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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상하이 유랑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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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상하이


 도쿄를 뜨는 날에 나가노 소후 씨가 찾아왔다. 듣자 하니 나가노 씨도 보름 후에 중국 여행을 떠날 생각이시란다. 그때 나가노 씨는 친절하게도 뱃멀미의 묘약을 가르쳐주셨다. 하지만 모지에서 배를 타면 이틀 밤낮도 걸리지 않고 곧장 상하이에 도착하고 만다. 고작 이틀 밤낮 가량 되는 항해에 뱃멀미 약을 휴대하다니 나가노 씨의 엄살도 알만 하다――이렇게 생각한 나는 삼 월 이십일 일 오후, 지쿠고마루의 사다리에 올랐을 때에도 비바람이 부는 항구를 보며 다시 한 번 나가노 소후 화백이 바다를 두려워한 사실을 유감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고인을 경멸한 벌은 배가 겐카이에 오르는 동시에 서서히 바다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같은 선실을 받은 마스기 군과 윗갑판의 등의자에 앉아 있으니 배 옆에 부딪히는 파도의 물방울이 이따금 머리 위에 떨어졌다. 바다는 물론 새하얗고 바닥이 웅웅 울리고 있다. 저 너머서 무언가 선 그림자가 희미하게 보인다 싶었더니 큐슈의 본토였다. 하지만 배에 익숙한 마스기 군은 담배를 피우면서 약해진 기색을 도통 보이지 않았다. 나는 외투 자락을 세우고 두 손을 주머니에 꽂아 이따금 인단을 입에 넣고――요컨대 나가노 소후 씨가 뱃멀미 약을 준비한 건 현명한 조치였다고 감복했다.
 그러는 사이 옆자리 마스이 군은 바인지 어딘지로 가버렸다. 나는 역시 유유히 등나무 의자에 앉아 있다. 남이 보기엔 유유히 보여도 머릿속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곧장 현기증이 날 거 같았다. 그런 데다가 아무래도 위장 안도 조용하지 않은 듯했다. 내 앞에서는 한 선원 하나가 끝없이 갑판을 오가고 있다.(이는 나중에 발견한 일인데 실은 그 또한 나처럼 애처로운 뱃멀미 환자 중 한 명이었다.) 그 어지러운 왕래도 내게는 묘하게 불쾌했다. 그리고 또 반대편 바도 안에서는 얇은 연기를 내뿜는 트롤선이거의 선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맹렬히 다가오고 있다. 대체 무슨 필요가 있어 저런 큰 파도를 뒤집어 쓰는 걸까. 당시의 내게는 그 배마저 속이 뒤집혀 도리가 없었다.
 그러니 내 일심은 현재의 고통을 잊을 법한 유쾌한 일만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 풀과 꽃, 화분, 일본 알프스, 초대 폰타――그 외엔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아직 있다. 듣자하니 바그너는 젊어서 영국으로 건너가는 항해 중에 지독한 폭풍우를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의 경험이 훗날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쓸 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 생각도 여럿 해보았는데 머리는 더더욱 흔들렸다. 가슴이 답답한 것도 나을 기미가 없다. 끝내는 바그너 따위 개라도 주라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십분 가량 지난 후, 침상 위에 누운 내 귀에는 식탁의 접시나 나이프가 한 번에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뱃속 내용물이 터져 나오려는 걸 필사적으로 억누르는데 고심했다. 이때 이만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어쩌면 뱃멀미에 괴로워한 것도 나 혼자 있지 않냐는 걱정 덕이렸다. 허영심이란 것도 이럴 때에는 생각보다 무사도를 대신해 활약하나 보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어보니 적어도 일등선실만은 하나 같이 뱃멀미에 지독하게 앓아 유일한 미국인을 제외하면 아무도 식당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 비범한 미국인만은 혼자 밥을 먹고 살롱서 타자기를 두드렸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갑자기 마음이 밝아졌다. 또 동시에 미국인이 괴물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그렇게나 거친 파도를 겪었음에도 태연할 수 있는 건 인간 이상의 위업이다. 혹은 그 미국인도 신체 검사를 하면 이가 서른아홉 개 있거나 작은 꼬리가 솟아 있는 등 의외의 사실이 발각될지 모른다――나는 여전히 마스기 군과 갑판의 등의자에 걸터 앉아 그런 공상을 했다. 바다는 어제 그렇게나 거칠었던 걸 까맣게 잊은 것처럼 푸르고 온화한 우현 너머에 제주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둘 첫인상(상)


 부두 밖으로 나오니 몇십 명은 되어 보이는 인력거꾼이 우리를 포위했다. 우리는 같은 회사의 무라타 군, 토모스미 군, 국제통신사의 존즈 군을 포함한 우리 넷을 말한다. 애초에 인력거란 말이 일본인에게 주는 영상이미지는 결코 칙칙하지 않다. 되려 그 좋은 기세는 어딘가 에도 이전의 기분을 들게 할 정도이다. 하지만 중국의 인력거꾼은 불쾌함 그 자체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그런 데다가 가볍게 둘러보니 다들 수상쩍은 인상을 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전후좌우를 가득 매운 채 목을 뻗어서는 큰 소리로 무어라 외치니 막 상륙한 일본인으로선 적잖은 꺼림칙함을 느끼는 듯했다. 실제로 나도 그들 중 한 명에게 외투 자락을 잡혔을 때에는 저도 모르게 키가 큰 존즈 군 뒤로 물러났을 정도다.
 우리는 이 인력거꾼의 포위망을 빠져나와서 겨우 마차 위 손님이 되었다. 하지만 그 마차도 움직이는가 싶더니 말이 곧장 무작정 마을 변두리의 벽돌 울타리와 충돌해버렸다. 젊은 중국인 마부는 화가 나서 철썩철썩 말을 때렸다. 말은 벽돌 울타리에 코를 박은 채로 엉덩이만 흔들었다. 마차는 물론 전복되려 했다. 길거리에는 곧장 인파가 생겼다. 아무래도 상하이에선 죽을 각오 없이는 마차에도 잘 못타는 모양이다.
 그러는 사이 또 마차가 움직이더니 철교가 걸린 강으로 나왔다. 강에는 중국의 달마선이 물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모여 있다. 강 끝자락에는 녹색 전철이 부드럽게 몇 대나 움직이고 있다. 건물은 어떤 걸 보아도 붉은 벽돌로 만든 삼 층 건물이거나 사 층 건물이다. 아스팔트 대로에는 서양인이나 중국인이 바쁘게 걷고 있다. 하지만 그런 세계적인 군중은 붉은 터번을 쓴 인도인 순사가 신호를 하자 곧장 마차에게 길을 양보해주었다. 교통 정리는 아무리 잘 쳐줘도 도무지 도쿄나 오사카 같은 일본 도심은 미칠 게 못 된다. 인력거나 마차가 용맹한 데에 살짝 겁을 먹고 있던 나는 이런 상쾌한 광경을 보는 사이에 점점 유쾌해졌다.
 이윽고 마차가 멈춘 건 과거에 김옥균이 암살된 동아양행이라는 호텔 앞이었다. 그러자 가장 먼저 내린 무라타 군이 마부에게 몇 푼인가 돈을 쥐여주었다. 하지만 마부는 그걸로는 부족했는지 간단히 내민 손을 거두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침을 튀기며 무어라 소란을 피운다. 하지만 무라타 군은 모른다는 얼굴로 척척 현관으로 올라갔다. 존즈와 토모스미 두 사람도 역시 마부의 웅변 따위는 문제도 되지 않는 듯했다. 나는 이 중국인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아마 이게 상하이식 유행이지 싶어 곧장 뒤를 따라 문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다시 한 번 돌아보자 마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태연히 마부석에 앉아 있었다. 그럴 바에야 그렇게 떠들 일은 없지 싶었다.
 우리는 곧장 어두컴컴하면서도 그런 주제에 장식만 화려한 묘한 응접실로 안내받았다. 확실히 이래서야 김옥균이 아니더라도 언제 어떤 창문 밖에서 탄환이 날아올지 모르겠다――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그때 용맹한 양복 차림의 주인이 슬리퍼 소리를 내며 번잡하게 들어왔다. 무라타 군의 이야기에 따르면 나를 이 호텔에 묵게 한 건 회사의 사와무라 군의 고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뛰어난 주인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겐 방은 빌려주었다 만에 하나 암살 당해서야 이득이 되지 않는다 생각한 건지 현관 앞 방 말고는 비어 있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그 방으로 가보니 침대만은 어째서인지 두 개 있으나 벽은 그을러져 있고 커튼은 낡았으며 의자마저 만족스러운 건 하나도 없는――요컨대 김옥균의 유령이라도 아닌 한 쉽게 머물 수 없을 듯한 방이었다. 그러니 나는 도리 없이 사와무라 군의 뜻에는 반해도 다른 셋과 상담 끝에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만세관으로 거처를 옮기기로 했다.
 

셋 첫인상(중)


 그날 밤, 나는 존즈 군과 함께 셰퍼드라는 음식점에 밥을 먹으러 갔다. 그곳은 벽도 식탁도 유쾌하게 만들어져 있다. 서빙은 모조리 중국인이지만 주변 손님 중에는 노란 얼굴을 한 명도 찾아 볼 수 없다. 요리도 선박 회사의 배에 비하면 삼 할은 질이 좋다. 나는 존즈 군을 상대로 예스나 노 같이 영어를 말하는 게 유쾌해졌다.
 존즈 군은 유유히 안남미로 된 카레를 펼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 하나로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밤 존즈 군이――역시 군을 붙여서야 어쩐지 친구란 느낌이 안 든다. 그는 이 전후로 오 년 동안 일본에서 살던 영국인이다. 나는 그 오 년 동안(한 번 싸우긴 했어도) 시종 그와 친하게 지냈다. 같이 가부키자의 입석을 함께한 적도 있다. 가마쿠라의 바다를 헤엄친 적도 있다. 밤새 우에노 찻집서 술을 마신 적도 있다. 그때 그는 쿠메 마사오의 한 벌 뿐인 하카마를 입은 채로 대뜸 그곳의 연못이 뛰어들었다. 그런 그에게 군 같은 걸 붙여서야 누구보다도 그에게 미안할지 모른다. 또 하나 확실히 해두자면 내가 그와 친한 건 그가 일본어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내 영어가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다――듣기로는 어느 밤, 그 존즈가 어딘가 카페에 술을 마시러 가니 일본인 직원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입버릇처럼 중국은 그의 도락(하비) 일본은 그의 정열(패션)이라 연호하던 남자이다. 특히 당시는 상하이서 이사 온 참이니 어지간히도 일본이 그리웠던 게 분명하다. 그는 일본어를 써서 직원에게 물었다. "언제 상하이에 오셨나요?" "어제 막 왔어요" "그럼 일본에 돌아가고 싶진 않으세요?" 직원은 그의 말을 듣고 불쑥 눈물을 머금은 소리를 냈다. "가고 싶지" 존즈는 영어로 말하는 동안에 이 "가고 싶지"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리고 그는 히죽히죽 웃었다. "나도 그 말을 들었을 때엔 Awfully sentimental매우 감상적이 되었지."
 우리는 식사를 마친 후 북적이는 큰길을 산책했다. 그리고 카페 파리지앵에 잠시 무도를 보러 갔다.
 무도장은 꽤나 넓었다. 하지만 관현악 오케스트라의 소리와 함께 전등불이 파랗게 붉게 점멸하는 건 참으로 아사쿠사와 닮아 있었다. 단지 그 관현악의 실력 문제만은 도무지 아사쿠사가 이길 수 없다. 장소야 상하이라도 서양인의 무도장은 역시 달랐다.
 우리는 구석 테이블서 아니제트잔을 홀짝이면서 새빨간 옷을 입은 필리핀 소녀나 정장을 입은 미국 청년이 유쾌하게 춤추는 걸 보았다. 휘트먼인지 누군지의 짧은 시에 젊은 남녀도 아름다우나 나이를 먹은 남녀의 아름다움은 또 별격이란 게 있다. 나는 영국의 노부부가 내 앞에 춤을 췄을 때에도 또한 이 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존즈에게 그렇게 말하니 모처럼의 내 시적 감탄도 흐흥, 하는 웃음 하나로 밀려나버렸다. 그는 노부부의 무도를 보면 뚱뚱하고 마르고에 관계 없이 바람을 불어 밀어내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듯했다.
 

