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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키시다 쿠니오

단역 - 키시다 쿠니오

by noh0058 2022.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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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역마저 열심히 연기하는 배우는 듬직하기 짝이 없다. 혹은 단역밖에 맡지 못하는 배우여도 좋다. 그는 주역으로 선택 받는 행운에 만나지 못하고 그 평생을 끝내더라도 그 평생을 통해 어엿한 '필요한 인물'이었음에 분명하니까. 단역 밖에 맡지 못한단 이유로 그 배우를 경멸하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연극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예술의 길에서 하나의 단역을 연기하는데 만족하리라. 예술가의 분쟁은 말하자면 '역할 쟁탈전'이다. 스스로를 '주료'에 세우고 싶단 심리의 추함 표현이다.

 괴테, 입센, 도스토옙스키 등이 연기한 역할을 제군 도한 연기해보고 싶지 않은가. 제군 또한 발자크를 체호프를 바나드 쇼를 목표로 삼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거면 된다. 우리는 제군이 알지 못하고 이름마저 없는 한 음유시인의 역할에 이끌리고 있다.

 눈을 깜빡이는 역할이다.

 화롯불을 붙이는 역할이다.

 혹은 말 그대로 '말다리'다.

 

 우리는 또 인생의 과정 속에서 하나의 단역을 맡는데 만족하리라. 갖은 세상의 파문은 갖은 인간의 '역할 부족'에서 만들어진다.

 이를테면 정치도 그렇다. 그 '대기실'의 소란은 어느 정도인가!

 

 또 더욱이 우리는 갖은 운동(무브먼트)의, 특히 그 사회 운동의 극히 작은 역할을 연기하는데 만족하리라. '무대 뒤편'의 일을 하는 자가 있어도 좋으리라.

 '제일선'에 선 자들이여, 밝은 무대서 한껏 폼을 잡으라. 관객들을 무자하라. 우리는 막 뒤에서 천천히 담배라도 태워야겠다 ――이미 스위치는 눌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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