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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닛코 일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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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야가와

 험준한 언덕을 조금 지나자 다니야가와가 보이는 곳으로 나왔다. 낙엽으로 덮인 바위 위에 앉아 강을 본다. 강은 저 멀리 계곡을 흐르고 있으니 겨우 대여섯 척으로만 보인다. 강을 사이에 둔 산은 단풍잎과 은행잎에 빼곡히 둘러싸여 있고 그 사이로 순수한 남색의 물이 하얀 거품을 뿜으며 흘러갔다.
 그리고 그 단풍잎과 은행잎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이 말로 못할 따스함을 주고 올려다보면 산은 내 머리 위에도 우뚝 서있어 창공의 화실의 스카이라이트처럼 좁게 한정되어 있는 게 마치 바위 사이서 깊은 못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았다.
 반대편 산은 반쯤 같은 단풍잎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위로는 역시 겨울에 갈라진 풀이 보이지만 그 품이 넓은 어깨에는 붉은빛이 감도는 아지랑이가 끼어 있어 같은 색의 벌벳을 깐 듯한 산맥이 굉장히 부드럽게만 느껴졌다. 그런 데다가 하얀 탄소 연기가 낮게 산중턱에서 오르고 있기에 나를 더욱 그윽한 정취에 감기게 했다.
 돌을 벗어나 다시 산길에 올랐을 때 나는 "계곡물 끝서 빨가앟게 그으른 단풍잎일까"하는 부손의 구를 떠올렸다. 

     센죠가하라

 마른풀 사이를 지나 연못 옆으로 나온다.
 노란 진흙으로 된 연못 옆자락에는 얕은 물이 남아 있다. 갈라진 갈대의 뿌리에는 거무스름한 거품이 모여 있고 죽은 걸로 보이는 집오리가 그 안에 떠올라 있었다. 새까맣게 탁해진 연못물에는 푸른 하늘이 녹슨 것처럼 비쳤고 옅은 하얀색 구름 그림자가 조용히 움직이는 게 보였다.
 반대편에선 말오줌나무로 보이는 나무가 마른 잎을 낮고 힘없게 물을 향해 숙이고 있었다. 그런 걸 두른 노란 갈대가 쓸쓸하게 휘날려 그 사이서 한적한 고원이 엿보였다. 
 거칠거칠한 참억새가 이어진 들판에는 북쪽 지방만 같은 마른 낙엽송이 곳곳에서 맥없이 솟아 있고 그 사이를 헤매는 방목된 말 무리는 물과 풀을 찾아 떠돌던 우리 선조의 옛날을 떠오르게 한다. 들판을 두른 산맥은 하나같이 쓸쓸한 회색 안개에 둘러싸여 옅은 저녁노을에 그 정점만을 희미하게 적시고 있다.
 나는 거친 쓸쓸함을 느끼며 이 축축한 연못 옆에 서 홀로 투르게네프의 숲속 여행을 생각했다. 그리고 마른풀 사이에 용담의 푸른 꽃이 꿈꾸는 듯한 얼굴로 개화되어 있는 걸 보았을 때 그 I have nothing to do with thee란 슬픈 말이 뼈저리게 떠올랐다.

     무녀

 나이 먹은 무녀가 하얀 옷에 붉은 하카마를 입고 발 뒤편에서 홀로 쓸쓸히 앉아 있는 걸 보았다. 그리고 나 또한 어쩐지 쓸쓸해졌다.
 엇비슷한 시기의 저녁에 카스가의 숲에서 두 젊은 무녀를 본 적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열둘이나 열셋 정도 먹어서 역시나 붉은 하카마에 하얀 옷을 입고 얼굴에 하얀칠을 하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삼나무 아래에는 낙옆을 태우는 연기가 하얗게 올라오고 습해진 숲의 대기는 대정령의 속삭임마저 들릴 것처럼 조용했다. 그 조용한 숲길에서 말없이 엇갈린 젊은 아니, 어린 무녀의 뒷모습은 내게 어느 정도 신기하게 느껴졌던 거겠지. 나는 작게 웃으며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지금 차가운 산속 공기가 사늘하게 다가오는 신사 구석에 정숙히 앉은 늙은 무녀를 보니 공연히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는 평생을 신에게 바친 무녀의 평생에 담긴 적적함이 어쩐지 내 마음을 끄는 것만 같았다.

