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오노 한자부로란 남자이다. 아쉽게도 대단한 남자는 아니다. 베이징 미츠비시에 근무하는 서른 전후의 회사원이다. 한자부로는 상과 대학을 졸업한 후 두 달째에 베이징에 오게 되었다. 동료나 상사의 평가는 별반 좋다고 할 수 없다. 단지 나쁘다고도 할 수 없다. 평범한 게 한자부로의 풍채와 똑 닮았다.또 하나 덧붙이자면 한자부로의 가정생활과 똑 닮았다.
한자부로는 삼 년 전에 어떤 아가씨와 결혼했다. 아가씨 이름은 츠네코였다. 이 또한 아쉽게도 연애 결혼은 아니다. 어느 친척 노부부에게 중매를 부탁한 중매결혼이었다. 츠네코는 미인이라 할 정도는 아니었다. 또 물론 추악하다가도 할 수 없었다. 단지 둥글게 부풀어 오른뺨은 항상 미소 짓고 있었다. 펑톈에서 베이징으로 오는 도중 침대차서 빈대에 물렸을 때 말고는 항상 작게 웃었다. 심지어 지금은 그 빈대에게 두 번 다시 물릴 걱정이 없었다. 그건 ××골목의 사택 거실에 박쥐가 그려진 제충국 두 캔을 분명히 구비해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자부로의 가정생활이 지극히 평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럴 게 분명하다. 그는 단지 츠네코와 함께 밥을 먹고 측음기를 키고 활동사진을 보는 등――숱한 베이징 회사원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꾸렸다. 하지만 그들의 생활도 운명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운명은 어느 대낮 오후, 이 평범한 가정 생활의 단조를 일격에 박살냈다. 미츠비시 회사원 오노 한자부로가 뇌출혈로 급사했기 때문이다.
한자부로는 역시나 그날 오후에도 톤탄필로의 회사 책상서 서류를 살피고 있었다. 책상 반대편에 앉은 동료도 별달리 이상한 점은 찾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이 일단락되었는지 담배를 입에 문 채로 성냥불을 붙이려는 박자에 불쑥 철푸덕 앞으로 꼬꾸라져 죽어버렸다. 참으로 한심한 죽음이었다. 하지만 세간은 다행히도 이렇게 죽은 걸 별로 입에 오르지 않았다. 입에 오른 건 삶뿐이었다. 한자부로도 그 때문에 별 비난을 받지 않았다. 아니 비난뿐일까. 상사나 동료는 미망인이 된 츠네코에게 깊은 동정을 표했다.
퉁런 병원장 야마이 하카세의 진단에 따르면 한자부로의 사인은 뇌출혈이다. 하지만 한자부로 본인은 불행히도 뇌출혈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애당초 죽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어느 틈엔가 본 적 없는 사무실에 온 사실에 놀라고 있다――
사무실 커튼은 햇살 속에서 천천히 바람을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창밖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무실 한가운데의 커다란 책상에는 하얀 중국 민족 복장을 입은 중국인 둘이 앉아 장부를 살피고 있다. 한 사람은 아직 스무 살 전후이리라. 다른 한 사람은 살짝 누렇게 뜬 긴 턱수염을 지니고 있다.
그러는 사이 스무 살 전후의 중국인이 장부에 펜을 끄적이며 눈도 들지 않고 그에게 물었다.
"아 유 미스터 헨리 배럿, 라이트?"
한자부로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되도록 태연하게 북경어로 대답했다. "저는 일본 미츠비시 공사의 오노 한자부로입니다."하고 대답한 것이다.
"어라, 일본인이세요?"
그제야 고개를 든 중국인 역시 놀란 듯이 이렇게 말했다. 나이를 먹은 다른 한 중국인도 장부에 무어라 적다 만 채로 멍하니 한자부로를 보았다.
"어쩌죠? 잘못 데려왔는데."
"곤란하네, 진짜 곤란해. 제1혁명 이후로 한 번도 없었던 일이야."
