감격을 느끼면 저도 모르게 비꼼부터 나오곤 했다……
"요전 번에도 저런 애들이 말하길――"
톨스토이가 말을 이었다.
"갑자기 교실을 뛰쳐나가려는 애가 하나 있는 거야. 그래서 어디 가냐고 물었더니 분필을 씹으러 간다잖아. 받으러 간다고도 안 하고 꺾어서 온다고도 안 해. 씹으러 간다는 거야. 그런 말을 쓰는 건 실제로 분필을 씹는 러시아 아이들뿐이지. 우리 어른들은 도무지 못 할 거야."
"확실히 그건 러시아 애들이나 할 법하군. 게다가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러시아에 돌아 왔다는 게 뼈저리게 느껴지는걸."
투르게네프는 새삼스럽게 밀밭에 눈을 주었다.
"그렇지? 프랑스 같은 곳에선 어린애도 담배를 피울 법하니까."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담배를 전혀 안 피시네요?"
톨스토이 부인은 남편의 장난에서 교묘하게 손님을 구해냈다.
"네, 담배는 끊었습니다. 파리에 미인이 둘 있었거든요. 그 사람들이 제게서 담배 냄새가 난다고 키스를 하지 않는다잖아요."
이번에는 톨스토이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는 사이 일행은 바론카강을 건너 도요새 사냥 장소에 이르렀다. 그곳은 강에서 멀지 않은 잡목림이 띄엄띄엄 자리한 습기가 많은 풀밭이었다.
톨스토이는 투르게네프에게 가장 좋은 자리를 양보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곳에서 백오십 보 가량 거리를 둔 한 구석에 위치를 잡았다. 또 톨스토이 부인은 투르게네프 옆에, 아이들은 그들의 먼 뒤에 제각기 나뉘었다.
하늘은 아직 붉은색을 머금고 있었다. 그 하늘에 얽힌 나뭇가지 끝자락이 한가득 뭉개져 있는 걸 보면 향이 강한 어린싹이 뭉쳐 있는 듯했다. 투르게네프는 총을 들고는 건너편을 보려는 듯이 나무 사이를 보았다. 어두컴컴한 숲 안에서는 이따금 바람이라 하지 못 할 정도의 바람이 가벼운 지저귐을 가져왔다.
"울새나 댓닭이 울고 있네요."
톨스토이 부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서서히 침묵의 삼십 분이 흘렀다.
그 사이에 하늘은 물처럼 되었다. 동시에 멀고 가까운 벚나무 가지가 그만큼 하얗게 보이게 되었다. 울새나 댓닭의 울음 대신에 지금은 단지 동고비가 이따금 우는소리만이 전해진다――투르게네프는 다시 한 번 띄엄띄엄한 나무 안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숲 안쪽도 저녁의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때 한 발의 총성이 불쑥 숲 안에 울렸다. 뒤에서 기다리던 아이들은 그 울림이 사라지기도 전에 개와 선두를 다투며 사냥감을 주우러 갔다.
"남편분께서 앞서가시는군요."
투르게네프는 작게 웃으며 톨스토이 부인을 돌아보았다.
이윽고 차남인 일리아가 풀 안에서 어머니를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 톨스토이가 잡은 게 멧도요라고 말했다.
투르게네프가 끼어들었다.
"누가 찾았나요?"
"도라(개 이름)이 찾았어요――찾았을 땐 아직 살아 있었고요."
일리아는 다시 어머니를 보고는 건강해 보이는 뺨을 붉히며 그 멧도요를 발견했을 때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투르게네프의 공상에는 '사냥꾼의 수기'의 한 페이지 같은 광경이 떠올랐다.
일리아가 돌아온 후에는 다시 원래대로 조용해졌다. 어두컴컴한 숲 안쪽에서는 봄에 걸맞는 어린잎의 냄새나 습한 흙냄새가 물씬 주위에 풍겼다. 그 안에서 자고 있던 아무개 새가 이따금 멀리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저건――?"
