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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일본 여자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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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여기에 재밌는 책이 있다. 책 이름은 "재팬"이고 발행된 건 1852년이다. 저자는 찰레스 맥퍼렌이라 해서 일본에 온 적은 없으나 굉장히 일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적어도 관심을 가졌다고 부르기에는 충분한 사람이다. "재팬"은 이 사람이 라틴,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영국 등의 문헌에서 일본에 관한 기사를 모아 집대성한 것이다. 그러한 문헌은 1560년에서 1850년 사이를 모은 건데 저자가 그런 소재, 즉 일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병참 총감 제임스 드러먼드란 사람 덕이었다고 한다. 이 드러먼드란 사람은 젊을 적에 실업에 종사하여 영국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 사람이란 이름 하에 일본에도 몇 년 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저자 맥퍼렌은 브라이톤스에서 이 드러먼드와 만나 일본에 관한 서적을 모은 걸 보았다. 드러먼드는 저자에게 그러한 책을 빌려준 것만 아니라 일본의 사정도 들려주었다. 저자는 그러한 대담도 참고하여 이 "재팬"이란 책을 만들어낸 것이다. 또 덧붙이자면 이 드러먼드란 사람은 명성 높은 소설가 스몰렛의 증조카를 아내로 두고 있으며 그 아내는 문학을 굉장히 좋아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런 인연 아래에서 만들어진 것이니 실제로 일본 땅을 밟은 여행가의 기행만큼 정확하지는 않다. 실제로 삽화 따위도 조선의 풍속을 일본의 풍속 마냥 아무렇지 않게 넣어두었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오늘날의 우리가 볼 때에 어떠한 흥미를 부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일본의 황제는 담뱃대를 잔뜩 지니고 있으며 매일 다른 담뱃대로 담배를 피운다는 걸 진지하게 적고 있는 건 굉장히 애교 넘친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이 책 안에 일본 여자를 소개하며 논한 한 장이 있다. 그걸 지금 가볍게 설명해보려 한다.
 저자 맥퍼렌에겐 여자가 사회에서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느냐가 문명 수준을 알아보는 척도였다. 그리고 일본 여자의 사회적 지위는 다른 동양 국가보다도 꽤나 높다. 일본 여자는 다른 동양 국가 여자마냥 유폐나 다름없는 우울함을 겪지 않는다. 상당한 사회적 우대를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아버지나 남편의 유희에 관여할 수도 있다.
 아내의 정조나 처녀의 동정 따위는 전적으로 그들의 명예 관념이 일임되어 있으나 정조가 어긋난 아내는 사실상 한 명도 없다 해도 좋다. 물론 이는 정조를 깨는 순간 곧중 죽기 때문에 가장 엄수되는 사실이기도 하다.
 일본에선 가장 신분이 높은 자부터 가장 신분이 낮은 자까지 누구라도 반드시 학교 교육을 받는다. 전해지기로는 일본의 학교수는 전세계 어느 나라의 학교수보다 많다고 한다. 또 농부나 빈민마저 적어도 읽는 정도는 가능하다고 하다. 따라서 여자의 교육 또한 남자의 교육과 마찬가지로 완비되어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 굉장히 유명한 시인, 역사가, 그 외의 저술가 등에는 여자도 굉장히 많을 정도이다.
