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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손수건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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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제국법과대학 교수, 하세가와 킨조 선생님은 베란다의 등나무 의자에 앉아 스트린드베리의 극작술드라마투르기을 읽고 있었다.
 선생님의 전문은 식민 정책의 연구이다. 따라서 독자는 선생님이 드라마투르기를 읽는 게 조금 뜬금 없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학자뿐만 아니라 교육자로도 이름을 알린 선생님은 전문 연구에 필요하지 않은 책이라도 그게 모종의 의미로, 현대 학생의 사상이나 감정 따위에 관계가 있다면 틈이 나는 대로 반드시 한 번은 훑어보시곤 하셨다. 실제로 요사이엔 선생님이 교장을 맡고 계신 어느 고등 전문학교 학생이 애독한다는 단지 그뿐인 이유로 오스카 와일드의 심연으로부터나 의향 같은 것마저 읽으셨다. 그런 선생님이시니 지금 읽는 책이 유럽의 근대 희곡 및 배우를 논하는 것이라도 별달리 이상할 건 없다. 왜냐면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는 학생 중에는 입센이나 스트린드베리, 또 마테를링크의 평론을 쓰는 학생도 있을뿐더러 나아가서는 그런 근대 희곡가의 뒤를 쫓아 작극에 평생을 바치려는 열성적인 자도 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기발한 한 장을 다 읽을 때마다 노란 겉표지를 무릎 위에 두고 베란다에 걸려 있는 기후 제등을 멍하니 바라보셨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하면 선생님의 사고는 스트린드베리서 벗어나고 만다. 대신 같이 기후 제등을 사러 갔던 사모님이 떠오른다. 선생님은 유학 중에 영국에서 결혼을 했다. 그러니 사모님은 물론 미국인이시다. 하지만 일본과 일본인을 사랑하는 건 선생님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특히 일본의 정교하고 치밀한 미술 공예품을 마음에 들어 하셨다. 따라서 기후 제등을 베란다에 걸어둔 것도 선생님의 취향이라기보단 되려 사모님의 일본 취향이 고개를 내민 거라 봐야 하리라.
 선생님은 책을 내려둘 때마다 사모님과 기후 제등과 또 제등으로 대표되는 일본 문명을 떠올렸다. 선생님이 믿기로 일본 문명은 최근 50년 동안 물질적 방면으론 꽤나 현저한 진보를 이루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거의 이렇다할 진보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아니, 어떤 의미론 되려 타락하였다. 그럼 현대 사상가의 급무로서 이 타락을 구제하는 길을 마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선생님은 이를 일본 특유의 무사도 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무사도란 결코 편협한 섬 국민 특유의 도덕으로 볼 게 못 된다. 되려 그 안에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각국의 기독교적 정신과 일치하는 것마저 존재한다. 이 기사도를 통해 현대 일본의 사상에 귀착점을 가져 올 수 있다면 꼭 일본의 정신적 문명에만 공헌하는 걸로 국한되지 않으리라. 혹은 국제간 평화도 촉진할 수 있으리라――선생님은 평소부터 이런 의미에서 자신이 동양과 서양 사이의 다리가 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런 선생님에게 사모님과 기후 제등과 그 제등으로 대표되는 일본 문명이 어떤 조화를 이루며 떠오르는 건 결코 불쾌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몇 번인가 이런 만족을 반복하는 사이 선생님은 책을 읽는 동안에도 스트린드베리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성가시다는 양 살짝 고개를 젓고는 다시 정성스레 자잘한 활자 위로 눈을 두었다. 그러자 마침 읽던 부분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배우가 흔한 감정에 어떤 정확한 표현법을 발견하고 그 방법을 통해 성공을 얻어났을 때, 그 배우는 시기에 적절함을 따지지 않고 한 편으로는 즐거워서 또 한 편으로는 그러 성공을 얻었기에 금세 이 수단을 따르려 한다. 하지만 그 탓에 되려 형태에 사로잡히게 되고 만다……
 선생님은 본래 예술――특히 연극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일본의 연극마저 이 나이까지 손에 꼽을 정도 밖에 보지 못했다――과거에 어떤 학생이 쓴 소설 속에 바이코란 이름이 나온 적 있다. 아무리 박학다식을 자부하는 선생님도 이 이름만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때문에 시간이 빌 때 학생을 불러 물어보았다.
 ――자네, 바이코가 뭔가?"
 ――바이코――요? 바이코는 당시 마루노우치 제국 극장의 전속 배우로 지금은 타이코키 쥬단메를 맡고 있는 배우입니다.
