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온천 여관에 한 달 가량 머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풍경'은 아직 한 장도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탕에 몸을 담그고 코단을 읽고 좁은 거리를 산책하고――그런 생활을 반복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저 스스로도 한심한 생활에 황당할 정도입니다.(작구 주. 이 동안에 벚꽃이 지고 할미새가 지붕으로 오고 사격에 7엔 50전을 쓰고 시골 게이샤를 만나고 야스키부시 연극에 놀라고 고사리를 따러 가고 소방 연습을 보고 지갑을 떨어트리는 등 적으려면 열 줄도 넘게 적을 수 있다.) 그 김에 소설 같은 사실담 하나를 보고할까요. 물론 저는 아마추어니까 소설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단지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치 소설이라도 읽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부디 그런 줄 알고 읽어주세요.
듣자하니 메이지 30년대에 하기노 한노죠란 목공이 이 마을의 산 근처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기노 한노죠란 이름만 들으면 꽤나 잘 생겼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키만 육 척 오 촌 1에 체중이 37관 2이라니 타치야마에게도 지지 않는 거한이었단 소리입니다. 아니 아마 타치야마도 밀릴 정도였을지 모릅니다. 실제로 같은 여관의 손님 중 한 명――"나" 씨란(이건 쿠니키다 돗포가 쓴 국수적 간략법을 따른 것입니다.) 약재 도매상의 젊은 주인은 어린 마음에 대포보다 크다고 생각했다 할 정도입니다. 또 동시에 얼굴은 이나가와와 똑 닮아 있었다고 합니다.
한노죠는 누구한테 물어 보아도 굉장히 사람이 좋았던 데다가 실력도 상당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노죠에 관한 이야기는 하나 같이 조금 우스꽝스러운 걸 보면 어쩌면 여러 거한처럼 온몸에 지혜가 돌지는 못한 걸지 모르겠습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잠깐 사례 하나를 꼽고 갈까요. 제가 묵는 여관 주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언젠가 초겨울 바람이 심한 오후에 이 온천 마을서 집 50척 가량을 태운 지방적 화재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한노죠는 일 리 가량 떨어진 "카" 마을에 자리한 집에 영업을 가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을서 불이 났다는 걸 듣자마자 옷 매무새를 가다듬는 시간도 아깝다는 양 거리로 뛰쳐 나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 농가의 앞에 갈색 털을 가진 말 한 마리가 묶여 있었죠. 그걸 본 한노죠는 나중에 사과하면 된다고 생각한 걸까요. 대뜸 그 말에 올라타 무작정 길을 달렸습니다. 거기까지는 용맹한 모습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말은 달리는가 싶더니 곧 밀밭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러더니 밀밭을 뱅글뱅글 돌지를 않나, 걸음을 돌려 무밭을 달리지를 않나, 귤산을 곧장 달려 내려가질 않나――기어코 끝내는 감자밭 토실 안에 거한 한노죠를 떨쳐내고는 어딘가로 가버렸습니다. 이런 재난을 만났으니 물론 화재 현장에도 늦어지고 맙니다. 그뿐일까요. 상처 투성이가 되어 기듯이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건 누구도 조련할 수 없는 눈 먼 말이었다고 합니다.
이 화재로부터 2, 3년 지난 후일까요. "오" 마을의 "타" 병원에 한노지의 몸을 판 건. 하지만 몸을 판다고 해도 옛날처럼 평생을 바친다 약속한 건 아닙니다. 단지 몇 년 뒤 죽게 되면 시체 해부를 허락하는 대신 오백 엔의 돈을 받은 거지요. 아뇨, 오백 엔을 받은 건 아닙니다. 이백 엔은 사후에 받기로 하고 당장은 계약서와 맞바꾸어 삼백 엔만 받았습니다. 그럼 사후에 받게 될 이백 엔은 대체 누구 손에 넘어가는가. 계약서 문면에 따르면 "유족 또는 본인이 지정한 자"한테 지불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잔금 이백 엔 운운은 공수표로 끝났을 테죠. 그럴만한 게 한노죠는 처자식은 고사하고 친척마저 한 명도 없었으니까요.
