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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아이의 병――일유정에게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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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 선생님은 붓글씨를 담은 족자를 보고 혼잣말처럼 "쿄쿠소구나"하고 말했다. 낙관을 보니 확실히 쿄쿠소 우가이였다. 나는 선생님께 이렇게 말했다. "쿄쿠소는 탄소의 손자죠? 탄소의 자식은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하고 말하자 선생님은 곧 "무소夢窓일 거야"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불쑥 눈이 떠졌다. 모기장 안에 방안의 전등 빛이 들어온다. 아내는 두 살 먹은 남자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있는 듯했다. 아이는 물론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쪽에 등을 돌린 채로 다시 한 번 잠에 들려고 했다. 그러자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안 돼, 타카. 또 아프면 안 돼." 나는 아내한테 물었다. "무슨 일 있어?" "네, 배가 조금 아픈 모양이에요." 이 아이는 장남에 비하면 병에 쉽게 걸리는 편이었다. "내일 S 씨보고 봐달라고 해." "네, 오늘 밤 봐주실 거예요" 나는 아이가 울음을 그친 후 다시 푹 잠들어 버렸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도 꿈의 내용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탄소는 히로세 탄소를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쿄쿠소니 무소니 하는 건 가공의 인물인 듯했다. 그러고 보니 코단가 중에 난소인가가 있었지 하는 생각 따위가 들었다. 하지만 아이의 병은 별로 마음에 걸리지 않았다. 그게 조금 마음에 걸리기 시작한 건 S 씨를 뵙고 돌아온 아내의 말을 들었을 때였다. "역시 소화 불량이에요. 선생님도 이따 찾아오신다네요." 아내는 아이를 옆으로 안은 채로 화난 것처럼 말했다. "열은 얼마나 돼?" "37.5도 정도――어제는 안 났는데 말이죠." 나는 2층 서재로 들어가 매일 하는 일에 임했다. 일은 여전히 진척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꼭 아이의 병 때문인 건 아니었다. 그러던 사이 뜨겁고 갑갑한 비가 정원수를 흔들며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쓰다 만 소설을 앞에 둔 채 몇 개의 시키시마에 불을 붙였다.
 S 씨는 오전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더 진찰을 와주셨다. 저녁에는 타카시의 세장[각주:1]을 해주셨다. 타카시는 세장을 받으며 전등불을 뚫어져라 보았다. 세장액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옅은 검은색의 점액을 토해냈다. 나는 병을 눈으로 직접 본 것처럼만 느껴졌다. "어떤가요, 선생님?"
 "큰일은 아니에요. 단지 얼음으로 계속 머리를 식혀주세요――아,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갔다.
 나는 밤에도 일을 계속해 한 시나 되어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그전에 화장실을 들렀더니 누가 어두컴컴한 주방에서 쿵쿵 소리를 내고 있었다. "누구야?" "나야." 대답한 건 어머니셨다. "안 주무시고 뭐 하세요." "얼음 깨고 있다." 내 어리석음을 부끄러워하며 "불이라도 키고 하시지"하고 말했다. "괜찮아. 손으로 짚어 보면 다 알아." 나는 아랑곳 않고 전등 불을 켰다. 잠옷 차림의 어머니는 무작정 망치를 쓰고 계셨다. 그 모습은 어쩐지 가정에서 보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해 보였다. 물에 씻긴 얼음은 전등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타카시의 열은 떨어지지 않았다. 되려 37.9도로 조금 높아졌을 정도였다. S 씨는 또 오전 중에 찾아와 어제 한 세장을 반복하셨다. 나는 그걸 도우며 오늘은 점액이 적다 싶었다. 하지만 변기를 뚫어보니 어제보다 훨씬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그걸 본 아내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저렇게나 많다니까요"하고 말했다. 그 목소리는 일곱 살은 어린 여학생이 된 것만 같을 정도로 조심성이 없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S 씨의 얼굴을 보았다. "역리[각주:2] 아닐까요?" "아니요, 역리는 일단 젖부터 떼야――" 의외로 S 씨는 꽤나 침착했다.
