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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355

목이 떨어진 이야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상 카쇼지는 군도를 던져버리고는 무작정 말의 목에 매달렸다. 분명 목이 잘린 거 같다――아니, 이건 매달린 후에 그렇게 생각한 걸지도 모르겠다. 단지 무언가가 쓱 하는 소리와 함께 목에 들어온 거 같다――그와 동시에 매달린 것이다. 그러자 말도 상처를 입은 걸 테지. 카쇼지가 안장의 전륜에 눕자마자 소리 높여 울더니 코를 불쑥 하늘로 뻗고는 곧장 적과 아군이 뒤엉킨 안을 가로질러 가득 찬 고량밭을 똑바로 달렸다. 뒤에서 두세 발 총성이 들린 거 같았지만 그의 귀에는 꿈처럼만 들렸다. 사람보다도 크게 자란 고량은 무작정 달리는 말에 짓밟혀 파도처럼 술렁인다. 그런 고량은 좌에서도 우에서도 어떤 것은 그의 변발을 쓸고 또 어떤 것은 그의 군복을 털고 또 어떤 것은 그의 목에서 흐르고 있는 새까만 피를 닦아주.. 2021. 9. 23.
해명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나카무라 무라오 군. 이는 자네의 '수필 유행'에 대한 대답이다. 나는 한동안 자네와 함께 천하의 문예를 논했기 때문인지 자네의 문장을 읽을 때에 일격을 가하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즉 한 달 정도 늦어지긴 했으나 작게나마 자네의 논진에 화살을 되돌려주는 셈이다. 부디 평소의 자네처럼 화가 나서 머리를 거꾸로 세우는 동시에 내심으론 자네가 날린 화살이 제대로 먹힌 거라 만족해주길 바란다. 자네는 "모든 예술이란 예술 중에 한가함의 산물이 아닌 건 없을 터이다"하고 말했다. 또 "예술 따위는 그 본래의 성질상 한가함의 산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나 또한 자네와 논하면서 "수필은 한가함의 산물이다. 적어도 조금은 한가함의 산물임을 자랑스러워하던 문예의 형식이다"하고 말했다. 이는 물론 수.. 2021. 9. 22.
시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여기는 남만절의 실내이다. 평소 같았으면 아직 유리그림 창문에 햇살이 들어올 시간이리라. 하지만 오늘은 장마로 날이 흐린 탓에 해가 진 후의 어둠과 별 반 다를 게 없었다. 그런 가운데 고딕풍 기둥이 나무 피부를 빛내며 높게 렉토리움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안쪽에선 상등의 기름불 하나가 감실 안에 자리한 성자상을 비추고 있다. 참배인은 한 명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런 어두컴컴한 실내서 서양인 신부 한 명이 기도를 위해 고개를 조아리고 있다. 나이는 마흔대여섯 쯤 됐을까. 이마가 좁고 광대가 돌출되어 구레나룻이 깊은 남자이다. 바닥 위로 늘어진 옷은 '하빗'이라 불리는 법의인 듯했다. 또 '콘타스'라 불리는 묵주도 손목을 한 번 감은 후 파란 구슬을 살짝 늘어트리고 있다. 남만절 안은 물론 조용했다. 신.. 2021. 9. 21.
케사와 모리토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상 밤, 모리토오가 축토 밖에서 달을 바라보며 낙엽을 밟은 채 생각에 잠겨 있다. 그 독백 "벌써 달이 떴군. 항상 달을 기다리는 나도 오늘만은 밝은 게 되려 무서워. 이제까지의 내가 밤중에 사라지고 내일부터는 살인자가 될 거라 생각하니 이러고 있어도 몸이 떨리는군. 이 두 손이 피로 붉어졌을 때를 상상해보게. 그때의 나는 나 자신에게 얼마나 저주스러울까. 그것도 내가 미워하는 상대를 죽이는 거라면 이렇게 괴로워하지 않아도 될 테지. 하지만 나는 오늘 밤 내가 미워하지 않은 남자를 죽여야 한다. 나는 그 남자를 이전부터 알았다. 와타루사에몬이란 이름은 이번 일로 알았지만 남자치고는 너무 부드러운 색이 하얀 얼굴을 기억하게 된 건 언제 일인지 알 수 없다. 그 사람이 케사의 남편이란 걸 알았을 때 내가 잠.. 2021. 9. 20.
덤불 속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검비위사의 물음에 대한 나무꾼의 대답 그렇습니다. 그 시체를 발견한 건 분명 저입죠. 저는 오늘 아침 여느 때처럼 뒷산에 나무를 패러 갔습니다. 그러자 산기슭의 덤불 속에 그 시체가 있지 뭡니까. 있던 위치요? 그건 야마나시의 역로에서 네다섯 정 쯤 될까요. 대나무 안에 얇은 삼나무가 뒤섞인 인기척 없는 곳이지요. 시체는 옥색 스이칸에 수도서나 볼 법한 에보시를 쓴 채로 누워 계셨습니다. 가슴에 칼로 찔린 상처가 남아 있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시체 주변에 떨어진 대나무 낙엽은 검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아뇨, 피는 더 이상 흐르고 있지 않았지요. 상처도 말라 있었으니까요. 더군다나 그곳에는 말파리 한 마리가 제 발소리도 들리지 않는지 착 달라붙어 배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검은 안 보였나고요? 아무.. 2021. 9. 19.
왕생 에마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아이 저기에 이상한 스님이 왔다. 다들 봐라. 다들 봐라. 생선 파는 여자 진짜 이상한 스님이네? 연신 금고를 두드리면서 뭐라고 큰 소리치고 있잖아…… 장작 파는 영감 내가 귀가 멀어서 그런지 무어라 말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군. 여보시요, 저 사람이 뭐라 하고 있소? 금박쟁이 남자 "아미타불, 어이, 어이"하고 말하고 있군. 장작 파는 영감 하하――그럼 미치광이로군. 금박쟁이 남자 뭐 그런 걸 테지. 채소 파는 노파 아니아니. 덕 높은 분이실지도 몰라. 나는 이 틈에 절을 올려야겠어. 생선 파는 여자 그런 것치고는 얼굴이 추하지 않나? 저런 얼굴을 한 덕 높은 사람이 어디에 있으려나. 채소 파는 노파 그런 말하면 쓰나. 벌이라도 받으면 어쩔 게야? 아이 미치광이다, 미치광이. 고이 스님 아미타불, 어이.. 2021.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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