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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루시헤루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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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초성세계하느님께서 처음으로 세계를 만들 때

 수조삼십육신함께 서른 여섯 신을 만드셨다

 제일거신가장 높은 신을

 운로제아루시헤루라 한다

 (중략)

 자위지여천주등그는 스스로 말하길 자신이 하늘과 같다고 했다.

 천주노이폄지옥하느님께서 이에 분노하셔 지옥에 떨어트리셨다.

 (중략)

 로제수입지옥수고루시헤루는 지옥에서 고통받는다.

 이일반혼신작마귀유행세간하지만 절반의 혼은 신이기에 마귀가 되어 세상에 내려와

 퇴인선념사람에게서 선함을 앗아간다고 한다.

좌벽제삼벽열성문애유락답허대수어

 

하나


 파데우스破提宇子라는 천주교를 논리적으로 비난한 책은 아는 사람도 적지 않을 터이다. 이는 겐나 6년, 카가의 파비안이란 자가 쓴 책이다. 파비안은 당초 남만절에서 살던 천주교도였으나 그후 모종의 사정으로 DS 여래를 버리고 불문으로 귀의하게 되었다. 책에 적힌 바로 추측하자면 그는 노자의 유학에도 조예를 가진 재능 있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파데우스의 유포본은 카쵸산분코의 소장본을 메이지 원년에 기우도인 우가이 테츠죠의 서문과 함께 출판된 것이다. 하지만 달리 이본이 없는 건 아니다. 실제로 내가 소장한 고사본은 유출본과 내용이 다른 부분이 다소 존재한다.
 개중에서도 같은 책의 세 번째 단락은 악마의 기원을 논한 한 장인데 내 장서가 유포본보다 내용이 훨씬 많다. 파비안 본인이 목격한 악마의 기사가 그 신랄한 논리적 비난 공격 사이서 하나하나 인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이 유포본에 실리지 않은 이유는 아마 너무 황당무계하여 이런 파사현정을 목표로 하는 서적 특성상 일부러 누락한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이하에 이 이본의 세 번째 단락을 소개하여 파비안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일본의 Diabolus를 보려 한다. 또 파비안을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은 신무라 박사의 파비안에 관한 논문을 한 번 읽어 보면 좋다.
 


