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반응형
SMALL

아쿠타가와 류노스케355

겨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는 무거운 외투에 아스트라한 모자를 쓰고 이치가야의 형무소로 걸어갔다. 며칠 전 우리 사촌 형이 이 형무소로 들어왔다. 나는 사촌 형을 위로하기 위한 친척 총대였던 셈이다. 하지만 내 심정 속에는 형무소를 향한 호기심도 섞여 있었다. 2월에 가까운 길거리는 홍보용 깃발 정도만 남은 채 전체적으로 차갑게 말라 있었다. 나는 언덕을 오르며 나 자신 또한 육체적으로 한없이 지쳐 있음을 느꼈다. 우리 숙부는 작년 11월에 후두암으로 고인이 되셨다. 그리고 나와 먼 친척 소년은 올해 정월에 가출했다. 또――내게는 무엇보다 사촌 형의 수감이 가장 타격적이었다. 나는 사촌 형의 동생과 함께 나하고는 가장 인연이 먼 교섭을 거듭해야만 했다. 그뿐 아니라 그러한 사건에 얽힌 친척간의 감정상 문제는 도쿄서 태어난 사람들.. 2021. 8. 6.
담배와 악마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담배란 본래 일본에 없었던 식물이다. 그럼 언제 전래되어 왔는가. 기록에 따라 연대가 일치하지 않는다. 어떤 건 케이쵸 몇 년이라 되어 있고 또 어떤 건 텐분 몇 년이라 적혀 있다. 하지만 케이쵸 십 년 경에는 이미 곳곳에서 재배가 이뤄졌다고 한다. 그리고 분로쿠 몇 년이 되면 "세상 제일 쓸데없는 건 금연법, 선전령, 천왕의 말, 괜히 겁주는 의사"란 라쿠슈가 돌 정도로 담배가 일반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그럼 이 담배는 누구 손으로 전래되었는가. 역사가라면 누구나 포르투칼이나 스페인이라 대답한다. 하지만 그게 꼭 유일한 답인 건 아니다. 그 외에 또 하나 전설로서의 답이 남아 있다. 그에 따르면 담배란 악마가 어디선가 가져온 것이라 한다. 그리고 그 악마란 게 천주교의 바테렌(아마 성 프란치스코)이.. 2021. 8. 5.
추억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먼지 내 첫 기억은 세는 나이로 네 살 일 적의 일이다. 다만 대단한 기억은 아니다. 단지 히로 씨라는 목공 하나가 사다리인지에 오른 채로 망치로 천장을 두드린다. 천장에서는 먼지가 터져 나온다――그런 광경을 기억할 뿐이다. 이건 에도 시절부터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살던 오래된 집을 부술 때의 일이다. 내가 세는 나이로 네 살일 적의 가을, 새로운 집에 살게 되었다. 그러니 옛날 집을 부순 건 늦어도 그 해 봄이었으리라. 둘 위패 우리집 불단에는 증조모의 위패나 숙부의 위패 앞에 커다란 위패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건 덴포 몇 년인가에 돌아가신 증조부모님의 위패였다. 나는 어릴 적에 그 검게 바란 금박 위패에 공포에 가까운 걸 느꼈다. 내가 나중에 듣기로는 증조부는 오쿠보즈로 일하면서 두 달을 오이란.. 2021. 8. 4.
우리 집의 골동품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호헤이 작 묵란도 한 점, 시바 코칸 작 추과도 한 점, 센가이 작 종귀도 한 점, 아에세키의 류음호도도 한 점, 소쵸, 쵸라, 쇼쿠산, 소바쿠, 오츠지의 자영을 적은 게 각 한 점씩, 코센, 에린, 텐유의 서도가 한 점씩――우리집이 소유하고 있는 건 이게 전부이다. 그 외에 작은 어머니의 시댁의 카노 쇼교쿠의 소남공도가 한 점, 우리 양어머니의 아버지인 카우이의 아버지 류치 작 복록수도 한 점 등이 있는데 이는 우리 가족을 위해 만든 것이기에 드물게 벽 위에 걸어두고 있다. 도기를 페르시아, 그리스, 와코, 신라, 남경고적화, 고려백자 등을 가지고 있는데 후루타 오리베의 각발 이외에는 대단한 건 아니다. 골동품을 사랑하는 세상 사람들이 보면 아마 비웃음을 참기 어려울 테지. 내가 그리스도 이야기를 쓰는.. 2021. 8. 3.
로쿠노미야 공주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로쿠노미야 공주의 아버지는 황녀의 자식이었다. 하지만 시대에 뒤처진 옛날 사람이었기에 관직도 효부타유 이상으로 오르지 않았다. 공주는 그런 부모와 함께 로쿠노미야 옆에 자리한 목조 야카타에 살았다. 로쿠노미야 공주란 건 땅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부모는 공주를 아꼈다. 하지만 역시나 옛날 사람이기에 먼저 누군가를 만나게 하는 일은 없었다. 누군가 다가 오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네. 그런 생각과 함께 기다릴 뿐이었다. 공주도 부모의 가르침을 따라 다소곳한 나날을 보냈다. 슬픔을 모르는 동시에 기쁨 또한 알 수 없는 평생이었다. 하지만 바깥 세상을 알지 못하는 공주는 크게 불만을 느끼지도 않았다. "부모님만 건강하시면 됐지"――공주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래된 연못에 가지를 늘어트린 벚꽃은 매년 빈곤한 .. 2021. 8. 2.
버려진 편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이는 히비야공원 벤치에 떨어져 있던 몇 장인가의 서양 종이에 적힌 편지이다. 나는 이 버려진 편지를 주었을 때 내 주머니에서 떨어진 줄만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꺼내 보니 누군가 젊은 여자에게 건넨 역시나 누군가 젊은 여자의 편지인 듯했다. 내가 이런 편지에 호기심을 품은 건 물론이다. 그뿐 아니라 우연히 눈에 들어온 내용은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나로서는 놓칠 수 없는 한 줄이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멍청이야."! 나는 어떤 비평가가 말한 것처럼 "스스로의 작가적 완성을 망쳐 놓을 정도로 회의적"이다. 특히 나 스스로의 어리석음에는 누구보다도 한 층 더 회의적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멍청이야!" 이 얼마나 매서운 발언이랴. 나는 마음속에 붙은 불을 열심히 억누르며 일단 그녀의 논거를 점검해보.. 2021. 8. 1.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