넷 첫인상(하)


 카페 파리지앵에서 나오자 넓은 거리에도 인파가 드물어져 있었다. 그런 주제에 시계를 꺼내보니 열한 시나 간신히 되었다. 상하이의 거리는 의외로 빨리 잠드는 모양이다.
 단지 그 무서운 인력거꾼만은 아직도 몇 명인가 어슬렁거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 모습을 보면 반드시 무어라 말을 건다. 나는 낮 동안 마루타 군에게 불요不要, búyào란 중국어를 배웠다. 불요란 물론 필요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나는 인력거꾼만 보면 마치 악마를 쫓는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부야오부야오 연발했다. 이게 내 입에서 나온 기념할만한 첫 중국어이다. 내가 얼마나 신이 나서 이 말을 인력거꾼에게 했던가, 그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는 분명 단 한 번도 외국어를 배운 경험이 없을 게 분명하다. 

 우리는 구두 소리를 내면서 조용한 거리를 걸었다. 그 거리 좌우로는 삼사 층의 벽돌 건물이 별투성이 하늘을 덮고 있다. 그런가 하면 가로등의 빛이 두터운 필체로 "当"로 적은 전당포의 하얀벽을 보이는 일도 있다. 어떤 때는 또 도보의 바로 위에서 여의인지 무엇인지 간판이 걸려 있는 곳을 지나자 칠이 벗겨진 울타리인지에 남양 담배의 광고가 붙어 있는 곳도 지났다.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간단히 우리의 여관에 이르지 않았다. 그러던 사이 나는 아니제트가 뒤늦게 올라온 건지 목이 말라 참을 수가 없었다.
 "야, 어디 물 마실 곳 없을까. 목이 엄청 마르네."
 "조금만 더 가면 카페가 한 곳 있어. 조금만 더 참아."
 오 분 후 우리 두 사람은 차가운 소다를 마시면서 자그마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이 카페는 파리지엥보다 어지간히 질이 떨어지는 듯했다. 복숭아색 칠이 된 벽 옆에는 머리를 가른 중국 소년이 커다란 피아노를 치고 있다. 또 카페 중앙에는 영국 수병 서너 명이 뺨을 짙은 붉은색으로 칠한 여자들을 상대로 볼품없는 무도를 이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입구의 유리문 옆에는 장미꽃을 파는 중국 노파가 내게 부야오를 당한 후 멍하니 무도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어쩐지 신문 삽화라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삽화 제목은 물론 '상하이'이다.
 그때 밖에서 대여섯 명, 마찬가지로 수병 동료인지가 단숨에 우르르 밀려들어왔다. 이때 가장 손해를 본 게 입구에 서있던 노파이다. 노파는 주정뱅이 수병들이 난폭하게 문을 여는 순간 팔에 걸치고 있던 바구니를 떨어트려 버렸다. 심지어 당사자인 수병들은 그런 일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춤추던 녀석들과 함께 미치광이처럼 군다. 노파는 중얼거리며 마루에 떨어진 장미를 주웠다. 하지만 그마저도 줍는 동안 수병들의 신발에 짓밟히고 만다……
 "갈까?"
 존즈는 질색을 하는지 큰 몸을 일으켰다.
 "가자."
 나도 곧장 일어났다. 하지만 우리 발밑에는 곳곳에 장미가 흐트러져 있다. 나는 입구를 향해 발을 옮기며 도미에의 그림을 떠올렸다.
 "야, 인생은 말야."
 존즈는 노파의 바구니 안에 은화 한 장을 넣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인생은――뭔데?"
 "인생은 장미가 뿌려진 길이야."
 우리는 카페 밖으로 나왔다. 그곳에는 여전히 황포거 몇 대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더니 우리 모습을 보고는 네 방향에서 달려왔다. 인력거는 당연히 부야오이다. 하지만 이때 나는 그들 이외에도 한 명 더 성가신 사람이 온 걸 발견했다. 우리 옆에는 어느 틈엔가 그 꽃장수 노파가 무어라 말하면서 거지처럼 손을 뻗고 있다. 노파는 은화를 받고도 또 우리 지갑을 열게 할 생각인 듯했다. 나는 이런 욕심쟁이에게 팔리는 아름다운 장미가 안타까워졌다. 이 뻔뻔한 노파와 낮에 탄 마차 마부――이건 비단 상하이의 첫인상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아쉽게도 동시에 또 중국의 첫인상이기도 했다.
 

다섯 병원


 나는 그 다음날부터 드러누웠다. 그리고 또 그 다음날부터 사토미 씨의 병원에 입원했다. 병명은 아무래도 건성 늑막염이라 한다. 늑막염이라는 이상 모처럼 세운 중국 여행도 보류해야 할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매우 마음을 졸였다. 나는 곧장 오사카의 회사에 입원했다는 전보를 보냈다. 그러자 회사의 스스키다 씨가 "천천히 요양하세요"하는 전보를 보냈다. 하지만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병원에 누워만 있어서야 회사도 곤란할 게 분명하다. 나는 스스키다 씨의 전보에 안심하면서도 기행의 펜을 들어야 하는 내 역할을 생각하자 도무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상하이에는 회사의 무라타 군이나 토모스미 이외에도 존즈나 니시무라 테이키치 같은 학창 시절의 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친구나 지기는 바쁜 와중에도 불구하고 줄곧 나를 병문안 와줬다. 심지어 작가인지 뭔지 하는 다소의 허명을 짊어 맨 덕에 이따금 알지 못하는 손님도 꽃이나 과일 등을 주곤 했다. 실제로 한 번은 비스킷 캔 따위가 살짝 처분에 곤란할 정도로 머리맡에 쭉 늘어져 있고는 했다.(이 궁지서 구해준 건 역시 경애하는 친구와 지기들이었다. 그들은 환자인 내 입장에선 신기할 정도로 잘 먹었다.) 아니, 그런 병문안 선물을 받기만 한 건 아니다. 처음에는 미지의 손님이었던 사람 중에서도 어느 틈엔가 서로 사양하지 않는 친구 관계가 된 사람이 둘셋이나 생겨버렸다. 하이진 요소키 군도 그중 한 명이다. 이시쿠로 마사키치 군도 그중 한 명이다. 상하이 동방 통신사의 하타 하쿠 군도 그중 한 명이다.
 그럼에도 7도 5분 정도의 열이 간단히 안 잡히는 통에 불안은 여전했다. 심지어는 대낮에도 가만히 누워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불쑥 죽는 게 무서워지기도 했다. 나는 그런 신경 작용에 놀아나고 싶지 않단 일심으로 낮에는 만철의 이시카와 씨나 존즈가 친절히 빌려준 스무 권 가량의 서양 글자 책을 손이 잡히는 되로 독파했다. 라 모트의 단편을 읽은 것도 Eunice Tietjens의 시를 읽은 것도 자일스의 논의를 읽은 것도 모두 이 동안의 일이다. 밤은――이는 사토미 씨한테는 비밀이었는데 혹시 모를 불면을 신경 쓴 나머지 매일 밤 빠지지 않고 칼모틴을 먹었다. 그럼에도 이따금 동이 트기도 전에 눈이 떠버려서 질색을 했다. 분명 왕차회의 의우집 속에 "藥餌無徴怪夢頻약은 효과가 없고 괴상한 꿈만 꾸는구나"하는 구가 있다. 이는 시인이 병에 걸린 게 아니다. 아내의 중병을 한탄한 시인데 당시의 나로선 이 구는 말 그대로 통렬했다. "薬餌無徴怪夢頻" 내가 침상 위에서 몇 번이나 이 구를 읊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는 사이 봄은 아랑곳 않고 점점 깊어져 갔다. 니시무라가 롱하의 복숭아 이야기를 해주었다. 몽골 바람이 태양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황사를 옮겨온다. 누군가가 망고를 병문안 선물로 주었다. 이제 소주나 항저우를 보기 딱 좋은 기후라고 한다. 나는 격일로 사토미 씨께 도요치칼 주사를 받으며 이 침대를 나오는 건 언제쯤일까 생각했다.
 추기 입원중 이야기를 적자면 또 얼마든지 적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딱히 상하이랑 큰 관계도 없으니 이 정도로만 해두려 한다. 단지 덧붙이고 싶은 건 하토미 씨가 신경향의 하이진이었단 점이다. 근래의 작품을 하나 꼽아보겠다.
 

석탄 뒤지며 맥박 뛰고 있음을 이야기하네


 

여섯 성안(상)


 하이진 요소키 씨의 안내를 받아 상하이의 성안을 둘러보았다.
 어두컴컴해서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 거 같은 오후이다. 둘을 태운 마차는 일사불란이 북적이는 도로를 달렸다. 붉은 진흙 같은 닭 통구이가 벽을 한가득 채운 가게가 있었다. 다종다양한 서양식 램프가 꺼림칙할 정도로 걸려 있는 가게가 있었다. 정교한 은기가 선명히 빛나는 유복해 보이는 은루가 있는가 하면 태백이 남긴 듯한 간판이 낡은 빈곤한 주점도 있었다――그런 중국 가게를 재밌게 보는 사이에 마차는 넓은 거리로 나와서는 급격히 속도를 줄이며 그 너머서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요소키 씨의 말에 따르면 이전에는 이 넓은 거리에 성벽이 자리해 있었다 한다.
 마차서 내린 우리는 곧장 좁은 골목길로 들어갔다. 이는 골목길이라기보다는 샛길이라 하는 게 적당할지 모르겠다. 그 좁은길 양옆에는 마작 도구를 파는 가게나 자단 도구를 파는 가게가 쭉 이어져 있었다. 또 그 비좁은 건물들 앞에는 무분별한 간판이 걸려 있으니 하늘색을 보는 게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런 곳에 인파가 굉장히 많다. 가게 앞에 놓인 저렴한 물건이라도 구경하고 있으면 금세 누군가랑 부딪히고 만다. 심지어 이 번잡한 통행인은 대부분이 중국 평민이다. 나는 요소키 씨의 뒤를 따라가면서 함부로 곁눈질도 하지 않을 정도로 머뭇머뭇 돌길을 밟아 갔다.
 그런 샛길 건너편에 이르니 소문으로 듣던 호심정이 보였다. 호심정이라 하면 듣기에 그럴싸 하나 실제로는 당장이라도 박살날 듯한 황폐하기 짝이 없는 찻집이다. 그런 데다가 정자 바깥의 연못을 보아도 초록색 물떼가 올라와 있는 통에 물색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물 주위에는 돌을 쌓은 이 또한 괴상한 난간이 있다. 우리가 마침 그곳에 왔을 때, 아사기모멘 옷을 입고 긴 변발을 한 중국인 하나가――이 사이에 잠깐 덧붙이겠는데 나는 이따금 소설 속에서 후가後架, 변소인가 하는 볼품없는 말을 쓴다고 한다. 이는 구 같은 걸 지으니 자연스레 부손의 말똥이나 바쇼의 말 소변의 감화를 받아버린 탓인 듯하다. 나는 물론 키쿠치 씨의 설에 귀를 기울일 생각은 없다. 하지만 중국 기행 쯤 되면 장소 자체가 볼품없으니 이따금 예절도 깨지 않고서는 발랄한 묘사는 불가능하다. 만약 거짓말 같다면 누구라도 한 번 써보면 될 일이다――거기에 멈춰 서더니 유유히 연못을 향해 오줌을 누었다. 천수판이 반기를 들던 백화시 유행이 돌던 일영속맹이 만들어지던 이 남자에게는 어떤 문제도 아닐 게 분명하다. 적어도 이 남자의 태도나 얼굴서는 그렇게 여길 수밖에 없는 느긋함이 있었다. 어두운 하늘 아래에 세워진 중국풍 정자와 병적인 녹색을 펼친 연못, 그 연못에 비스듬하게 내린 왕성한 한 줄기 소변――이는 우울함을 사랑해야 할 풍경화로 그치지 않는다. 또 동시에 늙은 대국의 신랄하기 짝이 없는 상징이다. 나는 이 중국인의 모습을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요소키 씨께는 감개를 느낄 만큼 보기 드문 광경도 아닌 듯했다.
 "보세요. 여기 흐르는 것도 다 소변이에요."
 요소키 씨는 쓴웃음을 머금은 채로 연못 가장자리를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공기 안에도 갑갑한 소변 냄새가 떠돌고 있다. 이 소변 냄새를 느끼자마자 마법은 곧장 풀리고 말았다. 호심정은 호심정이며 소변은 소변이다. 나는 구두 앞을 세우며 재빨리 요소키 씨의 뒤를 따랐다. 괜한 시적 감상 따위에 빠질 때가 아니다.
 