     고원

 우라미가타키에 다녀오는 길에 홀로 고원을 관통하는 닛코 가도로 이르는 작은 길을 걸었다.
 무사시노에선 아직 지빠귀가 울고 직박구리가 울고 밭의 옥수수도 싹을 틔워 옅은 자색의 콩잎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만 이곳은 그야말로 겨울의 경치를 하고 있어 옅은 노란색 둥근 잎이 하늘하늘 붙어 있는 자작나무가 서리 낀 풀안에 자리한 게 조용하기보다는 쓸쓸한 느낌을 준다. 이 날은 바람도 불지 않는 따듯한 날이라서 자작나무 사이서는 제비꽃 색의 빛을 두른 야슈 산들의 모습이 무언가가 오는 걸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차가운 고원의 대기를 투명하게 비추어 아낌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언제였던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설국의 들판서는 겨울밤에 자주 무언가 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가 먼 곳의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부르는 슬픈 노래처럼 들리는가 하면 숲 뒤편의 부엉이 열 마리 스무 마리가 겨울 안갯속에서 조심스레 서로의 목소리에 거드는 것처럼도 들린다. 단지 들판 끝에서 들판 끝까지 바람에 실려 울린다고 한다. 무슨 소리인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이 들판도 해가 지면 그런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반 리나 되는 들길에도 질리지 않을 수 있었다. 어디인지도 모를 이 고원의 풍경이 왜 내 관심을 끌었는지는 몰라도 내게는 이 고원의, 특히 살짝 흐린 정적이 어쩐지 기뻤다.

     공장(이하 아시아足尾 기행)


 노란 황화수소의 연기가 안개처럼 퍼져 있다. 그 안에서 직원의 모습이 검게 보인다. 셔츠의 가슴가가 그슬러진 자, 때투성이 손수건으로 얼굴을 감싼 자, 개중에는 전라로 젖은 옷을 법의처럼 어깨에 걸친 자가 반사로의 붉은빛을 한쪽에 품은 채로 움직이고 있다. 기계가 돌아가는 울림, 직원의 큰 목소리, 어두컴컴한 공장 안에 난잡하게 들리는 이러한 소리가 소심한 내게는 하나하나 강하게 가슴을 누르는 것만 같았다――전라인 한 사람이 반사로 옆으로 다가갔다. 땀으로 젖은 피부는 이슬을 끼얹은 것처럼 빛나 보였다. 얇고 긴 철봉으로 좁은 반사로 입구를 덜컹 연다. 붉게 빛나는 하늘의 해를 녹인 듯한 불의 흐름이 쭉하고 길게 흘러넘친다. 흘러넘치자 화로 아래의 커다란 양동이 같은 것 안에 뚝뚝 무거운 울림을 내며 떨어진다. 양동이 안이 가득 차면서 불줄기가 들어갈 때마다 불똥이 튄다. 불똥은 직공의 젖은 줄에도 튀고 있다.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게 무언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와다 씨의 "위훈"이란 작품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시대의 음영이라고 해야 할 법한 날카로운 감흥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 후에 마로닉의 "불어不漁"를 보아도 역시 어두운 절실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공장 안에 서서 저 연기를 보고 저 불을 보고 그리고 울림을 듣자 노동자의 진정한 생활이라는 비장한 심리가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느껴졌다. 그들의 황동 같은 근육을 보라. 그들의 용맹한 노래를 들어라. 우리의 생활은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불합리한 것처럼 느껴진다. 혹은 정말로 공허한 생활인 걸지도 모르겠다.

