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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사토 하루오

수국 - 사토 하루오

by noh0058 2021.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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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이 그렇게 얘기치 않게 죽어버리지 않았다면 가령 오랜 병이라도 앓은 후에 죽었다면 당신과 나 사이를 좋다느니 결코 안 된다느니 뭐라도 딱 잘라 말해주고 갔겠지……저는 도무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당신이 그로부터 칠 년이 지났음에도 왜 아직까지 혼자인지, 또 제가 왜 이따금 설교를 들으러 가고 싶어졌는지, 그 사람은 그 이유를 입 밖으로는 내지 않을지언정 분명히 알고 있었던 거겠죠. 그렇기에 저를 한층 더 잘 대해줬던 거겠지요. 그런 걸 생각하면 저는 그것만으로 어쩌면 좋을지 헤매고 말아야. 그리고 저와 당신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또 이런 걸 생각해보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요……
 방금 전 들은 눈물을 머금은 여자의 말. 남자는 그 말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되풀이해 보았다. 그리고 여자가 어째서 그런 말을 했는지 남자도 알 거 같았다. 그래서도 그때부터 말해야 할지 망설이던 걸 지금도 열어야 하나 생각하고 있다. 그건――정말이지, 저는 그 후로 몇 번이나 그 남자만 죽으면……하고 생각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당신의 부인이 그렇게 익사하는 순간에도 저는 어쩌면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런 생각을 했을지 모르지요. 저는 그만큼이나 그런 생각을 했으니까요. 남자가 말해야 할지 망설이던 건 겨우 그뿐이었다.
 육 첩 불단 사이에 창백하게 마른 병에 걸린 아이――여섯 살 쯤 되는 여자아이의 머리맡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여자가 앉아 있다. 아까부터 굉장히 낮은 소리로 샤미센을 연주하면서 다다미 위를 바라보고 있다. 마찬가지로 주위 다다미 위를 보고 있던 남자 또한 같은 생각을 줄곧 반복하였으나 그런 신결징적인 생각을 던져버리고 고개를 들어 여자의 옆얼굴을 응시했다. 무릎베개를 받고 있는 남자의 눈에는 여자의 얼굴이 조금 붉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때 방안이 조금 밝아지는가 싶더니 장자에 희미한 햇살이 들어왔다.
 "어머, 햇살이 들어오네."
 여자는 혼잣말처럼 말하고는 몸을 일으켜 장자를 열었다. 구름이 띄엄띄엄 떠오른 맑은 날이었다. 여자는 하늘을 올려다 보며 의미도 없이 남자를 돌아보았다. 조금 부자연스럽게 일그러진 웃음이었다. 아직 미처 마르지 않은 방금 전 눈물과 웃음으로 여자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이제까지 여자의 옆얼굴을 훔쳐보던 남자의 눈은 여자의 눈초리가 눈부신 것처럼 피하고 시선을 정원으로 돌렸다. 처마에 맺힌 빗방울이 반짝이고 있다.
 "정원에 수국이라도 심어져 있으면 좋을 텐데요."
 남자는 딴 소리를 하였다.
 여자는 대답한다――
 "싫어요, 수국은. 환자가 끊이지 않는 꽃이라잖아요."
 "그런 말도 있지요……"
 여자는 다시 샤미센을 들어 올렸다.
 남자는 불쑥 무릎베개서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모퉁이서 누군가가 지나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할멈이 돌아가는 거려나."
 여자도 그렇게 말했다.
 그때 자고 있던 아이가 대뜸 심하게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막 들어 올린 샤미센을 내려놓고 아이의 머리맡으로 향했다.
 "아빠! 아빠! 아빠!……"
 아이는 어머니 얼굴은 보려고도 하지 않고 그렇게 소리쳤다.
 "왜 그래, 왜 그래――꿈꿨구나……" 여자는 도움을 청하듯이 남자를 보면서 처음엔 아이에게 그리고 점점 남자에게 말했다.
 "……정말 이상한 아이에요. 이제 와서 아빠만 찾고요. 게다가 여기가 아니면――불단 앞 아니면 자려고도 안 해요."
 남자는 그에 대답하려 하지 않았다. 심장이 이상하리만치 빨리 뛰고 이명이 들리는 듯했다……
 여자는 문득 자기 등 뒤를 돌아봐야 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본래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병에 걸린 아이는 마르고 쇠약해져 한층 크고 한층 투명해진 검은 눈동자를 크게 뜨고 어머니의 어깨너머로 공간을, 방 한구석을 한사코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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