일곱 성안(중)


 또 조금 걸으니 눈이 먼 늙은 거지가 앉아 있었다――거지란 참 로맨틱한 존재이다. 로맨티시즘이란 무엇이랴. 분명 논의가 끝나지 않을 문제지만 적어도 한 특색으로는 중세나 유령, 아프리카나 꿈, 여자의 논리처럼 참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 동경할 수 있는 걸 말할 테지. 그렇게 보면 거지가 회사원보다 로맨틱한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중국 거지는 보통 이해할 수 없는 게 아니다. 비 내리는 거리에 드러누워 있거나 버려진 신문지를 입고 있거나 석류처럼 살이 썩은 무릎을 핥고 있는 등――요컨대 조금 무서울 정도로 로맨틱하게 이루어져 있다. 중국 소설을 읽어 보면 부자나 신선이 거지로 겉꾸민 이야기가 많다. 그건 중국 거지에게서 자연스레 발달한 로맨티시즘이다. 일본 거지는 중국처럼 초자연적인 불결함을 갖추고 있지 않으니 그런 이야기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고작해야 장군 집안의 가마에 타네가시마를 새기거나 산속에서 차를 대접해 류리쿄에게 초대받는 정도가 고작이다――너무 옆길로 샜는데 이 눈 먼 거지도 적각선인이나 철장선인이 겉꾸민 듯한 모습이었다. 특히 앞에 깔린 돌을 보면 그의 비참한 인생이 백묵으로 깔끔히 적혀 있다. 글자도 나보다 잘 쓰는 듯하다. 나는 이런 거지 대신에 글을 써주는 건 누구일까 하고 생각했다.
 그 앞의 샛길로 들어가자 이번에는 골동품이 잔뜩 있었다. 이번에는 어떤 가게를 들여다보아도 동으로 된 향로, 하니와 말, 칠보 그릇, 용두병, 옥문진, 청자 선반, 대리석 연병, 박제 꿩, 무시무시한 구영 같은 게 난잡히 깔린 가운데 물담배를 문 중국옷차림의 주인이 즐겁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조금 조마조마하며 봤는데 절반가량은 값이 붙어 있어도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이는 일본으로 돌아간 후 카토리 호즈마 씨가 꼬집은 일인데 골동품을 사려면 중국에 가느니 도쿄 니혼바시 거리를 배회하는 게 더 낫다고 한다.
 골동품 가게 사이를 지나니 커다란 사당이 나왔다. 그림으로도 명성 높은 성황묘이다. 사당 안에는 참배인이 엇갈리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물론 선향을 놓거나 지폐를 태우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다. 그 연기 탓인지 대들보의 글씨나 기둥 위 렌이 모조리 묘하게 기름져 있다. 어쩌면 그슬러지지 않은 건 천장에 걸려 있는 금은 두 색의 지전이나 나선형태의 향선뿐일지 모르겠다. 이것만으로도 내게는 아까 본 거지와 마찬가지로 과거에 읽은 중국 소설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물며 좌우로 흐르는 판관 같은 상은――혹은 정면에 앉은 성황인 듯한 상은 거의 요재지이나 자불어 같은 책의 삽화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크게 감복하며 요소키 씨께 민폐인 걸 알면서도 한사코 이곳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여덟 성안(하)


 새삼스럽지만 귀신과 여우 이야기가 풍부한 중국 소설에서는 성황을 시작해 말단 판관이나 귀신도 한가하지 않다. 성황이 하룻밤을 꼬박 새운 서생의 운세를 열어주는가 하면 판관은 거리서 날뛰는 도둑을 놀래켜 죽게 한다――이러면 좋은 일만 있는 듯하나 개고기만 공물로 바치면 나쁜 사람의 편을 도는 부패한 성황도 있을 정도니 인간 여자를 뒤쫓는 벌로 팔꿈치가 부러지거나 머리가 떨어지거나 천하에 수치를 겪는 판관이나 귀신도 적지 않다. 그게 책만 읽으면 어쩐지 와닿지 않는 부분이 있다. 즉 줄거리는 받아들여도 그런 주제에 감정에 닿는 게 없다. 그게 영 성에 차지 않았는데 지금 이 성황묘를 직접 보니 중국 소설이 아무리 황당무계해도 그런 상상이 만들어진 이유는 알 법 하다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렇게 얼굴이 붉은 판관이니 악동 흉내 정도는 낼 법하다. 저렇게 수염이 아름다운 성황이라면 당당한 호위병에 둘러싸인 채 밤하늘에 오르는 것도 어울릴 법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는 또 요소키 씨와 함께 묘 앞에 즐비한 여러 노점을 둘러보았다. 양말, 장난감, 감자 줄기, 조개 단추, 손수건, 남경두――그 외에 조금 더러운 음식점이 잔뜩 있다. 물론 인파는 일본의 축제날과 별 다를 게 없다. 반대편에선 화려한 줄무늬 정장에 자수정 넥타이핀을 한 하이컬러 중국인이 다가온다. 그런가 하면 이쪽에는 또 손목에 은팔찌를 차고 두세 촌 밖에 되지 않는 전족용 신발을 심은 옛 시대의 아주머니도 걷고 있다. 금병매의 진경제, 품화보감의 계십일――이렇게 사람이 많으니 그런 호걸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두보나 악비, 왕양명, 제갈량 따위는 약으로 삼고 싶어도 찾아보기 힘들다. 바꿔 말하자면 현대 중국이란 시나 글 속의 중국이 아니다. 외설적이며 잔혹하고 식탐만 많은 소설에서 볼 법한 중국이다. 도자기나 수련, 자수된 새 따위를 좋아하던 저렴하며 헛된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에서도 유행하지 않게 되었다. 문장궤범이나 당시선 이외의 중국이 있는 걸 모르는 한학취미는 일본에서도 이제 그만 소멸하는 게 나으리라. 
 그렇게 우리는 걸음을 돌려 방금 전 연못 옆에 있는 커다란 다관을 지나쳤다. 절을 방불케 하는 다관 안은 생각만큼 손님으로 붐비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자마자 종다리, 동박새, 문조, 잉꼬――갖은 작은 새가 눈에 보이지 않는 소나기라도 되는 것처럼 단숨에 내 귀를 덮쳤다. 잘 보니 어두컴컴한 천장 들보에는 새장이 한가득 걸려 있다. 중국인이 작은 새를 사랑하는 건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새장을 줄지어 놓고 새 목소리로 다투게 한다는 건 생각지도 못한 사실이었다. 이래서야 새소리를 사랑하는 건 고사하고 고막이 찢어지지 않도록 줄곧 두 귀를 막고 있어야만 한다. 나는 거의 도망치다시피 요소키 씨를 재촉하면서 이 찢어지는 소리로 충만한 무서운 다관을 뛰쳐나왔다.
 하지만 새 울음소리는 다관 안에서만 들린 게 아니었다. 겨우 밖으로 탈출했음에도 좁은 거리 좌우로 쭉 줄지은 새장에서 끝없이 울음소리가 내려온다. 물론 이는 한가한 사람들이 재미 삼아 울게 하는 게 아니다. 하나 같이 전문 새장수가(사실 새장수인지 새장 장수인지는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가게를 내놓은 것이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새 한 마리만 사 올게요."
 요소키 씨는 내게 그렇게 말하고는 가게 중 하나로 들어갔다. 그곳을 살짝 지난 참에 페인트칠이 된 사진 가게가 하나 있었다. 나는 요소키 씨를 기다리는 동안 그 쇼윈도 정면에 자리한 매란방의 사진을 보았다. 요소키 씨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아홉 희대(상)


 상하이에서 연극을 볼 기회는 고작해야 두세 번 밖에 없었다. 내가 속성 극통이 된 건 베이징에 간 후의 일이다. 하지만 상하이서 본 배우 중에서도 우생 중에서 명성 높은 개규천이나 화단 중에선 녹모란이나 소취화 등 어찌 됐든 당대에 유명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배우를 논하기 전에 연극 무대의 광경을 소개하지 않으면 중국의 연극이 어떤 건지 독자에게 분명히 전해지지 않을지 모르겠다.
 내가 간 극장 중 하나는 천섬무대라는 곳이었다. 그곳은 하얀 석회로 된 삼 층짜리 신식 건물이었다. 또 이 층인지 삼 층인지가 진주 난간을 둥글게 놓은 반원형으로 이루어진 건 물론 당대 유행한 서양 흉내임이 분명했다. 천장에는 커다란 전등이 세 개 걸려 있다. 객석에는 벽돌 마루 위에 등나무 의자가 쭉 놓여 있다. 하지만 중국인 이상 등나무라 해도 방심할 수 없다. 언젠가는 무라타 군과 이 등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더니 줄곧 두려워 했던 빈대가 손목을 두세 군데 문 적이 있다. 어찌 됐든 극장 중에는 불쾌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는 깔끔하다 해도 좋았다.
 무대 양옆에는 커다란 시계가 하나씩 걸려 있다.(단지 하나는 멈춰 있었다.) 그 아래에는 담배 광고가 칙칙한 색채를 드러내고 있다. 무대 위 난간에는 석회 장미나 아카선스 안에 천성인어란 큰 글자가 있었다. 무대는 유라쿠자보다 넓을지 모르겠다. 여기에도 이미 서양식 각광 장치가 놓여 있다. 막은――그 막 말인데 한 장 한 장을 구분하는데 막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배경을 바꾸기 위해서는――좀 더 정확히는 배경 그 자체로선 소주은행과 삼포대향연 요컨대 쓰리 캐슬의 하등한 광고막을 칠 때가 있다. 막은 어디서나 중앙에서 양족으로 치게 되어 있는 듯하다. 그 막을 치지 않을 때에는 배경이 뒤를 막고 있다. 배경은 유화풍이며 실내와 경치를 그린 새롭고 낡은 여러 막이다. 그것도 종류는 두세 종류 밖에 없으니 강유가 말을 끌든 무송이 사람을 죽이든 배경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 무대 왼쪽 끝에 호궁, 월금, 동라 등을 지닌 중국의 오하야시가 자리하고 있다. 이 중에는 한두 명 사냥 모자를 쓴 선생도 보인다.
 또 연극을 보는 순서를 말하자면 일 등이든 이 등이든 일단 어디라도 들어가버리면 된다. 중국은 자리를 잡은 후에 돈을 내는 게 관례이니 그런 게 굉장히 가볍다. 자, 자리를 정하면 뜨신 물을 머금은 수건이 온다. 활판 인쇄된 줄거리표가 온다. 차는 물론 커다란 흙병에 담겨 온다. 그 외에 수박씨나 저렴한 과자 따위는 부야오 부야오 하면 될 일이다. 수건도 한 번인가 옆자리에 있던 당당한 풍채의 중국인이 한참 얼굴을 닦은 끝에 코를 푸는 걸 본 이후로 한동안 부야오 한 적이 있다. 계산은 직원의 팁까지 포함해 일 등에서는 대략 이 엔부터 일 엔 오십 전이었나 싶다. 추정형인 이유는 내가 내는 법 없이 무라타 군이 내버렸기 때문이다.
 중국 연기의 특생은 일단 악기의 소란스러움이 상상 이상이란 점이다. 특히 무극――싸우는 장면이 많은 연극은 몇 명의 커다란 남자가 진검 승부라도 하듯이 무대 한편을 노려보며 필사적으로 동라를 두드리니 도무지 천성인어란 게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로 나도 익숙해지지 않았을 때는 두 손으로 귀를 눌러 막지 않는 한 도무지 앉아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 무라타 코 군은 이 악기 소리가 조용할 때는 부족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극장 밖에서도 이 악기 소리만 들으면 무슨 연극인지 대강 짐작이 간다고 한다. "저 소란스러움이 좋은 건데 말이죠."――나는 무라타 군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정말 제정신이긴 한가 그마저도 의심스러웠다.
 