나이 먹은 중국인은 화가 났는지 펜을 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찌 됐든 빨리 보내드려."
"그쪽은――어어, 오노 씨셨죠. 잠시만요."
스물 전후의 중국인은 새로이 두터운 장부를 펼쳐 무어라 입 안으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장부를 덮더니 전보다도 한 층 더 놀란 얼굴로 나이 먹은 중국인에게 말했다.
"안 돼요. 오노 한자부로는 삼 일 전에 죽었어요."
"삼 일 전에 죽었다니?"
"심지어 다리가 썪었어요. 양다리 모두 허벅지부터 썪었어요."
한노죠는 다시 한 번 놀랬다. 그들의 문답에 따르면 가장 먼저 그는 이미 죽었다. 두 번째로 죽은지 사흘이나 지났다. 세 번째로 다리가 썩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을 리가 없다. 실제로 그의 다리는 이렇게――그는 다리를 보자마자 그만 악 하고 큰 소리를 질렀다. 큰 소리를 낸 것도 이상할 게 없다. 잘 접은 흰바지와 흰구두를 하고 있던 그의 다리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둘 모두 비스듬하게 나부끼고 있다! 그는 이런 광경을 보았을 때 거의 자신의 눈을 믿지 못 했다. 하지만 두 손으로 만져보니 실제로 두 다리 모두 허벅지 아래부터는 공기를 잡는 것과 매한가지였다. 한자부로는 기어코 자리에 주저앉았다. 또 동시에 다리는――보다 정확히는 바지는 힘 잃은 고무풍선처럼 하늘하늘 위아래로 흔들렸다.
"괜찮아요, 괜찮아. 어떻게든 해드리죠."
나이 먹은 중국인은 그렇게 말한 후 아직 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젊은 부하에게 말했다.
"이건 자네 책임이야. 알았어? 자네 책임이라고. 어서 보고를 올려야 해. 올려야 하니까 하는 말인데 지금 헨리 배럿은 어디 있지?"
"지금 조사해보니 급하게 한커우로 가고 있네요."
"그럼 한커우에 전보를 보내서 헨리 배럿의 다리를 가져와."
"아뇨, 그럴 순 없죠. 한커우에서 다리가 오는 동안 오노 씨의 몸이 썩어버릴 거예요."
"일 났네, 일 났어."
나이 먹은 중국인은 탄식을 했다. 어쩐지 불쑥 수염마저 한 층 더 축 처진 것처럼 보였다.
"이건 자네 책임이야. 어서 보고서를 올려야 해. 승객은 더 남아 있지 않지?"
"네, 한 시간 전에 떠났어요. 대신 말이라면 한 마리 남아 있네요."
"어디 말이지?"
"토쿠쇼몬가이의 마시장 말이네요. 지금 막 죽었어요."
"그럼 그 말 다리를 붙이지. 말 다리라도 없는 것보다야 나아. 잠깐 다리만 가져와라."
스물 전후의 중국인은 책상에서 벗어나더니 슥 어딘가로 나가버렸다. 한자부로는 벌써 세 번째 놀랐다. 듣자하니 지금 이야기에 따르면 말 다리를 붙이는 모양이다. 말 다리를 붙이면 큰일이다. 그는 엉덩방아를 찧은 채로 나이 먹은 중국인에게 탄원했다.
"이봐요, 말 다리만은 참아주세요. 저는 말을 아주 싫어합니다. 부디 평생의 부탁이에요. 사람 다리를 주세요. 헨리인지 아무개인지의 다리라도 괜찮습니다. 조금 털이 많아도 사람 다리라면 참겠습니다."
