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쥐
일등 전투함 XX가 요코스카 군항에 들어온 건 유월 초의 일이었다. 군항을 둘러싼 산들은 하나같이 비 때문에 흐려져 있었다. 본래 군함은 한 번 정박을 하면 쥐가 들끓고는 한다――XX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오랜 비 탓에 깃발을 건 2만 톤의 XX의 갑판 아래에도 상자나 옷장 안에서 쥐가 출몰하기 시작했다.
쥐를 잡으면 하루의 상륙을 허가한다. 쥐를 잡기 위한 부장의 명령이 내려진 건 정박한지 채 사흘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물론 수병이나 기관병은 이런 명령이 내려지기 전부터 열심히 쥐를 잡으려 했다. 쥐는 그들의 노력 덕에 서서히 수를 줄여 갔다. 따라서 그들은 한 마리의 쥐로도 다툴 수밖에 없었다.
"요즘 잡히는 쥐는 죄다 갈기갈기 찢겨 있다니까. 다들 밀고 당기고 난리야."
건룸에 모인 장교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웃고는 했다. 소년으로 보이는 얼굴을 한 A 중위도 그중 한 명이었다. 편하게 자란 A 중위는 잿빛 하늘에 가까운 인생이 어떤 건지 거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수병이나 기관병이 상륙하고 싶어 하는 심정은 그도 알 수 있었다. A 중위는 담배를 피우며 그들의 이야기에 섞일 때에는 이런 대답을 했다.
"그렇겠지. 나라도 찢어 놓고 싶을 거야."
독신인 A 중위만이 할 수 있는 말임이 분명했다. 그의 친구 Y 중위는 1년 정도 전에 결혼하여 대부분의 수병이나 기계병에게 냉소를 짓고는 했다. 그건 어느 일에서나 간단히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그의 평소 태도하고도 들어맞아 있었다. 콧수염을 짧게 기른 그는 맥주에 한껏 취했을 때마저 테이블 위에 턱을 괸 채 이따금 A 중위에게 이런 말을 하고는 했다.
"우리도 쥐나 한 마리 잡을래?"
어느 비가 그친 아침. 간판 사관이었던 A 중위는 S라는 수병에게 상륙을 허가했다. 그가 작은 쥐 한 마리를――심지어 사지가 완벽히 갖춰진 작은 쥐를 한 마리 잡았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듬직한 몸을 가진 S는 보기 드문 햇살을 받은 채로 폭이 좁은 사다리를 내려갔다. 그러자 동료 수병 하나가 가볍게 사다리를 오르며 그와 엇갈리는 박자에 농담처럼 물었다.
"넌 수입이냐?"
"그래, 수입이야."
그들의 문답은 A 중위의 귀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S를 다시 불러 갑판 위에 새운 채로 문답의 의미를 물었다.
"수입이 뭐냐."
S는 직립한 채로 A 중위의 얼굴을 보았지만 척 보아도 의기소침한 게 보였다.
"수입이란 밖에서 가져온 걸 말합니다."
"뭘 위해 밖에서 가져왔지?"
물론 A 중위도 무얼 위해 가져왔는지는 뻔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S가 대답하지 않는 걸 보고 불쑥 그에게 화가 올라와 그의 뺨을 있는 힘껏 때렸다. S는 조금 비틀거렸지만 곧 다시 부동 자세를 취했다.
"누가 밖에서 가져왔지?"
S는 다시 대답하지 않았다. A 중위는 그를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그의 뺨을 때리는 상황을 상항했다.
"누구냐."
"저희 집사람입니다."
"면회 때 가져온 거냐?"
"네."
A 중위는 어쩐지 마음 속으로 작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가지고 왔지?"
"과자 봉지 안에 넣어 가져왔습니다."
"귀관 집은 어디 있나."
"히라사카시타입니다."
"부모님은 잘 계시나?"
"아닙니다, 집사람과 둘이서만 살고 있습니다."
"자식은 없나?"
"네."
S는 이런 문답 속에서도 불안한 기색을 거두지 못했다. A 중위는 그를 세워둔 채로 힐끔 요코스카 거리를 보았다. 요코스카 거리는 산들 사이에도 지붕을 연이어 놓고 있었다. 햇살을 받고 있음에도 묘하게 볼품없는 광경이었다.
"귀관의 상륙은 허가할 수 없다."
"네."
S는 A 중위가 아무 말도 않는 걸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는 듯했다. 하지만 A 중위는 다음으로 명령할 말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한동안 아무 말없이 갑판 위를 걸었다. "이 녀석은 벌받는 걸 두려워하고 있군."――그런 기색도 갖은 상관처럼 A 중위에게도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제 됐다. 돌아가도록."
