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이지를 친구로 둔 것처럼 보이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기리기 위해서는 고인 또한 그러했던 것처럼 감상에서 벗어나 논평의 형태로 글을 남기는 게 옳을 테지. 이 사실이 내 친구의 좋은 영혼을 달래주리라 믿는다.
"오로지 해본 자만이 알 수 있다." 이는 니체의 말로 나는 아직 한 번도 자신을 죽여 본 적이 없다. 때문에 친구의 특별한 죽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건 말할 필요도 없을 테지. 때문에 나는 결국 내게 보인 그를 통해 나 자신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렇게 독자 또한 이 글이 와닿을 수 있을 터이다. 요컨대 보잘 것 없이 살아남아 있는 인간이 제멋대로 떠드는 꼴일지도 모른다. 내 좋은 친구였던 고인은 요즘 들어 나의 불손함을 장난스레 과감함이라 불러주며 관대히 봐주었다. 그러니 만약 이 글 속에서 생각지 않게 그의 영혼에게 결례를 끼치는 일이 있더라도 그는 미소를 띄운 채 용서해주리라 믿는다.
인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예술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게 가장 치명적――아아, 이제는 정말 말 그대로 읽어야만 하게 되었는가――이었던 건 그가 대부분의 경우, 아니 거의 항상 제 속을 열어놓지 못 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단적으로 자신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상냥한 심성과 복잡한 생활을 품은 채로 이를 일체 밖에 꺼내는 법이 없었다. 또 그는 자기도회자기도 했다. 그는 가장 성가신 방법으로 스스로를 표현했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마지막 수기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그의 성격상 갖은 종류의 자기 고백은 야만스럽고 추하기 짝이 없는 악취미로 보였음이 분명하다. 그가 "에트루리아의 꽃병"의 작가를 열성적으로 사랑한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언젠가 사람들 앞에 수치를 드러내기 위해 의기양양히 전라를 드러내고 그걸로 갈채를 받는 건 사양하고 싶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또 그는 언젠가 내 앞에서 "나는 허세꾼이니까. 허세꾼이니까……"하고 연호했다. 그의 생활과 작품을 열수 있는 열쇠가 바로 이 점에 있지 않나 싶다.
나는 과거에 작가 아쿠타가와를 평가하며 쿠메 마사오의 소위 "유로감"이 부족한 것을 지적하며 또 그가 갑갑한 조끼를 입고 있다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나의 이러한 평가에 "그렇게 따지면 사토는 너무 유카타 차림이지"하고 어떤 사람에게 대답했다고 한다.
올해 일월 중순이었다. 어느 저녁, 불쑥 나를 찾은 그는 그날 오후 다섯 시 반부터 다음 날 오전 세 시 부근까지 우리 집에 있었다. 십 년 동안 교유하면서 그와 가장 밀접히 보낸 하룻밤이었다. 그는 그치고는 되도록 나체에 가깝도록 자신을 드러내며 자신의 생애와 예술을 내게 이야기했다. 그의 말은 팔 할 가량 추상적이었지만 나는 그 말을 통해 그의 마음속 안에 검은 무언가가 눌러 앉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그 무엇인가는 표현이 금지되어 있기에 자신의 존재를 더욱 농밀히 하며 그를 한 층 더 괴롭히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그를 향해 히스테리란 병은 왜 발생하는지, 그걸 치료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지 그에게 물었다. 그가 모른다고 대답하기에 나는 내가 주워들은 학문을 그에게 전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생활 속 급소에 닿아 있다는 이유 때문에 가장 밝히고 싶지 않은 부의 문제를 모종의 방법으로 조금씩이나마 드러내는 게 필요하며, 특히 마음속에 괴로움을 지닌 경우엔 더더욱 필요하다고 충고해주었다. 그리고 모든 문학자는 스스로 의식하지 않고 히스테리 치료법을 스스로 꾀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을 말하지 않으면 배가 부풀어 오른다"는 게 마냥 농담은 아니라고 나는 말해두었다. 또 나는 그의 가슴속에 뭉친 구름에서 비가 내리게 해야 한다고, 남김없이 내리게 해야 한다고 권했다. "나는 허세꾼이니까……"하고 연호한 게 바로 이때였다. '카이조' 8월 호에 기재한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의 첫 항목인 '히스테리'는 그와 내가 나눈 이야기를 그가 다시 한 번 고찰한 내용이지 싶다.