 나는 S 씨가 돌아 간 후 일을 시작했다. "선데이 마이니치" 특별호에 실을 소설이었다. 심지어 원고 마감이 내일 아침으로 다가와 있었다. 나는 내키지 않는 걸 억지로 펜만 움직였다. 하지만 타카시의 우는 목소리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뿐 아니라 타카시가 울기 시작하면 두 살 많은 히로시도 큰 목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신경 쓰이는 건 그뿐이 아니었다. 오후에는 얼굴도 모르는 청년이 돈을 빌려달라며 찾아왔다. "저는 육체노동자인데 C 선생님께 소개장을 받아 왔습니다." 청년은 되는 대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가진 돈이 2, 3엔 밖에 없으니 보지 않는 책 두 권을 건네며 이걸 돈으로 바꾸라 말했다. 청년은 책을 받고는 책 뒷부분의 발간 내역을 확인했다. "이 책 비매품이라 돼있네요. 비매품도 돈이 되나요?" 나는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하지만 어찌 됐든 팔릴 거라 대답했다. "그런가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청년은 의심스럽다는 양 고맙다는 말도 없이 돌아갔다.
 S 씨는 오후에도 세장을 했다. 이번에는 점액도 많이 줄었다. "아, 오늘 밤은 좀 적네요." 손씻는 물을 떠온 어머니는 거의 자기가 한 일처럼 말했다. 나도 안심은 하지 않았지만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점액이 적어진 것 말고도 타카시의 얼굴색이나 거동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덕도 있었다. "아마 내일이면 열도 내릴 거예요. 다행히 구토는 하지 않는 모양이니까요." S 씨는 어머니께 대답하고는 만족스레 손을 씻으셨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큰어머니께서 자기 모기장을 접고 계셨다. 그렇게 모기장을 접으시면서 "타카가" 하고 말씀하셨다. 아직 머리가 멍하던 나는 "타카시가 왜요?"하고 적당히 대답했다. "타카시가 많이 안 좋아. 입원해야 한다나 봐." 나는 벌떡 일어났다. 어제 그런 일이 있었던 것만큼 의외였다. "S 씨는 뭐라고 하셨어요?" "선생님 와계셔. 자, 어서 일어나렴." 큰어머니는 감정을 숨기듯이 묘하게 딱딱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나는 곧장 얼굴을 씻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끼어 있어 여전히 날이 좋지 못했다. 욕탕의 물통에는 산나리 두 개가 적당히 던져져 있었다. 어쩐지 그 냄새나 갈색 꽃가루가 질척하게 피부에 들러붙는 것만 같았다.
 타카시는 고작 하룻밤만에 눈이 많이 퀭해져 있었다. 오늘 아침 아내가 안아 올리니 고개를 숙인 채로 하얀 토사물을 뱉어냈다고 했다. 하품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닌 듯했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동시에 꺼림칙함도 느껴졌다. S 씨는 아이의 머리맡에서 묵묵히 시키시마를 태우고 있었다. 그러더니 내 얼굴을 보고 "잠시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하고 말했다. 나는 S 씨를 2층으로 불러 불이 없는 화로를 두고 앉았다. "생명에 지장은 없을 거 같습니다만" S 씨는 그렇게 운을 뗐다. S 씨의 말에 따르면 타카시는 위장이 많이 다쳤다고 한다. 이렇게 된 이상은 2, 3일 동안 단식시킬 수밖에 없는 듯했다. "그럼 입원시키는 게 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타카시의 상태가 S 씨의 말보다 훨씬 위험한 거 아닌가 싶었다. 혹은 이미 입원시켜도 늦은 게 아닌 걸까 싶었다. 하지만 애당초 그런 것에 고집할 때가 아니었다. 나는 바로 S 씨께 입원을 부탁드렸다. "그럼 U 병원으로 하지요. 가까워 편리하니까요." S 씨는 내준 차도 마시지 않고 U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나는 그동안 아내를 부르고, 큰어머니께도 동행을 부탁드렸다.