"줄무늬촉새입니다."
투르게네프는 곧장 대답했다.
줄무늬촉새는 곧장 지저귐을 멈췄다. 그렇게 잠시간 저녁 그림자 속 나무 사이서 지저귐이 딱 멈추고 말았다. 하늘은――미풍마저 전혀 불지 않는 하늘은 그 생기 없는 숲 위에 서서히 푸른색을 물들이고 있다――그러더니 민댕기물떼새 한 마리가 쓸쓸한 소리를 내며 머리 위를 날아갔다.
다시 한 발의 총성이 수풀 안의 적막을 깬 건 그로부터 한 시간 뒤의 일이었다.
"레프 니콜라예비치는 도요새 사냥으로도 이길 수 없나 봅니다."
투르게네프는 눈으로만 웃으며 살짝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아이들이 다들 달려가는 소리. 도라가 짖는 소리――그런 게 다시 한 번 조용해졌을 때엔 이미 차가운 별빛이 점이 되어 하늘에 퍼져 있었다. 숲도 주위를 둘러보면 어둠을 고스란히 묶은 채로 가지가 움직일 기색 하나 없었다. 이십 분, 삼십 분――지루한 시간이 흐름과 함께 이 어둑한 습지 위에는 묘하게 밝은 봄의 아지랑이가 희미하게 발밑에 모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주위에는 아직 도요새 다운 도요새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날이 안 좋네요."
톨스토이 부인의 중얼거림에는 아쉬운 기색도 섞여 있었다.
"이런 날이 그리 많지 않은데――"
"사모님, 들어보시죠. 나이팅게일이 우는걸요."
투르게네프는 일부러 인연 없는 방면으로 화제를 돌렸다.
어두운 숲 안에서는 실제로 나이팅게일이 밝게 울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잠시 말을 않더니 제각기 다른 생각을 하면서 가만히 그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자 불쑥――투르게네프의 말을 빌리자면 "하지만 이 '불쑥'을 알 수 있는 건 단지 사냥꾼 뿐이다"――불쑥 반대편 풀 안에서 틀림 없는 지저귐 소리와 함께 한 마리의 멧도요가 날아올랐다. 멧도요는 가지를 뻗은 나무 사이에 얇고 하얀 날개를 빛내며 곧장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려 했다――투르게네프는 그 순간 총을 어깨에 짊어지자마자 솜씨 좋게 방아쇠를 당겼다.
한 웅큼의 연기와 짧은 불――총성은 조용한 숲 안에서 긴 반향을 퍼트렸다.
"맞았나?"
톨스토이는 다가오며 그에게 물었다.
"맞았고 말고. 돌처럼 떨어졌는걸."
아이들은 다시 한 번 개와 함께 투르게네프의 주위에 모였다.
"찾아오렴."
톨스토이는 그들에게 말했다.
아이들은 도라를 선두에 두고 이곳저곳서 사냥감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멧도요의 시체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도라도 무작정 달리더니 이따금 풀 안에 걸음을 멈춘 채로 부족하다는 양 울었다.
끝내는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도 아이들을 도우러 왔다. 하지만 멧도요는 어디로 갔는지 역시나 날개 깃털 하나 찾아 볼 수 없었다.
"없는 거 같은데."
이십 분 후, 톨스토이는 어두운 나무 사이에 선 채로 투르게네프에게 말했다.
"없을 리가? 돌처럼 떨어지는 걸 봤다니까――"
투르게네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주위의 풀밭을 둘러보았다.
"맞았더라도 날개에 맞은 게 전부인 걸지도 모르지. 그거라면 떨어졌더라도 도망칠 수 있을 거야."
"아니, 날개에 맞췄어. 나는 분명 죽였다고."
톨스토이는 당혹스럽다는 양 살짝 두툼한 눈썹을 찌푸렸다.
