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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리처드 버튼 역 '천일야화'에 관해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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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리처드 버튼 (Richard Burton)이 번역한 '천일야화'――아라비안 나이트는 오늘날까지 나온 영역본 중에 가장 완전함에 가깝다고 본다. 물론 버튼 이전에 나온 번역본도 많아서 하나하나 꼽는 게 어려울 정도지만 일단 '천일야화'를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역본은 앙투안 갈랑Antoine Galland 교수의 불역본이다. 이는 물론 완역이 아니다. 단지 애독하기에 충분한 발췌본 정도이다. 갈랑 이후로도 포스터(Foster) 나 버시(Bussey)처럼 여러 역본이 존재한다. 하지만 하나같이 번역어나 문체에서 프랑스 분위기를 둘러 청소년용 서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갈랑 교수 이후로 한 세기 후――즉 1800년 이후의 주된 역자를 꼽아보자면 대강 아래와 같다.

1. Dr. Jonathan Scott. (1800)
2. Edward Wortley. (1811)
3. Henry Torrens. (1838)
4. Edward William Lane. (1839)
5. John Pane. (1885) 

 토렌스 역본은 종래의 역본처럼 영어나 프랑스의 분위기는 두르지 않았으니 그런 점에선 한 걸음 나아갔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자가 원어에 충분히 통달하지 않았으며 특히 이집트나 시리아 방언을 전혀 알지 못한 탓에 유감스럽게도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하물며 십 분지 일에서 끊기는 것도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다.
 레인 역본――일본에서 가장 넓게 유포되는 게 레인 역본이다. 특히 본(Bohn) 총서의 두 권은 혼고나 칸다의 고서점에서 자주 찾아 볼 수 있다――은 바탕으로 한 블락(Bulak)이 본래 간략화된 게 많으며 이백 개의 이야기 중 절반인 백 개만을 발췌해 번역한 것이다. 그 때문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려 번역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럴싸하게 만들어져 대중 취향에는 걸맞아도 만족스럽지 못하기 쩍이 없다. 레인은 한 밤 한 밤을 장별로 나눈 데다가 어떤 장은 각주 안에 넣거나 시를 산문으로 번역하거나 아예 빼버리는 경우도 있으며 어린애나 할 법한 오역도 굉장히 많다.
 다음으로 페인――프랑수아 비용(François Vilon)의 시를 영역한――의 "천일야화" 번역은 종래의 물건에 비하면 굉장히 우수하다. 이야기 숫자도 갈랑 번역의 네 배에 되며 다른 번역의 세 배는 되는데 물론 손이 닿지 않은 부분이 없지는 않다. 어찌 되었든 번역은 좋아도 개인 출판으로 오백 부 발행한 게 전부라서 벌써 희소서 안에 들어가 버렸다. 단지 특필해야 할 건 권두에 버튼에게 바치는 헌사가 붙어 있다.

 버튼 역본도 천 부의 한정 출판으로 간단히 구하기 어렵다. 출판 당시엔 10 파운드 가량한 게 오늘날에는 30 파운드 내외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건 '천일야화' 애호자들에게는 약간 안타까운 일이다. 단지 그 버튼 번역의 표절판(Pirate Edition)이 미국에서 몇 개인가 나왔다는데 내용물은 어떠할까.
 버튼 역본의 표제는 아래와 같다.

A PLAIN AND LITERAL TRANSLATION OF THE ARABIAN NIGHTS ENTERTAINMENTS, NOW ENTITLED THE BOOK OF THE THOUSAND NIGHTS AND A NIGHT WITH INTRODUCTION EXPLANATORY NOTES ON THE MANNERS AND CUSTOMS OF MOSLEM MEN AND A TERMINAL ESSAY UPON THE HISTORY OF THE NIGHTS BY RICHARD F. BURTON. 

 권수는 도합 18권으로 출판사는 버튼 클럽, 1885년부터 1888년 동안 간행되었다.
 역자 버튼 및 버튼 역본의 이야기는 다음에 해보도록 하자.

