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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355

십 엔 지폐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어느 흐린 초여름 아침, 호리카와 야스키치는 맥없이 플랫폼의 돌계단을 올랐다. 물론 대단한 일은 아니다. 단지 바지 주머니 밑바닥에 60몇 전 가량 밖에 없는 걸 불쾌하게 여기고 있을 뿐이다. 당시의 호리카와 야스키치는 항상 돈이 궁했다. 영어를 가르치고 받는 보수는 고작해야 한 달에 60엔이었다. 틈틈이 쓰는 소설은 '츄오코론'에 실렸을 때마저 90전 이상이었던 적이 없다. 물론 한 달에 5엔짜리 방값과 한 끼 50전의 식료는 그것만으로도 문제가 없었다. 그뿐 아니라 그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자신의 내면을 사랑한 건――적어도 그 경제적 의미를 중시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책은 읽어야 한다. 이집트 담배도 피워야 한다. 연주회 의자에도 앉아야 한다. 친구들 얼굴도 봐야 한다. 친구 이외의 여자 얼굴도.. 2021. 9. 11.
니디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슈라바스티는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하지만 면적은 많은 인구치고 그리 넓지 않다. 따라서 변소도 그리 많지 않았다. 때문에 성안 사람들이 일부러 성밖으로 나가 대소변을 보게 되어 있었다. 단지 브라만이나 크샤트리아만은 변기 안에 볼일을 봐서 딱히 다리가 고생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 변기 안 분뇨도 어떻게 처리를 해야만 한다. 그런 걸 처리하는 게 제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벌써 머리부터 노랗게 변색된 니디가 그런 제분인 중 한 명이었다. 슈라바스타 중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또 동시에 가장 심신의 깔끔함하고 거리가 먼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오후, 니디는 여느 때처럼 사람들의 분뇨를 커다란 항아리에 모으고 그 항아리를 짊어진 채로 여러 가게가 이어진 좁은 길을 걸었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 2021. 9. 10.
홋쿠 사견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열일곱 음 홋쿠는 열일곱 음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열일곱 음 이외의 걸 홋쿠라 부르는 건――혹은 신경향의 구라 부르는 건 단시라 불러 마땅해야 하리라.(물론 그런 단시 작가 카와히가시 헤키도, 나카즈카 잇페키로, 오기와라 세이센스이 같은 분의 단시 작품에도 걸작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만약 단순히 내용에 따라 그런 단시를 홋쿠라 부른다면 홋쿠는 다른 문예적 형식과――이를 테면 한시하고도 차이가 없으리라. 초월파중지(물론 일본풍으로 읽은 것이다) 하손 밝게 뜬 달아 잔잔한 파도 안에서 올라오느냐 시키 단순히 내용만 따르면 시키의 구는 즉 하손의 시이다. 같은 차를 마시더라도 찻잔은 찻종이 될 수 없다. 만약 찻종을 찻종으로 만드는 게 찻종이라는 형식이라면 또 찻잔을 찻잔으로 만드는 게 찻잔이란 .. 2021. 9. 9.
어느 저녁 이야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여간에 요즘에는 방심을 할 수가 없어. 와다마저 게이샤를 아는 지경이니 말야." 후지이 변호사는 노주가 담긴 잔을 비우며 거창하게 일동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원탁 테이블을 두른 건 같은 학교 기숙사에 있던 우리 여섯 명의 중년들이었다. 장소는 히노비야의 토토테이 2층, 시각은 6월의 어느 비오는 밤――물론 후지이가 이렇게 말을 꺼낸 건 슬슬 우리 얼굴에 취기가 드리울 즘이었다. "내가 그 광경을 볼 때는 진짜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 싶었다니까――" 후지이는 재밌다는 양 말을 이었다. "의과의 와다란 녀석은 유도 선수였어. 회정벌 대장이었고 리빙스턴 숭배자고 추운 날에도 얇은 옷을 고집하고――한 마디로 호걸이었잖아? 그런데 그런 녀석이 게이샤를 알고 있는 거야. 심지어 야나기바시의 코엔이라는――" "너.. 2021. 9. 8.
리처드 버튼 역 '천일야화'에 관해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리처드 버튼 (Richard Burton)이 번역한 '천일야화'――아라비안 나이트는 오늘날까지 나온 영역본 중에 가장 완전함에 가깝다고 본다. 물론 버튼 이전에 나온 번역본도 많아서 하나하나 꼽는 게 어려울 정도지만 일단 '천일야화'를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역본은 앙투안 갈랑Antoine Galland 교수의 불역본이다. 이는 물론 완역이 아니다. 단지 애독하기에 충분한 발췌본 정도이다. 갈랑 이후로도 포스터(Foster) 나 버시(Bussey)처럼 여러 역본이 존재한다. 하지만 하나같이 번역어나 문체에서 프랑스 분위기를 둘러 청소년용 서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갈랑 교수 이후로 한 세기 후――즉 1800년 이후의 주된 역자를 꼽아보자면 대강 아래와 같다. 1. Dr. Jonathan Scot.. 2021. 9. 7.
버려진 아이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아사쿠사 나가스미쵸에 신교지란 절이 있는데――아뇨, 큰 절은 아니랍니다. 단지 니치로 스님의 목상이 자리한 상당히 유서 깊은 절이라네요. 그 절 문 앞에 메이지 22년 가을 남자아이 하나가 버려졌습니다. 태어난 해는 물론이요 이름도 적혀 있지 않았죠――오래된 키하치죠를 두르고 줄이 끊어진 여자의 조리를 베개 삼아 누운 채 버려져 있었습니다." "당시 신교지 주지는 타무라 닛소란 노인이었지요. 마침 아침 근무를 하고 있자니 역시나 나이 지긋한 문지기가 아이가 버려져 있었다고 전달합니다. 그러자 불전을 보던 스님은 문지기도 돌아보지 않고 "그래? 그럼 안아서 데리고 오거라"하고 별 일 아니라는 양 답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문지기가 머뭇머뭇 아이를 안고 오자 곧장 직접 받아 들어서는 "아이고 귀여운 아이로구.. 2021.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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