 부자나 귀족 남성은 여자만큼 정조를 지키지 않는다. 하지만 어머니나 아내인 여자가 순결하게 평생을 보내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건 일본에 전해지는 갖은 이야기 속에서도 또 수많은 여행가가 보고 들은 사실로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일본 여자는 무엇보다 명예롭지 못한 일을 부끄럽게 여긴다. 굴욕을 당해 자살한 여자는 얼마든지 꼽을 수 있다. 아래의 이야기는 그런 사실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리라――
 어떤 신분의 남자가 여행을 나섰다. 그렇게 집을 비운 사이에 어떤 귀족이 그의(즉 어떤 신분을 가진 남자의) 아내에게 연심을 품었다. 하지만 그 아내는 그 귀족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수없이 굴욕을 주었다. 하지만 그 귀족은 폭력을 이용한 건지 책략을 이용한 건지는 몰라도 그 여자의 정조를 깨고 말았다. 그 즈음에 남편이 돌아왔다. 아내는 여느 때처럼 애정을 품고 남편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 태도 속에는 무언가 엄숙하여 침범할 수 없는 게 있었다. 남편은 그 태도를 의아하게 여겨 이래저래 물어보았다. 물어보았으나 아내는 어떻게 된 건지 이렇게만 대답할 뿐이었다――"부디 내일까지 아무것도 묻지 말아주세요. 내일이 되면 저는 제 친척이나 이웃분들을 불러 그 앞에서 모든 사정을 설명하려 합니다."
 그렇게 다음날이 되었다. 손님은 하나둘 남편의 집에 모였다. 그 손님 중에는 아내를 굴욕한 귀족 또한 섞여 있었다. 손님은 모두 지붕 위 정좌에서 향연을 즐겼다. 그러는 사이 음식이 떨어지자 아내는 자리서 일어나 자신이 당한 굴욕을 밝혔다. 그뿐 아니라 남편에게 강하게 주장했다――"저는 당신의 아내일 자격을 잃었습니다. 부디 저를 죽여주세요."
 남편을 시작으로 온 손님이 아내에게 모여 너에겐 어떤 잘못도 없다, 그녀는 단지 귀족에게 희생 당했을 뿐이다, 그렇게 달랬다. 아내는 모두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보였다. 그리고 남편의 어깨에 안겨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통곡했다. 하지만 대뜸 남편에게 입맞춤을 하더니 다음 순간에는 남편의 손을 떨쳐내며 정좌 끝으로 달려 저 먼 밑으로 몸을 던졌다.
 하지만 아내는 굴욕을 당한 건 이야기해도 굴욕을 준 게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때문에 굴욕을 준 귀족은 남편이나 손님이 술렁이는 사이에 몰래 정좌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자살한 그녀의 시체 옆에서 무사 답게 훌륭히 할복했다. 이 할복이란 일본의 국민적 자살법으로 배 위에 스스로 십자를 그려 목숨을 끊은 것이다.
 "재팬"의 저자 맥퍼렌에 따르면 이는 랜드올의 추억기에 있던 이야기라고 한다. 실제로 일본서 이런 일이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단지 조금 생각해 보면 도쿠가와 시절 소설이나 희곡 속에도 비슷한 이야기는 찾아 볼 수 없는 듯하다. 혹은 큐슈 어딘가의 시골에서 정말로 있었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붕 위 정좌에서 연회를 열거나 일본 무사의 아내가 남편한테 입맞춤하는 게 정말로 서양인스러워 재미 있다. 물론 재미 있다고 웃어 버리는 건 간단하지만 과거 일본인이 가져 온 서양인 이야기도 역시나 엇비슷하게 틀려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기세 등등하게 서양인만 비웃을 수 없는 건 사실이다. 아니, 서양뿐일까. 옆나라 중국 이야기를 전한 것도 이런 실수가 일상다반사인 듯하다. 이를테면 치카마츠 몬자에몬의 "코쿠센야" 속에 그려진 인물이나 풍경 역시 일본인지 중국인지 구분 가지 않는 굉장히 기묘한 물건이다.
