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다. 3학기 시험을 끝내고 휴가 중에 읽기 위해 책 몇 권을 사 왔다. 나츠메 선생님의 우미인초도 그때 섞여 있었지 싶다. 하지만 대부분을 차지했던 건 쵸규 전집 다섯 권이었다.
나는 당시부터 책을 가리지 않고 읽어서 일주일이란 휴가 내내 책만 읽었다. 물론 쵸규 전집 중 1권, 2권, 4권은 아무리 읽어도 어려워서 논리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3권과 5권은 상당히 관심이 가서 끝까지 읽어낸 걸로 기억한다.
당시 처음으로 쵸규를 접한 나는 그 명문에서 별로 좋지 않은 인상을 받았다. 왜냐하면 중학생인 내게는 쵸규가 거짓말쟁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달리도 여러 이유가 있을 테지만 지금도 기억나는 건 '내 소매의 기록'이란 아름다운 문장이 참으로 겉만 번지르르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용 중에는 쵸규가 달밤에 미호노마츠바라의 하고로모노 소나무 밑으로 가 크게 슬퍼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 걸 읽으면 쵸규는 제가 원할 때 흘릴 눈물을 평소부터 챙기고 다니는 것만 같았다. 혹은 챙기고 다니지 않더라도 문장 위에서 뻔뻔스럽게 폭포수 같은 눈물을 드러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분위기를 잡아가며 눈물을 흘리는 게 나로서는 좀처럼 좋게 봐줄 수 없었다. 남이 됐든 자신이 됐든 어딘가에 거짓말이 있지 않고서는 그렇게 엉엉 울 수는 없는 법이다――그렇게 나는 곧장 쵸규를 거짓말쟁이라 단정 지어버렸다. 때문에 그 후로 두 번 다시 '내 소매의 기록'을 읽으려 한 적이 없었다.
그로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약 십 년 가까이 쵸규를 잊고 있었다. 니체를 읽으면서도 떠올리지 못한 건 스스로도 조금 신기하기도 하지만 사실이 그런 걸 어쩔 도리도 없다. 하지만 졸업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카기 코헤이 군과 같이 밥을 먹었더니 대뜸 나를 붙잡고 쵸규 이야기를 늘어 놓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선지자라며 쵸규를 이래저래 띄어주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쵸규는 거짓말쟁이라 확신하고 있었기에 선지자는 고사하고 거짓말쟁이라 말하며 아카기 군의 생각에 굴하지 않았지. 그때는 결론 없이 끝났지만 거의 십 년 가까이 읽지 않은 쵸규를 다시 들여다볼 생각이 든 건 전적으로 이 토론 덕이었다.
나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가을밤의 전등 아래에서 책장 구석에 놓여 있던 쵸규 전집을 끄집어 냈다. 다섯 권을 한 번에 샀을 터인 책이 이제는 단 두 권 밖에 남지 않았다. 나머지는 대강 팔아버렸거나 빌려주었다 잃어버린 걸 테지. 하지만 다행히 두 권 중에 "내 소매의 기록"이 담긴 5권이 있었다. 나는 그 한 권을 자단 책상 위에서 펼쳐 조용히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물론 그곳에는 비꼼이나 눈물이 있었다. 아니, 영탄 1 그 자체마저도 이미 시대와 교섭할 수 없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내 소매의 기록" 문장 속에는 어딘가 쵸규란 인간을 방불케하는 게 있었다. 그리고 그 인간은 우여곡절 하기 짝이 없는 번거로운 단어 사이에서 역시나 인간답게 괴로워하고 발버둥 치기도 했다. 그러니까 쵸규는 거짓말쟁이였다고 할 수 없다. 단지 중학생 때의 내 눈이 날것의 쵸규를 포착하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쵸규의 통곡에는 미소 지었다. 하지만 더 작은 숨결에는 어느 정도 동정할 수밖에 없었다――해는 저 멀리 바다 위를 비추고 있다. 바다는 은박 바람을 머금은 것처럼 넓게 일렁이며 숨 쉬는 정도의 파도마저 보이지 않는다. 그 해와 바다를 바라보며 쵸규는 모래 위에 몸을 작게 만 채로 삶을 생각한다. 죽음을 생각한다. 혹은 또 예술을 생각한다. 하지만 쵸규의 생각은 나아가도 주위 풍경에선 이렇다할 변화가 없다. 따스한 모래 위에는 배 몇 척이 잠들어 있다. 아까부터 끊임없이 그 아래를 나는 건 아마 이 주변에 많은 갈매기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멀리서 햇살을 받고 있는 어부 할아버지도 여전히 망을 고치는데 여념이 없다. 그런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병약한 쵸규의 마음속에는 영원한 것에 대한 실망이 막연히 올라온다. 해도 움직이지 않는다. 모래도 움직이지 않는다. 바다는――눈앞에 펼쳐진 바다도 마치 대낮의 적막에 빠져 든 것처럼 돌비늘보다도 눈부신 수면이 단지 평평히 뻗어 있기만 한다. 쵸규의 숨결은 이런 순간에 처음으로 그의 가슴에서 흘러나왔다――나는 이러한 쵸규를 상상하면서 긴 가을 밤 내내 그 문장에 대치하였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그 아름다운 문장에 아낌없는 동정이 쏟아지는 건 분명해도 그럼에도 나와 쵸규 사이에는 아직 무언가 메울 수 없는 게 자리해 있었다. 그건 시대일까. 아니 그게 단지 시대이기만 할까――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을 때 손에 없는 쵸규의 책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그걸 이제까지 읽지 않고 있는 건, 또 그 때문에 이 물음에 명백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는 건 전적으로 나의 태만함이다. 그러고 보면 올해 가을도 또 어느 틈엔가 무르익어버렸다.
