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에 따르면 일본에선 스이코 텐노 35년 봄 2월 미치노쿠에서 처음으로 오소리가 사람으로 변했다. 물론 일설에 따르면 사람으로 변한 게 아니라 사람 사이에 뒤섞여 산 것이라는데 어느 쪽이든 그 후에 우타를 읊었다니 사람으로 변했든 사람 사이에 뒤섞였든 어지간한 사람만큼 우타를 읊은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그 이전에도 스이닌 당시의 기록을 보면 87년, 탄바의 미카소라는 사람의 개가 오소리를 물어 뜯어 보니 배 안에서 팔척경곡옥이 있었다고 적혀 있다. 이 곡옥은 바킨이 팔견전에서 야오비쿠니 묘친을 내놓을 때 차용했다. 다만 스이닌 시대의 오소리는 단지 뱃속에 곡옥을 품고 있을 뿐으로 후세의 오소리처럼 변화무쌍이진 않다. 그럼 오소리가 사람으로 변한 건 역시 스이코 덴노 35년 봄 2월이 처음이리라.
물론 오소리는 진무 동멀이란 먼 옛날부터 일본 야산에 살았다. 그런 오소리가 기원 1288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다――이렇게 말하면 얼핏 굉장히 황당 무계하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아마 이런 일로 시작된 것이리라――
그 시절, 미치노쿠의 소녀가 같은 마을의 남자를 사랑했다. 하지만 여자 옆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 눈을 피해 밤마다 만나야 하니 두 사람 모두 보통 사랑이 아니었다.
남자는 매일 밤 산을 넘어 소녀의 집 앞으로 왔다. 그러면 소녀 또한 틈을 봐서 몰래 집을 빠져 나왔다. 하지만 소녀 쪽은 어머니가 눈앞에 있으니 조금씩 늦어지기 쉬웠다. 어느 날은 달이 다 기운 후에야 겨우 나타났다. 어느 날은 이곳저곳의 닭이 울 적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일이 몇 번인가 이어진 밤의 일이다. 남자는 병풍 같은 바위 뒤에 몸을 웅크린 채 기다리는 동안의 외로움을 풀 생각으로 소리 높여 우타를 읊었다. 갑갑한 마음을 따가운 목덜미에 모아 파도 소리에 지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읊었다.
그걸 들은 어머니는 옆에 있던 딸에게 저 목소리가 뭐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자는 척을 하던 소녀도 두세 번 물어서야 답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 아닌 거 같은데――소녀는 당황한 나머지 그렇게 얼버무렸다.
그러자 어머니는 사람이 아니면 뭐냐고 되물었다. 그에 오소리일지 모른다 대답한 건 전적으로 딸의 기지였다――사랑은 옛날부터 여자들에게 이런 기지를 가르쳐주곤 했다
밤이 지난 후, 어머니는 이웃 노파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노파도 그 우타를 들은 사람 중 하나였다. 오소리가 우타를 읊을 수 있을까요――노파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도 다른 남자에게 같은 이야기를 했다.
말이 돌고 돌아 마을에 와있던 떠돌이 승려의 귀에 전해졌다. 승려는 오소리가 우타를 읊은 이유를 상세히 설명했다――불설에는 윤회전생이란 게 있다. 그러니 오소리의 혼도 본래는 인간의 혼이었을지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사람이 하는 일은 오소리도 할 수 있으리라. 달밤에 우타를 읊는 정도는 딱히 신기할 것도 없다……
그 후로 이 마을에선 오소리의 우타를 들었다는 사람이 몇 명이나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끝내는 그 오소리를 보았단 사람마저 나타났다. 갈매기 알을 찾으러 간 남자가 어느 밤 해안가를 따라 돌아와보니 아직 남아 있는 눈의 빛으로 오소리 한 마리가 산 그늘에서 우타를 읊으며 어슬렁거리는 걸 보았다는 것이다.
이미 모습마저 보였다. 그런 마당이니 온 마을 사람들이 모조리 목소리를 듣는 건 되려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오소리의 우타는 때로는 산에서 들렸다. 때로는 바다에서 들렸다. 그리고 또 어떤 때엔 산과 바다 사이에 산재한 집 지붕 위에서도 들렸다. 그뿐일까. 끝내는 소녀 자신마저 어느 밤 대뜸 우타를 읊는 목소리에 놀라야 했다 ――
소녀는 물론 그게 남자의 우타 소리라 생각했다. 숨쉬는 걸 보면 어머니는 깊이 잠들어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 몰래 마루를 지나 문을 살며시 열고 바깥을 살폈다. 하지만 바깥은 옅은 달과 파도 소리로만 가득 할 뿐 남자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소녀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대뜸 봄밤의 차가운 바람이 불어 뺨을 부여잡으며 멈춰 서고 말았다. 문앞 모래 위로 자그마한 오소리 발자국이 희미하게 보였기 때문이리라……
이 이야기는 수백 리는 떨어져 산과 강을 둔 수도가지 전해졌다. 그 후로는 야마시로의 오소리가 사람이 되고 오우미의 오소리가 사람으로 변했다. 끝내는 같은 속인 너구리마저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하여 도쿠가와 시대가 되면 사토의 도자부로라 하여 오소리인지 너구리인지 알 수 없는 선생이 나타나 바다 너머에 있는 에치젠 사람으로까지 변하게 되었다.
변하게 된 게 아니다. 변했다고 믿게 된 것이다――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변했다는 것과 변했다고 믿게 된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으랴.
비단 오소리 뿐일까. 우리는 세상 만사에 필경 그렇다고 믿는 것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
예이츠는 '켈트의 여명' 속에서 질 호수의 아이들이 청과 백의 옷을 입은 프로테스탄트파 소녀를 성모 마리아로 믿어 의심치 않았단 이야기가 적혀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 마음 속에 살아 있단 점에선 호수의 성모도 수많은 오소리와 다를 바가 없을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의 선조가 오소리가 사람으로 변한 걸로 믿은 것처럼 우리 내부에 살아 있는 걸 믿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믿는 것이 명하는 대로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오소리를 경멸할 수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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