 맥퍼렌은 이 외에도 하나 더 일본 여자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말해주는 이야기를 꼽고 있다――"츄야라는 높은 무사가 그의 친구 지오시츠와 함께 황제에 대한 음모를 꾸민 적이 있다. 이 츄야의 아내는 재색겸비의 여자였다. 츄야의 음모는 50년 동안 비밀리에 계획된 후에 기어코 츄야의 실책 탓에 들통나고 말았다. 그리고 정부는 츄야 및 지오시츠를 체포하란 명령을 내렸다. 당시 사정에 따르면 정부는 적어도 츄야만은 생포해야 했다. 그걸 위해서는 반드시 기습을 할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잡으러 간 부하들은 츄야의 집 앞에서 '불이야, 불'하고 소리를 질렀다. 츄야는 불이 난 걸 보기 위해 문밖으로 달려왔다. 부하는 그걸 급습했다. 하지만 츄야는 용맹이 싸워 둘을 베어 죽였다. 하지만 숫자에는 어쩔 수가 없어서 체포되고 말았다. 츄야의 아내는 그 동안에 싸우는 소리를 듣고 벌써 잡으러 온 걸 깨달아 남편의 중요 서류를 불속에 던져버렸다. 이 서류에는 음모를 거든 귀족의 이름도 실려 있었다. 아내의 침착함은 오늘날 일본서도 감탄을 받고 있다. 때문에 여자의 판단력이나 결단력을 칭찬할 때엔 츄야의 아내 같다고 할 정도이다."
 이 츄야는 물론 마루바시 츄야를 말한다. 지오시츠는 유이 쇼세츠다. 맥퍼렌에 따르면 이 또한 역시 랜드올의 추억기에 나온 이야기라고 한다.
 "재팬"의 저자 맥퍼렌이 전한 일본 여자는 거의 유토피아 속 여자이다. 아무리 1860년대의 일본 여자라도 처녀나 아내의 정조가 그리 훌륭히 지켜졌다는 건 믿을 수 없다. 이 또한 맥퍼렌의 멍청할 정도의 순수함을 비웃으면 그만일 테지만 외국의 풍속인정을 전할 때에는 오늘날에도 이런 희극이 전해지기 쉬운 건 사실이다. 요전 번에도 어떤 신문에서 아무개 여사가 미국 여학생의 생활을 천사의 생활이라 말하고 있었는데 그 기사도 반 세기 후 미국인의 눈에 닿으면 역시 맥퍼렌의 "재팬"처럼 웃음을 살 게 분명하다.

     둘

 러드퍼드 올콕의 "일본에서 지낸 3년"은 맥퍼렌의 책에 비하면 일본의 진상을 훨신 정확히 전하고 있다.
 이는 상하로 나뉜 두 권으로 1863년 뉴욕 하버 서점이 발행했다. 삽화도 많이 그려져 있으며 개중에는 또 케이사이의 만화를 복제한 것도 잔뜩 있다.

 먼저 러드퍼드 올콕은 맥퍼렌처럼 책상 위에서 일본을 상상한 게 아니다.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3년 동안 일본에서 실제로 살았다.
 둘째로 올콕은 멕퍼렌처럼 무식하지 않았다. 상당한 학문을 지녔으며 특히 당대 유행한 존 스튜어트 밀의 철학에도 능통했다. 때문에 일본에서 보고 들은 갖은 사건에도 자신만의 견해를 내리고 있다. 그런 견해 속에는 오늘날의 우리가 보기엔 웃음을 금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 또한 존재한다. 이게 맥퍼렌의 책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특색이다.
 올콕은 도쿠가와 막부의 말년에 일본에 주재했다. 영국의 특명 전권 공사였다. 그가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이이 나오스케도 사쿠라다 문 밖에서 자객의 손에 쓰러지고 말았다. 서양인도 몇 명인가 떠돌이 무사 손에 죽었다.
 이렇게 말하면 남일처럼 들리지만 올콕이 살던 시나가와의 토젠지에도 떠돌이 무사가 쳐들어와 몇 명인가의 사상을 낸 사건이 벌어졌었다. 그런 데다가 올콕은 후지산에 오르거나 아타미의 온천을 찾는 등 꽤나 여행도 즐겼다. 그런 식으로 내외로 사건이 많은 일본에 살며 또 에도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곳저곳 돌아다녔으니 올콕의 일본 기행에 많은 관심이 가는 건 우연이라 할 수 없었다.