나이 먹은 중국인은 안타깝다는 양 한자부로를 내려다보면서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있으면 왜 안 붙이겠습니까. 하지만 사람 다리가 없으니까요――자자, 재난이라도 봤다 하고 체념하시죠. 그래도 말 다리는 튼튼하지 않습니까. 이따금 굽만 바꾸면 어느 산길이나 거뜬하잖아요……"
그러자 벌써 젊은 부하 쪽이 말 다리 두 개를 들고 슥하고 또 어디선가 나타났다. 마치 호텔 보이가 장화를 가져온 것만 같았다. 한자부로는 도망 치려했다. 하지만 두 다리가 없는 슬픔에 간단히 허리도 들지 못 했다. 그러는 사이 부하가 그의 옆으로 오더니 하얀 신발이나 양말을 옆으로 치우기 시작했다.
"이러지 마. 말 다리만은 참아줘. 애당초 내 승인도 받지 않고 내 다리를 고치는 게 어디 있어……"
한자부로가 그렇게 소리치는 사이 부하는 바지의 오른 구멍에 말 다리 하나를 꽂았다. 말 다리는 톱니바퀴라도 있는 것처럼 오른 허벅지에 들러붙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왼쪽 구멍에 다른 다리를 꽂았다. 이 또한 들러 붙었다.
"자, 이거면 됐지."
스무 살 전후의 중국인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손톱이 긴 두 손을 매만지고 있다. 한자부로는 그의 다리를 보았다. 그러자 어느 틈엔가 하얀 바지 끝에 두터운 갈색 털의 말 다리 두 개가 굽을 나란히 하고 있었다――
한자부로는 여기까지 기억하고 있다. 적어도 그 너머는 여기까지 만큼 또렷이 기억하지 못한다. 어쩐지 두 중국인과 싸운 것처럼도 기억하고 있다. 또 험한 계단을 굴러떨어진 것처럼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쪽도 확실하지 않다. 어찌 됐든 그는 영문 모를 환상 속을 방황한 후에 겨우 정신을 회복했을 때에는 ××거리 사택에 눕힌 관 안에 누워 있었다. 그뿐 아니라 관 앞에서는 젊은 본간지의 선교사 한 명이 무엇인가를 읊고 있었다.
이런 한자부로의 부활이 화제가 된 건 물론이다. '쥰텐지보'는 그 때문에 그의 사진을 커다랗게 실거나 세 단락이나 쓴 기사를 내걸기도 했다. 듣자 하니 이 기사에 따르면 상복을 입은 츠네코는 평소보다도 한 층 더 웃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상사나 동료는 필요 없어진 부의금을 회비 삼아 부활 축하연을 연다고 한다. 물론 야마이 박사의 신용만은 위험해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박사는 유유히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교묘히 신용을 회복했다. 그건 의학을 초월한 자연의 신비를 역설한 것이다. 요컨대 박사 자신의 신용 대신에 의학의 신용을 내던진 셈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한자부로만은 부활 축하연에 참석했을 때마저 얼굴이 밝지 않았다. 그야 물론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의 다리가 부활한 후로 어느 틈엔가 말 다리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발가락 대신 발굽이 달린 갈색 말 다리로 바뀐 것이다. 그는 이 다리를 볼 때마다 말로 못 할 한심함을 느꼈다. 만일 이 다리가 들통 날에는 회사도 한자부로를 자를 게 분명했다. 동료도 앞으로의 교제는 사양할 테지. 체느코도――아아, '약한 자의 이름은 여자일지니'! 츠네코는 아마 그 사례에서 벗어나지 못 하리라. 말 다리를 한 남자를 남편으로 두고 싶지는 않으리라――한자부로는 그렇게 생각할 때마다 어떻게든 이 다리만은 숨겨야 한다고 결심했다. 일본옷을 입지 않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장화를 신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욕실 창문이나 문단속을 엄중히 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불안은 끝날 줄 몰랐다. 또 불안을 느끼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왜냐면――
한자부로가 가장 먼저 경계한 건 동료의 의혹을 피하는 일이었다. 그는 그의 고심 중에서는 비교적 편한 쪽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일기에 따르면 역시 항상 약간의 위험과 싸워야 했던 모양이다.