열 희대(하)


 대신 중국 연극은 관객석에서 떠들든 아이가 엉엉 울든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것만은 정말로 편리한 일이다. 혹은 중국이니 설령 관객들이 조용하지 않더라도 듣고 즐기는데 지장이 없도록 이런 악기가 발달한 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나는 무라타 군에게 줄거리나 배우 이름, 노래의 뜻 등을 배우며 한 막을 내리 보냈는데 옆자리에 앉은 군자께서는 한 번도 시끄럽단 표정을 짓지 않았다. 

 중국 연극의 두 번째 특징은 도구를 극단적으로 쓰지 않는단 점이다. 배경은 어디에나 있으나 이는 근래의 발명에 지나지 않는다. 본래 중국 무대의 도구는 책걸상과 막뿐이다. 산, 바다, 궁전, 길――어떤 광경을 표현하더라도 결국 이러한 걸 배치하는 것 이외에 나무 한 그루 세우지 않는다. 배우가 마치 무겁다는 양 자물쇠를 푸는 몸짓을 하면 관객은 싫더라도 그 공간서 문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또 배우가 의깅양양히 털이 달린 채찍을 휘두르면 배우 다리 아래에는 달리는 말 따위가 울고 있다 생각해야 한다. 물론 일본인은 노란 걸 알고 있으니 곧장 그 요령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의자나 책상을 쌓은 것도 산이라고 하면 바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배우가 한쪽 발을 살짝 들어 올리면 그곳에 내외를 가르는 문턱이 있는 거라 말하더라도 이 또한 상상이 어렵지 않다. 그뿐 아니라 그런 실사주의서 한 걸음을 둔 약속된 세계서 의외의 아름다움을 볼 수가 있다. 그러고 보면 지금도 잊을 수 없는데 소취화가 매룡진을 연기할 때에 술집 딸로 분한 그는 이 문턱을 넘을 때마다 반드시 황록색의 바지 아래서 힐끔 신발 밑창을 보여주었다. 그 신발 밑창은 가공의 문턱 아니고서는 그렇게나 가련함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이렇게 도구를 쓰지 않는 점은 위에 적었으니 우리는 조금도 어려울 게 없다. 되려 내가 황당했던 건 그릇이나 접시, 촛대같이 평범하게 쏘이는 소품들이 참으로 볼품없게 만들어져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지금 말한 매룡진도 현대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명무종이 정체를 숨기고 백성들을 살필 적에 매룡진의 술집 딸, 봉저를 만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 딸이 지닌 그릇은 장미꽃을 그린 도자기 밑바닥에 은도금 테두리가 새겨져 있다. 저건 어딘가의 백화점에서 팔던 물건이 분명하리라. 만약 우메와카 만자부로가 거창하게 사벨이라도 허리춤에 걸치고 나타난다면――그게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중국 연극의 세 번째 특징은 분장 변화가 많다는 점이다. 츠지 쵸카 옹에 따르면 조조 한 명의 분장이 육십 종류나 된다니 이치가와류 같은 걸 따질 때가 아니다. 또 그 분장도 심각한 것이 붉은색이나 남색 갈색을 얼굴 피부를 한 가득 덮고 있다. 가장 먼저 느낀 바로는 도무지 화장이라 할 수 없었다. 무송 연극에 장문신이 나왔을 때에는 아무리 무라타 군의 설명을 들어도 역시 가면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소위 화검花臉도 가면이 아니란 걸 간파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 천리안에 가까울 게 분명하다.
 중국 연극의 네 번째 특징은 액션이 맹렬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단역들은 배우라 부르느니 곡예사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그들은 무대 끝부터 끝까지 텀블링을 하거나 눈앞에 쌓인 상 위에서 꼬꾸라지고는 한다. 그 대부분이 붉은 바지에 상반신은 헐벗은 배우들이니 더더욱 말이나 공에 올라 탄 곡예꾼처럼 보인다. 물론 뛰어난 무극 배우도 말 그대로 바람을 낳을 정도로 청룡도 따위를 휘두른다. 무극 배우는 이전부터 팔힘이 강했다는데 이래서야 팔힘 없이는 애당초 장사가 성립이 안 될 듯하다. 하지만 무극의 명인쯤 되면 역시 이런 기술 이외에도 어딘가 독특한 기품이 있다. 그 증거로 가이자오텐이 마치 일본의 인력거꾼 같은 거친 무송을 연기하는 걸 보아도 허투루 검을 휘두를 때보다 모종의 박자로 말 없이 가만히 상대를 바라볼 때가 얼마나 더 무송 같은 분위기를 두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물론 이러한 특색은 중국 구극 특징이다. 신극新劇에서는 분장도 안 하는가 하면 공중제비도 하지 않는 듯하다. 그럼 무엇이 새로운가. 액무대에서 상영되던 매신투고에서는 불이 없는 촛불이 나와도 역시나 관람객은 촛불이 들어와 있다 상상한다――즉 구극의 상징주의는 그대로 무대 위에 남아 있었다. 신극은 상하이 이외에서도 그 후 두세 번 보았는데 이 점에서는 유감스럽게도 오십 보 백 보란 느낌이었다. 적어도 비나 번개나 밤이 되었다는 건 모두 관람객의 상상에 맡기기만 했다.
 마지막으로 배우 이야기를 해보자면――가이자오텐이나 소취화는 이미 이야기 했으니 새삼 다시 쓸 건 없다. 단지 하나 적어두고 싶은 건 무대에 오르지 않았을 때의 녹모란이다. 내가 그를 찾은 건 액무대의 대기실이었다. 아니 대기실이라기보다는 무대 뒤편이라 하는 게 사실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어찌 됐든 그곳은 무대 뒤의 벽이 벗겨진, 마늘 냄새가 심하게 나는 참담한 곳이었다. 무라타 군의 이야기를 듣자하니 매란방이 일본에 왔을 때 그를 가장 놀라게 한 게 깔끔한 대기실이랬는데 이런 대기실에 비하면 확실히 제국 극장의 대기실은 놀랄 정도로 깔끔한 게 분명했다. 더군다나 중국 무대 뒤편에는 차림이 더러운 배우들이 얼굴만 분장한 채 몇 명이나 어슬렁거리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전등 빛 속에서 무서울 정도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 오가는 모습은 거의 백귀야행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런 길의 으슥한 곳에 중국 가방이 나와 있다. 녹모란은 그중국 가방 중 하나에 가발만 벗어두고 기녀 소삼으로 분장한 채 마침 차를 마시고 있었다. 무대에서는 얇게만 보였던 얼굴도 이렇게 보니 의외로 가련하지마는 않았다. 되려 센슈얼한 느낌이 강한 발육이 좋은 청년이었다. 키도 나에 비하면 오 분2cm는 큰 듯했다. 그날 밤도 같이 있던 무라타 군은 나를 그에게 소개하며 이 기교 좋은 온나카타와 소식을 주고받았다. 듣자 하니 무라타 군은 녹모란이 아직 무명 아역이었을 때부터 그가 아니면 낮밤을 보낸 것 같지 않은 열성적인 팬 중 한 명이라고 한다. 나는 그에게 옥당춘이 재밌었다는 뜻을 전하자. 그러자 그는 의외로 '아리가토'하고 일본어를 구사했다. 그리고――그리고 그가 무엇을 했는가. 나는 그를 위해서도 또 무라타 코 군을 위해서도 이런 일은 공공연히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를 쓰지 않으면 모처럼 그를 소개했음에도 진실서 빗나가고 만다. 그래서야 독자에게도 미안하리라. 그러니 구태여 곧이곧대로 쓰자면――그는 옆으로 돌자마자 진홍과 은색 실로 뜨개질을 한 아름다운 소매를 나부끼며 바닥 위에 코를 풀었다. 
 

열하나 장병린 씨


 장병린 씨의 서재에는 어떤 취미인지는 몰라도 커다란 악어 박제 한 마리가 벽을 기고 있다. 하지만 책으로 가득 채워진 서재는 그 악어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 그래도 피부에 스며드는 듯이 춥다. 물론 그날 날씨는 홋쿠의 계절어를 빌리자면 말 그대로 매서운 우천이었다. 그런 차에 기와방에는 카펫도 없을뿐더러 난로도 없다. 앉는 건 물론 방석이 없는 각진 자단 팔걸이의자이다. 더군다나 나는 얇은 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 서재에 앉은 걸 생각하면 감기에 걸리지 않은 게 정말 기적이지 싶다.
 하지만 장태담 선생은 두껍고 검은 모피옷을 입고 계셨다. 그러니 물론 춥지 않다. 더군다나 의자도 모피를 덮은 등나무 의자이다. 나는 장태담 선생의 웅변에 담배를 피우는 것도 잊었으나 선생께서 따듯하다는 양 유유히 다리를 뻗는 모습에는 크게 부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풍설에 따르면 장병린 씨는 스스로 왕자의 스승을 맡았다고 한다. 그리고 한때는 그 제자로 여원홍을 택했다 한다. 그러고 보니 책상 옆의 벽에 걸린 악어 박제 아래에는 "동남복학, 장태담 선생, 원홍"이라 적힌 팻말이 걸려 있다. 하지만 거리낌 없이 말하자면 선생의 얼굴은 결코 훌륭하지 않다. 피부색은 거의 노란색이나. 콧수염이나 턱수염은 안타까울 정도로 옅다. 돌출된 턱도 혹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 실처럼 가는 눈만은――품위 있는 무테 안경 뒤에서 항상 차갑게 미소 짓는 눈만은 확실히 그냥 달려 있는 게 아니다. 이 눈 때문에 원세개는 선생을 감옥에 가두었다. 또 동시에 이 눈 때문에 선생님을 감금은 하더라도 기어코 죽이지는 못했다. 
 선생의 화제는 철두철미하게 현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정치나 사회문제였다. 물론 부야오나 "덩이덩等一等, 기다려" 같은 인력거꾼을 상대하는 숙어 이외엔 중국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내가 그런 걸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선생의 논지를 이해하고 이따금 선생께 건방진 질문 같은 걸 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주보 "상하이"의 주필 니시모토 쇼조 씨 덕이다. 쇼조 씨는 내 옆의자서 가슴을 쭉 편 채로 어떤 성가신 논의도 친절히 통역을 맡아주셨다.(특히 당시는 주보 '상하이'의 마감 기한이 눈앞이었으니 나는 더더욱 쇼조 씨의 고생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유감스럽게도 현대 중국은 정치적으로 추락했네. 공공연한 부정 따위는 어쩌면 청나라 말기보다 더 심할지 몰라. 학문 예술 분야는 더욱 침체 중이지. 하지만 중국 국민은 본래 극단으로 달려가지 않네. 이런 특성이 존재하는 한 중국의 적화는 불가능하지. 확실히 일부 학생은 노농주의를 환영했다네. 하지만 학생이 곧 국민인 건 아냐. 그들도 한 번은 적화되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그 주장을 버릴 때가 올 테지. 왜냐면 국민성은――중용을 사랑하는 국민성은 한때의 감격보다도 강하니까."
 장병린 씨는 끝없이 손톱이 긴 손을 휘저으며 도도히 독특한 설을 내놓으셨다. 나는――단지 추웠다.
 "그럼 중국을 부흥시키기 위해 어떤 수단을 써야 하는가? 이 문제의 해결은 구체적으로는 어떻게든 하더라도 탁상의 학설에서는 만들어지지 않을 걸세. 옛사람도 당대에 해야 할 걸 아는 자는 준걸이 되라 설파했지. 하나의 주장에서 연역하지 않고 무수한 사실서 귀납한다――그게 당대에 필요한 걸 아는 법이지. 그렇게 알고 계획을 갖춘다――때에 따른 적절함을 찾기 위해서는 결국 이럴 수밖에 없어……"
 나는 귀를 기울이며 이따금 벽 위의 악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중국 문제와 별개로 이런 생각을 했다――저 악어는 분명 수련의 향과 태양의 빛과 따스한 물을 알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럼 지금 내가 느끼는 추위는 저 악어와 가장 일맥상통할 터이다. 악어여, 박제인 너는 행복한 것이다. 부디 나를 연민해다오. 아직 이렇게 살아 있는 나를……
 

