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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355

세 개의 창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1 쥐 일등 전투함 XX가 요코스카 군항에 들어온 건 유월 초의 일이었다. 군항을 둘러싼 산들은 하나같이 비 때문에 흐려져 있었다. 본래 군함은 한 번 정박을 하면 쥐가 들끓고는 한다――XX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오랜 비 탓에 깃발을 건 2만 톤의 XX의 갑판 아래에도 상자나 옷장 안에서 쥐가 출몰하기 시작했다. 쥐를 잡으면 하루의 상륙을 허가한다. 쥐를 잡기 위한 부장의 명령이 내려진 건 정박한지 채 사흘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물론 수병이나 기관병은 이런 명령이 내려지기 전부터 열심히 쥐를 잡으려 했다. 쥐는 그들의 노력 덕에 서서히 수를 줄여 갔다. 따라서 그들은 한 마리의 쥐로도 다툴 수밖에 없었다. "요즘 잡히는 쥐는 죄다 갈기갈기 찢겨 있다니까. 다들 밀고 당기고 난리야." 건룸에 모인 장.. 2021. 8. 18.
야스키치의 수첩에서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멍 어느 겨울 저녁, 야스키치는 칙칙한 레스토랑 2층에서 기름 찌든 내가 나는 구운 빵을 입에 물고 있었다. 그의 테이블 앞에는 균열이 생긴 하얀 벽이 있었다. 벽에는 또 "핫(따듯한) 샌드위치도 있습니다"하고 적힌 얇고 긴 종이가 기울어져 붙어 있었다. (그의 동료중 하나는 이걸 "아따듯한 샌드위치"라 읽어 그를 정말로 신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왼쪽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오른쪽에는 바로 유리 창문이 있었다. 그는 구운 빵을 물면서 이따금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에는 거리 하나를 둔 아연 지붕의 옷가게 하나가 직공용 작업복이나 카키색 망토 따위를 진열해두고 있었다. 그날 밤 학교에선 여섯 시 반부터 영어 회화 모임이 열릴 예정이었다. 그는 출석해야 할 의무가 있었지만 학교 주변에 살지 .. 2021. 8. 17.
꿈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어깨나 목이 결리는 건 물론이고 불면증도 꽤나 심했다. 그뿐 아니라 어쩌다 잠에 든다 싶으면 여러 꿈을 꾸고는 했다. 언젠가 누군가는 "색채를 가진 꿈은 불건전하단 증거다"하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내가 보는 꿈은 화가가 돕기라도 하는지 항상 색채를 지니곤 했다. 나는 어떤 친구와 함께 카페로 보이는 구석가의 유리문 안으로 들어갔다. 먼지를 머금은 유리문 바깥은 버들의 새싹이 자란 기차의 건널목이었다. 우리는 구석 테이블에 앉아 무언가 그릇에 담긴 요리를 먹었다. 하지만 다 먹고 보니 그릇 바닥에 뱀 머리가 담겨 있었다――그런 꿈마저 색채는 또렷했다. 내 하숙은 지독히 추운 도쿄의 어느 교외에 위치해 있었다. 나는 우울해지면 하숙 뒤로 뚝 위에 올라 간선전철의 선로를 내려다보곤 .. 2021. 8. 16.
요노스케 이야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상 친구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요노스케 뭐야 새삼스레. 친구 그게 말야. 오늘은 평소랑 달리 네가 곧 이즈인지 어딘지 항구서 뇨고노시마인지에 가게 돼서 작별 연회하는 거잖아? 요노스케 그래. 친구 그러니까 이런 말을 하는 게 어쩐지 흥을 깨는 거 같아서 말야. 타유 앞인 것도 조금 움츠러드네. 요노스케 그럼 안 하면 될 거 아냐. 친구 근데 안 할 수도 없지. 안 할 바에야 애초에 시작도 안 했어. 요노스케 그럼 해봐. 친구 그게 말야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네. 요노스케 왜 또? 친구 묻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니까. 물론 네가 정말 괜찮다면 나도 배짱 든든히 먹고 묻겠지만. 요노스케 뭔데 그래. 친구 너는 뭐 같은데. 요노스케 괜히 뜸을 들여. 뭐냐니까. 친구 아니 그렇게 말하라.. 2021. 8. 15.
마츠에 인상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마츠에에 와서 가장 먼저 내 마음을 끈 건 거리를 종횡으로 관통하고 있는 강과 그 강 위에 걸린 수많은 목조 다리였다. 하류가 많은 도시가 꼭 마츠에뿐인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그러한 도시들은 그 위에 걸린 교량 탓에 그 아름다움이 적잖이 죽어 있었다. 그런 도시 사람들은 반드시 강 위에 빗 모양의 삼류 철교를 걸어두고 심지어는 그 추한 철교를 자신들의 자랑거리 중 하나로 여기기 때문이다. 나는 마츠에에 와서 사랑스러운 목조 교량을 갖은 강 위에서 볼 수 있는 게 기쁘다. 특히 이러한 다리 두세 개가 옛 일본의 판화가들이 한동안 구도를 이용한 청동 기보시를 주요 장식으로 쓰고 있단 사실도 이러한 다리 사랑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마츠에에 도착한 날 옅은 비에 젖어 빛나는 다리의 기보시가 회색.. 2021. 8. 14.
타카야마 쵸규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다. 3학기 시험을 끝내고 휴가 중에 읽기 위해 책 몇 권을 사 왔다. 나츠메 선생님의 우미인초도 그때 섞여 있었지 싶다. 하지만 대부분을 차지했던 건 쵸규 전집 다섯 권이었다. 나는 당시부터 책을 가리지 않고 읽어서 일주일이란 휴가 내내 책만 읽었다. 물론 쵸규 전집 중 1권, 2권, 4권은 아무리 읽어도 어려워서 논리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3권과 5권은 상당히 관심이 가서 끝까지 읽어낸 걸로 기억한다. 당시 처음으로 쵸규를 접한 나는 그 명문에서 별로 좋지 않은 인상을 받았다. 왜냐하면 중학생인 내게는 쵸규가 거짓말쟁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달리도 여러 이유가 있을 테지만 지금도 기억나는 건 '내 소매의 기록'이란 아름다운 문장이 참으로 겉만 번지르르하게 느.. 2021.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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