"7월 X일 아무래도 그 젊은 중국인 녀석은 괴상한 다리를 붙인 모양이다. 내 다리는 양쪽 모두 벼룩 소굴이라 해도 좋다. 나는 오늘도 사무를 하면서 미치광이가 될 정도의 가려움을 느꼈다. 어찌 됐든 당분간은 전력을 들여 벼룩 퇴치 궁리를 해야 한다……"
"8월 X일 나는 오늘 매니저와 장사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매니저는 이야기하는 내내 끝없이 코를 벌렁거렸다. 아무래도 내 다리 냄새는 장화 바깥으로도 나가는 모양이다……"
"9월 X일 말 다리를 자유롭게 제어하는 일은 분명 마술보다도 어려운 일이다. 나는 오늘 점심시간 전에 급한 일이 생겨 살짝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누구라도 이런 순간에는 일만 생각하게 된다. 나도 그 때문에 어느 틈엔가 말 다리를 잊어버린 걸 테지. 내 다리는 순식간에 일곱 계단을 주파해버렸다……"
"10월 X일 나는 점점 말 다리를 자유롭게 다루는 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이것도 체득하고 보니 허리와 이어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오늘은 실패했다. 물론 실패한 게 꼭 내 잘못인 건 아니다. 나는 오늘 아침 아홉 시 전후로 인력거를 타고 회사로 향했다. 그러자 차부는 12전이란 삯을 20전이라 우겼다. 더군다나 나를 붙들고는 회사에 들어가지 못 하게 했다. 나는 크게 화가 나서 차부를 걷어찼다. 차부가 공중에 떠오른 게 풋볼인가 싶을 정도이다. 나는 물론 후회했다. 또 동시에 그만 떡하고 입이 벌어졌다. 어찌 됐든 다리를 움직일 때에는 한 층 더 세심히 주의를 들여야 한다……"
하지만 동료를 속여 넘기는 것보다도 츠네코의 의혹을 피하는 게 훨씬 더 곤란했던 모양이다. 한자부로는 자신의 일기 속에서 끝없이 이러한 곤란을 통탄하고 있다.
"7월 X일 나의 가장 큰 적은 츠네코이다. 나는 문화생활의 필요성을 방패 삼아 단 하나뿐인 일본식 방을 기어코 서양식 방으로 바꾸었다. 이러면 츠네코 앞에서도 장화를 벗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츠네코는 다다미를 없앤 게 굉장히 불만인 듯했다. 하지만 버선을 찬다고 해도 이 다리로 다다미를 걷는 건 내게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다……"
"9월 X일 나는 오늘 도구점에 더블 베드를 팔아버렸다. 이 침대를 산 건 어느 미국인의 옥션이었다. 나는 그 옥션에 다녀와 조계의 가로수길을 걷고 있었다. 가로수인 회화나무는 꽃을 한 가득 피우고 있었다. 운하의 물이 내뿜는 빛도 아름다웠다. 하지만――지금은 그런 그리움에 잠겨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어젯밤에도 자칫하면 츠네코의 옆구리를 걷어 찰 뻔했다……"
"11월 X일 나는 오늘 빨랫감을 빨래방에 가지고 갔다. 물론 단골 빨래방은 아니다. 토안 시장 옆에 있는 빨랫방이다. 이것만은 앞으로도 실행해야 한다. 팬티나 바지나 양말에는 항상 말의 털이 묻어 있으니까……"
"12월 X일 양말이 찢어지는 건 힘든 일이다. 츠네코에게 들키지 않게 양말 값을 마련하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고생이다……"
"2월 X일 나는 물론 잘 때에도 양말이나 바지를 벗어 본 적이 없다. 그런 데다가 츠네코가 보지 못 하도록 다리 끝을 이불로 숨기는 건 항상 쉽지 않은 모험이다. 츠네코는 어젯밤 자기 전에 '당신 진짜 추위 많이 탄다. 허리에도 천을 두르고 있는 거야?'하고 말했다. 어쩌면 내 말 다리가 들통날 때가 온 걸지도 모른다……"
한자부로는 그 외에도 수많은 위험과 조우했다. 그런 걸 하나하나 꼽는 건 아무리 나라도 쉽지 않으리라. 하지만 한자부로의 일기 중에서 가장 나를 놀라게 한 건 아래에 적은 일이다.
