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연극사
나는 책을 좋아하니 책 이야기를 조금 하려고 한다. 내가 가진 서양식으로 제본된 책 중에 묘한 연극사가 한 권 있다. 이 책은 메이지 17년 1월 16일에 출판되었다. 저자는 도쿄후토족, 경시청 경찰속 나가이 테츠란 사람이다. 첫 페이지에 찍힌 소장인을 보니 과거에는 이시카와 잇코의 소장서였나 보다. 서문에는 "연극이란 국가의 살아 있는 역사이자 문맹이 학문을 익히는 길이다. 때문에 유럽 선진국에서는 높은 귀족 모두가 이를 존중한다. 그러니 연극이 융성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라희羅希의 유명한 학사들이 이를 좋게 개량했기 때문이다. 헌데 우리나라의 학자는 예로부터 이원梨園을 미워하고 돌아보지 않아 이를 다룬 책이 아직까지 많지 않다. 즉 문화의 일부분이 결여되어 있다 해야 하리라. (중략) 이렇게 느끼기에 시간이 나는 차에 미국과 프랑스 등의 글을 읽고 그 요령을 번역해 편찬한 걸 이 책으로 남긴다. 따라서 이를 각국 연극사라 이름짓는다"라 되어 있다. 나섰다는 라희羅希란 건 로마羅馬나 그리스希臘 극시인을 말하는 것일 테니 그것만으로도 미소를 금할 수 없다. 본문에 들어간 남천 동판화 중에는 "영국 배우 지오프라이가 굴에 잡힌 그림"이란 게 있다. 그 그림이 아무리 보아도 카게쿄굴에 잡힌 카게쿄로만 보인다. 지오프라이란 물론 Geoffrey를 말하는 거겠지. 영국의 고대 연극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또한 웃음을 참지 못하리라. 또 본문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 "1576년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이르러 처음으로 특별 연극 부흥을 위해 블랙프라이어스 사원의 불필요한 영지에서 극장을 세웠다. 이게 영국 정통 극장의 시조이다. 레스터 백작 아래의 제임스 버비지가 이를 맡아 관리했다. 배우 중에는 윌리엄 셰익스피어란 사람이 있다. 당시엔 열두 살 아동이었는데 스트랫퍼드 학교에서 라틴 밑 그리스의 초학을 졸업했었다"고 되어 있다. 배우 중에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니! 삼십몇 년 전 일본은 이 한 마디로 고스란히 떠올려 볼 수 있다. 이 책은 보기 드문 책도 무엇도 아닐 테지. 하지만 나로선 버리기 어려운 그리움을 느끼고 있다. 하나 덧붙이자면 나는 이전에 메이지 시대의 소설을 50종가량 모아 보았다. 소설 그 자체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당시의 활자본은 요즘 책보다 오식이 적다. 그건 세상 자체가 느긋했던 덕도 있겠지만 나는 역시 그 안에서 독실한 인심이 보이는 것만 같다. 오식을 말하는 김에 또 떠오른 건데 언젠가 석인본 왕지안의 궁서를 읽고 있었더니 "어지수색춘래호 처처분류백옥거 밀주군왕지입월 환인상반세군거"라는 시 중에서 입월이 입용으로 인쇄되어 있었다. 입월은 여자의 월경을 말한다.(시 속에서 월경을 다룬 건 이 궁사 뿐일지 모르겠다) 입용으론 물론 의미를 알 수 없다. 나는 이 실수를 보고 석인본이란 걸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어째 이야기가 옆으로 새어버렸는데 나가이 테츠가 쓴 연극사 이전에 이런 저술이 있었는지 어떤지는 아직 의문이다. 아직이라 한들 내 성격상 찾아 볼 일도 없다. 단지 누군가 이런 걸 잘 아는 사람이 가르침을 주지 않을까 싶어 겸사겸사 적어본 것이다.