당시의 삼백 엔은 거금이었겠죠. 적어도 시골 목공인 한노죠에게는 거금이었던 게 분명합니다. 한노죠는 그 돈을 쥐자마자 손목시계를 사고 정장을 맞추고 "파란페"의 오마츠와 "오" 마을에서 노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보냈습니다. "파란페"라는 건 아연 지붕에 파란 페인트를 칠한 기생집을 말합니다. 당시엔 지금만큼 발전되지 않아 지붕에 수세미외 따위를 걸어두고 있었다니 여자들도 다들 촌뜨기 같았겠죠. 하지만 오마츠는 "파란페" 중에서도 최고의 미인이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미인이었는지는 저는 알지 못합니다. 단지 초밥집과 장어집을 같이 하는 "오" 가게의 주인님이 말하기론 피부가 살짝 까무잡잡하고 머릿털이 곱슬곱슬하며 몸집이 작은 여자였다고 합니다.
저는 이 할머니께 여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중 묘하게 유감이었던 건 항상 귤을 먹지 않으면 편지 하나 쓰지 못하는 귤 중독 손님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이건 또 언젠가 보고할 기회를 가지도록 하지요. 단지 한노죠에게 빠져 있던 오마츠가 고용이를 죽인 이야기만은 덧붙여야겠습니다. 오마츠는 "산타"라는 검은 고양이를 길렀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 "산타"가 "파란페" 여주인의 단벌옷에 실례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파란페" 여주인은 애당초 고양이를 싫어하니 보통 화가 난 게 아닙니다. 끝내는 주인인 오마츠에게도 한없이 따지고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오마츠는 아무 말도 없이 "산타"를 품에 넣은 채로 "가" 강의 "키" 다리로 가 파랗게 맑은 물에 검은 고양이를 던져버렸다고 합니다. 그러고는――여기서부턴 과장일지도 모릅니다만. 어찌 됐든 할머니의 이야기에 따르면 일을 만든 여주인은 물론이고 "파란페"의 모든 여자 얼굴에 상처를 만들어줬다고 합니다.
한노죠의 호화로운 생활도 고작해야 한 달이나 보름 밖에 가지 못 했다고 합니다. 정장을 입고 돌아다녀도 구두가 만들어질 즘에는 그 값도 치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아래의 이야기가 진짜인지 아닌지 저는 보증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머리를 자르러 다니는 "후" 가게의 주인이 말하는 바로는 구두 가게는 한노죠 앞에 신발을 두고 "그럼 형씨, 원가만 주고 가져가십쇼. 이게 누구라도 신을 수 있는 구두면 이런 말도 안 해요. 근데 형씨의 신발은 인왕님의 짚신이나 다를 게 없잖아요"하고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고 합니다. 물론 한노죠는 원가로도 살 수 없었던 거겠죠. 이 마을 사람들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한노죠가 구두를 신은 건 한 번도 보지 못 했다니까요.
하지만 한노죠는 구두만 못 산 게 아닙니다. 그로부터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모처럼 산 손목시계나 정장마저 팔게 되었습니다. 그럼 그 돈은 어떻게 했느냐. 앞뒤 구분도 없이 오마츠에게 들이 부운 겁니다. 하지만 오마츠도 한노죠에게만 쓰게 한 건 아닙니다. 역시 "오"의 여주인이 말하기를 본래 이 마을의 게이샤는 매년 에비스코마다 손님을 들이지 않고 자기들끼리 샤미센을 치며 춤추고 놀곤 했는데 그때 제 몫을 계산하는 것마저 오마츠에게는 힘든 일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노죠도 오마츠에게 어지간히 빠져 있었던 거겠죠. 그럴만 한 게 오마츠는 화가 나면 한노죠의 멱살을 잡아끌거나 맥주병으로 때리기도 했다니까요. 그럼에도 한노죠는 어느 꼴을 당해도 되려 기분을 맞춰줬습니다. 물론 전후로 단 한 번 오마츠가 지내는 별장지기의 아들과 "오" 마을에서 놀았단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다른 사람처럼 화를 냈다고 합니다. 이 또한 어느 정도 과장된 일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할머니에게 들은 걸 그대로 적자면 한노죠는(작가 주. 전형적인 시골적 질투를 이 사이에 몇 줄이나 적어야 한다)고 합니다.