"2월 X일 나는 오늘 점심시간에 류후쿠지의 고서점을 들여다보았다. 헌책방 앞에 볕이 잘 드는 곳에 마차 한 대가 멈춰 있다. 물론 서양 마차는 아니다. 남색 천을 두른 중국 마차이다. 마부도 물론 마차 위에서 쉬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헌책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자 그 순간이었다. 마부는 채찍을 튕기며 "스오, 스오"라고 말했다. "스오, 스오"란 말을 뒤로 뺄 때에 중국인들이 쓰는 말이다. 마차는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뒤로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나 또한 헌책방을 앞에 둔 채로 한 발씩 뒤로 물러났다. 그때 내 심정은 공포라 해야 할까 경악이라 해야 할까. 도무지 글로는 다 할 수 없다. 나는 무작정 한 발이라도 앞으로 나가려 노력하면서도 무서운 불가 항력에 역시나 뒤로 물러났다. 그러는 사이 마부의 "스오"가 멈춘 게 내게는 행복이었다. 나는 마차가 멈추는 박자에 겨우 뒷걸음질을 멈출 수 있었다. 하지만 신비한 건 그뿐이 아니었다. 나는 한숨을 돌리며 저도 모르게 마차 쪽을 보았다. 그러자 말은――마차를 끌던 하얀말은 말로 다 못 할 울음소리를 하고 있었다. 말로 다 못 할?――아니, 다 못 할 건 없다. 나는 그 높은 목소리 속에서 분명히 말이 웃는 걸 느꼈다. 말만 아니라 내 목덜미에도 울음과 비슷한 게 올라오는 걸 느꼈다. 이 목소리를 내면 큰일이다. 나는 두 귀에 손을 얹은 채로 일사불란히 그곳을 도망쳐 버렸다……"
하지만 운명은 한자부로를 위해 마지막 타격을 마련했다. 다른 것이 아니다. 3월 말의 어느 오후, 대뜸 그의 다리가 뛰고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왜 그의 말 다리는 이 시기에 불쑥 술렁이기 시작했는가? 그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한자부로의 일기를 봐야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의 일기는 마침 마지막 타격을 받기 하루 전에 끝이 났다. 단지 전후 사정으로 대강의 추측은 해볼 수 있다. 나는 마정기, 마기, 원향우마타집, 백락상마경 등의 서적을 통해 그의 다리가 흥분한 게 아래와 같다고 확신하고 있다――
당일은 심한 황사가 불고 있었다. 황사란 몽골의 봄바람이 베이징에 옮겨 오는 모래먼지를 말한다. '쥰텐지호'의 기사에 따르면 당일의 황사는 십수 년 이래로 가장 심해서 "다섯 걸음 밖에 정양문을 두어도 문이 보이지 않는다"할 정도였으니 어지간히 심했을 게 분명하다. 또 한자부로의 말 다리는 토쿠쇼 몬가이의 마시장서 죽은 말의 다리이며 또 그 죽은 말은 척 보아도 장자커우, 진저우를 지나 온 몽골산 고륜말이다. 그럼 그런 말 다리가 몽골의 공기를 느끼자마자 곧장 펄쩍 뛰고 달리는 건 되려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또 당시는 국경 밖 말이 필사적으로 교미를 찾으며 종횡무진 달려 올 때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의 말 다리가 가만히 있지 못 한 것도 동정할 만하다 할지 모르겠다……
이러한 해석은 어찌 되었든 한자부로는 당일 회사에 있을 때에도 무도라도 추는 듯이 끝없이 펄쩍펄쩍 뛰었다. 또 사택으로 돌아가는 도중에도――츠네코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개처럼 신음하면서 기다시피 방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겨우 장의자에 앉으니 놀란 아내에게 얇은 끈을 가져오라 명령했다. 츠네코는 물론 남편의 모습을 보고 큼지막한 사건을 상상했다. 무엇보다 얼굴색이 아주 안 좋았다. 그뿐 아니라 짜증을 견딜 수 없다는 양 장화 신은 발을 구르고 있다. 그녀는 그 때문에 평소처럼 미소 짓는 것도 잊고서 끈으로 대체 뭘 하려는 건지 말해 달라고 탄원했다. 하지만 남편은 괴롭게 이마의 땀을 닦으며 이렇게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빨리 해줘, 빨리――빨리 안 하면 큰일이야."
