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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버려진 아이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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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사쿠사 나가스미쵸에 신교지란 절이 있는데――아뇨, 큰 절은 아니랍니다. 단지 니치로 스님의 목상이 자리한 상당히 유서 깊은 절이라네요. 그 절 문 앞에 메이지 22년 가을 남자아이 하나가 버려졌습니다. 태어난 해는 물론이요 이름도 적혀 있지 않았죠――오래된 키하치죠를 두르고 줄이 끊어진 여자의 조리를 베개 삼아 누운 채 버려져 있었습니다."
 "당시 신교지 주지는 타무라 닛소란 노인이었지요. 마침 아침 근무를 하고 있자니 역시나 나이 지긋한 문지기가 아이가 버려져 있었다고 전달합니다. 그러자 불전을 보던 스님은 문지기도 돌아보지 않고 "그래? 그럼 안아서 데리고 오거라"하고 별 일 아니라는 양 답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문지기가 머뭇머뭇 아이를 안고 오자 곧장 직접 받아 들어서는 "아이고 귀여운 아이로구나. 울지 말거라. 오늘부터 내가 길러주마"하고 가볍게 달래기 시작했습니다――이 이야기는 그 후로도 스님이 아끼는 문지기가 침향이나 향선을 파는 김에 참배인에게 자주 전하고는 했습니다. 이미 알고 계실지 모르겠는데 닛소 스님께서는 본래 후카가와의 미장이었던 분이 19년에 발판에서 떨어져 잠시 정신을 잃은 후 불쑥 불도에 귀의하셨다는 호탕한 기인이셨지요."
 "그로부터 스님은 이 고아에게 유노스케란 이름을 붙여 자기 아이처럼 기르기 시작하셨습니다. 하지만 유신 이후로 여자를 찾아 볼 수 없었던 사철이니까요. 기른다는 게 말처럼 간단할 리도 없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것부터 우유까지 닛소 스님이 간경 틈틈이 직접 봐야만 했습니다. 한 번은 유노스케가 감기인지에 걸렸을 때 운 나쁘게 카시의 니시타츠란 대단가의 재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닛소 스님은 수정 염주를 한 손에 든 채로 여느 때처럼 아무렇지 않게 독경을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가능하면 친부모와 만나게 해주고 싶다는 게 호걸이면서도 정에 약한 닛소 스님의 진심이셨겠지요. 스님은 설교 자리에 오르는 일이 생기면――지금도 한 번 보세요. 신교지 앞 기둥에 "설교, 매월 16일"이란 낡은 푯말이 걸려 있죠?――이따금 일본과 중국의 고사를 인용해 부모 자식간의 은혜와 사랑을 잊지 않는 게 즉 부처의 은혜에도 보답하는 길이라고 누누히 말씀하셨다네요. 하지만 설교날이 아무리 돌아와도 누구 하나 나서 고아의 아이라 자칭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아니, 유노스케가  살일 때 단 한 번, 백분 탓에 얼굴이 갈색으로 타버린 여자가 자신이 부모라며 찾아 온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고아를 이용해 나쁜 일이라도 꾸밀 셈이었던 거겠죠. 몇 번 질문을 반복하는 사이에 수상쩍기만 하니 성격이 벼락같으신 닛소 스님께서는 거의 완력만 휘두르지 않았지 수없이 독설을 하신 끝에 곧장 쫓아내셨습니다."
 "그러던 메이지 27년 겨울, 세간은 청일 전쟁의 소문으로 북적거렸지요. 하지만 역시 16일 설교날에는 스님이 고리에서 돌아오자 기품 있는 서른네다섯 먹은 여자가 얌전히 그 뒤를 따라왔습니다. 고리에선 뚜껑을 덮어둔 이로리 옆에서 유노스케가 귤을 벗기고 있었죠――여자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불쑥 스님 앞에 손을 짚고 몸을 낮추더니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저는 이 아이의 어머니입니다"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에는 아무리 닛소 스님께서도 한동안 황당해하며 인사 한 마디 하지 못하셨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스님을 아랑곳 않고 가만히 다다미를 보면서 마치 외우기라도 한 것처럼――마음의 격동만은 온몸으로 드러나 있었습니다만――오늘까지의 양육에 대한 감사를 정성스레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게 한동안 계속된 후, 스님은 살짝 펼쳐진 부채를 들어 올려 여자의 말을 가로막으며 먼저 아이를 버린 이유를 이야기하라 재촉했습니다. 그러자 여자는 여전히 다다미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도 더 전, 여자의 남편은 아사쿠사 와라마치에 쌀가게를 열었는데 주식에 손을 대어 기어코 집안이 기울었고 야반도주나 다름없이 요코하마로 가게 되었던 거죠. 하지만 이런 마당에 막 태어난 갓난 아이는 짐만 됩니다. 심지어 여자는 젖마저 전혀 나오지 않았으니 기어코 도쿄를 떠나는 밤에 신교지 절 앞에 엉엉 우는 아이를 버려버렸습니다."
