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월 초, 코후에서 미타카로 이사하여 나흘째 되던 낮, 이상한 여자가 찾아와 이 주변 주민이라고 거짓말을 하더니 억지로 장미 일곱 송이를 강매했다. 나는 거짓말이란 걸 알면서도 자신의 비굴한 약함 탓에 미처 거절하지 못하고 사 엔을 빼앗겨 나중에 굉장히 불쾌해했다. 또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시 월 초, 나는 그때 겪은 가짜 주민을 소설로 써서 문장을 다듬고 있던 차였는데 정원서 죄송합니다, 저 요앞 온실서 왔는데 꽃 구근이라도 사주실 수 없을까요, 하고 마흔 가량의 남자가 바깥 복도 앞에서 머뭇머뭇 웃고 있었다. 요전 번의 가짜 주민하고 사람은 달라도 같은 분류이지 싶어 안 돼요, 요전 번에도 장미를 여덟 송이나 심어야 했어요, 하고 여유롭게 대답했더니 그 남자가 얼굴이 살짝 질리더니
"뭐예요 그게? 심어야 했다니"하고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내게 시비를 거는 것이었다.
나는 무서워서 몸이 벌벌 떨렸다. 침착함을 보여주기 위해 탁자에 턱을 괴고는 억지로 웃으며
"아뇨 왜, 거기 정원 구석에 장미 심어져 있죠! 그게 속아서 산 거라서요."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 말이 이상하잖아. 내 얼굴 보면서 심어야 했다는 건 말이 이상하잖아."
저도 이번에는 웃지 않고
"그게 왜 선생님 보고 한 말이에요? 나는 저번에 속아서 사서 불쾌하다고 말한 거뿐이에요. 말을 그렇게 하시면 안 되죠."
"하, 내가 잔소리 들으러 왔나? 서로 한 마디씩 했잖아요. 나도 장사치야. 한 푼이라도 받으면 나도 히죽히죽 해줄 수 있지만 돈도 안 받았는데 내가 댁 잔소리를 왜 들어야 해?"
"논리적인 척하지 마세요. 그럼 나도 머리 한 번 굴려봐? 선생님이 먼저 나를 찾아온 거 아니에요." 누구 허락도 안 받고 태연히 남의 정원에 들어온 거 아니냐고. 그렇게 말하려 했지만 너무 얄팍해 보여 관두었다.
"찾아왔는데 그게 뭐?" 상인은 내가 말을 흐린 걸 찔렀다. "나도 한 집의 가장이야. 잔소리를 왜 들어야 해? 속았네 마네 해도 이렇게 심어놓고 즐기고 있잖아요." 정곡이었다. 나는 패색이 짙어졌다.
"그야 즐겨야죠. 저도 사 엔이나 뜯겼는데."
"싸게만 샀구만." 은근히 반발하였다. 투지로 가득했다. "카페 가서 술 한 잔 마신 셈 쳐요." 실례되는 소리까지 했다
"전 카페 안 가요. 가고 싶어도 못 가요. 사 엔은 저한테 큰돈이라고요."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큰돈이든 뭐든 내 알바는 아니죠." 상인은 기어코 기세등등해져 나를 비웃었다. "그렇게 큰돈이면 고소라도 하지 그랬어."
"제가 약해 빠져서 그래요. 거절하지 못한 거니까."
"그렇게 약해 빠져서 어쩌려 그래요." 기어코 나를 경멸한다. "남자가 그렇게 약해 빠졌으면서 잘도 살아가네요." 건방지기 짝이 없다.
"누가 아니래요. 그래서 앞으로는 필요 없을 때엔 딱 잘라 필요 없다 거절하려 각오하던 차에요. 그때 선생님이 오신 거고요."
"하하하하." 상인은 그걸 듣고 크게 웃었다. "그런가요, 알 거 같네." 역시나 불쾌하게 들렸다. "네, 그럼 관두죠. 잔소리를 들으러 온 게 아니니까. 한 마디씩 한 거야. 더 할 필요 없지." 그런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나는 조용히 안도했다.
다시 방금 전 가짜 주민 묘사에 이래저래 내용을 덧붙이며 나는 세상 사는 일의 어려움을 생각했다.
옆방에서 뜨개질을 하던 아내가 뒤늦게 와서 내 대응 방식의 치졸함을 웃고 상인에겐 돈 없는 행색을 보여주면 그렇게 바보 취급을 당한다. 사 엔이 큰돈이니 하는 말은 앞으로 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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