둘
마침 그와 반대되는 게 류게지에 위치한 쵸규의 묘이다.
처음으로 류게지에 간 건 중학교 4학년 때 일이었다. 봄 휴가인 어느 날, 분명 시즈오카에서 쿠노잔에 올라 거기서 돌아갔었지 싶다. 아쉽게도 폭풍우 탓에 후지미무라의 길로 절문까지 가는 길이 말 그대로 잠겨 있었던 탓이었는데, 봄비에 젖은 대패왕수가 푸른 가지를 퍼덕이며 조용한 쿠리를 뒤로하고 있는 게 나츠메 선생님의 '풀베개'의 한 구절을 연상시킨 건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급한 계단을 올라 묘에 이르니 제비꽃이 한가득 펼쳐져 있었다. 아니, 누가 한 건지 몰라도 묘 위에도 제비꽃 다발이 두세 개씩 올라가 있었다. 묘는 하얀 대리석으로 "내가 꼭 현대를 초월할 필요는 없다"란 묘비명이 "타카야마 린지로"란 이름과 함께 선명한 끌 자국을 남기고 있다. 나는 그 맨질맨질한 돌 표면에 흩날려 있는 제비꽃 꽃잎이 참으로 쵸규에 어울리는 꽃처럼만 느껴졌다. 그후, 내 기억 속 쵸규의 묘엔 비에 젖은 제비꽃의 보라색이 사각 대리석과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이건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인데 아마 당시의 나는 참으로 위대한 사상가의 묘지를 찾은 듯한 그럴싸한 감상으로 충만해 있었던 거지 싶다. 어쩌면 그 후에 "류게지를 찾은 기록" 정도로 애원이 한껏 담은 글 따위를 적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얼마 전에 그 근처를 지나는 김에 문득 쵸규를 떠올려 다시 류게지에 가보게 되었다. 그날은 아주 맑은 여름으로 무거운 소철향이 절 정원에 충만해 있었다. 여전히 급한 계단을 올라 산 위로 와보니 거의 의외일 정도로 쵸규의 대리석 묘가 하찮게 보였다. 참으로 초라하고 괜히 작게 만들어진 데다가 한없이 경솔해 보였다. 도통 마음에 와닿지 않는 통에 잡목의 그림자 밑에 엉덩이를 붙인 채로 한동안 바라보았는데 역시나 하찮다는 심정이 가시지 않았다. 애당초 옆에 선 일본풍 사당과 대조되어 비참함이 앞서고 만다. 그런 데다 주위의 살벌한 풍경이 사방에서 이 묘의 위엄을 해치고 있다. 나는 산매미 소리에 파묻힌 채로 봄비에 젖은 이 묘를 보고 감동을 느낀 그 옛날이 어쩐지 거짓말처럼만 느껴졌다. 또 동시에 어쩐지 지하의 쵸규한테도 유감스러움을 느꼈다. 후지산과 큰 소철, 그리고 이 대리석 묘――나는 십 년만에 '내 소매의 기록'을 읽은 것과 정반대의 삭막함을 느끼며 류게지를 뒤로했다. 그 후로 오늘날까지 그 유감스러운 묘를 찾아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쵸규를 볼 용기 또한 없었다.
하지만 괴상쩍은 국가주의 녀석들이 그들이 숭배하는 니치렌쇼닌의 신앙을 천하에 숭배하듯이 쵸규의 동상을 건설하지 않는 건 그에게는 행복한 일일지도 모른다――나는 요즘 이따금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소리를 내어 심중의 감동을 나타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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