 그날은 손님과 만날 예정이 있었다. 손님은 아침부터 네 명 가까이 되었다. 나는 손님과 이야기하며 입원 준비를 서두르는 아내나 큰어머니를 의식했다. 그러자 혀끝에서 무언가 모래와 같은 걸 느꼈다. 나는 얼마 전 충치에 박은 시멘트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손가락으로 집어 보니 진짜 이가 깨진 것이었다. 나는 모종의 징조 따위를 느꼈다. 하지만 손님은 담배만 태우면서 시장에 풀렸다는 호이츠의 샤미센 이야기만 했다.
 그때 또 육체노동자를 자칭하는 청년도 다시 찾아왔다. 청년은 현관에 선 채로 어제 받은 두 책이 1엔 20전 밖에 되지 않았으니 4, 5엔 더 줄 수 없느냐는 말을 시작했다. 그뿐 아니라 아무리 거절해도 쉽사리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기어코 침착함을 잃고 "그런 이야기 들어 줄 새 없어. 당장 돌아가"하고 화를 냈다. 청년은 아직 내키지 않는다는 양 "그럼 전철비라도 주세요, 50전이면 돼요"하고 꼴사나운 소리를 했다. 하지만 그 수법도 통하지 않는 걸 보고는 거칠게 현관문을 닫고는 겨우 물러났다. 나는 앞으로 이런 기부는 무조건 거절해야겠지 싶었다.
 네 명의 손님은 다섯 명이 되었다. 다섯 번째 손님은 젊은 프랑스 문학 연구가였다. 나는 이 손님과 엇갈려 작은방을 살폈다. 그러자 준비를 마친 큰어머니는 두텁게 옷을 입은 아이를 안은 채로 툇마루를 이리저리 걷고 있었다. 나는 얼굴색이 나쁜 타카시의 이마에 살며시 입을 대보았다. 이마는 꽤나 뜨거웠다. 숫구멍도 움찔움찔 떨렸다. "차는?" 나는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차요? 차는 벌써 와있죠." 큰어머니는 어째서인지 남이라도 대하듯이 정중한 말투를 쓰셨다. 그때 옷을 갈아입은 아내도 이불과 바구니를 가지고 왔다. "그럼 가볼게요" 아내는 내 앞에서 두 손을 내밀고는 묘하게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단지 타카시의 모자를 새 걸로 바꿔주라고만 했다. 그건 불과 4, 5일 전에 내가 사준 여름 모자였다. "벌써 새로운 걸로 바꿔놨어요" 아내는 그렇게 대답한 후 서랍장 위 거울을 보고는 옷무새를 갖추었다. 나는 둘을 배웅하지 않고 다시 한 번 2층으로 올랐다.
 나는 새로 온 손님과 조르쥬 상드의 이야기를 했다. 그때 정원수의 나뭇잎 사이로 두 차의 천막이 보였다. 천막은 울타리 위로 흔들리며 곧장 눈앞을 지나갔다. "정말이지 19세기 전기의 작가는 발자크도 그렇고 상드도 그렇고 후기 작가보다 뛰어나단 말이죠." 손님은――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손님은 열심히 이렇게 말했다.
 오후에도 손님은 끊이지 않았다. 나는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병원에 갈 시간을 얻었다. 흐렸던 하늘은 어느 틈엔가 비를 뿌리고 있었다. 나는 옷을 갈아입으며 여종에게 아시다[각주:3]를 가져오라 말했다. 그때 오사카의 N 군이 원고를 받으러 찾아왔다. N 군은 진흙투성이가 된 장화를 신고 외투에 빗자국을 빛내고 있었다. 나는 현관에 N 군을 세워둔 채로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아무것도 못 썼다고 이야기했다. N 군은 나를 동정했다. "그럼 이번엔 포기해야죠."하고도 말했다. 나는 어쩐지 N 군에게 동정을 강요한 것만 같았다. 동시에 상태가 심각한 아이를 형편 좋은 구실로 써먹은 것만 같았다.