 물론 올콕의 일본 기행은 로티나 키플링처럼 예술적 색채로 가득한 건 아니다. 이를테면 아사쿠사를 묘사할 때도 로티의 "일본의 가을" 속 아사쿠사처럼 눈앞에 노란 은행이나 붉은 사철이 떠오르지 않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보고 들은 사건에 대한 견해는 꽤나 재미있다.
 이를테면 올콕은 어느 시골집의 엔가와서 할머니가 아이에게 체벌을 주는 걸 보고 "우리 인간은 고금을 묻지 않고 동서를 묻지 않고 가공의 행복을 얻기 위해 자신의 육체를 괴롭히는 걸 좋아한다"고 탄식한 적이 있다. 또 어느 산을 넘을 적에 문득 꾀꼬리 목소리를 듣고는 "꾀꼬리 소리는 나이팅게일과 닮아 있다. 일본 전설에 따르면 일본인은 꾀꼬리에게 음악을 가르친다고 한다. 이게 만약 사실이라면 놀라운 일이다. 왜냐면 일본은 스스로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니까"하고 비웃고 있다.
 이런 건 웃을 수밖에 없는 견해지만 사쿠라다 문 밖의 사변을 두고 일본의 복수 숭배를 논하고 츄신구라의 연극이 민중에게 준 영향을 논하는 건 꽤나 재밌는 의논이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너무 옆길로 새면 본론으로 돌아가는데 번거로워지니 그 소개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싶다.
 하지만 그전에 "일본에서 지낸 3년"을 대략 소개하기 위해 올콕이 처음으로 나가사키에 이르렀을 때의 감상을 보여주자면 대강 아래와 같다――
 "빗속에서 나가사키 항구에 내린 건 6월 4일(1859년)이었다. 이 항구는 일본에 온 여행가들이 벌써 몇 번이나 글로 남겼다. 하지만 어두운 하늘 아래서 보아도 제법 아름다운 구석이 있다. 항구에 들어 오면서 몇몇 섬이 눈앞에 떠오른다. 그 섬이 또 그림처럼 아름다운 게 많다."
 "배가 만으로 들어가니 나가사키의 거리가 옆으로 쭉 뻗은 게 보인다. 나가사키 거리는 수없이 이어진 작은 산의 옆에 자리해 있다. 그리고 나무가 무성한 산 들판까지 꽤나 높게 올라가 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 데지마이다. 데지마는 부채꼴을 한 낮은 토지이다. 그런 게 육지 쪽으로 부채 자루를 뻗어 바다 안에 돌출되어 있다. 데지마에는 길고 넓은 한 길이 지나고 양옆에는 유럽풍의 2층 집이 줄지어 있다. 척 보기에 하나 같이 쬐끄마하다.(중략)"
 "만의 첫인상은 노르웨이의 협만과 닮아 있다. 특히 노르웨이의 수도 크리스티아니아하고 닮아 있다. 물론 협만은 나가사키의 만보다도 아름답다. 나가사키의 만도 작은 산이 물가 옆에 바로 우두커니 서있고 또 작은 산에는 소나무가 울창하다. 하지만 상륙해 보면 식물은 노르웨이보다 훨씬 열대적이다. 석류, 감, 야자, 대나무도 있다. 하지만 또 치자나무나 참죽나무도 무성하다. 당연히 양치도 곳곳에 있다. 덩굴도 벽을 휘감고 있다. 길에는 삽주도 잔뜩 있다."
 뭐 이런 식이다. 자, 그럼 일본 여자를 논하는 걸 볼까 올콕에 따르면 일본 여자의 사회적 지위나 남자관계 같은 건 항상 절찬 받고 있다. 하지만 정말로 절찬할만한 일인지는 의심스럽다. 나는(올콕은) 여기서 일본인이 다른 국민보다 비도덕적인지 묻는 문제를 짚고 갈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일본에선 아버지가 매춘을 위해 딸을 팔거나 고용하더라도 법률이 이를 벌하지 않는다. 그분 아니라 그걸 허가하고 있다. 또 그들의 이웃도 그들을 전혀 비난하지 않는다. 그런 나라에 건전한 도덕적 감정이 존재하는가. 나는 믿기지 않는다.
