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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355

천성 시인 - 사토 하루오 내게 '시인 바보'란 말이 있다. 시인은 보통 속세 사람으로선 무능력하지만 그 때문에 사람은 순진무구하다. 하늘은 그런 무구함을 보호할 생각으로 시인에게 속세적 재능을 주지 않았단 설이다. "시는 다른 재능이다"란 옛사람의 말도 같은 뜻일까. 이러한 생각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람으로 나는 항상 무로우 사이세이 군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즉 내가 생각하는 천성 시인의 전형이다. 스스로 능력이 없다 말하는 그는 능력이 있네 없네의 문제가 아니라 문명이란 생활 형태하고는 전혀 동조하지 못하는 야생아이다. 시인의 천직은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진 로봇화한 인간 사회에 인간 본연의 원시적인 창조주의 창조 그 자체를 보존하는데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 천성 시인은 당연히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존재이다. 이 천성 시.. 2021. 10. 31.
그림자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요코하마. 닛카요코日華洋行의 주인 친사이는 책상에 정장을 입은 두 팔꿈치를 얹고서 불이 꺼진 담배를 물은 채로 오늘도 가득 쌓인 장사용 서류에 바쁜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친즈 커튼이 걸린 방 안은 여전한 잔더위의 적막함에 갑갑할 정도로 지배되어 있었다. 그 적막을 깨는 건 니스 냄새가 나는 문 너머서 이따금 들려오는 희미한 타자기 소리 뿐이었다. 서류가 일단락된 후, 친은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듯이 탁상 전화 수화기를 귀에 얹었다. "우리집에 걸어주게." 친의 입술에서 나온 말은 묘하게 저력이 담긴 일본어였다. "여보세요?――할멈?――와이프 좀 바꿔주게――후사코니?――나 오늘 밤 도쿄에 가야 해――그래, 거기서 자고 올 거고――못 오냐고?――도무지 기차 시간에 맞을 거 같지 않네――그럼 부탁할게――뭐.. 2021. 10. 30.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가집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목차 자색 벌벳/오동/장미/객중연/젊은 사람/모래 위 늦은 해 자색 벌벳 부드러운 짙은 자색의 벌벳을 쓰다듬는 마음이 봄을 저물게 하네 제비도 바삐 날아가게 하는 우편 마차 젖히는 봄비 붉은 기후 제등 들어와 둘로 뒤엉키는 봄 저녁(메이지좌 3월 쿄겐) 광대의 붉은 웃옷에 먼지 향 스미는 늦봄이랴 봄은 어지럽게 져간다. 무희의 금색 소매에 봄은 져간다 봄을 새어나가는 물이 울리는 건 무희가 두드린 북 때문일까(교토여정) 짝사랑하는 나의 세상 슬픈 히아신스야 옅은 보라색으로 향을 뿜는구나 사랑하고 젊으면 장미 향이 이렇게나 느껴지는가 밀밭의 연둣빛 겨자 꽃 피는 오월의 하늘에 산들바람 불게 하네 오 월이 오지 않아 잊힌 풀도 내 사랑도 지금 희미하게 향을 풍기네 밀을 베는 냄새에 눈도 노랗게 물드는 들판 .. 2021. 10. 29.
문예 감상 강좌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문예상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문예적 자질을 지녀야 합니다. 문예적 자질이 없는 사람은 그 어떤 걸작을 접하고 그 어떤 좋은 스승을 두어도 역시 항상 감상상의 맹인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문예와 미술 사이에 차이는 있지만 그림이나 골동품을 사랑하는 부호 중에 이런 사례가 많은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일 테지요. 하지만 문예적 자질의 유무도 정도 차가 있으니 테이블이나 의자의 유무처럼 딱 자를 수는 없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괴테나 셰익스피어 같은 문호에 비하면 문예적 자질은 없다 봐도 좋습니다. 혹은 좀 더 별 볼 일 없는 작가와 비교해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해도 좋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노다 우타로 선생님에 비하면 문예적 자질――적어도 하이카이적 자질은 많이 있지요. 이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 2021. 10. 27.
첫 만남 - 사토 하루오 모년모월모일――이 날자는 당시 그가 보낸 편지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시절의 편지는 두 통이나 세 통――전집에도 미수록된 게 보존되어 있다――단지 홋카이도에 있는 동생이 소중히 가져가서 돌려주지 않는다.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아직도 돌려주지 않는다. 곤란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 남자는 무엇이든 남의 걸 가지려 드니 곤란하다. 이번 호에도 이 편지의 사본이라도 제공하면 유익할 터인데 화가 나기 시작했다.(이 부분을 발췌해 어리석은 동생에게 보내줄 생각이다.) 어찌 되었든 어느 날, 해는 또렷이 기억나지 않지만 2월인가 3월 봄의 아직 추운 날이었다. 처음 아쿠타가와를 방문했다. 그전에 두세 번 편지를 주고받은 에구치를 통해 간접으로 교우 관계는 만들어져 있었나 직접 만나는 .. 2021. 10. 26.
'쿄카 전집' 목록개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쿄카 이즈미 선생님은 고금에 독보하는 문종이시다. 선생님은 인품이 좋으시고 재능이 뛰어나셔서 미인을 묘사하면 태진각 앞 모란서 향이 퍼지는 것 같고 선생님의 청초를 떠올리며 신귀를 그리는 게 절묘하여 추담의 집 밖 버들이 우는소리 같은 게 이미 천하에 알려져 내가 많은 말을 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러나 메이지 다이쇼의 문예에 낭만주의의 큰길을 여시고 곱기로는 비 내리는 우산巫山보다 짙고 장엄하기론 역수의 경치보다 격렬한 쿄카 세계를 만들어낸 건 단지 한 시대의 성거라고만 할 수 없다. 실로 백대로 이어질게 분명한 동서예원의 성관이라 해야 마땅하리라. 선생님이 쓰신 소설 희곡 수필 등이 단락을 가리지 않고 오백여 편. 세로로는 에도 삼백 년의 풍류를 마시시고 만물의 변화를 마음에 품으셨다. 가로로는 해동 .. 2021.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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