A 중위는 겨우 그렇게 말했다. S는 거수경레를 하고는 빙글 돌아 해치 쪽으로 걸어갔다. A 중위는 웃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S가 대여섯 걸음을 나아간 후 대뜸 "잠깐"하고 불렀다.
"네."
S는 바로 돌아보았다. 하지만 불안은 다시 온몸을 붙들고 있는 듯했다.
"귀관에게 내릴 명령이 있다. 히라사카시타에는 크래커를 파는 가게가 있나?"
"네."
"그 크래커를 한 봉지 사 오도록."
"지금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지금 당장 사 오도록."
A 중위는 햇빛에 그슬러진 S의 뺨에 눈물이 흐르는 걸 놓치지 않았다――
그로부터 2, 3일 후, A 중위는 건룸 테이블에서 여자 이름이 적힌 편지를 읽고 있었다. 편지는 복숭아색 편지지에 볼품없는 펜으로 적혀 있었다. 그는 편지를 다 읽고는 담배 하나에 불을 붙이며 마침 앞에 있던 Y 중위에게 편지를 던졌다.
"뭔데 이게?……『지난 날 남편이 저지른 죄는 모두 제 얄팍한 생각에서 나온 바, 부디 그를 나무라지 말고 용서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또 마음 써주신 일은 앞으로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Y 중위는 편지를 든 채로 서서히 경멸의 색을 띠었다. 그러고는 무뚝뚝하게 A 중위의 얼굴을 보며 비꼬듯이 말했다.
"덕이라도 하나 쌓았다 이거지?"
"그래, 조금은 그런 생각도 든다."
A 중위는 가볍게 흘려듣고는 둥근창으로 밖을 보았다. 둥근 창밖으로 보이는 건 오랜 비가 내리는 바다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얼마 후 무언가 부끄러워하듯이 Y 중위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묘하게 마음 한구석이 시리긴 해. 그 녀석의 뺨을 때릴 때는 불쌍하단 생각도 안 한 주제에……"
Y 중위는 의심으로도 주저로도 보일 법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아무 대답도 않고 테이블 위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건룸 안에는 두 사람 말고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테이블 위 컵에는 셀러리가 몇 개나 꽂혀 있었다. A 중위도 그 싱싱한 셀러리 잎을 바라보며 역시 담배를 태웠다. 이런 쌀쌀맞은 Y 중위에게 신기하리만치 친근감을 느끼면서………
2 세 사람
일등 전투함 XX는 어떤 전투를 끝내고 다섯 척의 군함을 낀 채로 조용히 진해만으로 향했다. 바다는 어느 틈엔가 밤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좌현의 수평선상에는 커다란 낫 같은 달 하나가 붉게 떠올라 있었다. 2만 톤의 XX는 물론 아직 소란스러웠다. 승리 후인 만큼 활력으로 넘쳐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소심한 K 중위만은 그런 와중에도 지친 얼굴로 무언가 볼일을 찾아 일부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해전이 시작되기 전야, 그는 갑판을 걷는 동안 희미한 각등의 불을 발견해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그곳에는 젊은 군악대 연주자 한 명이 갑판 위에 배로 누워 적의 눈을 피한 채 각등 빛으로 성경을 읽고 있었다. K 중위는 어쩐지 감동하여 이 연주자에게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연주자는 조금 놀란 듯했다. 하지만 상관이 잔소리를 하지 않는 걸 보고 곧 여성스러운 웃음을 지은 채 머뭇머뭇 그의 말에 대답했다……하지만 그 젊은 연주가도 이제는 메인마스트의 밑부분에 맞은 포탄 탓에 시체가 되어 누워 있었다. K 중위는 그의 시체를 보고선 불쑥 "죽음은 사람을 조용하게 한다"는 말을 떠올렸다. 만약 K 중위 또한 포탄 탓에 목숨을 잃었다면 ――그건 그에게는 어떤 죽음보다도 행복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 해전을 앞두고 있었던 일은 감수성이 풍부한 K 중위의 마음에 아직도 또렷이 남아 있었다. 전투 준비를 갖춘 일등 전투함 XX는 역시나 다섯 척의 군함을 끼고 파도가 높은 바다를 나아갔다. 그러자 우현의 포문 한 정이 어째서인지 뚜껑을 열지 않았다. 심지어 수평선에는 이미 적의 함대가 피우는 연기도 올라오고 있었다. 이러한 부족함을 본 수병 중 한 사람은 포신 위에 앉자마자 가볍게 포구까지 기어 가 두 다리로 뚜껑을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뚜껑을 여는 건 의외로 쉽지 않은 듯했다. 