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세 군.
너와 헤어진 후로 벌써 한 달이 조금 넘었어. 시간 참 빠르네. 이래서야 너와 우리를 가로 막을 5, 6년도 의외로 빨리 지나갈지 모르겠어.
네가 요코하마에서 배를 타고 떠난 날, 징이 울고 배웅 나온 사람들이 모두 사다리를 타고 배에서 부두로 내려왔을 때 나는 존즈와 합류했지. 물론 그 전에 갑판에서 모습을 보았지만 네 방에도 살롱에도 나타나지 않아 이미 돌아간 줄 알았어. 그런데 갑자기 나를 붙들고는 아주 기운차게 여기에 오면 항상 여행을 하고 싶다느니 자기도 내년인지 내후년인지엔 미국에 간다느니 여러 말을 하는 거야. 나는 적당히 대답하면서 굉장히 애매한 태도로 상대에 임했어. 애당초 엄청나게 더웠거든. 또 배가 찌릿찌릿 아팠어. 도저히 그가 떠드는 영어를 하나하나 이해할 만큼 긴장할 상황이 아니었지.
그러는 사이 배가 움직였어. 그것도 굉장히 완만한 움직임으로 배와 부두 사이의 폭이 조금씩 넓어져서 겨우 알았지 그렇지 않았다면 거의 움직이는 것도 모를 정도였어. 더군다나 요즘엔 물이 굉장히 더럽지. 짚 부스러기나 페인트칠이 된 나무 파편이 황녹색으로 탁한 수면을 한가득 채우고 있어. 도무지 옛날에 읽었던 모리 씨의 '잔교' 같은 소설적 감상은 찾아 볼 수 없었어.
밀짚 모자를 쓰고 갈색 정장을 입은 너는 부채를 쥔 채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어. 그것도 지극히 통속적인 눈초리였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칸다를 같이 걸어 스다쵸에 이르면 너는 항상 미타행 전철을 타고 나는 우에노행 전철을 탔잖아. 그렇게 먼저 탄 쪽을 나중에 탄 쪽이 배웅하는 습관이 있었지. 오늘 배 위에 있는 네가 부두를 바라보는 것도 그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어.(혹은 내 쪽이 달라지지 않은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따금 네 쪽을 바라보며 존즈와 엉망진창인 대화를 나누었지. 그는 콤프톤 멕켄지가 어쩌고저쩌고 하더니 러시아 감옥에 철창을 부수는 기계를 팔러 간다느니 했지.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 없었어. 단지 너를 보내고 나서 그가 누마즈에 그림을 그리러 간다는 건 몇 번이나 되문 끝에야 겨우 알 수 있었지.
그러는 사이 정신을 차려보니 배와 부두의 거리가 꽤나 멀어져 있었어. 이때 네가 일본을 떠난다는 사실이 꽤나 뼈저리게 전해졌지. 모두가 나루세 만세라고 외쳤어. 너는 부채를 움직여 그에 답했고. 하지만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단 한 번도 큰 소리로 만세를 외쳐 본 적이 없어. 그래서 그때도 쓰고 있던 밀짚모자를 벗어 높게 들어 올리는 걸로 퍼세틱한 심정에 순응했지. 만세의 목소리는 간단히 그치지 않았어. 나는 언젠가 네게 "연소하지 않는다"(네 말을 그대로 쓰자면)하는 비난을 들은 걸 떠올렸지. 그리고 작게 웃었어. 내 앞에서는 네 동생이 스틱 끝에 손수건을 묶고 기세 좋게 흔들며 "형 만세"라고 반복하고 있었고……
후갑판에선 러시아의 배우가 많이 타고 있었어. 그런 남자들은 대개 더러운 일본 유카타를 입고 있었지. 언젠가 혼고자에 나온 녀석들인데 이런 날의 잘 빛나는 갑판에 칠칠치 못한 유카타를 입고 모여 있는 걸 보면 참 별 볼 일 없어 보였지. 개중에는 붉은 두건을 쓴 여배우나 반바지를 입은 아이도 섞여 있었어――그러자 그 사람들이 대뜸 입을 모아 무언가 노래하기 시작했지. 역시나 유카타를 입은 키가 큰 남자가 지휘봉을 지닌 듯한 손놀림으로 박자를 맞춰주는 게 보였어. 존즈는 노래 한 구절이 끝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굿"하고 말했지. 뭐가 굿인지는 나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배 쪽에는 기운이 넘쳤지만 부두 쪽은 그러지도 않았어. 어느 쪽을 보아도 우는 사람이 잔뜩 있었지. 너희 어머니께서도 울고 계셨어. 동생들도 울고 있었다나 봐. 눈물은 보이지 않아도 우는 듯한 얼굴은 온갖 곳에 있었지. 특히 프록코트를 입고 타카야마 모자를 쓴 나이 많은 외국인이 손을 들어 배를 부르는 듯한 손짓을 하는 건 굉장히 소설처럼만 느껴졌어.
"너는 안 우니?"
나는 네 동생의 어깨를 두드리며 물어봤어.
"안 울어. 난 남자니까."
그러면서 이 자명의 진리를 모르는 나를 애처로워하는 듯했지. 나는 또 웃었어.
배는 점점 멀어져 갔어. 이제는 네 얼굴도 보이지 않았지. 단지 부채를 들고 이따금 이쪽의 만세에 답한 것만은 알았어.
"다들 햇살 밖으로 나가지 그래? 그늘에 있으면 저쪽에서 우리가 안 보일 거 아냐."
쿠메가 모두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어. 그래서 다 같이 햇살로 나갔지. 나는 역시 모자를 들고 서있었어. 내 옆에선 존즈가 괴상한 파나마모자를 흔들고 있었고. 그 앞에는 키가 큰 마츠오카와 키가 작은 키쿠치가 소매를 바람에 나부끼며 나란히 서있었어. 그리고 역시나 모자를 쓰고 있었지. 이따금 쿠메가 큰 목소리로 "나루세"하고 물렀어. 존즈가 휘파람을 불었고. 네 동생이 스틱을 휘둘러 "형 만세"하고 연호했어――그런 게 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이어졌지.
돌아가면서 돌아보니 그 나이 많은 외국인은 아직도 멍하니 배가 간 쪽을 바라보고 있었지. 그러자 나와 함께 돌아 본 존즈가 손가락을 튕기더니 그 외국인 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He is a beggar하고 말했지.
"흐음, 거지구나."
"거지지. 매일 부두를 어슬렁거리나 봐. 나는 여기에 자주 오니 알고 있지."
그렇게 그는 일본인이 프록코트를 존경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길게 이야기했어. 내 센티멘탈리즘은 여기서도 기어코 "연소"되기 위해 새로이 파괴된 셈이지.
곧 쿠메와 마츠오카가 일본 문단의 상황을 활자로 너한테 전한다네. 나도 가까운 시일 내에 또 뭔가를 쓸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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