츠네코는 도리 없이 집을 꾸릴 때 쓰는 끈 한 뭉텅이를 남편에게 건넸다. 그러자 그는 그 끈에 장화 신은 두 다리를 묶기 시작했다. 그녀의 마음에 발광이라는 공포가 깃든 게 바로 이때였다. 츠네코는 남편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야마이 박사의 내진을 받는 걸 권했다. 하지만 그는 열심히 다리를 묶으면서 그 권유에 따르지 않았다.
"그런 돌팔이 의사가 뭘 알아? 그 자식은 도둑이야! 사기꾼 의사라고! 그보다 너, 이리 와서 내 몸 좀 붙들어봐."
두 사람은 서로 앉은 채로 가만히 장의자에 앉았다. 베이징을 뒤덮은 황사는 더욱 강해졌을 테지. 이제는 햇살마저 들지 않는 창밖에는 빛이란 게 느껴지지 않는 탁한 적색만이 감돌고 있다. 한자부로의 다리는 그동안에도 물론 조용하지 않았다. 실로 둘둘 묶었음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페달을 밟는 것처럼 끝없이 움직인다. 츠네코는 남편을 위로하듯이 또 남편을 격려하듯이 말했다.
"여보, 여보, 왜 이렇게 떨어요?"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아냐."
"그치만 이렇게 땀을 흘리고 있잖아요――우리, 여름이 되면 일본으로 돌아가요. 네, 여보? 우리 오랜만에 일본으로 돌아가요."
"그래, 일본에 돌아가자. 일본에 돌아가서 살자."
오 분, 십 분, 이십 분――시간은 이런 두 사람 위에서 느린 걸음을 옮겼다. 츠네코는 "쥰텐지보" 기자에게 이때 자신의 심정이 마치 사슬에 묶인 죄인만 같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래저래 삼십 분 후, 끝내 사슬이 끊어지는 때가 왔다. 물론 그건 츠네코의 사슬이 끊긴 순간이 아니었다. 한자부로를 가정에 묶던 인간의 사슬이 끊긴 순간이었다. 탁한 붉은색을 드리운 창문은 불어온 바람 때문인지 불쑥 덜컹덜컹 울렸다. 그와 동시에 한자부로가 무어라 큰 소리를 내더니 세 척 가량 뛰어올랐다. 츠네코는 그때 실이 끊기는 걸 보았다고 한다. 한자부로는――이는 츠네코가 한 말이 아니다. 그녀는 남편이 뛰어오르는 걸 보고 장의자 위에서 실신해버렸다. 하지만 사택의 중국인 보이는 같은 기자에게 이야기했다――한자부로는 무언가에 쫓기듯이 사택 현관으로 나왔다. 그리고 아주 잠깐 현관 앞에 있었다. 하지만 몸을 한 번 떨더니 마치 말 울음과 비슷한 꺼림칙한 소리를 내면서 거리를 가득 매운 황사 안으로 똑바로 달려가 버렸다……
그후 한자부로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건 오늘날에도 의문이다. 물론 "쥰텐지보" 기자는 당일 오후 여덟 시 전후, 황사로 어둑해진 달빛 아래서 모자를 쓰지 않은 남자 하나가 만리장성이 보인다고 이름 높은 팔달령하의 철도 선로를 달려갔다는 신고가 있었다고 한다. 또 같은 신문 기자는 역시나 오후 여덟 시 전후, 황사를 적신 비 안에서 모자를 쓰지 않은 남자 하나가 석인석마처럼 십삼 릉의 큰 길을 달렸다고 한다. 그럼 한자부로는 ×× 거리의 사택 현관을 나온 후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단 뜻이다.
