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쿄카 전집' 목록개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10. 24.
728x90
반응형
SMALL

 쿄카 이즈미 선생님은 고금에 독보하는 문종이시다. 선생님은 인품이 좋으시고 재능이 뛰어나셔서 미인을 묘사하면 태진각 앞 모란서 향이 퍼지는 것 같고 선생님의 청초를 떠올리며 신귀를 그리는 게 절묘하여 추담의 집 밖 버들이 우는소리 같은 게 이미 천하에 알려져 내가 많은 말을 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러나 메이지 다이쇼의 문예에 낭만주의의 큰길을 여시고 곱기로는 비 내리는 우산巫山보다 짙고 장엄하기론 역수의 경치보다 격렬한 쿄카 세계를 만들어낸 건 단지 한 시대의 성거라고만 할 수 없다. 실로 백대로 이어질게 분명한 동서예원의 성관이라 해야 마땅하리라.

 선생님이 쓰신 소설 희곡 수필 등이 단락을 가리지 않고 오백여 편. 세로로는 에도 삼백 년의 풍류를 마시시고 만물의 변화를 마음에 품으셨다. 가로로는 해동 육십 주의 인정을 두루어 숨결이 곧 천 년에 통한다. 이는 진정한 무봉천상한 비단옷이랴. 옛것은 선생님의 가슴속에 모여 남옥보다 더 온윤하며 새로운 것은 선생님의 붓 아래서 뻗어 진주처럼 산뜻하다. 그뿐 아니라 선생님의 식견이란 곧 본래의 성품에서 나와서 일찍이 근래 서양의 사상을 도파한 게 적지 않으시다. 그 사악함을 매도하고 욕을 비웃는 게 한 조각의 얼음과 눈처럼 하늘에서 내려와 우리의 눈썹 주위를 두드리고 가는 것 같다. 한 번 선생님의 저작을 프랑스 낭만주의자 대가들과 비했더니 질은 경천의 일곱 기둥 메리메의 교묘함을 능가하며 양은 발지무우의 나무 발자크에게 견줄 수 있다. 이 또한 선생님의 업이 대단한 이유다.
 선생님의 업이 대단한 건 선생님의 천성에서 나온다. 그럼에도 물론 나머지 절반은 삼십 년간 꼼꼼히 문학삼매를 정진한 선생님의 용맹함에 기반을 두고 있으리라. 말을 많이 하지 않아야 한가함을 얻을 수 있다던가. 마른 얼굴이 어떻게 시마詩魔를 도울 수 있겠는가. 과거에 자연주의가 새로이 부흥하여 속세가 이에 뇌동하여 모래와 안개가 이따금 높이 사는 새를 슬프게 하고 진흙이 번번이 늙은 용을 곤란하게 했다. 선생님께선 이러한 역경에 서서 한 손으로 낭만주의의 파도를 받치시고 고절 홍엽 산인의 의발을 지키셨다. 이러한 불우함이 독정대보의 뜻과 함께 서로 만나게 된 것이리라. 우리 모두 심직필경을 하고 거리서 우수한 말이 우는 걸 듣고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자 없다지만 들에 하얀 학이 돌기를 바라며 큰 뜻을 고무하는 일은 많지 않다. 어느 아침 하늘서 요기가 불어 바다 안의 문장 선생님께 향한다. 아아, 이럴 수가, 선생님의 업도 천만의 걱정을 없애지는 못 하는구나. 우리는 손을 이마에 얹고 쿄카 누각 위의 먼지 구름을 본다. 얼굴을 밝힐 수는 없으나 눈 밑바닥에 눈물이 흐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선생께선 지금 '쿄카 전집' 십오 권을 내놓으셔 거대한 도끼 자국을 남기려 하신다. 그런 마당에 선생님께 면목 없으나 이 보잘 것 없는 재능으로 교정을 맡게 되었다. 그러한 일을 맡기엔 미력하기 짝이 없으나 당대의 이목을 끈 뛰어나고 대단한 작품임은 분명하니 넓게 펼쳐진 연못에 퍼진 수많은 구슬들을 섬세히 모아 하나도 빠지는 법이 없도록 하였다. 선생님이 홀로 만든 별건곤은 아마 이보다 뛰어났을지 모른다. 옛사람 왈 "욕궁천리목 갱상일층루천리를 내다보려면 한 걸음을 내디뎌라." 박식한 군자 또한 "쿄카 전집"을 읽고 선생님의 일광정철한 글, 애환쌍쌍의 인생을 자신에게 비추어 춘수란 앞에 푸른 하늘을 드리우고 춘수운 밖에 난청을 까는 미증유의 장관을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혹여 이러한 대략을 알고 싶지 않을까 해서 '쿄카 전집' 열다섯 권의 목록을 모조리 실고 난 후 이 문을 남긴다. 바라자면 좋게 봐줬으면 한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