 데우스, 즉 DS는 "스피리퇄리스 숩스탄티아"이자 무색무형의 실체로서 천지를 풍만히 채우고 있으나 그와 별개로 위광을 드러내며 선인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 '하라이소천국'란 극락 세계를 하늘 위에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 걸 시작으로 인간보다도 전에 안죠천사라는 무량무수의 천인天人을 만들어 지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절대인의 지위를 바라지 말라는 천계를 지정하여 그 천계를 지키면 그 공덕에 따라 DS의 모습을 보고 쇠락하는 법 없는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만약 파계하면 '인헤루노지옥'란 고통으로 충만한 지옥에 떨어져 춥고 더운 고난을 받게 된다. 이는 만들어진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무수한 안죠 중에서 '루시헤루'란 안죠가 자신의 선함을 자랑하며 자신이 즉 DS이니 자신을 모시라 말하니 그 무수한 안죠 중에서 삼 분의 일이 '루시헤루'에게 동의하여 무리를 이루었다. 이때 DS '루시헤루'를 시작으로 그에게 붙은 삼 분지 일의 안죠가 하계로 떨어져 '인헤루노'에 떨어진다. 즉 안죠의 오만함이 '쟈보악마'라는 텐구로 변모한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이 데우스라 말한 것부터 시작해 전적으로 자승자박이다. 먼저 DS는 어디에나 풍만히 존재하니 진여법성본분으로써 천지를 가득 매워 전 우주의 이치를 듣고 말하고 기억한단 뜻이다. 닮기는 했으나 다르다는 게 바로 이런 걸 말하는 거리라. 그럼 당신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DS가 '사피엔티시모전지전능'이며 과거와 현재, 미래의 일을 모두 알고 또 그들 안죠를 만들었다면 그들이 인헤루노에 떨어질 것도 알아야 마땅하다. 알지 못 한다면 전지전능하다는 건 거짓이다. 또 알면서 만들었다면 몹시 무자비한 일이다. 만사를 이루어주는 DS라면 안죠를 인헤루노에 떨어트리지 않고 무어라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하물며 떨어트린 채 방치하는 건 천마를 만드는 일이 된다. 괜한 천구를 만들어 방해하게 하는 건 무슨 경우인가. 물론 '쟈보'란 천구가 본래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는 할 수 없다. 단지 DS가 안죠를 만들고 안죠가 악마로 변했다는 것만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다.
 먼저 '쟈보'의 성립이 그렇다 하더라도 그대가 이를 극악나찰의 악귀로 여겨야 할지는 조금 의문이다. 그 이유는 내가 과거에 남만절에서 지낼 적에 악마 '루시헤루'를 눈앞에서 직접 본 적이 있는데 그가 직접 그러한 이치를 말하며 인간이 '쟈보'를 잘 알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탄했기 때문이다. 이를 부디 파비안이 천마의 우롱에 넘어가 헛된 소리를 한다고 여기지는 않길 바란다. 천주란 이름에 겁을 먹고 정법의 이치를 깨닫지 못 하는 그대들 데우스야말로 어리석음의 극치이다. 내 눈으로 보면 존귀한 '산타 마리야처녀 마리아'를 모시는 바테렌의 숫자는 많아도 악마 '루시헤루'를 논하는 사람은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부터 내가 '쟈보'를 만난 이야기, 남만의 말을 쓰자면 '아포크리파외경'을 아래에 적어보고자 한다.
 언젯적 이야기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리라. 어느 해 가을의 저녁, 나는 홀로 남만절의 경내서 꽃과 나무 수풀을 걸으며 같은 키리시탄 신자인 어떤 고귀한 부인이 눈물 흘리며 참외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 부인이 내게 말하길 "얼마 전에 괴이한 일이 있었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귀에 속삭임이 들려 험상궂은 남편만이 지켜줄 수 있다. 또 세상에는 정이 많은 남자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심지어 그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넋이 나가 연모의 정을 자제하기 어렵다. 그러니 누구하고도 제대로 이어질 수가 없고 젊음과 아름다움만 보내며 덧없는 마음에 몸을 애태운다"고 한다. 나는 그때 종문의 계법을 논하며 엄숙히 경고하길 "그 목소리는 어떠한 악마의 소행으로 보인다. 이 '쟈보'에겐 일곱 개의 무서운 죄로 인간을 꼬드기는 힘이 있는데 하나가 오만, 둘이 분노, 셋이 질투, 넷이 욕망, 다섯이 색욕, 여섯이 식탐, 일곱이 나태이다. 하나하나가 지옥에 떨어지기 충분한 일이다. 그러나 DS는 자비와 자애의 근원이고 '쟈보'는 모든 악의 근본이니 천주의 가르침을 따르면 그 손톱과 이빨이 허투루 다가 올 일이 없다. 단지 전념으로 기도를 올려 DS의 뜻이 기대면 만에 하나라도 '인헤루노'의 업화에 탈 일은 없을지어다"하고 말했다. 