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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시다 쿠니오108

판타지 - 키시다 쿠니오 사실주의자인 나머지 시인이며 낭만주의자인 나머지 철학자인 예술가――그 일부는 자신의 생활을 긍정하기 위해 팡테지스트가 되는 길을 고르리라. 판타지는 상상을 관찰을 교차하는 예술적 수법 중 하나이다. 작가의 감흥을 통해 현실을 보기 좋게 착색하는 일이다. 비논리적 사상에 감각적 실재성을 주는 일이다. 필연을 무시하여 새로운 생명의 율동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판타지는 항상 '밝은 회의'의 자식이 된다. '밝은 회의'는 '명랑한 이지'를 어머니로 삼는다. '명랑한 이지'는 낙천주의자의 눈물보다 비관론자의 웃음을 사랑했으리라. 판타지가 꼭 시와 일치하진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작중 인물의 감정 고양과 함께 작품에 일정한 서정미를 준다. 판타지가 꼭 희극적이진 않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 작중인물의 성격.. 2022. 7. 27.
신극의 위기 - 키시다 쿠니오 지진 재난 후 대두된 신극 운동의 눈부신 기운은 내가 보기에 별로 순조로운 거 같진 않다. 그건 '이어지곤 있지나 앞으로 나아가고 있진 않다'는 뜻이다. 하기사 고작 이삼 년만에 눈에 띄는 진보를 보일 리도 없으리라. 하지만 그렇다면 '나아가려는' 기척마저 보이지 않는 건 어떻게 봐야 하는가. 나는 신극의 무대적 완성이 반드시 확고한 경제적 기반 위에 쌓여야 한다는 논의엔 찬동할 수 없다. 또 어떤 종류의 사람들의 열의에서만 만들어진다곤 믿지 않는다. 하물며 희곡의 내용이나 감독술의 경향이 무대를 좌우한다곤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한 시대의 문운이 한 명의 천재 작가의 출현으로 화려한 빛을 내뿜는 것처럼 현대 일본의 신극은 한 명의――그렇게 말하면 병폐도 있겠으나――적어도 몇 명의 배우, 진.. 2022. 7. 26.
연극잡지 - 키시다 쿠니오 다달히 내게 전달되는 연극잡지가 대략 열 종 정도 된다. 그 중 순수하게 '신극적'이라 부를만한 건 두세 개에 지나지 않는다. "테아트로"는 소비에트적 활기와 에스페란토풍 초국격성으로 가득 찬 연구잡지로 이번 달에 삼 주년 기념호를 출간한다. 꽤나 계몽적이나 한편으론 일본의 신극운동을 한 색으로 물들이려는 기척이 느껴진다. × "극과 평론"은 이따금 분위기가 달라져 당황하곤 한다. 요즘엔 평론진을 강화한 것처럼 보인다. "음악과 연극"은 스기노 씨의 지식에 귀를 기울일만 하고 스타니슬랍스키의 '배우수업'은 좋은 참고 자료이다. 이러한 잡지들이 희곡에 더 새로운 바람을 줘야만 하리라. "극작" 오월호의 희곡 "호심장"은 역작이며 재밌는 듯하다. 지금 막 두세 페이지 읽은 게 고작이나 좋은 재능의 냄새를 맡.. 2022. 7. 24.
'연극미의 본질' 후기 - 키시다 쿠니오 연극에 관한 평론, 감상을 모아 서적으로 내는 건 이번이 세 번째이다. 처음엔 '우리의 극장'이란 제목으로 다음은 '현대연극론'이란 제목으로 냈다. 이번에는 '연극미의 본질'로 하기로 했다. '우리의 극장'에 포함된 글은 대부분 '현대 연극론' 안에도 들어갔으나 그중에서도 오늘날까지 젊은 연극 연구자, 연극 애호가들이 필히 읽어줬으면 하는 글을 택하고 그 외에 직접 연극을 논하진 않았으나 내 연극론을 받쳐준 한두 '말'에 관한 노트를 덧붙여 이 한 편을 편집했다. '나의 연극론' 같은 소리를 하면 꽤나 계보가 확실하며 특색 있는 이론처럼 들릴지 몰라도 나로선 일본의 새로운 연극 토양을 위해 당시에 가장 필요하다 느껴진 말에 힘을 주어 늘어 놓은 것뿐으로 스스로를 한 명의 연극학자라 자칭할 생각은 없다. .. 2022. 7. 20.
'문화훈장' 제정에 관해 - 키시다 쿠니오 문화훈장 제정이 공표된 건 개인적으로선 이런저런 문제를 떠오르게 하는 동시에 국민으로선 정말로 축하할 일이라 생각한다. 이전부터 민간, 특히 문단 저널리즘상에서 이런 제도의 논의가 오가 나도 살짝 의견을 제시한 바 있는데, 정말로 실현된 걸 보니 역시 국가도 이런 영역까지 왔구나 하는 감개를 느끼게 되었다. 형식은 잘 알지 못하나 정부의 일이라느니 관료의 발상이라는 하는 해석은 굳이 필요하지 않으리라. 하야시 수상의 발표를 읽어 보면 굉장히 이치에 잘 맞고 이런 제도가 이제까지 일본에 없었던 게 되려 신기할 정도이다. 단지 국민이 이런 종류의 훈장이 현 정부의 손에서 얼마나 올바르고 공평하며 또 진보적인 의의를 갖게 되리라는 의문을 품게 되는 건 피할 수 없으리라. 먼저 정치가 내지 공무원들이 '문화'란.. 2022. 7. 18.
단역 - 키시다 쿠니오 단역마저 열심히 연기하는 배우는 듬직하기 짝이 없다. 혹은 단역밖에 맡지 못하는 배우여도 좋다. 그는 주역으로 선택 받는 행운에 만나지 못하고 그 평생을 끝내더라도 그 평생을 통해 어엿한 '필요한 인물'이었음에 분명하니까. 단역 밖에 맡지 못한단 이유로 그 배우를 경멸하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연극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예술의 길에서 하나의 단역을 연기하는데 만족하리라. 예술가의 분쟁은 말하자면 '역할 쟁탈전'이다. 스스로를 '주료'에 세우고 싶단 심리의 추함 표현이다. 괴테, 입센, 도스토옙스키 등이 연기한 역할을 제군 도한 연기해보고 싶지 않은가. 제군 또한 발자크를 체호프를 바나드 쇼를 목표로 삼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거면 된다. 우리는 제군이 알지 못하고 이름마저 없는 .. 2022.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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