"그럼 개가 찾았겠지. 도리는 사냥감이라면 반드시 물어 오니까――"
"하지만 실제로 죽였다 하지 않나."
투르게네프는 총을 쥔 채로 짜증 섞인 손짓을 했다.
"죽였나 못 죽였나. 그 정도 구별은 아이도 할 수 있어. 나는 제대로 봤다고."
톨스토이는 비웃 듯이 가만히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럼 개는 왜 못 찾고?
"개 따위 내 알바야? 나는 단지 본 그대로 말할 뿐이야. 돌처럼 떨어졌으니까――"
투르게네프는 톨스토이의 눈에서 도전적인 빛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Il est tombé comme pierre, je t'assure!"
"하지만 도라가 못 찾을 리가 없지."
그때 다행히 톨스토이 부인이 두 노인에게 웃어 보이며 은근히 중재를 시도했다. 부인은 아이들이 다시 한 번 샅샅이 찾아 볼 테니 오늘 밤은 이만 톨스토이의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투르게네프는 곧장 찬성했다.
"그럼 그렇게 바라보도록 하죠. 내일이 되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 내일이 되면 알 수 있을 거야."
톨스토이는 아직 내키지 않는다는 양 짓궂은 반어를 던지고는 대뜸 투르게네프에게 등을 보이며 빠른 걸음으로 숲 밖으로 향했다……
투르게네프가 침실로 물러난 건 그날 밤 열한 시 전후였다. 그는 겨우 혼자가 되어서야 의자에 털썩 앉은 채로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침실은 톨스토이가 평소엔 서재로 쓰던 방이었다. 커다란 서가, 감龕 안의 반신상, 서너 장의 초상화 액자, 벽에 걸린 숫사슴 머리――그의 주위에선 그러한 물건들이 촛불의 빛을 받으며 조금도 화려한 색채가 없는 차가운 공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홀로 남았다는 게 어찌 됐든 오늘 밤의 투르게네프에게는 신기할 정도로 기쁜 느낌을 주었다.
――그가 침실로 오르기 전 주인과 손님은 일가의 남녀와 함께 차 테이블을 두른 채로 잡담으로 밤을 보내고 있었다. 투르게네프는 되도록 쾌활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그동안에도 여전히 내키지 않는 얼굴을 하거나 자주 입을 열지 않았다. 투르게네프에겐 그게 시종 불쾌하면서도 꺼림칙했다. 그러니 그는 일가 남녀에게 평소보다도 애교를 떨며 일부러 주인의 침묵을 무시하듯 행동했다.
일가의 남녀는 투르게네프가 가벼우면서도 묘한 유머를 할 때마다 몇 번이나 유쾌하게 웃었다. 특히 아이들에게 함부르크 동물원에 있는 코끼리 울음이니 파리 소년의 몸집을 교묘히 흉내 낼 때에는 한 층 더 웃음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자리가 밝아질수록 투르게네프의 마음은 묘하게 어색하고 괴롭기만 할 뿐이었다.
"혹시 요즘 유망한 신인 작가가 나타난 거 들었어?"
화제가 프랑스 문예로 옮겨 갔을 때, 기어코 부자연스러운 사교가 흉내에 참을 수 없게 된 투르게네프는 대뜸 톨스토이를 보며 일부러 가볍게 물었다.
"모르는데. 무슨 작가라고?"
"드 모파상――기 드 모파상이란 작가인데 말야. 적어도 달리 흉내 낼 수 없는 날카로운 관찰안을 지닌 작가야――마침 내 가방 안에 La Maison Tellier텔리에의 집이란 소설집이 들어 있어. 한가하면 읽어봐."
"드 모파상?"
톨스토이는 의심스럽다는 양 살짝 상대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고는 소설을 읽을 건지 읽지 않을 건지 답도 하지 않았다. 투르게네프는 어릴 적 짓궂은 연상 아이에게 괴롭힘당한 기억이 있었다――마침 그런 한심함이 이때에도 가슴으로 올라왔다.