나는 또 그가 진중한 문학을 항상 마음에 두기에 되려 그의 작품에서 동맥이 사라지지 않을까 늘 걱정했다. 거리낌 없이 말하자면 내 눈에 그의 문학은 피부색도 하얗고 눈코입도 잘 갖추어져 있지만 도무지 인간 형태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그야말로 '꼭두각시꾼'이지 않았을까. 심지어 그는 그의 표현을 위해 너무 괴로워한 나머지 가벼운 창작을 즐기지 못 하는 경향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때문에 그날 밤, 나는 그에게 어깨 힘을 빼고 글을 쓰기 위해서는, 즉 그가 대화를 즐기는 것처럼 즐겁게 쓰기 위해서는 말하듯이 써야 하지 않겠냐고 권해보았다. 그리고 나는 설명했다. 실제로 우리의 이야기는 이따금 띄엄띄엄 말해가는 사이에 요령을 얻거나 또 중반서 다른 이야기가 생기는 통에 일관성이 없는 등 항상 이렇게 더할 나위 없이 불완전하지만 막상 우리가 하고 싶은 정신이든 심정은 상대에게 잘 통하고 있다. 즉 우리는 항상 담화서 입 밖으로 내지 않는 많은 걸 표현할 수 있다. 불완전한 것 안에서 충분한 걸 찾아내는 기술, 혹은 찾아내게 하는 기술을 지니고 있다. 문학 사업은 반드시 완성된 걸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의 혼백을 전하는데 있다면 우리의 완성으로 우리를 전하는 게 가능한 동시에 우리의 결점, 우리의 실패 또한 결코 타인을 통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표현하여 얻는 것이다. 만약 항상 완성만을 말한다면 어제의 완성은 사실 오늘의 미완성이 되고 마리라. 영원히 하나의 완성도 없으리라.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완성이란 아주 일시적인 것이며 심지어 결점 쪽은 영원히 우리를 전달한다고 봐야 한다. 생각 전부를 쓸 수는 없다. 우리가 고인이 쓴 부분을 통해 쓰지 못한 부분을 알고 있듯이, 우리 또한 우리의 결점을 통해 우리의 미점을 알아주는 독자를 얻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소위 구어란 문체를 택해 왔으니 문자를 다룰 경우에도 말을 다루는 이상으로 갑갑해하지 않는 게 되려 진정한 언문일치 정신에 적합하지 않은가――이런 식으로 내 의견은 전적으로 일방적이었고 또 논법은 반 쯤 농담처럼 가벼웠다. 하지만 나는 이 의견이 적어도 그에게만은 통용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히스테리 치료와 문학'에는 곧장 찬성을 표한 그도 문학의 문언일치 정신에는 이해는 한다고 말해도 간단히 찬성하지는 않는 듯했다. 파낸 걸 있는 그대로 내놓자는 내 말에 그는 훌륭한 가공하여 내놓는 수정 같은 광물도 있다고 대답했다. 장 폴 같은 작가도 있지 않냐고 내가 말하자 그는 샤를 보들레르 같은 작가도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또 말했다. 작가는――특히 오늘날의 작가는 결코 못난 작품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작가의 진가를 보여주는 건 수백 개의 못난 작품에 있는 게 아니라 걸작 하나가 있느냐이다. 혹은 또 그 못난 작품의 질이 어느 정도냐는 것이다. 나는 모든 작품은 신과 합작하는 것이라 믿고 있으니 아무리 못난 작품을 쓰더라도 전적으로 혼자서는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이러한 말에 담긴 나의 진의를 충분히 양해하지 못했음을 나는 뒤늦게야 알았다. '카이조' 4월호의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의 '우리의 산문' 속에는,
는 문장이 있었다. 말하듯이 쓰라는 말은 내가 이따금 해온 말이니 충분한 의식 속에서 한 말이지만 설령 그게 부주의한 말이었더라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을 터이다. 어째서인가 하면 말하듯이 쓰라는 내 설은 부주의한 사이에 작가가 드러나는 걸 기쁘게 여기기 때문이다. 나는 실제로 마음을 내려놓는 것만큼 완벽한 자기표현은 없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내 진의를 인정하지 못했다. 또 그는 '우리의 산문' 속에서 내 '말하듯이 쓴다'설과 완벽히 반대되는 '쓰듯이 말한다'는 설을 주장했다. 그 좋은 사례 중 하나로 나츠메 소세키를 들었다. 나는 그가 꼽은 이 사례가 정말로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즉천거사'가 모토였다는 소세키의 문장이 혹은 말이 아쿠타가와 씨가 문장을 쓸 때처럼一두 눈으로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갑갑했을지 의문이다. 실제로 "말하듯이 쓴다"는 설과 "쓰듯이 말한다"는 설은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두 사람의 인생관, 아니 두 개의 삶의 방식이어야만 한다. 즉 절대적인 타력과 절대적인 자력을 의미한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아쿠타가와 씨는 정말로 절대적인 자력주의자였다. 이러한 이야기는 언젠가 그와 느긋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 기회를 영원히 잃고 말았다.