     절과 묘

 길에 절이 있었다.
 붉은 칠이 흔적도 없이 벗겨지고 빠진 지붕의 짚 위에서 기보시의 금색이 쓸쓸히 빛나고 있다. 엔가와에는 새똥이 하얗게 보이고 금구의 홍백 실은 색이 바라 길게 흐트러져 있어 어쩐지 서글프다. 절 안은 조용하여 사람이 있을 거 같지는 않다. 그 오른쪽에 묘지가 있다. 묘지는 돌투성이 언덕 중턱에서 열려 있어 회색 돌 사이서 회색 석탑이 몇 개나 세워져 있는 게 적적한 느낌을 준다. 푸른 풀은 보이지 않는다. 들꽃마저도 거의 없다. 나는 이 돌 뿐인 묘지가 모종의 심볼처럼만 느껴졌다. 지금도 그 황량한 석산과 그 위에 흐려진 탁한 하늘이 고스란히 눈에 남아 있다.

     따스한 마음

 츄젠지에서 아시아마치로 가는 길서 아직 후루카와바시에 이르지 않았을 차에 강을 따라 황폐한 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돌을 올린 지붕, 칠이 벗겨진 벽, 쓰러지려는 울타리와 빨랫대, 빨랫대에 걸린 기저귀나 더러운 파란 이불 따위가 옅은 햇살 속에서 마르고 있다. 그 울타리 밑에선 요 주변에선 보기 드문 코스모스가 붉거나 하얀 꽃을 피우고 있고 한쪽 눈을 다친 검은 개가 그 아래서 잠들어 있었다. 그런 가운데 한 채 거리를 향해 문을 열어둔 집이 있었다. 바깥 빛에 익숙해진 내 눈에는 집안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그 밝은 끝자락에는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낡은 챤챤코를 입은 채로 앉아 있었다. 할머니가 있는 곳 바로 앞이 거리였고 거리에는 머리가 길고 손도 발도 먼지나 떼로 새까만 남자아이 셋이 흙을 만지며 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지나는 걸 보고는 "안녕"하고 손을 들었다. 그리고 그저 웃었다. 아이들 목소리에 놀란 듯한 할머니도 우리를 보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눈이 먼 듯했다.
 나는 이 더러운 아이들의 얼굴과 눈이 먼 할머니를 보자 불쑥 표트르 크로폿킨의 "청년이여, 따스한 마음으로 현실을 보라"란 말이 떠올랐다. 왜 떠올랐는지는 모른다. 단지 유랑의 말년을 런던의 외로운 손님으로 보내고 있는 박해와 압박을 끊임 없이 받아 온 크로폿킨이 따스한 마음을 가지라 가르치는 심정을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가슴에 와닿았다. 그래, 따스한 마음을 가지는 게 우리의 책무이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태도를 휴머나이즈해 인생을 봐야만 한다. 그게 우리의 노력이다. 진실을 그린다는 것도 물론 좋다. 하지만 "형태뿐인 세계"를 깨고 그 안의 진실을 보려 할 때에 우리는 반드시 따스한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 "형태뿐인 세계"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이 황폐한 집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어린아이 같은, 혹은 눈먼 얼굴로 우리를 보는 할머니 같은 사람들뿐이지 않을까
 이 "형태뿐인 세계"를 깨는데 어디까지나 따스한 마음으로 접하려는 건 물론 우리의 의무이다. 문단 사람들은 기교를 배척하고 짜임새를 없애 그저 진실을 그린다고 말한다. 차가운 눈으로 모든 걸 그린 소위 공평무사에 가치가 있는지는 나의 오랜 의문이다. 단순히 필자의 개인성이 또렷이 드러나는 것에 지나지 않을까. 
 나는 연장자와 이야기할 때마다 그 사람이 세상에 스며든 방식에 적잖이 영향을 받는다. 문예만 아니라 따스한 마음으로 모든 걸 보는 건 이윽고 인격상의 시련이 되리라. 세상에 스며든 사람의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세상에 스며든 사람의 상냥함을 흠모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후루카와바시 옆으로 이르렀다. 그리고 모두와 함께 웃으며 아시아마치를 걸었다.

 잡지 편집이 급해 생각처럼 써지지 않습니다. 여관 램프 아래에서 쓴 일기서 추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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