     둘

 역자 버튼은 동양각국을 오간 영국 육군 대위이다. 책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자면 버튼 역본의 성립은 제1권 "역자 첫 마디"와 제11권 "천일야화 전기 및 그 비평가 비평"에 수록되어 있다.
 먼저 버튼이 이런 번역을 하자고 떠올리게 된 건 아덴 재류의 의사 존 스타인휘저와 함게 메디아, 메카를 여행할 때의 일이었다. 버튼이 첫 권에서 책을 존에게 바친다고 되어 있는 걸 보아도 두 사람이 여행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알 수 있다.
 그 여행은 1852년 겨울이었으며 그 여행 도중에 버튼은 존과 아라비아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는 사이 자연스레 화제가 '천일야화'로 옮겨 갔고 기어코 두 사람의 입에서 '천일야화'가 아이들 사이에 퍼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짜 가치는 아라비아 어학자에게 밖에 인정받지 못한다는 감상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이야기가 한 걸음 나아가 어떻게든 완벽한 번역을 내고 싶다는 걸로 마무리되었고 존이 산문을, 버튼이 운문을 번역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로부터 두 사람은 편지를 나누며 서로를 격려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존이 스위스의 베른에서 중풍을 앓게 되었다. 존의 원고는 흩어져 버튼 손에 들어온 건 아주 조금뿐이었다.
 그 후 버튼은 서부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에 머물면서 홀로 원고를 이어갔다. 그 사이에 그의 심중은 :다른 사람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나 나 스스로는 그 무엇보다 강한 위안이자 만족의 샘이었다"는 자신의 말로 알 수 있으리라.
 그렇게 원고를 마치고 1879년 봄부터 원고를 글로 옮기기 시작했는데 1882년 겨울 어떤 잡지에 존 페인의 역본이 간행된다는 예고가 실렸다. 버튼이 이를 안 건 마침 서부 아프리카 황금 해안에 원정을 가려던 차였다. 그곳에서 페인에게 "나도 당신과 같은 사업을 꾀했는데 귀군이 이미 그걸 완성했다면 예의상 먼저 내는 공을 받아가도 되겠느냐 허락을 운운"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는 사이 페인의 역본이 나왔다. 때문에 버튼은 일시 중지했다.
 버튼은 또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동부 아프리카의 제일라에 두 달 머물 때도, 소말리아 횡단 때에도 그 '천일야화'가 얼마나 자신을 위로해줬는지 알 수 없다'고.
 그러니 이 버튼 역본이 유럽의 천지서 멀리 떨어져 끈적한 연기와 빗속에서 만들어진 셈이니 타히티를 찾은 고갱의 그림과 좋은 대조를 이루리라.
 1884년에 버튼은 트리에스테에 머물며 첫 두 권을 탈고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게 발행 부수이다. 어떤 학자 왈, "150부 내지 200부면 된다"라고 했다. 그 학자란 본문을 본문을 160만부나 찍어 6 실링의 염가판부터 50 기니의 고가판까지 판 남자이다. 또 어떤 출판업자는 "500부가 좋다"고 말했다. 단지 아마추어 친구는 "2천이나 3천이 좋지"하고 권했다. 버튼도 고민 끝에 천 부로 정했다.
 버튼은 그 후로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가리지 않고 살만한 사람의 표를 나누어 광고를 뿌렸다. 요강은 다음과 같다. 전10권, 1권 1기니, 각권 모두 대금은 책과 교환하는 것이며 염가판은 발행하지 않는다. 천 부 한 정 발행, 18개월 이내 완결 예정. 그런 규정이었다. 광고 배포수는 2만 4천으로 그 비용으로 26만 파운드를 썼다. 대답이 온 건 8백 통이었다.
 다음 해 버튼이 영국이 돌아와 일을 진행하자 8백이었던 예약이 2천까지 늘었다. 개중에는 "일단 제1권을 견본으로 보내주시고 마음에 들면 계속해서 구매하겠다"는 사람마저 있었다.
 버튼이 그에 대답하길 "먼저 10 기니를 보내라. 그리고 1권이든 10권이든 말만 해라"란다. 또 중개업자 중에는 저렴하게 깎으려고 수없이 꼬드기곤 했다. 또 책을 받고는 돈을 내지 않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 
 버튼은 처음부터 중개업자를 안중에도 두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스스로 간행하려 했다. 이름이 알려진 문학자 내지 문학 단체의 협찬을 바랐지만 누구 하나 받아주지 않았다. "인쇄 타임즈" 따위는 버튼의 계획을 비웃었다. "버튼 씨의 이런 사업에 관여했을 터인 많은 사람들이 이름이 책에는 실려있지 않다. 인쇄 업자의 실수라면 벌금을 물려야 한다. 또 '천일야화'의 완역은 풍속상 용납되기 어렵다. 설령 개인 출판이라도 공중도덕을 해치는 우려가 있는 이상 버튼 씨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게 지당하다"는 뜻이었다. 버튼은 이러한 도전에 응해 "출판자는 저자 자신이다. 글을 출판업자에게 넘기는 게 불쾌하기 짝이 없어 저자 스스로 동양어학자 및 고고학자를 위해 출판하는 것이다"하고 발표했다.