"신인 작가라니 생각난 건데 이쪽에도 보기 드문 사람이 한 분 나타났어요."
그가 당혹스러워 한 걸 읽은 톨스토이 부인은 곧장 독특한 방문객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일 월의 어느 늦은 오후, 썩 차림이 좋지 않은 청년이 주인과 만나게 해달라기에 일단 안으로 안내해주었다. 그러더니 처음 보는 주인에게 말하길 "일단 보드카와 청어 꼬리를 받아주셨습니다"하고 말한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놀랐는데 또 이 이상한 청년이 이미 약간의 명성을 지닌 신인 작가 중 한 명이었단 건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가르신이란 분이더군요."
투르게네프는 그 이름을 듣고는 다시 한 번 잡담 속에 톨스토이를 불러보고 싶어졌다. 그건 상대의 융통성이 더더욱 불쾌해진 것 이외에도 과거에 그는 톨스토이에게 처음으로 가르신의 작품을 소개한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르신이었나요?――그 남자의 소설도 나쁘지 않죠. 자네가 그 후에 뭘 읽었는지는 몰라도――"
"나쁘지는 않더군."
그럼에도 톨스토이는 냉정히 적당한 대답만을 할 뿐이었다――
투르게네프는 겨우 몸을 일으키고는 백발의 머리를 저으며 조용히 서재 안을 걸었다. 작은 테이블 위 촛불은 그가 오갈 때마다 벽에 드리운 그의 그림자를 크고 작게 변화시켰다. 하지만 그는 말없이 두 손으로 뒷짐진 채로 울적한 눈을 한사코 바닥서 떼어놓지 않았다.
투르게네프의 마음속에는 그가 톨스토이와 친하게 지낸 이십여 년 이전의 추억이 하나하나 선명히 떠올랐다. 방탕에 방탕을 거듭하여 페테르부르크에 자리한 그의 집에 이따금 자러 온 장교 시절의 톨스토이――네크라소프의 손님방 중 하나서 그를 거만하게 바라보다 조르주 상드의 공격에 모든 걸 잊은 톨스토이――스포스코예의 수풀 사이서 그와 산책하던 걸음을 멈추더니 여름에 내리는 눈의 아름다움에 감탄사를 내던 '두 명의 경기병' 시절의 톨스토이――또 마지막으론 페트의 집에서 두 사람 모두 주먹을 쥔 채로 평생의 매도를 상대의 얼굴에 던지던 톨스토이――그러한 추억은 어느 것을 보아도 아집 강한 톨스토이는 철두철미하게 타인 속에서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타인이 하는 일에선 항상 허위를 느끼는 인간이었다. 이는 타인이 하는 일이 그가 하는 일과 모순될 때에만 한정된 게 아니다. 설령 그와 마찬가지로 방탕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는 자신을 용서하듯이 타인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에겐 타인이 그처럼 여름눈의 아름다움을 느낀단 사실조차 금세 믿지 못 했다. 그가 상드를 미워한 것도 역시 그녀의 진실에 의심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한때 그가 투르게네프와 절교할 뻔했던 것도――아니, 실제로 그는 투르게네프가 멧도요를 맞춰 떨어트렸단 사실에서도 여전히 거짓을 느끼고 있다……
투르게네프는 큰 한숨을 내쉬며 문득 감 앞에 섰다. 감 안에는 커다란 대리석상이 먼 촛불의 빛을 받고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그건 레프에게는 장형에 해당하는 니콜라이 톨스토이의 반신상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하고도 친했다. 이 정이 두터운 니콜라이가 고인 중 하나가 된 후로 이십 년 넘는 세월은 어느 틈엔가 지나버리고 말았다. 만약 레프가 니콜라이의 절반만큼이라도 타인의 감정을 배려해줄 수 있다면――투르게네프는 오랫동안 봄밤이 지나는 것도 모르는 것처럼 이 어두컴컴한 감 안의 대리석상에 쓸쓸한 시선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투르게네프는 살짝 이르게 이 집에서는 식당으로 지정되어 있는 2층의 손님방으로 향했다. 손님방 벽에는 선조의 초상화가 몇 장이나 벽에 걸려 있다――그런 초상화 중 하나의 아래에 톨스토이가 둥근 테이블에 앉아 우편멸을 훑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외엔 아직 아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두 노인은 인사를 했다.