열둘 서양


 문 상하이는 단순한 중국이 아니야. 동시에 어떤 면에선 서양이니 그런 것도 잘 봐줘야 해. 공원만 해도 일본보다 훨씬 진보되어 있다 생각하는데――
 답 공원도 대충 다 둘러보았어. 프랑스 공원이나 제스필드 공원은 산책하기에 딱 좋지. 특히 프랑스 공원은 어린 싹이 난 버즘나무 사이서 서양인 노파나 유모가 아이를 데리고 놀고 있었지. 그게 아주 이뻤어. 하지만 딱히 일본보다 진보해 있다곤 느껴지지 않는걸. 단지 여기 공원은 서양식일 뿐이잖아? 뭐든지 서양식으로 하면 진보된 거라 할 수도 없고.
 문 신공원에도 다녀왔어?
 답 다녀왔지. 하지만 거긴 운동장이잖아. 나는 공원 같지 않더라고.
 문 퍼블릭 가든은?
 답 그 공원은 재밌었어. 외국인은 들어갈 수 있지만 중국인은 들어갈 수 없지. 그런 주제에 퍼블릭이라니 이름이 묘하기 짝이 없어.
 문 거리를 걸어도 서양인이 많은 건 좋지 않아? 이것도 일본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데――
 답 그러고 보니 요전 번에 코가 없는 사람을 봤어. 그런 사람을 보는 건 일본서는 좀 어려울지 모르겠네.
 문 그거 말야? 그건 유행성 감기 때 가장 먼저 마스크를 쓴 남자야――그나저나 거리를 걸어도 역시 일본인은 외국인에 비해 빈약한걸.
 답 양복을 입은 일본인은 그렇지.
 문 일본 옷을 입으면 더 곤란한 거 아냐? 일본인은 남이 피부를 보는 걸 아무렇지 않게 여기니까――
 답 만약 아무렇게 여긴다면 그건 여기는 쪽이 외설적인 거지. 쿠메 선인은 그 탓에 눈에서 굴러떨어졌잖아?
 문 그럼 서양인은 외설적이게?
 답 물론 그 점에서는 외설적이지. 단지 풍속이란 건 아쉽게도 다수결이라서 말야. 그러니 일본인도 곧 맨발로 밖에 나가는 게 추한 일이라 여기게 될 테지. 즉 이전보다 점점 외설적이게 되는 거야.
 문 일본 게이샤가 백주대낮에 당당히 걷는 건 서양인 앞에선 좀 부끄럽더라고.
 답 무얼, 그런 건 걱정할 거 없어. 서양인 게이샤도 걸어 다닐 테니까――단지 네가 구분하지 못하는 거뿐이야.
 문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네. 프랑스 조계는 가봤어?
 답 그 주택지는 유쾌하던데. 버들이 벌써 피어 자라 있고 닭이 작게 울고 복숭아가 아직 펴있고 중국 민가가 남아 있고――
 문 그 주변은 거의 서양이지. 붉은 벽돌에 하얀 벽돌. 서양인 집도 좋지 않아?
 답 서양인의 집은 대개 글렀어. 적어도 내가 본 집은 모조리 하등했지.
 문 네가 그렇게나 서양을 싫어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답 나는 서양을 싫어하는 게 아냐. 속되고 조악한 걸 싫어할 뿐이지.
 문 물론 나도 그렇지.
 답 거짓말은. 너는 일본 옷보다 양복을 입고 싶어 하잖아. 문이 따로 있는 집에 사느니 방갈로에 살고 싶고. 우동을 먹느니 마카로니를 먹고 싶을 거야. 야마모토야마를 마시느니 브라질 커피를 마시고――

 문 알았어, 알았어. 그래도 묘지는 나쁘지 않잖아. 그 세이안지로에 자리한 서양인 묘지 말야.
 답 묘지는 또 신경 좀 썼더라고. 확실히 그 묘지는 그럴듯했어. 하지만 나는 대리석 십자가 아래보다 둥근 묘 아래에 눕고 싶네. 하물며 괴상한 천사 같은 조각 아래에 잠드는 건 질색이야.
 문 그럼 너는 상하이 속 서양에는 전혀 관심을 느끼지 못한 거네?
 답 아냐, 크게 느꼈지. 상하이는 네 말처럼 서양의 면모를 지녔으니까. 좋든 나쁘든 서양을 보는 건 재밌는 일이 분명하잖아? 단지 이곳의 서양은 본고장을 보지 못한 내 눈에도 역시 뭔가 아니지 싶어.
 

열셋 정효서정샤오쉬 


 향간에 떠도는 말로는 정효서 씨는 유유히 청빈한 삶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흐린 날 오전, 무라타 군이나 하타 군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문 앞으로 가니 청빈하단 그 집은 내 생각보다 훨씬 훌륭한 회색으로 칠한 삼 층짜리 건물이었다. 문안에는 정원으로 이어지는 듯한 살짝 노란 대나무 앞에 고마데리 같은 게 향을 내뿜고 있었다. 나도 이런 청빈이라면 언제라도 몸을 던져도 좋겠지 싶었다.
 오 분 후, 우리 셋은 응접실로 안내받았다. 그곳은 벽에 걸린 족자 이외엔 장식을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벽난로 위에는 좌우 한 쌍의 도자기 꽃병에 자그마한 황룡기가 꼬리를 뻗고 있었다. 정소감 선생은 중화민국의 정치가가 아니다. 대청제국의 남은 신하였다. 나는 이 깃발을 바라보며 누군가가 평한 "물러나고 몸을 감춘 자는 같은 선상서 논할 수 없다"는 말을 희미하게 떠올렸다.
 그때 살짝 통통한 청년 하나가 발소리도 없이 들어왔다. 일본서 유학을 했다던 정효서 씨의 아들 정수 씨이다. 정수 씨와 친한 하타 군은 곧장 나를 소개했다. 정수 씨는 일본어에 능통하셔서 대화할 때에 하타와 무라타 선생 두 분을 통역으로 번거롭게 해드릴 필요가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정효서 씨가 그 큰 키를 우리 앞에 드러냈다. 정효서 씨는 척 보았을 때 노인에 어울리지 않게 혈색이 좋았다. 눈도 거의 청년처럼 낭랑한 빛을 두르고 있었다. 특히 가슴을 쭉 편 태도나 풍부하게 손짓제스처를 섞는 모습은 되려 아들보다도 젊어 보였다. 검은옷 위에 마괘아에 남색이 감도는 옅은 회색의 대괘아를 입은 모습은 역시 시대의 재능인인 만큼 그럴싸하게 보이는 풍채였다. 아니, 한가해진 지금마저 이렇게 발랄해서는 강유위캉여우웨이 씨를 중심으로 한 무술의 변에서 화려한 역할을 다 해낼 적에는 어느 정도 재기발랄했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정효서 씨를 낀 우리는 잠시간 중국 문제를 논했다. 물론 나도 거리낌 없이 신차관단 성립 이후로 일본에 대한 중국 여론은 어쩌네 하는 멋없는 일을 논했다――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불성실해 보이나 그때는 되는 대로 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로서는 아주 진지하게 내 생각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하면 아무래도 당시의 나는 조금 맨정신이 아니었나 보다. 물론 이렇게 된 원인에는 내의 경박한 근성 이외에도 현대의 중국 그 자체가 절반의 책임져야 마땅하지 싶다. 만약 거짓말 같다면 누구라도 한 번 중국에 가보아라. 반드시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묘하게 정치를 논하고 싶어지리라. 그건 현대의 중국이 이십 년 동안 이어진 정치 문제를 품고 있기 때문임에 분명하다. 나 같은 경우엔 강남 일대를 한 바퀴 둘러 본 후에도 간단히 이 열이 식지 않았다. 그리고 누가 부탁하지도 않았 건만 예술보다 몇 배는 하등한 정치만을 생각하였다.
 정효서 씨는 정치적으론 현대 중국에 절망하였다. 중국은 공화를 고집하는 한 영원히 혼란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왕정을 하더라도 당장의 난국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영웅의 출현만 기다려야 한다. 그 영웅도 현대서는 이해관계가 뒤엉킨 국제 관계에서도 처신해야 한다. 그런 걸 생각해 보면 영웅을 기다리는 건 기적을 기다리는 셈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내가 담배를 물자 정효서 씨가 곧장 일어나 성냥불을 붙여주셨다. 나는 어쩔 줄 몰라하며 일본인도 옆 나라 군자들에 비하면 손님 대접을 못 하는 편이지 싶었다.
 홍차 대접을 받은 후, 우리는 정효서 씨의 안내를 받아 집안에 있는 정원으로 나왔다. 정원은 깔끔한 초원 주위에 정효서 씨가 일본서 가져온 벚꽃이나 줄기가 하얀 소나무 따위가 심어져 있었다. 그 너머에 회색 삼 층 건물이 또 하나 있다 싶었더니 그건 얼마 전에 세운 자제분 일가의 거처라고 한다. 나는 정원을 걸으며 대나무 숲 위에 약간의 구름을 띄운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 정도면 나도 청빈히 살고 싶다고 느꼈다.
 이 원고를 쓸 적에 마침 표구점에서 족자 하나가 배달 왔다. 족자는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정효서 씨께서 내게 써준 칠언절구를 적어두었다. "夢奠何如史事強내가 꿈꾸는 바가 역사상 얼마나 어려운지는 呉興題識遜元章오나라의 원장에도 밀리지 않으리라 延平剣合誇神異건평의 검이 더해지면 신이에 이른다는데 合浦珠還好秘蔵합보의 진주는 고이 숨겨두어야지"――그런 글씨가 비무하듯이 묵적을 뻗는 걸 보니 정효서 씨와 마주했던 몇 분이 아직도 그리운 듯하다. 나는 그 몇 분 동안 홀로 전 왕조의 유신인 명사만 본 게 아니다. 실로 중국 근대의 시종, 해장루시집海蔵楼詩集의 저자의 숨결하고도 닿은 것이다.
 

열넷 죄악


 상하이는 중국 제일의 '악의 도심'이라고 합니다. 각국 사람이 모이는 곳이니 자연스레 그리 되기 쉽겠지요. 제가 보고 들은 것만으로도 확실히 풍습은 안 좋은 듯합니다. 이를테면 중국 인력거꾼이 강도로 돌변하는 일 따위는 시종 신문에 실려 있습니다. 또 사람들이 말하길 인력거가 달리는 사이에 뒤에서 모자를 도둑 맞는 일도 일상다반사라고 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지독한 건 여자의 귀걸이를 훔치기 위해 귀를 잘라내는 일입니다. 이는 어쩌면 도둑이라기 보다는 Psychopathia sexualis변태성욕의 일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마당이니 몇 달 전부터는 연영 죽이기란 사건이 연극에나 소설에나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는 이곳에선 탁백당이라 불리는 불량소년단 중 한 명이 다이아몬드 반지를 뺏기 위해 연영이라는 게이샤를 죽였단 내용입니다. 또 그 살해 방법이 자전거에 태워 서가회쉬후이치 근방으로 끌고 가 목을 졸랐다니 중국에서는 전례 없는 신기축의 범죄라 해야 할 테지요. 세간에서는 일본에서도 이따금 듣는 것처럼 탐정물 같은 활동사진이 악영향을 준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단지 사진으로 본 연영이란 게이샤는 빈말로도 미인이라 할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매춘도 왕성합니다. 청련각 같은 차관에 가면 이래저래 늦저녁부터 무수한 매춘부가 모입니다. 이를 야꿩야치라 부르는데 얼핏 봐서는 도무지 스무 살 이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일본인을 보면 "아나타, 아나타당신"하고 말하며 단숨에 주위에 모여듭니다. "아나타" 이외에는 "사이고, 사이고"합니다. "사이고"가 뭔가 하니 이는 일본 군인들이 청일전쟁 출정 중에 중국 여자를 붙들고 근처 고량밭 따위에 "사, 이코자, 가자"하고 말한 게 기원이라고 합니다. 기원을 들으니 만담 같습니다만 어찌 됐든 우리 일본인에겐 썩 명예로운 이야기는 아닌 듯합니다. 또 밤은 사거리서 인력거에 탄 야꿩들이 반드시 몇 명인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손님을 발견하면 그 손님은 자기 차에 태우고 자신은 걸어서 그들 집으로 가는 게 습관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무슨 생각인지 대개 안경을 쓰고 있습니다. 어쩌면 현재 중국에선 여자가 안경을 쓰는 게 최신 유행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군요.
 아편도 반쯤 공공연히 어디서나 피우고 있는 듯합니다. 제가 보고 온 아편굴은 자그마한 콩알 램프를 안에 둔 채 매춘부 하나도 손님과 함게 자루가 긴 담뱃대를 물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듣기로는 마경당이나 남당자 같은 무시무시한 것도 있는 모양입니다. 남당자란 여자를 위해 남자가 매춘하는 것이고, 마경당은 손님을 위해 여자가 외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거리를 지난 중국인 안에도 별발을 내린 Marquis de Sade사드 후작과 같은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실제로도 있을 테지요. 어떤 덴마크인이 말하길 사천이나 광동에선 육 년을 있어도 시간屍姦 이야기를 못 들었는데 상하이에 온 지 삼 년 만에 실제 사례를 두 개나 보았답니다.
 그런데다 요즘 들어 시베리아에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서양인이 수없이 내려왔다고 합니다. 저도 한 번 친구와 함께 퍼블릭 가든을 걸을 적에 차림새가 안 좋은 러시아인에게 끈질긴 구걸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야 단순한 거지지만 썩 기분이 좋지는 않습니다. 물론 공부국工部局이 깐깐하여 상하이서도 큰 단위로는 서서히 풍기가 잡히는 듯합니다. 실제로 서양인 쪽에서도 엘드라도니 팔레르모 같은 괴상한 카페는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교외에 가까운 델몬테 같은 곳에는 아직도 매춘부가 많이 옵니다.