또 남만의 그림서 볼 수 있는 악마의 무서운 형상을 이야기하니 부인도 그제야 '쟈보'의 무서움을 깨닫고 '그럼 그 박쥐 날개에 산양의 뿔, 뱀 비늘을 가진 자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내 귀 옆에 자리하여 음란한 사랑을 속삭이는 거군요"하고 몸을 떨며 말했다. 나는 그 일부 시종을 마음속에서 되풀이하며 이국에서 옮겨 심은 이름도 모를 풀과 나무서 자란 향이 풍만한 꽃을 걸으며 살짝 어두운 골목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길을 보니 내가 걸은 열 걸음도 안 되는 곳에 바테렌으로 보이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 사람이 나를 보자마자 바람처럼 오더니 묻기를 "당신은 나를 알지요"란다. 내가 고개를 들어 그 사람을 보니 얼굴은 마치 곤륜노처럼 검지만 눈썹과 눈이 추하지 않고 몸에는 소매가 긴 법복을 입고 목에 황금 장식을 걸고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지 못 했기에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니 그 사람은 곧 비웃듯이 "무얼, 내가 곧 '루시헤루'다."하고 말한다. 내가 크게 놀라서 말하기를 "'루시헤루'일 리가 없다. 보면 생긴 것도 사람과 다르지 않다. 박쥐 날개, 산양 뿔, 뱀 비늘도 없지 않은가'하고 물었다. 그 사람이 대답하길 '악마는 본래 사람과 다르지 않다. 나를 그리면서 추악하게 그린 화공의 짓이다. 나와 내 동료들은 모두 날개가 없고 비늘이 없으며 뿔이 없다. 하물며 어딘가 수상쩍은 모습도 하지 않는다.' 내가 더욱 말하기를 "설령 악마가 인간과 다르지 않더라도 그건 단지 외견에만 국한된 이야기다. 그대의 마음은 일곱 대죄가 전갈처럼 덮고 있다." '루시헤루'는 다시 웃더니 비웃듯이 말했다. "일곱 대죄는 사람의 마음에도 전갈처럼 덮어져 있다. 그대는 그걸 아는가." 내가 매도하며 "악마야, 물러가라, 내 마음은 DS가 만덕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그대의 그림자가 머물 곳이 아니다."하고 말하자 악마가 크게 웃기를 "어리석은, 파비안. 그대가 나를 매도하는 마음이 즉 오만이며 첫 번째 대죄이다. 악마와 인간이 다르지 않다는 건 그대가 증명하고 있다. 만약 악마가 그대들 샤먼이 생각하는 것처럼 흉악무도한 괴물이라면 우리가 하늘 아래를 둘로 나누어 그대가 말하는 DS와 함께 지배할 리가 없다. 빛이 있으면 반드시 어둠이 있는 법이다. DS의 낮과 악마의 밤이 번갈아 세상을 지배하는 게 없다고는 못 하리라. 하지만 우리 악마는 그 성질이 사악해도 선을 잊지 않는다. 오른 눈동자는 '인헤루노'의 무간의 어둠을 보아도 왼쪽 눈은 지금도 '하라이소'의 빛으로 뒤덮인 천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기에 악이 전부가 아니다. 이따금 DS는 천인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대는 모르겠지만 방금 전 그대가 참회를 들은 부인도 '루시헤루'가 직접 그 귀에 음란의 말을 속삭인다. 허나 내 마음이 약해 질릴 때까지 부인을 유혹하지 못 했다. 단지 황혼과 함께 떠나 산호 염주와 상아에 닮은 손목을 단지 아름다운 환상처럼 바라볼 뿐이다. 만약 우리에게 그대들 샤먼이 두려워할 법한 흉험무도한 악마라면 부인이 그대 앞에서 참회하며 눈물을 흘리느니 재빠르게 불의의 쾌락에 젖어 지옥에 떨어질 만한 일을 저질렀을 것이다." 나는 '루시헤루'의 달변과 당당함에 놀라 잠시간 답하지 못 하고 멍하니 선 채 그 흑단처럼 맨질한 겉모습을 바라았다. 그러자 그는 곧 내 어깨를 붙들고 슬프게 한탄하길 "내가 항상 '인헤루노'에 떨어질 거라 생각하는 또 마찬가지로 내가 항상 '인헤루노'에 떨어지지 않았으면 생각하는 혼이다. 그대, 우리 악마의 이 슬픈 운명을 아는가. 내가 그 부인을 음란의 함정에 붙잡다 끝내 붙잡지 못한 걸 보라. 내가 부인의 숭고한 청념함을 사랑하면 이윽고 부인을 더렆이고 싶어지고 또 반대로 부인이 더러워지면 다시 그 숭고함이 그리워진다. 이는 그대들이 이따금 일곱 죄를 범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항상 일곱 개의 무시무시한 덕을 행하게 된다. 아아, 우리 악마를 꼬드기고 끝 없이 선을 종용하는 건 그대들인가 혹은 DS인가. 그마저 아니라면 DS 이상의 영이랴." 악마 '루시헤루'는 내 귀에 그렇게 속삭이며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더니 전조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곧장 다른 바테렌에게 달려가 '루시헤루'가 이렇게 말했다 전하니 무지한 바테렌, 되려 나를 믿지 않고 문종의 내증에 등을 돌렸다며 꾸짖기를 며칠이나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내가 보고 내가 들은 이 악마 '루시헤루'를 미처 의심할 수 없다. 악마 또한 근본은 선하다. 결코 모든 악의 근본이라 할 수는 없다.
 아아, 그대 데우스여, 아직도 악마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하물며 천지를 만든 사람의 의중은 어찌 아는가. 부디 머리를 가득 매운 그 갈등을 끊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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