 확실히 일본에는 노예 제도가 없다. 농노나 노예나 가축처럼 매매되는 일은 없다.(물론 없다는 건 절반뿐인 진리다 왜냐하면 일본 소녀는 일정 연령에 국한된다지만 법률을 따라 인신매매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런 걸 생각하면 남자나 소년도 많이 매매되고 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첩을 들이는 제도가 존재하는 이상 가정의 신성이 보존되지 못하리란 건 누구나 알기 쉬운 도리이다.
 그런 국민적 죄악의 독해는 무엇으로 완화되는가. 그건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완화제의 일부는 분명 중국처럼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권위를 굉장히 강하게 하는 듯하다.
 일본 여자는 상품처럼 다뤄지고 그들의 뜻도 존중받지 못하며 여자의 권리도 인정되지 않는다. 그렇게 남편에게 팔려 간다. 또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가축이나 노예처럼 다뤄진다.
 하지만 아이에 대한 절대적인 권위는 아이에 관한 일에 한해서만 어미로서의 일본 여자를 남자보다도 높은 지위에 올리고 있기에 이 독해가 꽤나 완화되고 있다. 아마 여자가 덴노 자리까지 오를 수 있는 건 이런 사례 중 하나이리라.
 실제로 여제란 고금 모두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확실히 일본 여자의 지위는 가축이나 노에처럼 매매 됨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참을만한 점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점에 관해선 좀 더 조사하지 않으면 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또 친자 사이의 애정도 상당한 모양이다. 어찌 되었든 일본인은 아이를 사랑하는 기관도 발달해 있을 게 분명하다.
 올콕의이 본 일본 부인은 맥퍼렌이 본 일본 부인보다도 정곡을 찌르고 있다. 일본 여자의 사회적 지위는 올콕이 일본에 머무를 시대, 즉 카에이에서 만엔 이후로도 별로 진보하지 않은 모양이다.
 별개로 올콕 이전의 서양인이 일본 여자를 찬미한 건 객관적으로 일본 여자의 사회적 지위나 무언가를 관찰하고서 찬미한 건지 의문이다. 그보다는 되려 일본 여자를 라샤멘[각주:1]으로 접한 결과 고분고분하고 충실하게 말을 듣는 통에 크게 감사의 뜻을 품은 걸지 모르겠다.
 이는 도쿠가와 막부 초년의 이야기인데 히젠 히라도를 영국인에게 인양할 때도 그들은 일본 여자에게 크게 연모를 품었다고 한다. 어쩌면 올콕 또한 라샤멘을 한 명 붙여주면 일본 여자를 경멸하는 게 그 정도에 이르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일본 여자에 대한 비교적 정당한 견해를 얻을 수 있었던 건 적어도 후대 독자에겐 행복한 일이라고 해야만 하리라.
 나는 작년 중국에 놀러 갔을 때 양쯔강을 거슬러 오르는 배 안에서 어떤 노르웨이 사람과 같이 있었다. 그는 중국 여자의 낮은 사회적 지위에 분개했다.
 듣자 하니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허난 대기근 때에 중국인은 소를 팔기 앞서 아내를 팔았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이 노르웨이 사람은 아내로서의 중국인 내지 일본인을 구름 위까지 떠받들였다. 그 탓에 그는 같은 배에 탄 미국인 부부와 격한 논전을 펼칠 정도였다. 그럼 남자란 이론은 어찌 되었든 내심으론 아내로서의――올콕의 말을 빌리자면 가축 또는 노예로서의 여자에게 감탄을 금할 수 없는 듯하다. 즉 부인들이 스스로 나서기 전에는 부인 운동이란 성공할 여지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1. 외국인을 상대하던 유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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