 "그렇게 얼마 안 되는 친지를 의지하며 기차도 타지 않고 요코하마에 이르자 남편은 어느 운송 가게에 종사하고 여자는 어느 실가게의 시녀가 되어 2년 가량 두 사람 모두 열심히 일했다고 합니다. 그러는 사이 운이 두 사람을 거들었는지 3년째 여름에 운송 가게 주인이 남편이 정직하게 일하는 걸 보고는 그즘 겨우 생긴 혼모쿠 부근의 거리에 작은 지점을 내주었습니다. 동시에 여자도 하녀일을 관두고 남편과 같이 일한 건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지점은 상당히 번창했답니다. 그런 데다가 해가 바뀌자 이번에도 튼튼한 아이가 부부 사이에 태어났지요. 물론 아이를 버린 비참한 기억은 그동안에도 부부의 마음 밑바닥을 흐리게 했던 게 분명합니다. 특히 여자는 갓난아기의 입에 빈곤한 젖을 물릴 때마다 반드시 도쿄에 아이를 두고 온 밤을 또렷이 떠올렸다 합니다. 하지만 가게는 바빴습니다. 아이도 나날이 커져 갔습니다. 은행에도 조금 예금이 생겼죠――그러니 부부는 오랜만에 행복한 가정생활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행운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겨우 웃을 수 있게 되었나 싶었더니 27년 봄이 되자마자 남편이 장티푸스에 걸려 일주일 동안 침대 위만 전전하다 기어코 죽고 말았습니다. 그게 전부라면 여자도 마음을 접을 수 있었을 테지요. 하지만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건 모처럼 태어난 아이마저 남 편이 떠난 지 백 날도 되지 않아 대뜸 역리로 죽고 말았습니다. 여자는 그렇게 한동안 낮이고 밤이고 미치광이처럼 울었습니다. 아니, 한동안뿐일까요. 그 이후로 반 년 가량은 거의 정신을 잃은 것처럼 세월만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 슬픔이 조금 가시었을 때 여자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버린 장남과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만약 그 아이가 잘 지내고 있다면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되찾아와 양육하고 싶어'――그렇게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거겠죠. 여자는 곧장 기차에 타 그리운 도쿄에 이르자마자 그리운 신교지 문 앞으로 왔습니다. 그게 마침 16일 설교날 오전이었습니다."
 "여자는 곧장 고리로 가 누군가에게 아이의 소식을 물으려 했죠. 하지만 설교가 끝나기 전에는 물론 스님을 뵐 수 없을 테지요. 때문에 여자는 조급해 하면서도 본당을 가득 채운 수많은 선남선녀에 섞여 닛소 스님의 설교를 적당히 흘려 들었습니다――좀 더 정확히는 설교가 끝나는 걸 기다린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그날도 연화 부인이 오백 명의 아이를 만난 이야기를 인용해 아부모 자식의 은혜와 사랑이 존귀하다는 걸 친절하게 설명하셨답니다. 연화 부인이 오백 개의 알을 낳는다. 그 알이 강에 흘러가 옆나라 왕의 손에 자란다. 알에서 태어난 오백 명의 력사는 어머니란 것도 모르고 연화 부인의 성을 공격한다. 연화 부인은 그 이야기를 듣고 성각루에 올라 '나는 너희 오백 명의 어머니다. 그 증거가 여기 있다'하고 말한다. 그렇게 젖을 내놓으며 아름다운 손으로 짜내 보인다. 가슴은 오백 개의 물줄기가 되어 높은 성루 위에서 오백 명의 력사 입으로 향한다――천축의 그런 우화는 어영부영 설교를 듣던 이 불행한 여자의 마음에 이상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때문에 여자는 설교가 끝나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로 복도를 따라 본당에서 고리까지 서두른 것입니다."