     셋

 버튼의 "천일야화" 17권 중 7권은 보충이다. 그 10권의 끝자락에 Terminal Essay가 붙어 있어 그 이야기의 기원, 아라비아의 풍속, 유럽의 역본 등이 자세히 검토되어 있다. 특히 아라비아 및 동양 국가의 풍속에 관한 논문은 학술상 가치 높은 연구 자료인 동시에 전문가가 아닌 자라도 굉장히 흥미롭게 볼 수 있다.
 버튼은 본문을 한 화 한 화로 나누지 않고 원문처럼 한 밤 한 밤으로 나누었다. 또 운문은 산문으로 바꾸지 않고 운문으로 번역했다. 이런 걸 보아도 버튼이 얼마나 원문에 충실했는지 알 수 있으리라.
 예를 들어 아라비아 사람의 형용을 그대로 번역해 둔 게 굉장히 재밌다. 남녀의 포옹을 "단추가 단추 구멍에 들어가듯이 하나가 되었다"고 해둔 게 그중 하나이다. 또 바그다드 궁전 정원을 묘사한 문장은 미묘하게 자세해져 광경을 직접 보는 것만 같다. 제36밤(제2권) 이야기에 있는 Harunal-Rashid 정원 묘사가 그 좋은 예이다.
 또 버튼은 기독교적 도덕에 깐깐하지 않아서 동양적 향락주의를 대담솔직히 인정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 번역본도 종래의 영역 '천일야화'하고는 굉장히 결이 다르다. 이를테면 제215밤(제3권)에 Budur 여왕이 노래하는 시가 그렇다.

The penis smooth and round was made with anus best to match it,
Had it been made for cunnus' sake it had been formed like hatchet! 

 하지만 엉큼한 일도 원문이 순수하고 당당하게 말한 걸 그대로 번역하고 있으니 근대 소설 속에 드러나는 Love scene보다도 음란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또 각주가 굉장히 세세하다. 심지어 그 각주가 일반적인 게 아니라 바톤만의 것이다. 단순히 말뿐만 아니라 사실상의 연구에도 미치고 있다. 이를 테면 Shahriyar 왕의 왕비가 검은 남자를 정부로 삼는 내용의 각주를 보면 아라비아 여자가 나서서 흑인 남자를 맞이하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아라비아인의 penis는 유럽인보다도 짧다. 때문에 흑인의 유럽인보다 길고 팽창률이 적고 duration이 강하다. 때문에 아라비아 여자가 흑인 정부를 들이는 것이다. 각주에는 실제로 버튼이 측정한 흑인 penis 는 평균 몇 인치다 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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