그동안에도 투르게네프는 상대의 얼굴색을 살피며 조금이라도 호의가 보이면 곧장 화해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아직도 깐깐하게 한두 마디 한 후에는 다시 전처럼 묵묵히 우편물만 훑었다. 투르게네프는 도리 없이 가까운 의자에 앉아서는 역시나 말없이 둥근 테이블 위의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음울한 손님방은 잠시 후 물이 끓는 소리 이외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어젯밤은 잘 잤어?"
우편을 다 훑은 톨스토이는 무슨 생각을 한 건지 투르게네프에게 그렇게 물었다.
"잘 잤지."
투르게네프는 신문을 내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톨스토이가 말을 걸 때를 기다렸다. 하지만 주인은 은 손잡이가 달린 컵에 찻잎을 떨구며 그 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한두 번 이어진 후 투르게네프는 마치 어젯밤처럼 불쾌해하는 톨스토이의 얼굴을 보는 게 점점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특히 오늘 아침은 다른 사람이 없는 만큼 한 층 더 마음 둘 곳이 전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다못해 톨스토이 부인이라도 있었다면――그는 울렁거리는 뱃속에서 몇 번이나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손님방에는 어째서인지 아직도 사람이 들어올 기색도 없었다.
오 분, 십 분――투르게네프는 기어코 견딜 수 없다는 양 신문을 던지고는 비틀비틀 의자서 일어났다.
그때 손님방 문 밖에서 대뜸 수많은 말소리나 구두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게 모두 앞을 다투듯이 우당탕탕 계단을 오른다――그런가 하니 다음 순간에는 난폭하게 문이 열리자마자 대여섯 명의 남녀 아이가 죄 입을 놀리면서 단숨에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아버지, 있었어요."
앞에 선 일리야는 의기양양히 손에 든 물건을 흔들어 보였다.
"내가 처음 발견했어."
어머니와 아주 닮은 타티아나도 동생에게 지지 않게 목소리를 높였다.
"떨어질 때에 걸린 거면서. 백양 가지에 걸려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그렇게 설명한 건 가장 나이가 많은 세르게이였다.
톨스토이는 황당하다는 양 아이들의 얼굴을 보았다. 하지만 어젯밤 멧도요가 무사히 발견된 걸 알고는 곧 그의 주름 깊은 얼굴에 밝은 웃음이 떠올랐다.
"그치?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지? 그러니 개도 못 찾았지."
그는 의자를 뒤로 밀면서 아이들과 섞인 투르게네프 앞에 듬직한 오른손을 내밀었다.
"이반 세르게예비치. 이걸로 나도 안심할 수 있어.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야. 이 새도 아래에 떨어져 있었다면 분명 도라가 주웠을 테지."
두르게네프는 거의 부끄러워하듯이 착실히 톨스토이의 손을 잡았다. 찾게 된 건 멧도요일까, 아니면 '안나 카레니나'의 작가인가――'아버지와 아들'의 작가의 가슴에는 그런 판단이 어려울 정도로 울고 싶어지는 기쁨이 어느 틈엔가 한 가득 차있었다."
"나도 거짓말 하는 사람이 아냐. 보라고. 이렇게 잘 죽였잖아? 총이 울리는 동시에 돌처럼 떨어졌다니까――"
두 노인은 얼굴을 마주하고는 서로 입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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