한자부로의 실종 또한 그의 부활처럼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츠네코, 매니저, 동료, 야마이 박사, "쥰텐지보" 주요 집필진 등은 하나같이 그의 실종을 발광 때문이라 해석했다. 물론 미친 탓이라고 해석하는 게 말 다리 때문이라 해석하는 것보다도 간단했기 때문이리라. 어려움을 비켜 가는 게 세상의 공도이다. 이 공도를 대표하는 "쥰텐지보" 주요 집필진 무다구치 씨는 한자부로의 실종 다음 날, 그 큼지막한 붓을 휘둘러 아래와 같은 사설을 공표했다――
"미쓰비시 사원 오노 한자부로 씨는 어제저녁 다섯 시 십오 분, 대뜸 발광한 듯이 츠네코 부인이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단신으로 어딘가로 사라졌다. 퉁런 병원 원장 야마이 박사의 설에 따르면 오노 씨는 작년 여름 뇌출혈을 겪고 사흘간 인사 불성이 된 후 후로 정신에 약간의 이상을 보였다고 한다. 또 츠네코 부인이 발견한 오노 씨의 일기에 따르면 그는 항상 기괴한 강박 관념을 가진 걸로 추정된다. 허나 내가 묻고 싶은 건 오노 씨의 병명이 아니다. 츠네코 부인의 남편인 오노 씨의 책임 여부다."
"우리의 금구무결의 국체는 가족주의 위에 성립되어 있다. 가족주의 위에 성립되는 만큼 한 가정의 주인의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물을 수밖에 없다. 이 한 가족의 주인에게 허투루 발광할 권리는 존재하는가? 나는 이러한 의문 앞에 단호히 아니라고 대답한다. 한 번 천하의 남편이 발광할 권리를 얻었다 치자. 그들은 모조리 가족을 뒤로한 채 어떤 자는 거리서 신음할 테고 어떤 자는 산으로 모습을 감출 테고 또 어떤 자는 정신병원서 음식과 따스한 옷을 누릴 행복을 얻을 테지. 하지만 세계에 자랑할만한 이천 년 이래의 가족주의는 와해될 게 분명하다. 누군가 말하길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했다. 우리는 본래 오노 씨가 지독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가볍게 발광한 죄는 북을 울리며 나무랄 수밖에 없다. 아니, 오노 씨만의 죄일까. 발광 금지령을 등한시한 역대 정부의 실정을 하늘을 대신하여 나무라야 마땅하리라."
"츠네코 부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부인은 적어도 일 년 동안 XX 거리 사택에 머무르며 오노 씨의 귀환을 기다린다고 한다. 우리는 정숙한 부인을 위해 끝 모르는 동정을 표함과 동시에 현명한 미츠비시가 부인의 편의를 고려해주는데 아낌이 없으리라 바라본다……"
하지만 적어도 츠네코만은 반년 가량 지난 후 이 오해에만 머무를 수 없는 새로운 사실과 만났다. 그건 베이징의 버들이나 회화나무가 노란 잎을 떨구기 시작한 10월의 어느 이른 저녁이었다. 츠네코는 방의 장의자 위에서 멍하니 추억에 잠겨 있었다. 그녀의 입술은 이제 영원하던 미소를 드리우고 있지 않다. 그녀의 뺨도 어느 틈엔가 살점을 많이 일었다. 그녀는 실종된 남편이나 팔아버린 더블베드, 빈대만을 생각했다. 그러자 누가 머뭇머뭇 사택의 현관벨을 눌렀다. 그녀는 그럼에도 아랑곳 않고 보이에게 대응을 맡기려 했다. 하지만 보이는 어디로 갔는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벨은 그러는 사이 다시 한 번 울렸다. 츠네코는 겨우 장의자서 일어나 조용히 현관으로 향했다.