 코쿠라 하카마를 입은 학생은 진지하게 대답했다――이런 마당이니 선생님은 스트린드베리가 간결하고 힘찬 글씨로 서평을 덧붙이고 있는 각종 연출법에도 이렇다 할 의견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단지 그것이 선생님이 유학 중에 서양에서 본 연극을 떠오르게 하는 범위에서 일정한 관심을 지녔을 뿐이다. 말하자면 중학교 영어 교사가 숙어를 찾기 위해 버나드 쇼의 각본을 읽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어떤 관심도 관심은 관심이다.
 베란다 천장에는 아직 불을 키지 않은 기후 제등이 걸려 있다. 그리고 등나무 의자 위에는 하세가와 킨조 선생님이 스트린드베리의 드라마투르기를 읽고 있다. 이렇게만 쓰면 그게 얼마나 긴 초여름 오후였는지 간단히 상상이 가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렇게 말했다고 선생님이 꼭 지루함에 괴로워하고 있단 건 아니다.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쓰는 내 마음을 일부러 시니컬하게 곡해하려 하기 때문이다――현재 선생님은 스트린드베리마저 도중에 덮어놔야만 했다. 왜냐면 심부름꾼이 대뜸 손님이 찾아왔다며 선생님의 풍류를 깨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루가 긴 날에도 세간은 꼭 선생님을 바쁘게 만들고 싶은 모양이었다……
 선생님은 책을 두고서 심부름꾼이 가져온 작은 명함을 보았다. 상아 종이에 얇은 글자로 니시야마 아츠코라 적혀 있다. 아무래도 처음 만나는 사람인 듯했다. 발이 넓은 선생님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혹시 몰라 머릿속 명부를 뒤져보았다. 하지만 역시 이렇다 할 얼굴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명함을 책갈피 대신 꽂아두고 책을 등나무 위에 올려놓는다. 그렇게 선생님은 진정되지 않는 분위기라 옷무새를 고치며 다시 코앞의 기후 제등을 보았다. 누구라도 그럴 테지만 이럴 때는 기다리는 손님보다 나가야 하는 주인이 더 조마조마하다. 물론 평소에는 근엄한 선생님이시니 오늘 같은 미지의 여손님이 아니더라도 으레 그렇다는 건 일부러 말해 둘 필요도 없으리라.
 이윽고 선생님은 시간을 살펴 응접실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가 손잡이를 놓는 동시에 의자에 앉아 있던 마흔 쯤 되는 부인이 일어섰다. 손님은 선생님의 예상을 초월한 질 좋은 군청색 홑옷을 입고 검은 하오리가 가슴가에서 살짝 올라온 곳에 비취 오비도메를 시원한 마름모꼴 형태로 얹어두고 있다. 머리가 마루마게로 올라간 것이 그런 자잘한 걸 신경 쓰지 않는 선생님께서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일본인 특유의 둥글고 호박색 피부를 한 현명한 어머니상의 부인이다. 선생님은 그 손님의 얼굴이 어디서 본 적만 있는 것 같았다.
 ――하세가와입니다.
 선생님은 붙임성 좋게 인사를 했다. 만난 적이 있다면 상대가 먼저 말을 꺼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는 니시야마 켄이치로의 어머니입니다.
 부인은 분명한 목소리로 그렇게 자칭하며 정중히 인사를 했다.
 니시야마 켄이치로는 선생님도 기억하고 계신다. 역시나 입센이나 스트린드베리의 평론을 쓴 학생 중 하나로 전공은 아마 독일법이었으리라. 다만 대학에 들어온 이후로도 자주 사상 문제를 들고 선생님을 찾고는 했다. 이번 봄, 복막염에 걸려 대학병원에 입원했기에 선생님도 겸사겸사 한두 번 병문안을 간 적이 있다. 이 부인의 얼굴을 어디서 봤지 싶었던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눈썹이 짙은 기운찬 청년과 이 부인은 일본의 속세가 형태를 갖추기라도 한 것처럼 놀랄 정도로 닮아 있었다.
 ――하아, 니시야마 군의……그러신가요.
 선생님은 홀로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테이블 반대편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
 ――앉으시죠.
 부인은 갑작스러운 방문을 사과하더니 정중히 인사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 박자에 소매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냈다. 그걸 본 선생님은 곧장 테이블 위에 놓인 조선 부채를 권하며 그 반대편 의자에 앉았다.
 ――꽤나 좋은 방이시네요.
 부인은 살짝 과장스럽게 방안을 둘러보았다.
 ――아뇨, 넓기만 하지 별 볼 일 없습니다.
 그런 인사에 익숙한 선생님은 심부름꾼이 가져온 차가운 차를 손님 앞에 놓으며 곧장 화두를 돌렸다.
 ――니시야마 군은 좀 괜찮나요? 이렇다 할 문제는 없고요?
 ――네.
 부인은 얌전히 두 손을 무릎 위에 얹으며 살짝 텀을 두더니 냉정하게 이렇게 말했다. 역시나 침착하고 부드러운 투로 말한 것이다.