앞에 쓴 "나" 씨가 아는 건 마침 이쯤의 한노죠일 테죠. 당시엔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나" 씨는 한노죠와 같이 낚시를 가거나 "미" 언덕에 오르고는 했습니다. 물론 한노죠가 오마츠를 찾거나 돈이 궁했단 건 "나" 씨가 알 턱도 없었을 테죠. "나" 씨의 이야기는 본론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단지 조금 재밌게도 "나" 씨는 도쿄로 돌아간 후 하기노 한노죠가 보낸 소포 하나를 받았습니다. 높이는 반지 한 뭉치 정도. 하지만 척 보기에도 가벼워 보였습니다. 뭔가 싶어 들어보니 이십여 개 가량의 "아사히" 빈곽에 물을 끼얹은 듯한 풀이 담겨 있고 그 목덜미에 붉은 반딧불이가 몇 마리나 매달려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데다 그 "아사히" 빈곽에는 공기를 통하게 할 생각인지 한 면에 송곳 구멍이 잔뜩 뚫려 있었다니 역시 한노죠 답다 싶습니다.
"나" 씨는 다음해 여름에도 한노죠와 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뤄지지는 못 했습니다. 그건 가을이 초입, 하기노 한노죠는 "푸른페" 오마츠에게 한 통의 유서를 남긴 채로 불쑥 자살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자살했는가――이 설명은 제 보고보다도 오마츠 앞으로 보낸 유서에게 양보하도록 하지요. 물론 제가 옮긴 건 실물 유서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묵는 여관 주인이 잘라 붙여 둔 당시 신문에 기재된 것이니 얼추 맞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돈이 없어 당신과 부부도 되지 못하고 배 안의 아이도 책임질 수 없습니다. 하여 이 세상이 싫어져 슬슬 죽으려 합니다. 제 시체는 "타" 병원으로 보내고(그쪽에서 받으러 와도 됩니다.) 이 계약서와 바꾸어 이백 엔을 받아 그 돈으로 "아" 나리[제가 묵는 여관 주인입니다]의 돈을 쓴 만큼 채우도록[갚는단 걸까요?] 부탁합니다. "아" 나리에게는 정말로 면목이 없습니다. 남은 돈은 전부 당신이 가지십시오. 홀로 세상을 등지는 한노죠.[이건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남기는 시겠지요.] 오마츠 님께."
한노죠의 자살을 의아해한 건 "나" 씨뿐만이 아닙니다. 이 마을 사람들도 그런 일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합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그 전에 징조가 있었다면 이런 이야기 뿐이겠죠. 듣자하니 가을이 오기 전의 어느 저녁 "후" 가게의 주인은 한노죠와 가게 앞의 평상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지나간 게 "파란페"의 게이샤였습니다. 그 여자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더니 지금 "후" 가게의 지붕 위로 불덩이가 날아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한노죠는 굉장히 진지하게 "그건 지금 내 입에서 나온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자살하겠단 생각은 그때부터 한노죠의 배 깊숙한 곳에 있었던 걸지 모릅니다. 물론 "파란페"의 게이샤는 웃으며 지나갔다고 합니다. "후" 가게의 주인도――아니, "후" 가게의 주인은 웃으면서도 "부정 타게"하고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도 지나지 않아 한노죠가 불쑥 자살한 것입니다. 또 그 자살도 목을 달거나 목덜미를 찌른 게 아니었습니다. "가" 강 안에 판자를 둘러 만든 "독고탕"이란 공통 욕탕이 있었는데 그 온천 안에 하룻밤을 꼬박 몸을 담궈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은 것입니다. 역시나 "후" 가게의 주인 이야기에 따르면 옆집 담배 가게의 여주인 한 명이 그날 밤 열두 시 가량에 공통 욕탕에 들어갔습니다. 이 담배가게 안주인은 핏줄인지가 서서 밤에 목욕을 했던 것입니다. 한노죠는 그때도 온천 안에 커다란 몸을 담그고 있었습니다. 낮부터 있었던 사람이 그러고 있으니 평소 대낮에도 허리에 천하나만 두른 채로 강 안의 돌을 따라 욕탕으로 기어가는 여장부라도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한노죠는 여주인이 무어라 말을 걸어도 도통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단지 수증기가 올라오는 어두컴컴한 탕 안에서 새빨개진 얼굴만 내밀고 있었죠. 그마저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지붕 뒤의 전등을 바라보고 있으니 얼마나 꺼림칙했을까요. 안주인은 그 탓에 몸도 오래 담그지 못하고 재빨리 욕탕을 뒤로했다고 합니다.