 "Green satin, and a dance, white wine and gleaming laughter, with two nodding ear-rings―these are Lotus."
 이는 Eunice Tietjens가 상하이의 소녀를 노래한 시의 한 구절입니다. "백포도주와 눈부신 웃음과"――그건 비단 로터스만이 아닐 테지요. 델몬테의 테이블에 앉아 인도인이 참여한 오케스트라 소리에 귀를 기울인 여자들도 필경 이 안에 속할 터입니다. 이상.

 

열다섯 남국의 미인(상)


 상하이에선 미인을 많이 보았다. 미인 건 어떻게 된 인연인지 항상 소유천이란 주루酒楼였다. 이곳은 얼마 전 작고한 청도인 이서청이 즐겨 찾던 가게라 한다. "道道非常道길 중의 길은 평범한 길에 있지 않고 天天小有天하늘 중 하늘은 소유천이구나"――그런 글마저 있을 정도니 단순히 즐겨 찾은 수준이 아니라 어지간히 애착을 지닌 게 분명했다. 물론 이 유명한 문인은 한 번에 게를 열일곱 마리나 먹을 정도로 비범한 위장을 지녔다고 한다.

 당최 상하이 음식점은 썩 머무르기 좋은 것이 아니다. 이곳 또한 풍류 없는 판자벽으로 방을 나누고 있다. 그런 데다가 테이블 위에 놓이는 식기는 깔끔함이 간판인 서양 요리점마저 일본 양식당과 비할 바가 못 된다. 그 외에 아서원이든 행화루서든 또 흥화천채관이든 미각 이외의 감각은 만족되기보다도 충격을 받는 부분이 더 많다. 특히 한 번은 하타 군이 아서원을 데려다주었을 때에는 직원한테 변소가 어디냐 물었더니 조리실 물 흘리는 데에다 하면 된단다. 실제로 그곳에는 나보다 먼저 기름투성이가 된 요리사 하나가 선레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에는 적잖이 질색을 해버렸다.
 대신 요리는 일본보다 맛있다. 조금 아는 체를 해보자면 내가 간 상하이 음식점은 이를테면 서기나 후덕복 같은 북경 음식점보다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쿄의 중국요리에 비하면 소유천만 해도 분명히 맛있다. 심지어 가격도 저렴하여 일본의 오 분지 일 밖에 되지 않는다.
 이야기가 꽤나 옆으로 샜는데 내가 수많은 미인을 본 건 신주일보의 사장 여현 씨와 식사할 때의 일이었다. 앞서도 말한 것처럼 소유천에 있었을 적이다. 소유천은 상하이서도 특히 밤에 북적이는 삼거리에 접해 있어서 난간 밖에서 울리는 마차 소리는 거의 한 시도 멈출 줄 모른다. 루상에서는 물론 담소를 나누는 목소리나 노래에 맞춘 호궁 소리가 끝없이 들리고 있다. 나는 그런 소란 속에서 해당화차를 홀짝이며 여군곡민이 국표 위에 붓을 휘두르는 걸 보았을 때에는 어쩐지 음식점보다도 우편국에 앉아 기다리는 듯한 번잡함을 느꼈다.
 국표는 서양 종이에 "叫―速至三馬路大舞台東首小有天菜館―座侍酒勿延아무개를 부른다. 빨리 삼거리 대무대 동쪽에 접한 소유천의 민채관에 술을 가지고 오라. 늦지 마라."하는 붉은 글자를 꼬불꼬불 적어놓고 있었다. 분명 아서원의 국표에는 구석에 毋忘国恥국치를 잊지 말라하고 배일의 기염을 토해내고 있었는데 다행히 이곳에는 그런 글이 없었다. (국표는 오사카의 호출장처럼 게이샤를 부르는 도구이다." 여 씨는 그 한 장 위에 내 성을 적고서 매봉춘이란 세 글자를 더했다.
 "이게 그 임대옥입니다. 이제 쉰여덟이지요. 최근 이십 년 동안 있었던 정국의 비밀을 아는 자는 대총통 서세창을 제외하면 이 한 사람뿐이라지요. 당신이 부른 걸로 해두었으니 참고삼아 보세요."
 여 씨는 히죽히죽 웃으며 다음 국표를 쓰기 시작했다. 여 씨가 일본어가 뛰어난 건 과거에 일중 두 개 국어로 탁상 연설을 해서 손님인 토쿠토미 소호 씨를 감복시켰다 할 정도이다.
 그러는 사이 우리――여 씨와 하타 군과 무라타 군과 내가 식탁을 둘러 앉아 곧 애춘이라는 미인이 왔다. 이는 참으로 똑똑해 보이며 조금 일본 여학생 같은 품위 있는 둥근 얼굴의 게이샤였다. 하얀 오리몬이 새겨진 옅은 자색의 의상에 역시나 무언가 문장을 그린 청자색의 바지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일본의 오사게처럼 머리 안쪽을 푸른 끈으로 묶어서 길게 뒤로 늘어트려놓았다. 이마에 앞머리가 내려와 있는 것도 일본 소녀와 다를 바 없다. 그 외에 가슴에는 비취 나비, 귀에는 금과 진주 귀걸이, 손목에는 금 손목시계 따위가 하나 같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열여섯 남국의 미인(중)


 나는 긴 상아 젓가락을 쓰는 동안에도 크게 감복하여 이 미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지만 요리가 하나둘 식탁 위에 오르 듯이 미인도 차례차례 들어왔다. 도무지一애춘에만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다음으로 들어 온 시홍이란 게이샤를 바라보았다.
 이 시홍이란 게이샤는 애춘보다 미인이 아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기가 쎄고 어딘가 시골 냄새를 두른 특징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머리를 내려 묶은 건 분홍색 머리끈을 빼면 애춘과 다를 게 없다. 옷으로는 짙은 보라색 단자에 은과 남색이 섞인 짧은 테두리가 새겨져 있다. 여군곡민의 설명에 따르면 이 게이샤는 강서 출신이면서 시류를 쫓는 차림을 하지 않고 고풍스러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얼굴에 된 붉은색이나 하얀색 분칠도 맨얼굴을 드러낸 애춘보다 훨씬 짙다. 나는 손목시계나 왼 가슴의 다이아몬드 나비, 큼지막한 진주 목걸이나 오른손에만 두 개 찬 보석 반지를 보면서 아무리 신참 게이샤라도 이렇게나 눈부시게 장식하는 건 한 명도 없을 거라 감탄했다.
 시홍 다음으로 온 건――그렇게 하나하나 적어서는 내가 먼저 뻗을 거 같으니 그중 단 두 명만을 소개해볼까 한다. 한 명은 낙아라 하여 귀주의 성장 왕문화와 결혼하려던 차에 왕이 암살 당해 이제까지 게이샤를 하고 있다는 굉장히 박복한 미인이었다. 검은 몬돈스에 향이 좋은 백란을 꽂은 걸 끝으로 어떠한 장식도 하고 있지 않았다. 나이보다 밋밋한 차림이 차가운 눈동자와 어울려 참으로 청초한 느낌을 주었다. 다른 한 명은 열둘이나 열셋 쯤 되어 보이는  얌전한 소녀이다. 금팔찌나 진주 목걸이도 이 게이샤가 하고 있자니 장난감처럼만 여겨졌다. 심지어 조금 놀려주면 평범한 마을 처녀처럼 부끄럽다는 표정을 보인다. 또 신기하게도 일본인이라면 실소를 참을 수 없는 천축이란 이름의 주인공이었다.
 이러한 미인들이 하나둘 국표에 적은 손님의 이름을 따라 우리 사이의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내가 불렀을 터인 임대옥은 간단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진루란 게이샤가 피우다만 궐련을 들고는 서피조의 분하만이라는 노래를 뛰어나게 읊기 시작했다. 게이샤가 노래할 때엔 호궁도 맞춰주는 듯했다. 호궁을 연주하는 남자는 어째서인지 호궁을 치면서도 살풍경하기 짝이 없는 사냥 모자나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호궁은 갈라진 대나무 본체에 뱀가죽을 씌운 게 많았다. 진루가 한 곡을 마치자 이번에는 시홍 차례였다. 이는 호궁을 쓰지 않고 직접 비파를 연주하며 어쩐지 쓸쓸한 노래를 불렀다. 강서 출신이라니 쉰양강 위쪽의 평야를 말하는 것이리라. 중학생 같은 감개에 젖으니 바람 부는 가을에 강주의 사마백악천이 감상에 젖어 연주한 비파 곡이 이런 느낌이었을지 모르겠다. 시홍이 마치자 평향이 노래한다. 평향이 마치자――무라타 군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면서 "팔 월 십오, 월광명"이라며 서피조의 무가파를 노래하기 시작한 데에는 조금 놀랐다. 물론 이만큼 솜씨 좋지 않고서야 무라타 군만큼 복잡한 중국 생활의 표리에 통달하는 건 불가능할지 모른다.
 임대옥이 자리에 참여한 건 이미 식탁 위 건어물 지느러미탕이 많이 줄어들은 뒤였다. 그녀는 내 상상보다도 더 창부형에 가까운 둥글둥글 살찐 여자였다. 얼굴도 이제는 특출나게 아름답다 느끼지는 못했다. 뺨을 붉게 칠하고 눈썹 화장을 해도 왕년의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하는 건 가는 눈에 떠오른 요염한 빛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나이를 생각하면――올해로 쉰여덟이란 건 도무지 거짓말만 같았다. 척 보기엔 해봐야 마흔 정도 밖에 된 거 같지 않다. 특히 손 같은 경우는 아이마냥 손가락 끝의 뼈가 손안에 쏙 담겨 있다. 차림은 은색 테두리가 새겨지고 난초가 그려진 흑단자 의상에 같은 모양의 바지였다. 그런 차림 위에 귀걸이에도 팔찌에도 가슴에 건 메달에도 금은 받침에 비취와 다이아몬드를 박아두고 있다. 개중에서도 반지의 다이아몬드는 참새 달걀만한 크기였다. 이는 큰길의 요리점에서 볼만한 모습은 아니다. 죄악과 호사가 뒤섞인 이를테면 '벌벳의 꿈'처럼 타지나키 준이치로 씨의 소설 속에서나 볼 법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임대옥은 임대옥이었다. 그녀가 얼마나 재기 발랄한지는 그녀의 말만 들어도 곧장 상상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그녀가 몇 분 후 호궁과 피리 소리에 맞춰 진강을 노래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그 목소리와 함께 넘치는 힘이 평범한 게이샤들을 압도하였다.
 