수병은 바다를 아래로 둔 채 몇 번이나 두 다리를 발버둥 쳤다. 하지만 이따금 고개를 들어서는 하얀 이를 보이며 웃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XX는 오른쪽으로 크게 진로를 틀기 시작했다. 또 동시에 우현 전체에 엄청난 바닷물이 밀려왔다. 파도는 순식간에 대포 앞에 앉아 있던 수병을 끌고 가기에 충분했다. 바닷속에 떨어진 수병은 열심히 한 손을 들고 큰 소리를 외쳤다. 부표는 수병의 매도 소리와 함께 바다 위로 날아갔다. 하지만 적의 함대가 눈앞에 있는 와중에 보트를 내릴 수도 없었다. 수병은 부표에 매달리긴 했으나 점점 멀어저만 갔다. 그의 운명은 늦던 이르던 익사할 게 분명했다. 그뿐 아니라 이 바다에는 상어도 적지 않았다……
젊은 연주자의 전사는 K 중위의 심리에 해전 전의 기억과 대조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그는 사관 학교에 들어 오기는 했으나 한때는 자연주의 작가가 되는 걸 공상하고는 했다. 그뿐 아니라 사관 학교를 졸업한 후로도 모파상의 소설 등을 애독했다. 인생은 이런 K 중위에겐 어두운 일면을 보여주고는 했다. 그는 XX에 탄 이후로 이집트의 관에 적혀 있던 "인생――전투'란 말을 떠올려 XX의 장교나 하사관, 병사는 물론이요 XX란 그 자체가 말 그대로 이집트 사람의 격언을 강철로 만들어 올린 것만 같았다. 따라서 연주자의 시체 앞에서 무언가 갖은 전투를 끝낸 후의 고요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수병처럼 한사코 살아가려는 괴로움 또한 쉽지는 않으리란 생각도 들었다.
K 중위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하다못해 바람이라도 쐬려 후부 갑판의 해치를 올랐다. 그러자 12 인치 포탑 앞에 깔끔하게 면도한 갑판 사관 한 명이 뒷집을 진 채로 갑판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또 그 앞에는 하사 하나가 광대가 높은 얼굴을 반쯤 숙인 채로 포탑을 뒤로하여 직립해 있었다. K 중위는 조금 불쾌해져 일부러 갑판 사관 옆으로 걸어갔다.
"무슨 일이야?'
"아니, 부장이 점검하는데 화장실이나 가있잖아."
그건 물론 군함 안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K 중위는 근처에 앉아 작업용 난간을 떼어낸 좌현의 바다나 붉은 낫이 된 달을 바라보았다. 주위는 갑판 사관의 발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K 중위는 꽤나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껴 겨우 어제 있었던 해전 당시의 심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선행상은 거두어 가셔도 괜찮습니다."
하사관은 살짝 고개를 들고 갑판 사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K 중위는 저도 모르게 그를 올려다 보며 어둠 속에서 그의 얼굴 위에 진지한 표정이 담겨 있는 걸 느꼈다. 하지만 쾌활한 갑판 사관은 역시나 뒷짐을 진 채로 조용히 갑판을 걸었다.
"또 헛소리한다."
"하지만 이렇게 서있어서는 부하를 볼 면목이 없습니다. 진급이 늦어지는 것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진급이 늦어지는 게 별거 아닌 거 같아 보이지? 그럴 바에야 그냥 서있어."
갑판 사관은 이렇게 말한 후 다시 가볍게 갑판을 걷기 시작했다. K 중위 또한 이지적인 갑판 사관과 같은 뜻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하사관의 명예심을 감상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만히 고개를 조아린 하사관은 묘하게 K 중위를 불안하게 했다.
"이렇게 서있는 건 수치입니다."
하사관은 낮은 목소리로 애원을 거듭했다.
"네가 자초한 일이야."
"벌은 달게 받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부디 기립만큼은."
"수치라는 명분을 생각하면 어느 거나 매한가지 같은데?"
"하지만 부하에게 권위를 잃는 건 제겐 괴로운 일입니다."
갑판사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사관은――하사관도 포기했는지 "입니다"에 힘을 넣은 후로는 한 마디도 않고 자리에 서있었다. 하지만 K 중위는 점점 불안해져(심지어 그 중 한 면에는 이 하사관의 감상주의에 속으면 안 된다는 생각마저 있었다) 어쩐지 그를 위해 무언가 해주고 말을 해주고 싶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 '무언가'도 입을 뗀 순간에는 특색 없는 말로 바뀌어 버렸다.
"조용하네."
"그러게."