공동 욕탕 안에는 "독고탕" 이름의 기원이 된 커다란 돌 독고가 있습니다. 한노죠는 이 독고 앞에 옷을 잘 접어두고 유서는 옆에 놓은 신발코에 꽂아두었다고 합니다. 그럴 만도 한 게 시체가 전라로 온천 안에 떠있으니 그 유서 없이는 자살인지 아닌지도 구분이 가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지내는 여관 주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한노죠가 이렇게 죽은 건 "타" 병원에 몸을 팔기로 한 이상 해부용 몸에 상처를 내면 미안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랍니다. 물론 이게 마을의 정설이란 건 아닙니다. 입이 험한 "후" 가게의 주인은 "미안하기는 무슨. 몸에 상처를 내면 이백 엔을 못 받을 거라 생각한 거죠"하고 다른 설을 주장했다고 합니다.
한노죠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제 오후, 제가 머무는 여관 주인이나 "나" 씨와 갑갑한 거리를 산책하는 김에 한노죠 이야기를 했기에 그것도 덧붙여 보려 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에 흥미를 가진 건 저보다도 되려 "나" 씨입니다. "나" 씨는 카메라를 든 채로 돋보가 인경을 쓴 여관 주인에게 열심히 이런 걸 물었습니다.
"그럼 그 오마츠란 여자는 어떻게 된 겁니까?"
"오마츠요? 오마츠는 한노죠의 아이를 낳았으니까……"
"그게 정말 한노죠의 아이였을까요?"
"한노죠의 아이 맞을 겁니다. 똑 닮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그럼 그 오마츠란 여자는?"
"오마츠는 '이' 주점에 시집갔지요."
열심히 듣던 "나" 씨는 조금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한노죠의 아이는 어쩌고요?"
"데리고 갔다네요. 그 애가 또 장티푸스를 앓아서……"
"죽었나요?"
"아뇨, 아이는 살았는데 간병하던 오마츠가 앓았다네요. 벌써 죽은지 십 년은 됐는데……"
"역시 장티푸스였나요?"
"장티푸스는 아니었죠. 의사는 뭐라뭐라 했는데 뭐 간병하다 지친 거겠죠."
그때 마침 우리는 우편국 앞을 지났습니다. 작은 일본식 우편국 앞에는 어린 버들이 가지를 뻗고 있습니다. 그 가지에 반쯤 가로막힌 먼지투성이 유리 창문 안에는 코쿠라후쿠를 입은 땅딸막한 청년 하나가 사무를 보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입니다. 한노죠의 자식이란 게."
"나" 씨도 저도 걸음을 멈추고 창문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청년이 한쪽 턱을 괴거나 펜을 움직이는 모습이 우리는 묘하게 기뻤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도무지 감탄이란 걸 하게 두지 않습니다. 두세 걸음 앞서 걷던 여관 주인은 안경 너머로 우리를 돌아보더니 어느 틈엔가 얕은 웃음을 짓고 있었습니다.
"저놈도 못 말립니다. '파란페' 단골이니까요."
우리는 그렇게 아무 말없이 "키" 다리까지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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