열일곱 남국의 미인(하)


 "임대옥은 어떤가요?"
 그녀가 자리를 떠난 후 여 씨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여걸이군요. 젊은 기력으로 가득해서 놀랐어요."
 "듣자 하니 젊을 적에 진주 분말을 먹었다나요. 진주는 불로약이라죠.  아편만 하지 않으면 더 젊어 보였을 겁니다."
 그때는 이미 임대옥에 이어 새로운 게이샤가 앉아 있었다. 이쪽은 색이 하얗고 몸이 자그마한 아가씨 같은 미인이었다. 타카라즈쿠시 모양으로 짠 옅은 자색의 단자 의상에 수정 귀걸이를 하고 있는 것도 이 게이샤의 품위를 도와주고 있는 게 분명했다. 바로 이름을 물어보니 화보옥이라 답했다. 화보옥――이 미인은 이름을 발음하며 비둘기 울음소리를 냈다. 나는 담배를 물면서 두보의 시를 떠올렸다.
 "아쿠타가와 씨."
 여현 씨는 노주를 권하며 말하기 어렵다는 양 내 이름을 불렀다.
 "중국 여자는 어떠신가요? 좋은가요?"
 "어디 여자도 좋지만 중국 여자도 아름다운걸요."
 "어디가 좋으신가요?"
 "글쎄요. 가장 아름다운 건 귀 같네요."
 나는 실제로 중국인의 귀에 적잖은 경의를 품었다. 일본 여자는 이 점에서 중국인에게 이길 수 없다. 일본인의 귀는 너무나 평평한 데다가 살이 두터운 경우가 많다. 개중에는 귀라기보다도 어떠한 인과인지 귀에 솟은 버섯 같은 경우도 적지 않다. 생각하기에 이는 심해어가 눈이 어두워진 것과 마찬가지다. 일본인의 귀는 예전부터 기름칠한 구렛나루 뒤에 가만히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 여자의 귀는 항상 봄바람을 받았을 뿐더러 정중히 보석을 박은 귀걸이 따위를 걸고 있다. 때문에 일본 여자의 귀는 오늘처럼 추락했으나 중국 귀는 자연스레 손질이 된 아름다운 귀가 되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이 화보옥을 보아도 마치 작은 조개껍질 같은 사랑스러운 귀를 하고 있다. 서상기 속 앵앵이 "他釵玉斜横그 비녀는 늘어져 옥은 비스듬하게 눕는구나 髻偏雲乱挽머리도 삐뚤어져 마치 높은 하늘의 구름만 같네 日高猶自不明眸해는 높건만 눈을 뜨지를 않고 暢好是懶懶이 참으로 애처롭구나擡身잠시 후 몸을 일으키고 幾回掻耳몇 번 귀를 긁적이니 一声長歎긴 한탄 나오네"하고 말했던 것도 분명 이런 귀였으리라. 입옹이 과거에 중국 여자의 아름다움을 논했는데(한정우기 3권, 성용부) 한 번도 이 귀에 관해서는 논하지 않았다. 이 점에선 위대한 십종곡의 작가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게 발견의 공을 양보해야 하리라.

 귀 이야기를 한 후, 나는 다른 세 명과 함께 설탕이 들어간 죽을 먹었다. 그렇게 기관을 둘러보고 북적이는 삼거리로 나왔다.
 기관은 대개 가로로 뻗은 돌길 도로 양옆에 자리했다. 여 씨는 우리를 안내하며 헌등에 적힌 이름을 읽어주었는데 이윽고 어떤 집 앞에 이르자 곧장 그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한산한 실내서 차림이 나쁜 중국인들이 밥을 먹거나 무언가를 하고 있다. 이런 게 게이샤가 있는 집이라니 미리 듣지 않으면 누구나 거짓말이라 여기리라. 하지만 계단을 오르자 자그마한 중국 살롱에 밝은 전등이 빛나고 있었다. 자단 의자를 놓아두고 커다란 거울을 세워둔 건 확실히 일류 기관인 듯했다. 푸른 종이를 붙인 벽에도 유리를 넣은 남가 액자가 몇 장이나 걸려 있었다.
 "중국 게이샤의 남편이 되는 것도 쉽지가 않죠. 이런 가구류마저 다 사주니까요."
 여 씨는 우리와 차를 마시며 여러 화류계 이야기를 해주었다.
 "뭐 오늘 밤 온 게이샤만 해도 꼭 남편이 되고 싶다면 오백 엔 정도는 필요할 겁니다."
 그러는 사이 방금 전 본 화보옥이 나타났다. 중국 게이샤는 자리에 오더라도 오 분 정도 지나면 돌아가 버린다. 소유천에 있던 화보옥이 여기 있어도 이상할 건 없다. 그뿐 아니라 중국에서는 남편이 되는 게――뒷 이야기는 이노우에 코바이 씨 저 "중국 풍속 상권, 화류어휘를 참조하라."
 우리는 두세 명의 게이샤와 함께 수박씨를 먹거나 손님용 담배를 피우며 잠시간 잡담을 나누었다. 물론 잡담이라 해도 나는 벙어리나 다를 바 없었다. 하타 군은 나를 가리키면서 장난기 있는 아이 게이샤에게 "저 사람은 동양인이 아냐, 관동인이지"라고 말했다. 게이샤가 무라타 군에게 진짜냐 물었다. 무라타 군도 "그럼 맞지"하고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홀로 막연히 하찮은 생각을 했다――일본에 토코톤야레나란 노래가 있다. 그 톤야레나란 어쩌면 동양인톤얀렌의 변화일지도 모른다……
 이십 분 후, 살짝 지루함을 느낀 나는 방안을 여기저기 돌면서 슬쩍 옆방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의 전등 아래에는 그 아름다운 화보옥이 퉁퉁 살이 찐 여자 하나와 저녁 식탁을 두르고 있었다. 식탁에는 접시가 둘 밖에 없었다. 또 그중 하나는 채소뿐이다. 그럼에도 화보옥은 열심히 그릇과 젓가락을 놀렸다. 나는 저도 모르게 작은 웃음이 나왔다. 소유천에 온 화보옥은 확실히 남국의 미인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화보옥은――채소 뿌리를 씹고 있는 화보옥은 탕아의 장난감 거리인 미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중국 여자에게서 여성스러운 친근함을 느꼈다. 
 

열여덟 이인걸 씨


 "무라타 군과 함께 이인걸 씨를 방문하다. 이 씨는 올해로 스물여덟 살. 신조는 사회주의자. 상하이서 '젊은 중국'을 대표하는 한 사람이다. 도상 전차의 창문으로 푸른 가로수를 보고 이미 여름을 맞이한 걸 보다. 하늘이 흐리나 이따금 햇살이 든다. 바람은 불지만 먼지는 날리지 않았다."
 이는 이 씨를 방문한 후 적어 둔 메모이다. 지금 수첩을 열어보니 연필 글씨가 지워져 가려는 것도 적지 않다. 문장은 물론 난잡하다. 하지만 당시의 심정은 되려 그 난잡함 속에 또렷이 드러나 있을지 모른다.
 "하인이 있어 곧장 우리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직사각형 테이블 하나, 서양식 의자 둘셋, 테이블 위에는 그릇이 있다. 도자기로 만든 과일이 쌓여 있다. 이 배, 이 포도, 이 사과――이 조촐한 자연의 모방 이외엔 눈을 위로해줄 장식 하나 없다. 하지만 방에서 먼지는 찾아 볼 수 없다. 간소함으로 가득 차 있는 게 유쾌하다."
 "몇 분 후, 이인걸 씨가 왔다. 이인걸 씨는 체구가 작은 청년이다. 살짝 긴 머리. 마른 얼굴. 혈색은 별로 좋지 않다. 총명한 눈. 작은 손. 태도는 굉장히 진지하다. 그 진지함은 또 동시에 예민한 신경을 연상케 했다. 찰나의 인상은 나쁘지 않다. 마치 세밀하고 강인한 시계의 태엽에 닿은 것만 같다. 테이블을 두고 마주한다. 이인걸 씨는 회색 중국옷을 입었다."
 이 씨는 도쿄 대학에 있었기에 일본어는 굉장히 유창했다. 특히 어려운 논리를 상대가 또렷이 인지하게 하는 일은 내 일본어보다 뛰어날지 모른다. 또 메모에는 적혀 있지 않은데 우리가 안내받은 응접실은 이층으로 오르는 사다리고 방구석에 놓여 있었다. 때문에 사다리로 내려오면 손님에게 먼저 발을 보여주게 된다. 이인걸 씨의 모습도 중국 신발부터 보았다. 나는 아직도 이 씨 이외엔 어떠한 천하의 명사라도 다리부터 먼저 본 사람이 없다.
 "이 씨는 말한다. 현대 중국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건 공화도 아니요 복벽도 아니다. 지난번 정치혁명이 중국의 개조에 무력함은 과거가 이미 증명했으며 현재 또한 증명해주고 있다. 그러하면 우리가 노력해야 할 건 사회혁명 하나뿐이다. 이는 문화운동을 선전하는 '젊은 중국'의 사상가가 하나같이 입을 모으는 주장이다. 이 씨는 또 말한다. 사회혁명을 가져오려면 프로파간다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우리는 저술한다. 또 눈을 뜬 중국인들은 새로운 지식에 냉담하지 않다. 아니, 지식에 굶주려 있다. 하지만 이 굶주림을 채울만한 서적과 잡지가 빈곤하다. 나는 이 씨에게 단언했다. 시급한 일은 저술이라고. 그렇지 않고서는 이 씨의 말처럼 되지 않는다고. 현대의 중국에는 민중의 뜻이 없다. 민중의 뜻이 없이는 혁명을 낳지 못한다. 하물며 성공은 더욱 불가능하다. 이 씨는 말한다. 종자는 손에 담겨 있다. 단지 만 리의 황무함이나 힘이 미치지 못할 걸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의 육체가 이 고생을 버틸 수 있을까.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게 말하며 눈살을 찌푸린다. 나는 이 씨를 동정했다. 이 씨는 말한다. 이제 주목해야 할 건 중국 은행단의 노력이다. 그 배후의 노력은 어찌 되었든 베이징 정부가 중국은행단에게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꼭 슬퍼할 일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의 적은――우리의 포화를 집중해야 할 적은一은행단으로 고정된다는 것이니까. 나는 말한다. 나는 중국 예술에 실망했다. 내가 소설이나 그림을 논할 만큼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국의 상황을 보면 이 땅에 예술의 부흥을 기대하는 건 잘못된 거 같다. 이 씨에게 물었다. 프로파간다 이외에 예술을 돌아 볼 여유는 있느냐고. 이 씨는 말한다.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내 메모는 여기까지다. 하지만 이 씨의 말투는 굉장히 시원스러웠다. 같이 간 무라타 군이 "저 남자는 머리가 좋아"하고 감탄한 것도 이해가 간다. 그뿐 아니라 이 씨는 유학 중에 내 소설을 두어 개 가량 읽었다고 했다. 이 또한 이 씨를 향한 호의를 키워줬음이 분명하다. 소설가란 설령 나 같은 인간이라도 이만큼 허영을 추구하는 마음이 왕성하게 만들어져 있다.