 ――실은 오늘도 아들 일로 찾아뵈었습니다. 정말이지 저희 애가 폐만 끼쳤습니다. 재학 중일 때도 선생님을 성가시게 했다고 들었는데……
 부인이 손에 들지 않는 걸 사양이라 해석한 선생님은 이때 마침 홍차 찻잔을 입에 가져가려 했다. 허투루 몇 번이나 권하느니 자신이 마시는 걸 보여주는 게 좋겠지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찻잔이 콧수염에 닿기도 전에 부인의 말은 불쑥 선생님의 귀를 겁주었다. 차를 마셔야 하나 말아야 하나――그런 생각이 청년의 죽음하고는 독립되어 순간 선생님을 번뇌케 했다. 하지만 한사코 찻잔을 들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선생님은 아예 마음을 먹고 잔을 절반 가량 비우고는 눈썹을 찌푸리며 걸걸한 목소리로 "그건……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하고 말했다.
 ――……병원에 있을 적에도 그 아이가 자주 입에 올리곤 했지요. 그래서 바쁜 건 잘 알지만 알리는 겸 인사라도 드리고 싶어서……
 ――아뇨, 바쁘기는요.
 선생님은 찻잔을 내려 놓고는 대신 푸른 밀랍을 끄는 부채를 들어 올리며 낙심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정말이지 세상 일 모르는 법이군요. 이제부터 꽃을 필 나이에……저는 또 병원 쪽에서도 아무 말이 없길래 그냥 많이 좋아진 줄만 알았는데――그럼 언제 떠난 건가요.
 ――어제로 딱 일주일 되었었지요.
 ――역시 병원에서……
 ――그렇습니다.
 ――정말로 의외로군요.
 ――쓸 수 있는 방법은 전부 써보았으니까요.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그쯤 하니 무엇에도 불평할 수 없게 되더군요.
 이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선생님은 의외의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이 부인의 태도나 거동이 자기 아이의 죽음을 말하는 거 같지 않다는 점이었다. 눈에는 눈물도 맺혀 있지 않았다. 목소리도 평소와 다를 바 없다. 그런 데다가 입가에는 작은 웃음마저 머금고 있다. 이야기를 듣지 않고 겉모습만 보면 누구라고 일상다반사를 이야기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으리라――선생님은 그게 의아했다.
 ――과거에 선생님이 베를린에서 유학하던 시기의 일이다. 지금 황제의 아버지인 빌헬름 1세가 사망했다. 선생님은 이 소식을 단골 커피 가게에서 들었다. 물론 이렇다 할 감흥은 받지 못했다. 때문에 여느 때처럼 기운 넘치는 얼굴로 지팡이를 옆구리에 낀 채 하숙집으로 돌아오니 하숙집의 두 아이가 문을 열자 말자 양쪽에서 선생님에게 안겨 엉엉 울기 시작했다. 한 명은 갈색 재킷을 입은 열두 살 먹은 여자아이였고 한 명은 짧은 갈색 바지를 입은 아홉 살 먹은 남자아이였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선생님은 영문을 몰라 두 사람의 밝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왜 그러니"하고 위로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좀처럼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코를 훌쩍이면서 이런 말을 했다.
 ――할아버지 폐하가 돌아가셨대.
 선생님은 한 국가원수의 죽음이 아이를 이렇게나 슬퍼하게 만드는 걸 신기하게 여겼다. 비단 황실과 백성의 관계만을 생각하게 한 건 아니다. 서양에 온 후로 몇 번이나 선생님의 시선을 끈 서양인의 충동적인 감정 표현이 새삼스레 일본인이자 무사도의 신자인 선생님을 놀라게 한 것이다. 그때의 괴이함과 동정이 하나 된 듯한 심정은 지금도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다――선생님은 지금도 마침 그 정도로 이 부인이 울지 않는 걸 신기하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첫 번째 발견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발견이 생겼다――
 마침 손님의 화제가 죽은 청년의 추억에서 그 일상생활의 디테일을 거쳐 다시 본래의 추억으로 돌아가려던 때였다. 모종의 박자로 조선 부채가 선생님 손에서 미끄러져 사각 타일의 나무 바닥에 떨어졌다. 대화는 물론 잠깐의 단절도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절박하진 않았다. 때문에 선생님은 몸의 절반을 의자 앞으로 내밀며 바닥을 향해 손을 뻗었다. 부채는 작은 테이블 아래에――실내용 덧신 위에 가려진 부인의 하얀 버선 옆에 떨어진 것이다.