표현에서 절대적인 자력을 주장한 사람은 생활에서도 이를 실행했다. 그렇게 그는 스스로의 평생을 스스로 결산했다. 자기를 극단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그가 지게 된 순간 그의 기질에 몸을 던졌다. 내가 말한 소위 갑갑한 조끼를 벗는 행위는 마지막까지 긍정하지 않았다. '격한 고문 속에서 이를 갈며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인간의 스스로에게 이긴 감정을 그대들은 아는가"하는 니체의 말을 나는 지금 떠올렸다. 여우에게 배를 물리면서 한 번의 비명도 지르지 않고 죽은 스파르타 소년의 얼굴을 지금 떠올렸다. 그는 이 마지막 행동으로 성가신 기질에 패한 자신을 몸으로 표현했다. 그의 예술 속에는 그의 평생에 가까운 무언가가 직접적으로 그려지는 법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평생은 하나의 예술을 만들어냈다. 그가 사랑한 "에트루리아의 꽃병"과 같은 종류의 단편이다. 그리고 그는 작품을 쓰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작중의 사람이었으며 태도의 사람이었다.
이 말 또한 그 2월 모일의 밤 내 면전에서 그가 한 말이다. 그리고 후에 동인잡지 "로바"에 개제되었다. 그리고 지금 "후난의 부채" 160 페이지에 있다. 이는 간단히 스케치된 스스로의 자화상이다. 이 자화상의 배경에는 병약함이 무겁고 검은 주름을 내리고 있으며 또 전경에는 그가 기댄 테이블 위의 에트루리아의 꽃병에 자존심의 꽃이――혹은 그의 말을 따른 '무사도를 대신할 허영심' 또는 니체의 말을 따른 '남자에게는 도덕의 대용품인 허영심'의 꽃이 심어져 있다. 그의 손은 아주 말라서 손을 쥐는 것조차 어려웠다. 왜냐면 그는 가장 무거운 황금 펜을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게 내가 그리려는 그의 마지막 초상화이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모든 게 제각기 시들어져 그 안의 싸움이 수습되고 기질상의 로맨티스트가 승리했다. 내가 그 안의 인생관상의 현실주의자가 이기기를 얼마나 바랐는지도 모른 채!
고통 속에서 인생이란 게 어떤 건지를 바라보며 '행복이나 평온은 대단한 게 아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세계는 단지 비장함뿐이다. 그리고 우리의 즐거움은 인생이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인식하는 일이다――심지어 되도록 많이"하는 말은 그의 기질과 또 그의 인생관과 완벽히 틀어져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평온하겠다'며 그의 평생을 짧은 로맨스로 만들어버렸다. 그런 것도 그가 타고 난 동양인이며 또 도시 사람이며, 또 타고난 병약인이었기 때문이리라. 그의 기질에는 맞을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체질이 거부한 것이리라.
친구여, 나는 네가 말한 '동물력' 덕에 아직까지 살아 있다네. 그리고 그 '동물력'의 사주로 우리의 보전을 무언가 의미 있는 일로 여기며 또 너의 옥쇄를 슬퍼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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