 N 군이 돌아가자마자 큰어머니도 병원에서 돌아왔다.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타카시는 그 후로도 두 번 가량 젖을 토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 뇌에는 이상이 없는 듯했다. 큰어머니는 그 외에도 간호사가 잘 해준다는 것, 오늘 밤은 병원에 장모님이 머문다는 걸 이야기해주셨다. "타카가 들어가니까 일요 학교 학생인지가 꽃 한 다발을 주는 거야. 꽃이 괜히 꺼림칙해서 말야." 그런 이야기도 하셨다. 나는 아침에 이빨이 빠진 걸 떠올렸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을 나오니 어둡기 짝이 없었다. 그런 가운데 얇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문을 나오는 동시에 히요리게타[각주:4]를 신고 있는 걸 깨달았다. 심지어 왼쪽의 앞부분 매듭이 느슨해져 있었다. 나는 어쩐지 이 매듭이 끊기면 아이의 목숨도 끊길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바꿔서 돌아가기엔 도무지 짜증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아시다를 꺼내지 않은 여종의 멍청함에 화를 내면서 실수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걸었다.
 병원에 도착한 건 아홉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확실히 타카시의 병실 밖에는 산단이나 패랭이꽃이 대여섯 개 가량 세면대의 물에 꽂혀 있었다. 병실 안 전등에는 이불이 걸려 있어 얼굴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그런 병실 안에 아내와 장모님은 타카시를 가운데에 둔 채 옷도 갈아입지 않고 누워 있었다. 타카시는 장모님의 팔을 베개 삼아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듯했다. 아내는 내가 온 걸 알고 홀로 이불 위에 앉아 작은 목소리로 "고생 많았어요"하고 말했다. 장모님도 같은 말을 했다. 그건 예상보다도 가벼운 말투였다. 나는 꽤나 마음이 편해져 그들 옆에 앉았다. 아내는 젖을 먹일 수 없어서 타카시는 울지, 가슴은 부풀어 오르지 이중으로 힘들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공갈젖꼭지로는 안 되나 봐요. 끝내는 혀를 빨더라고요." "지금은 제 젖을 물리고 있어요" 장모님은 웃으면서 시들어진 유두를 꺼내 보였다. "얼마나 열심히 빠는지 이렇게 붉어져 버렸어요." 나도 어느 틈엔가 웃고 있었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괜찮은가 보네요. 저는 이제 글렀나 싶었는데." "타카요? 타카는 괜찮아요. 그냥 배탈 난 거뿐이니까요. 내일이면 열도 내리겠죠." "부처님이 도운 거지?" 아내는 장모님을 놀렸다. 하지만 불교 신자인 장모님은 아내의 말이 들리지 않은 것처럼 열을 낮추기 위함인지 열심히 입을 삐쭉거리며 후후 타카시의 머리를 불어주셨다………

       ×          ×          ×

 타카시는 죽지 않았다. 나는 타카시의 몸 상태가 좋아졌을 때 입원 전후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허투루 그런 걸 써서는 다시 병이 돌아올 듯한 미신에 가까운 생각도 들었다. 때문에 한사코 쓰지를 못했다. 지금 타카시는 정원수에 걸린 해먹 안에서 잠들어 있다. 나는 원고를 부탁받은 걸 기회 삼이 이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다. 독자에겐 외려 민폐일지 모르겠다.

 

 

 

  1. 대장 내의 숙변을 직접 세척하여 제거하고 대장의 연동운동을 활성화하여 장의 유착 및 합병증을 방지하기 위해 한약 탕전액을 직접 팁을 통하여 항문에 주입하는 치료법임. [본문으로]
  2. 흔히 여름철에 2~4세의 어린아이들에게 많이 생기는 급성(急性) 전염성(傳染性) 설사병(泄瀉病)의 통틀어 일컬음. [본문으로]
  3. (비가 와서 길이 질척거릴 때에 신는) 굽 높은 왜나막신 [본문으로]
  4. 굽(이) 낮은 왜나막신((비가 오지 않을 때 신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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