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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다자이 오사무

I can speak - 다자이 오사무

by noh0058 2022.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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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로움은 인종의 밤, 체념의 아침. 이 세상이란 체념을 노력해야 하는가. 슬픔을 참아야 하는가. 젊음은 날로 좀 먹혀 가고 행복도 향간서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나의 노래는 목소리를 잃고 한동안 도쿄서 무위도식하며 그동안 노래가 아닌 소위 "생활의 중얼거림"이라 해도 좋을 걸 적기 시작해 자신의 문학이 나아가야 할 길을 그 작품들을 통해 알리고 뭐 이렇게 하면 되나? 하고 조금 자신과 비슷한 걸 얻어 이전부터 생각하던 긴 소설에 임했다.
 작 년 구 월, 코슈 미사카의 정상의 텐카차야란 찻집의 2층을 빌려 그곳에서 조금씩 일을 진행하여 백 장 가까이 썼고 다시 읽어 보아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새로이 힘을 얻어 어찌 됐든 이를 완성시키기 전까지는 도쿄로 돌아갈 수 없다고 미사카의 찬바람 강한 날에 홀로 멋대로 약속했다.
 멍청한 약속을 했다. 구 월, 시 월, 십일 월, 미카사의 찬기운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그쯤엔 보내기 힘든 밤이 이어졌다. 어쩌면 좋을지 한참 망설였다. 스스로 멋대로 약속을 하고 이제 와서 그걸 깨지 못해 도쿄로 돌아가고 싶어도 그게 무언가 파계로 이어지는 듯하여 고개 위에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코후에 내려갈까 싶었다. 코후라면 도쿄보다 따듯해서 이 겨울도 괜찮겠지 싶었다. 
 코후에 내려왔다. 살았다. 이상한 기침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코후 외국의 하숙집 중 가장 햇살이 잘 드는 방에서 책상 앞에 앉아 보니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조금씩 일을 진행했다.
 점심쯤부터 홀로 일을 하고 있자니 젊은 여자의 합창 소리가 들렸다. 나는 펜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하숙과 골목 하나를 두고 제실공장이 있었다. 그곳 여공들이 작업하면서 노래한다. 개 중에 하나 튀는 목소리가 있는데 그게 리드하여 노래한다. 군계일학. 그런 느낌이다. 목소리가 좋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사를 하고 싶단 생각마저 들었다. 공장 울타리를 기어 올라 그 목소리의 주인을 한 번 보고 싶단 생각마저 들었다.
 여기에 쓸쓸한 남자 하나가 있고 매일매일 당신의 노래로 얼마나 힘을 받는지 모른다. 당신은 그걸 모른다. 당신은 나를, 내 일을 얼마나 격려해주고 위로해주고 있는가. 나는 진심으로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런 걸 글로 적어 공장 창문으로 던져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런 짓을 했다가 그 여공이 놀라서 겁을 먹고 목소리를 감추면 곤란해진다. 무심한 노래를 내 인사가 되려 탁하게 만들어버리면 죄악이 되고 만다. 나는 홀로 안달복달했다.
 사랑일지도 몰랐다. 이 월, 춥고 조용한 밤이었다. 공장의 골목서 주정뱅이의 거친 말이 대뜸 들려왔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사, 사람을 바보인 줄 알고. 뭐가 그리 우스워? 가끔 술 좀 마신다고 비웃음 살 이유가 뭐가 있어. I can speak English. 나는 야학을 다닌단 말야. 누나, 그거 알아? 모르잖아. 어머니한테도 말 안 하고 몰래 야학을 다니고 있다고. 똑똑한 사람이 돼야 하니까. 뭐가 우스워 누나. 누나, 나 말야 곧 출정 나갈 거야. 그때는 놀라지 말라고. 주정뱅이 동생도 남처럼 일할 수 있단 말야. 거짓말이야. 출정은 아직 정해진 건 아냐. 하지만 자, I can speak English. Can you speak English? Yes, I can. 참 좋아, 영어란 건. 누나, 딱 잘라 말해줘봐. 나 잘했지? 어, 나 잘 했지?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단 말야……
 나는 장자를 살짝 열어 골목을 내려다보았다. 처음에는 하얀 매화인 줄 알았다. 실제로는 동생의 하얀 우비였다.
 계절감이 맞지 않는 우비를 입은 동생은 많이 추운지 공장 울타리에 기대어 서있다. 울타리 위 공장 창문에선 한 여공이 몸을 반쯤 내밀어 취한 동생을 바라보고 있다.
 달이 나와 있었으나 동생의 얼굴도 여공의 얼굴도 또렷이 보이지 않았다. 언니의 얼굴은 둥글게 혀어멀건한 게 웃고 있는 듯했다. 동생의 얼굴은 까무잡잡하고 아직 어린 느낌이 있었다. I can speak. 주정뱅이의 영어가 괴로울 정도로 나를 공격했다. 갖은 말은 처음 배우는 말에 담겨 있다. 나는 문득 잊힌 노래를 떠올린 듯했다. 별 볼 일 없는 풍경이었으나 나는 잊기 어려웠다. 
 그날 밤 본 여공은 그 목소리가 고운 사람이었을까. 실상은 알지 못한다. 아마 다를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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