갑판 사관은 이렇게 말하고는 이번에는 턱을 쓰다듬으며 걸었다. 해전 전날 밤 K 중위에게 "옛날에 키무라 시게나리는……"하고 말하며 특히 정성스레 깎은 턱을……
하사관은 벌을 받은 후에 어느 틈엔가 행방불명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투신은 당직이 서는 한 불가능할 게 분명했다. 그뿐 아니라 자살이 이뤄지기 쉬운 석탄고 안에도 없다는 게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하지만 그가 행방불명이 된 건 그가 죽었단 뜻이었다. 그는 어머니나 동생에게 제각기 유서를 남겨두었다. 그에게 벌을 준 갑판 사관은 누가 봐도 진정이 되지 않는 듯했다. K 소위는 소심했던 만큼 남들 이상으로 그에게 동정하여 잘 마시지도 못하는 맥주를 몇 잔이나 어울려줘야 했다. 하지만 동시에 상대가 취하는 걸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녀석이 고집쟁이인 건 알아. 하지만 죽을 건 없잖아?――"
상대는 의자에서 떨어질 듯한 기세로 앉아 몇 번이나 이런 불평을 거듭했다.
"난 그냥 서있으란 말 밖에 안 했어. 그게 대체 죽을 일이냐고……"
XX의 진해만 정박이 끝난 후, 굴뚝 청소로 들어간 기관병이 우연찮게 이 하사관을 발견했다. 그는 굴뚝 속에 내려 온 사슬에 목을 맨 채 죽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수병복은 물론이요 피부나 살점도 다 타서 떨어져 버렸기에 해골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런 이야기는 건룸에 있던 K 중위에게도 전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 하사관이 포탑 앞에 있던 모습을 떠올리고 아직 어딘가에 붉은 낫 모양의 달이 걸려 있는 것처럼만 느꼈다.
이 세 사람의 죽음은 K 중위의 마음에 깊고 어두운 그림자를 남겼다. 그는 언젠가 그들에게서 인생의 전모마저 보았다. 하지만 세월은 이 염세주의자를 어느 틈엔가 내부에서도 평판이 좋은 해군 소장 중 한 명으로 두게 했다. 그는 휘호를 부탁받아도 쉽사리 붓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을 때만 화점 따위에 이런 글을 적곤 했다.
君看双眼色그대여, 그 두 눈동자를 보라
不語似無愁아무 말 없으면 어떤 불안도 없어 보인다
3 일등 전투함 XX
일등 전투함 XX는 요코스카 군항 독에 들어가기로 했다. 수리는 잘 풀리지 않았다. 2만 톤의 XX는 높은 양현의 내외에 무수한 직공을 둔 채로 몇 번이고 이제껏 없던 짜증을 드러냈다. 하지만 바다에 떠있을 때도 굴 따위가 들러붙을 때마다 간지러움을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요코스카 군항에는 XX의 친구인 △△도 정박해 있었다. 1만 2천 톤의 △△는 XX보다도 젊은 군함이었다. 그들은 넓은 바다 너머로 이따금 목소리 없는 대화를 했다. △△는 XX의 나이에는 물론이고 조선 기사의 실수로 현이 망가지기 쉬운 걸 동정했다. 하지만 XX를 안타까워해 한 번도 그런 문제를 입에 올리는 법은 없었다. 그뿐 아니라 몇 번이나 해전을 거쳐 온 XX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항상 존댓말을 사용했다.
그러자 어느 흐린 오후, △△는 화약고에 불이 난 탓에 불쑥 무서운 폭성을 지르며 반쯤 바다 안에 누워 버렸다. XX는 물론 깜짝 놀랐다.(물론 수많은 직공들은 XX가 떨린 걸 물리적으로 해석했다.) 해전도 하지 않은 △△가 갑자기 망가져 버린다――그건 XX로선 쉽게 믿기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는 되도록 놀라움을 숨긴 채 △△를 크게 격려했다. 하지만 △△는 기울어진 채로 불이 나 연기가 올라오는 가운데 단지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삼사일 이 지난 후, 2만 톤의 XX는 양현의 수압을 잃은 탓에 갑판이 점점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본 직공들은 수리를 더욱 서둘렀다. 하지만 XX는 어느 틈엔가 자신을 내려놓았다. △△는 아직 나이도 어린데 눈앞에서 바다에 가라앉아 버렸다. 이런 △△의 운명을 생각하면 그의 평생은 적어도 기쁨이나 괴로움을 모두 맛본 것이었다. XX는 이제 옛날 일이 되어버린 어떤 해전을 떠올렸다. 그건 깃발이 갈기갈기 찢기고 마스트마저 부러진 해전이었다……
2만 톤의 XX는 하얗게 마른 독 안에서 높게 함수를 들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순양함이나 구축함이 몇 대나 출입하고 있었다. 또 새로운 잠수함이나 수상 비행기도 보이고는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건 XX에게는 덧없음을 느끼게 할 뿐이었다. XX는 점멸하는 요코스카 군항을 바라보며 가만히 자신의 운명을 기다렸다. 그동안에도 역시 자신의 갑판이 뒤집어지는데 불안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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