 그때 우연히도 부인의 무릎이 선생님의 눈에 들어왔다. 무릎 위에는 손수건을 쥔 손이 얹어져 있다. 물론 그게 전부라면 발견이라 할 수 없겠지. 하지만 선생님은 부인의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는 걸 알아차렸다. 떨리면서 감정의 격동을 억누르려 하는 탓일까. 두 손으로 무릎 위 손수건이 찢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강하게 쥐고 있단 걸 알아차렸다. 또 마지막으로 주름투성이가 된 명주 손수건이 우아한 손가락 사이에서 마치 미풍에 흔들리기라도 하는 듯이 꿰맨 자국이 남은 끝자락을 움직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부인은 얼굴로는 웃고 있어도 실은 아까부터 온몸으로 울고 있었던 것이다.
 부채를 주워 고개를 들었을 때, 선생님의 얼굴에는 이제까지 없던 표정이 있었다. 봐서는 안 된 걸 봐버렸다는 경건한 마음과 그런 심리의 의식에서 오는 만족감과 약간의 연기투로 과장된 듯한 굉장히 복잡한 표정이었다.
 ――얼마나 마음 아프실지는 자식이 없는 저도 잘 알 거 같습니다.
 선생님은 눈부신 것이라도 보는 듯이 살짝 거창하게 고개를 뒤로 젖히며 낮고 감정이 서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제 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아들은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부인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태연히 밝은 얼굴로 한껏 웃음을 지은 채로――

        *      *      *

 그로부터 두 시간 후의 일이다. 선생님은 목욕을 하고 저녁밥을 먹고 식후 체리를 먹고서 또 안락히 베란다의 등나무 의자에 앉았다.
 긴 여름의 저녁은 한사코 여명을 머금고 있어서 유리 창문을 열어둔 넓은 베란다는 좀처럼 어두워질 줄을 몰랐다. 선생님은 그 약한 빛 속에서 아까부터 왼 무릎을 오른 무릎 위에 두고 머리를 등나무 의자에 기대며 멍하니 기후 제등의 붉은빛을 바라보았다. 그 스트린드베리도 손에는 들었으나 아직 한 페이지도 넘기지 않은 듯했다. 그럴 만도 하다――선생님의 머릿속은 아직도 니시야마 부인의 기특한 행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선생님은 밥을 먹으며 사모님께 니시야마 부인과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일본 여자의 무사도라며 절찬했다. 일본과 일본인을 사랑하는 사모님이 그런 이야기를 듣고 동정하지 않을 리도 없다. 선생님은 사모님에게서 열성적인 청자를 발견한 걸 만족스레 여겼다. 사모님과 방금 전 부인, 그리고 기후 제등――이제는 이 세 개가 어떤 논리적 배경을 가진 채로 선생님의 정신에 떠올랐다.
 선생님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런 행복한 회상에 잠겨 있었는가.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문득 어떤 잡지로부터 투고를 의뢰받은 걸 떠올렸다. 그 잡지에선 "현대 청년에게 바친다"라는 제목으로 여러 방면의 대가에게 일반 도덕상의 의견을 구하고 있었다. 어서 이번 사건을 소재로 소감을 적어보자――선생님은 그런 생각을 하며 잠깐 머리를 긁적였다.
 긁은 손은 책을 들고 있던 손이다. 선생님은 이제까지 덮어 둔 책을 보고 아까 넣어둔 명함을 통해 읽다 만 페이지를 엷어보았다. 그때 마침 심부름꾼이 와 머리 위 기후 제등을 밝혀주어 작은 활자도 읽기 어렵지 않았다. 선생님은 읽을 생각도 없이 막연히 시선을 두었다. 스트린드베리는 말한다――
 ――내가 젊을 적, 어떤 사람은 헤이베르그 부인의, 아마 파리에서 나온 듯한 손수건 이야기를 했다. 그건 얼굴은 웃으면서 손은 손수건을 찢어놓는다는 이중의 연기였다. 우리는 그걸 지금 Matzchen[각주:1]이라 부르고 있다……
 선생님은 책을 무릎 위에 두었다. 펼쳐진 채로 둔 탓에 니시야마 부인의 명함이 페이지 한가운데에 그대로 남아 있다. 하지만 선생님의 마음에 이미 그 부인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모님도 아닐뿐더러 일본의 문명도 아니었다. 그 셋의 평온한 조화를 깨려 하는 정체 모를 무언가였다. 스트린드베리가 지도한 연기법과 실제 도덕상의 문제는 물론 다르다. 하지만 지금 읽은 부분에서 받은 암시 속에는 목욕을 마친 선생님의 느긋한 마음을 흩트려놓으려는 무언가가 있었다. 무사도와 그 형태와――
 선생님은 불쾌하다는 양 두어 번 고개를 젓고는 눈을 치켜떠 가만히 강을 풀을 그린 기후 제등의 밝은 불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1. 농담, 실없는 소리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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