 

열아홉 일본인

 

 상하이 방적 코지마 씨께 저녁 권유를 받아 코지마 씨의 사택을 찾았다. 집 앞 정원에는 작은 벚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그러자 동행한 요소키 씨가 "보세요, 벚꽃이 피었군요"하고 말했다. 또 그 말투네는 신기할 정도로 기쁜 기색이 담겨 있었다. 현관에 나와 계시던 코지마 씨 또한 거창하게 형용하자면 아메리카서 돌아온 콜롬버스가 선물이라도 보이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반면 벚나무는 말라비틀어진 가지에 빈곤한 꽃을 달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때 왜 이 두 선생이 이렇게나 좋아하나 내심 묘하게 여겼다. 하지만 상하이서 한 달 가량 있으니 이가 두 분만 아니라 누구라도 그럴 법한 일이란 걸 알았다. 일본인이란 어떠한 인종인가.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하지만 해외에 나오면 그 꽃의 풍부함은 어찌 되었든 벚꽃만 볼 수 있으면 바로 행복해지는 인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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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문서원을 보러 갔을 때 기숙사 이 층을 걷고 있으니 막다른 복도 창밖에 푸른 보리 이삭으로 이루어진 바다를 보았다. 그 보리밭 곳곳에 평범한 꽃이 무리진 게 보였다. 마지막으로 그러한 것들 저 너머에――낮은 지붕이 이어진 위에 커다란 코이노보리가 있는 게 보였다. 잉어는 바람에 휘날리며 선명히 나부끼고 있었다. 이 코이노보리 하나가 곧장 풍경을 바꾸었다. 나는 더 이상 중국에 있지 않았다. 일본에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창가에 가자 눈앞 보리밭에 중국 백성이 일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내게는 어쩐지 괴상한 기분을 들게 했다. 난 먼 상하이 하늘서 일본의 코이노보리를 보는 게 역시나 조금 유쾌했다. 벚꽃에 얽힌 일을 웃을 처지는 아닐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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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하이의 일본 부인 구락부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장소는 분명 프랑스 조계의 마츠모토 부인의 저택이었다. 하얀 천을 걸친 둥근 테이블. 그 위의 시네라리아 꽃병, 홍차와 과자, 샌드위치――테이블을 둘러싼 부인들은 내 예상보다도 다들 온량하고 정숙했다. 나는 그런 부인들과 소설이나 희곡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한 부인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 달 츄오코론에 내신 '까마귀'란 소설은 정말 재밌었어요."
 "그건 볼품없는 작품이죠."
 나는 겸손한 대답을 하면서 '까마귀' 작가 우노 코지에게 이 문답을 들려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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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요마루 선장 타케우치 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한커우의 강가를 걷고 있자니 버드나무 가로수 아래 벤치에 영국인지 미국인지 모를 국적의 뱃사람이 일본 여자와 앉아 있었다. 여자는 한 눈에도 직업을 알아볼 수 있었다. 타케우치는 그걸 보았을 때 불쾌했다고 한다. 내가 그 이야기를 들은 후, 북사천로를 걷고 있자니 반대편서 다가오는 자동차 안에 셋인지 넷인지 되는 일본 게이샤가 한 서양인을 둘러싼 채 떠드는 걸 보았다. 하지만 딱히 타케우치 씨처럼 불쾌해지진 않았다. 하지만 불쾌해지는 것도 이해는 되었다. 아니 되려 그런 심리에 관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경우 불쾌한 마음이지만 만약 이를 크게 잡으면 애국적 의협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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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란 일본인이 있었다. X는 상하이서 이십 년 동안 살았다. 결혼한 것도 상하이다. 아이를 가진 것도 상하이다. 돈이 쌓인 것도 상하이다. 때문에 X는 상하이에 열성적인 애착을 지녔다. 이따금 일본에서 손님이 오면 항상 상하이를 자랑했다. 건축, 도로, 요리, 오락――하나 같이 일본은 상하이에 미치지 못한다. 상하이는 서양과 다를 바 없다. 일본에 집착하느니 한 시라도 빨리 상하이로 와라――손님을 그렇게 재촉하기도 했다. 그 X가 죽었을 때 유언장을 꺼내보니 의외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뼈는 어떠한 사정이 있더라도 반드시 일본에 묻을 것……"
 나는 어느 날 호텔 창문서 불이 붙은 하바나를 문 채로 이런 이야기를 상상했다. X의 모순은 웃을 게 아니다. 우리는 이런 점에선 대개 X의 동료이다.
 

스물 서가회


 명의 만력 시대. 울타리 밖. 곳곳에 버드나무가 심어져 있다. 담 너머에 천주당의 지붕이 보인다. 그 꼭대기엔 황금 십자가. 햇빛을 받아 빛난다. 떠도는 스님 하나, 마을의 아이와 함께 나온다.
 스님 서 공의 집이 저기이더냐?
 아이 저기 맞아. 저기지만――아저씨는 저기 가도 탁발은 못 받을걸. 나리는 스님을 엄청 싫어하니까――
 스님 그래그래. 그런 건 알고 있다.
 아이 알면 가지 말지.
 스님 (쓴웃음) 너는 말버릇이 안 좋구나. 나는 잘 곳을 청하러 가는 게 아니다. 천주교의 스님과 문답을 하러 가는 거지.
 아이 그래? 그럼 멋대로 해. 얻어맞아도 난 모른다.
 아이 달려가다.
 스님 (독백) 저기 지붕이 보이는데 문은 어디일까.
 서양 선교사 하나가 나귀를 타고 지나가다. 뒤에 시종이 하나 있다.
 스님 이보시오.
 선교사가 나귀를 멈춘다.
 스님 (용감히) 어디 다녀오는 길이시오?
 선교사 (수상하다는 양) 신자의 집에 다녀왔지요.
 스님 황소가 지난 후 돌아가 검을 주우셨소?
 선교사 황당해하다.
 스님 돌아가 검을 주우셨소? 데려가라, 데려가. 데려가지 않으면――
 스님 여의를 휘둘러 선교사를 때리려 한다. 종복이 스님을 밀쳤다.
 종복 미치광이입니다. 신경 쓰지 말고 가시지요.

 선교사 불쌍하게도. 어쩐지 눈 색이 묘하더니.
 둘이 떠난다. 스님 일어나다.
 스님 꺼림칙한 외도로구나. 여의마저 부러트리다니. 발은 어디 갔는가.
 담 안에서 조용히 찬송 소리가 들린다.

     × × × × ×

 청의 옹정 시대. 초원. 곳곳에 버드나무가 세워져 있다. 그 사이에 황폐한 예배당이 보인다. 마을 소녀 셋, 하나 같이 바구니를 옆구리에 낀 채 쑥 따위를 따고 있다.
 갑 종다리 울음이 시끄러울 정도인걸.
 을 그러게――싫다, 도마뱀이야.
 갑 언니는 결혼 언제 해?
 을 아마 다음 달쯤.
 병 어머, 이게 뭐지?(흙투성이가 된 십자가를 줍다. 병은 세 사람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 사람이 걸려 있어.
 을 어디? 보여줘 볼래? 이건 십자가란 거야.
 병 십자가가 뭐야?
 을 천주교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는 거야. 이거 금 아닌가?
 갑 내버려 둬. 그런 거 들고 다니다 장 씨처럼 목 떨어질라.
 병 그럼 원래대로 묻어둘까요?
 갑 그게 좋지 않을까?
 을 그러네. 그게 좋겠어.
 소녀들 떠난다. 몇 시간 뒤, 어둠이 서서히 초원에 드리운다. 병, 눈이 먼 노인과 함께 나타나다.
 병 이쯤이야 할아버지.
 노인 그럼 어서 찾아다오. 누가 방해하면 안 되니까.

 병 자, 여기 있었어. 이거지?
 달빛. 노인은 십자가를 손에 든 채로 천천히 묵도의 고개를 조아렸다.

     × × × × ×

 중화민국 십 년. 밀밭 안에 화강석 십자가가 있다. 버드나무 위에 천주당의 탑이 솟아 구름 끝자락에 걸쳐 있다. 일본인 다섯 명. 밀밭 사이를 지나며 나타나다. 그중 한 명은 동문서원의 학생이다.
 갑 저 천주당은 언제 생긴 걸까요?
 을 도광제 말기라네요.(안내 책자를 읽으며) 가로로 이백오십 피트, 세로로 이십칠 피트, 저 탑의 높이는 백육십구 피트라 하고요.
 학생 저게 묘입니다. 저 십자가가――
 갑 오호라. 돌기둥이나 동물 조각상이 남아 있는 걸 보면 과거에는 더 훌륭했을 듯하군요.
 정 그렇죠. 대신의 묘니까요.
 학생 이 벽돌 받침에 돌이 박혀 있죠? 이게 서 씨의 묘지명입니다.
 정 明故少保加贈명의 소보를 이 자리를 빌어 大保礼部尚書兼대보로 높이며 예부상서 겸 淵閣大学士문연각 대학사 徐文定公墓前서문정 공 묘 앞 十字記십자기, 라 되어 있네요.

 갑 묘가 또 있던가요?
 을 글쎄요, 아마 그러지 않을가 싶은데――
 갑 십자가에도 적혀 있네요. 十字聖架십자성가 万世瞻依만세첨의.
 병 (멀리서 말한다.) 가만히 좀 있어 봐. 사진 한 장 찍게.
 네 사람이 십자가 앞에 선다. 부자연스러운 몇 초의 침묵.
 

스물하나 마지막 인상


 무라타 군과 하타 군이 떠난 후, 나는 담배를 문 채로 호요마루의 갑판으로 나왔다. 호요마루의 갑판으로 나왔다. 전등빛으로 밝은 부두서는 이제 사람 그림자도 잘 보이지 않는다. 건너편 거리에는 삼 층인가 사 층의 벽돌건물이 밤하늘에 우두커니 솟아 있다. 그런가 하니 쿨리 하나가 선명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눈앞의 부두를 걷고 있었다. 저 굴리와 함께 가면 언젠가 호조를 받았던 일본 영사관 문 앞에 자연스레 이를 게 분명하다.
 나는 조용히 갑판을 걸어 선미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강 아래를 바라보고 있자니 강가 따라 난 길에 등불이 몇몇 빛나고 있었다. 소주강 도입에 걸린 낮에는 말과 차가 끊이질 않는 가든 브릿지는 보일까. 그 다리 근처의 공원은 어린잎은 보이지 않아도 가로수가 무리 지어 솟아 있는 듯했다. 요전 번 저곳에 갔을 때에는 분수가 솟는 잔디밭에서 S・M・C의 붉은 핫피를 입은 허리가 굽은 중국인 하나가 담배꽁초를 줍고 있었다. 저 공원 화단에는 지금도 튤립이나 황수선이 전등불에 피어 있을까? 저곳을 지나면 정원이 넓은 영국 영사관이나 정금은행이 보일 터이다. 저 옆을 강을 따라 똑바로 가다 왼쪽으로 꺾은 골목에서는 리시움 시어터도 보이리라. 저 입구의 돌계단 위에는 코믹 오페라의 그림 간판은 있어도 오가는 사람은 끊겼을지 모른다. 그곳에 자동차 한 대가 똑바로 강기슭을 달려왔다. 장미꽃, 비단, 호박 목장식――그런 게 힐끔 보이나 싶었더니 곧장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다. 저건 분명 칼튼 카페에 무도하러 가는 게 분명하리라. 그 뒤에선 한산한 거리서 누군가가 작게 노래하며 신발 소리를 내고 있었다. Chin chin Chinaman――나는 어두운 황포강 물에 담배를 던지고는 천천히 살롱으로 돌아갔다. 
 살롱에도 역시 인기척은 없었다. 단지 카펫을 깐 마루에 화분에 심어진 난꽃만이 빛나고 있다. 나는 장의자에 기대어 막연히 회상에 잠겼다――오경렴 씨를 만났을 때 오경렴 씨는 머리를 짧게 민 커다란 두상에 자색 곤약을 바른 채 있었다. 그리고 그걸 신경 쓰면서 "종양이 생겨서요"하고 말했다. 그 종양은 나았을까?――취해 비틀거리며 걷는 요소키 씨와 어두운 거리를 걸었더니 마침 머리 위해 정사각형의 작은 창문 하나가 있었다. 창문은 비구름이 낀 하늘에 비스듬한 빛을 쏘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젊은 중국 여자 하나가 작은 새처럼 눈앞의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요소키 씨는 그걸 가리키며 "저게 관동 매춘부입니다"하고 가르쳐주었다. 오늘 밤도 그곳에선 그 여자가 고개를 내밀고 있을지 모른다――가로수가 많은 프랑스 조계서 마차로 경쾌히 달리고 있으니 앞에서 중국인 마부가 백마 두 필을 끌며 갔다. 그중 한 마리가 어찌된 일인지 불쑥 땅에 털썩 누워버렸다. 그러자 동승한 무라타 군이 "저건 등이 가려운 거야"하고 내 궁금함을 풀어주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담배곽을 꺼내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하지만 나온 건 노란 이집트곽이 아니었다. 어젯밤 넣어두고 잊은 중국 연극의 티켓이었다. 또 동시에 티켓 안에서 무언가가 마루로 떨어졌다. 무언가가――잠시 후, 나는 갈라진 백란화를 주워들었다. 백란화 냄새를 살짝 맡아보나 이제는 얕은 향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꽃잎도 갈색으로 변했다. "백란화, 백란화"――그런 꽃장수 목소리를 들은 것도 어느 틈엔가 기억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이 꽃이 남국 미인의 가슴서 향을 풍기던 걸 바라본 것 또한 이제는 꿈만 같다. 나는 가벼운 감상벽에 빠질 듯한 위험을 느끼며 갈라진 백란화를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담배에 불을 붙이고 일어서기 전 코지마 씨가 선물해준 마리 스톱스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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