천로역정
나는 또 한자로 번역된 Pilgrim's Progress을 지니고 있다. 이 또한 희귀한 책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게는 그리운 책 중 하나이다. Pilgrim's Progress는 일본에서도 번역되어 천로역정이라 불리고 있는데 이는 이 책에서 배운 것이리라. 본문 번역도 정확하다. 곳곳에 적힌 시도 운문 번역인 듯하다. "로방생명수청류 천로행인희장류 백과기화공열락 오제행득비포유"――대강 이런 식이라 보면 된다. 재밌는 건 동판화 삽화에 하나같이 중국인이 그려져 있단 점이다. Beautiful 궁전에 이르렀을 대에도 역시 중국풍 궁전 앞에 중국인 Christian이 걷고 있다. 이 책은 청나라 동치 8년(1869년) 소송 상하이 화초서원이 출판한 것이다. 앞에 "함풍 3년에 중국 땅에 예수 선교사가 와서 처음으로 번역하다"고 되어 있으니 이 전에도 번역본이 나온 듯하다. 번역자의 이름은 불명이다. 이번 여름에 베이징 후통에 갔을 때 어떤 기생의 책상 위에 한자로 번역된 성경이 있는 걸 보았다. 천로역정 독자 중에도 그런 여인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Byron의 시
나는 John Murray가 내놓은 1821년판 Byron의 시집을 가지고 있다. 내용은 Sardanapalus, The Two Foscari, Cain 세 종류뿐이다. Cain은 1821년이란 머리말이 있으니까 어쩌면 다른 두 비극과 함께 이 시집이 첫 게재일지 모르겠다. 이 또한 알아보자 생각하면서도 이제껏 미뤄두고 있다. Byron은 Sardanapalus를 괴테에게 Cain을 스콧에게 헌상하고 있다. 어쩌면 그들이 읽은 것도 내가 가진 시집처럼 인쇄 질이 좋지 않은 책일지 모른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따금 변덕 삼아 노랗게 바란 페이지를 뒤적이고는 한다. 내게 이 책을 준 건 해군 장교 토시마 사다 씨이다. 나는 해군 학교에 있을 적에 난해한 영어를 배우거나 때로는 돈을 빌려주거나 빌리는 등 토시마 씨께 여러 신세를 졌다. 토시마 씨는 연어를 정말 좋아하셨다. 요즘에는 매일 반주상에 생연어, 시오즈케, 카스즈케 따위가 번갈아 오르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이 책을 펼치면 그런 생각을 하고는 한다. 하지만 Byron은 잘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따금 떠올리면 5, 6년 전에 마젯파나 동 주앙을 읽다 만 채로 미처 읽지 못한 것뿐이다. 아무래도 나는 Byron하고는 인연이 없는 중생에 지나지 않는 모양이다.
영초影草
이는 꿈의 이야기다. 나는 꿈에서 사촌 누나의 아이와 미츠코시의 2층을 걷고 있었다. 그러자 서적이란 팻말을 건 매대에 Quarto판 책이 한 권 나와 있었다. 누구 책인가 했더니 모리 선생님의 "영초"였다. 매대 앞에 서서 적당히 두세 장 훑어보니 그리스 이야기인 듯한 소설이 나왔다. 문장은 솔직한 일본어였다. "이건 코가네이 키미코 여사의 번역일지 모르겠군. 언젠가 고금기관을 읽고 있었더니 무라타 하루미의 츠쿠네부시 이야기와 똑닮은 이야기가 나왔지. 이 번역의 원문은 뭐려나"――꿈속의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소설을 끝까지 읽었더니 "와카바세이 역"이라 적혀 있었다. 좀 더 읽다 보니 이번에는 사진판이 잔뜩 나왔다. 모두 모리 선생님의 글과 그림이었다. 연꽃 그림이나 후지산을 보며 서쪽으로 걷는 그림 등이 있었다. 사진판 다음은 서란집이었다. "아이가 죽은 후로 소설을 쓸 수 없습니다. 용서해주셨으면 합니다"하는 글이었다. 받는 이는 하타 코이치 씨였다. 나가이 후우 씨한테 보낸 편지도 잔뜩 있었다. 어떻게 된 건지 전부 카후도 선생님이란 이름으로 적혀 있었다. "카후도는 웃긴걸. 모리 선생님이나 되시는 분이"――꿈속의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꿈에서 깼다. 나는 그날 고산칸 시집으로 모리 선생님의 글자를 보고 있었다. 또 하타 코이치 씨에게 담배 한 곽을 받았다. 그런 사실이 꿈속에서 뒤엉킨 것처럼 보였다. Max Beerbohm의 글 중에 자신이 가장 모으고 싶은 책은 책 속 인물이 쓴 가공의 책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신문국" 초판보다도 이 Quarto판 "영초"를 바랐다. 이 책이야말로 구할 수만 있다면 희소본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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