낙엽이 퍼진 현관에는 모자를 쓰지 않은 남자 하나가 여명 속에 자리하고 있다. 모자를――아니, 모자뿐일까. 남자는 모래 먼지로 너덜너덜해진 웃옷을 입고 있었다. 츠네코는 이 남자의 모습서 거의 공포에 가까운 걸 느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남자는 아무 대답도 않고 기장이 긴 머리를 푹 숙이고 있다. 츠네코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머뭇머뭇 물었다.
"무슨 일로……무슨 일로 오셨나요?"
남자는 겨우 고개를 들었다.
"츠네코……"
그건 단 한 마디였다. 하지만 마치 달빛처럼 이 남자를――이 남자의 정체를 서서히 드러내게 했다. 츠네코는 숨을 삼킨 채로 잠시간 목소리를 잃은 것처럼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수염을 기르고 다른 사람처럼 말라 있었다. 그러나 여자를 보는 눈동자는 확실히 기다리던 그 눈동자였다.
"여보!"
츠네코는 그렇게 외치며 남편의 가슴에 매달리려 했다. 하지만 첫 걸음을 내딛자마자 뜨거운 철판이라도 밟은 것처럼 뒤로 물러났다. 남편은 찢어진 바지 아래로 털투성이 말 다리를 드러내고 있다. 여명 속에서도 털색이 보이는 갈색 말 다리를 드러내고 있다.
"여보!"
츠네코는 이 말 다리서 형용할 수 없는 혐오를 느꼈다. 하지만 지금을 놓치면 두 번 다시 남편을 만나지 못 하리라 느꼈다. 남편은 역시나 슬픈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츠네코는 다시 한 번 남편의 가슴에 자신의 몸을 던지려 했다. 하지만 혐오는 다시 한 번 그녀의 용기를 압도했다.
"여보!"
그녀가 다시 한 번 그렇게 말했을 때, 남편은 등을 돌리고는 조용히 현관을 내려갔다. 츠네코는 마지막 용기를 짜내어 필사적으로 남편에게 매달리려 했다. 하지만 한 발을 내닫기도 전에 그녀의 귀에 들린 건 따그닥따그닥하는 말발굽 소리였다. 츠네코는 새파랗게 질려 불러낼 용기도 잃은 것처럼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현관에 떨어진 낙엽 속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츠네코는 그 후로 남편의 일기를 믿게 되었다. 그러나 매니저, 동료, 야마이 박사, 무다구치 씨 등은 아직도 오노 한자부로가 말 다리를 가지게 된 걸 믿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츠네코가 말 다리를 본 것도 환각을 본 거라 믿고 있다. 나는 베이징 거주 중에 야마이 박사나 무다구치 씨를 만나 번번이 그 잘못된 생각을 깨려 했다. 하지만 반대의 비웃음만 받을 뿐이었다. 그 후로도――아니, 최근에는 소설가 오카다 사부로 씨도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는지 도무지 말 다리가 된 건 믿을 수 없다는 편지를 보냈다. 오카다 씨는 만약 사실이라면 "아마 말의 앞 다리를 붙인 거지 싶었는데 스페인 속보 같은 묘기를 해낼 수 있는 준족이라면 앞다리로 물건을 걷어차는 것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마저도 유아사 소좌가 탔을 때의 이야기지 말이 혼자서 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라고 한다. 나도 물론 그 점에서는 약간의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만한 이유로 한자부로의 일기가, 츠네코의 이야기가 부정되는 건 조금 이른 생각 아닐까? 실제로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의 부활을 보도한 "쥰텐지보"는 같은 면의 두세 단락 아래에 이런 기사를 걸고 있다――
"미화금주 회장 헨리 배럿 씨가 경한 철도 기차 안에서 급사했습니다. 헨리 씨는 약병을 손에 든 채로 죽어 자살 의혹이 생겼습니다만 병안의 약을 분석한 결과 알콜로 판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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