 "사정을 들은 스님께서는 이로리 옆에 있던 유노스케를 불러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와 5년 만에 만나게 했습니다. 여자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란 걸 스님도 알 수 있었던 것일 테죠. 여자가 유노스케를 안아 올려 한동안 우는소리를 머금고 있었을 때에는 호방하신 스님의 눈에도 어느 틈엔가 웃음을 머금은 눈물이 눈꺼풀 아래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후의 일은 말하지 않아도 대강 이해가 가겠지요. 유노스케는 어머니를 따라 요코하마의 집으로 돌아갔답니다. 여자는 남편이나 아이의 사후, 정이 깊어진 운송 가게 주인 부부가 권하는 대로 뛰어난 바늘 일을 남한테 가르치며 조신하면서도 어려움 없는 생게를 꾸려갔습니다."
 긴 이야기가 끝나자 손님은 눈앞에 있던 찻잔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걸 입에 대는 법 없이 내 얼굴을 보더니 조용히 이렇게 덧붙였다.
 "제가 그 버려진 아이입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차의 온도를 낮추기 위한 물을 부었다. 이 가련한 아이의 이야기가 마츠바라 유노스케 군의 어린 시절 이야기란 건 처음 보는 나도 금세 추측할 수 있었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진 후 나는 손님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머니께서는 잘 지내시죠?"
 그러자 예상지 못한 답이 돌아왔다.
 "아뇨, 재작년 돌아가셨습니다――그런데 지금 이야기한 여자는 제 어머니가 아니었죠."
 손님은 내가 놀란 걸 보고는 눈만으로 작게 웃어 보였다.
 "남편이 아사쿠사 타와라마치서 쌀장사를 한 일이나 요코하마에 가서 고생한 건 물론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이를 버린 건 거짓말이었다는 건 나중에 알 수 있었죠. 어머니가 돌아가기 한 해 전, 가게 상품을 품에 안고 있던 저는――알다시피 저희 가게는 무명을 다루고 있으니 니가타를 돌아다녔는데 그때 타치와라마치의 어머니집 바로 옆에 살던 주머니상과 우연찮게 한 기차를 타게 된 거죠. 그 사람이 묻지도 않았는데 말하기를 어머니는 당시 여자를 낳았고 그 아이가 가게를 닫기도 전에 죽어버렸다는 겁니다. 그렇게 요코하마로 돌아간 후 바로 어머니 몰래 호적등본을 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주머니상이 말한 것처럼 타치와라서 태어난 아이는 여자아이가 분명했습니다. 심지어 생후 삼 개월째에 죽어버렸죠. 어머니는 무슨 생각인지 저를 기르기 위해 아이를 버렸다 거짓말하신 겁니다. 그리고 그 후 20년 동안 거의 자는 것도 먹는 것도 잊은 채 저를 돌봐주셨죠."
 "어떤 생각인지――그건 저도 오늘날까지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모르더라도 가장 그럴싸한 이유라면 스님의 설교가 남편이나 아이를 먼저 보내고 남은 어머니의 마음에 이상한 감동을 준 걸 테죠. 어머니는 그 설교를 듣는 사이 제가 모르는 어머니의 역을 맡겠단 생각이 든 게 아니실까요. 제가 절에 주워진 건 당시 설교를 듣던 참배인한테라도 들을 수 있겠죠. 혹은 문지기가 들려줬을지도 모르고요."
 손님은 잠시 입을 다물더니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눈초리를 하며 떠올렸다는 양 차를 마셨다.
 "그럼 당신이 자식이 아니란 건――자식이 아니란 걸 알았다는 건 어머님께 말씀하셨나요?"
 나는 물을 수밖에 없었다.
 "아뇨, 그건 이야기할 수 없죠. 제가 말하는 건 어머니께 너무 잔혹한 일이니까요. 어머니도 돌아가실 때까지 제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역시 이야기하는 게 제게 잔혹하다 생각하셨기 때문이겠죠. 실제로 자식이 아니란 걸 안 후로는 어머니를 향한 정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무슨 뜻이신가요?"
 나는 가만히 손님의 눈을 보았다.
 "전보다 더 잘 따르게 되었죠. 그 비밀을 안 후로 버려진 제게 어머니는 어머니 이상의 인간이 되었으니까요."
 손님은 절절하게 대답했다. 마치 스스로가 그 이상의 인간이었던 걸 모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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