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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355

난징의 그리스도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어느 가을의 밤중이었다. 난징 키보카이에 위치한 어느 집의 한 방에는 파랗게 질린 중국 소녀 한 명이 낡은 테이블 위에 턱을 괸 채로 접시에 담긴 수박씨를 지루하게 씹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거치형 램프가 옅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 빛은 방안을 밝게 하기보다도 되려 한층 더 음울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벽지가 벗겨진 방구석에는 이불이 삐져나온 등나무 침대가 먼지 냄새나는 천을 덮고 있었다. 또 테이블 반대편에는 이 또한 낡은 의자 하나가 마치 잊힌 것처럼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 외엔 어디를 보아도 장식이 될만한 가구는 무엇 하나 찾아 볼 수 없었다. 소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박 씨를 씹는 걸 멈추고는 이따금 차가운 눈을 들고서 테이블에 접한 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쫓아.. 2021. 11. 9.
보기 드문 문학적 천재 - 사토 하루오 아쿠타가와상의 계절이 되면 항상 다자이 오사무를 떠올린다. 그가 깊은 집념으로 상을 받으려 한 걸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건의 전말을 한 번 쓴 적도 있다. 당시에 그걸 폭로 소설인지 뭔지로 읽은 사람도 있었던 모양이라 한동안 버려둔 채 작품집에도 넣지 않았으나 요번 '분게이'에 재록된 걸 오랜만에 다시 읽고 일언반구의 악의도 없단 걸 스스로 확인했기에 다시 한 번 안심하고 작품집에도 추가했다. 그 작품에는 어떠한 악의도 없고 되려 깊은 우정에서 나온 충고가 담겨 있다. 이는 지금 냉정히 읽어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 작품은 조심스레 돌려 말하는 바 없이 사실을 고스란히 적어두었다. 나는 사실이라면 누구에게도 거리낌 없이 말해도 된다 믿고 있다. 세속인이 아니라 적어도 문학에.. 2021. 11. 8.
속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죽은 자 산 자" "문장구락부"가 기억에 남은 다이쇼 시대 작품이 뭐냐고 물었을 때 나는 답을 생각하던 사이에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내 기억에 남은 건 마사무네 하쿠초 씨의 "죽은 자 산 자"이다. 이는 내 '참마죽'과 같은 달에 발표되었기에 특히 큰 인상을 남겼다. '참마죽'은 '죽은 자 산 자'만큼 완성되어 있지 않다. 단지 어느 정도 새로울 뿐이다. 하지만 '죽은 자 산 자'는 평가가 좋지 않았다. '참마죽'은――'참마죽'의 평가가 좋지 않았던 건 말하지 않아도 된다. "독후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깊은 단편이네."――나는 당시 '죽은 자 산 자'를 읽은 쿠메 마사오 군이 그렇게 말한 걸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문장구락부'의 물음에 응한 사람 중엔 누구도 '죽은 자 산 자'를 꼽.. 2021. 11. 7.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이야기' 다운 이야기가 없는 소설 나는 '이야기' 다운 이야기가 없는 소설을 가장 뛰어나다 보지 않는다. 따라서 '이야기'다운 이야기 없는 소설만 쓴다고는 할 수 없다. 애당초 내 소설도 대개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뎃셍 없는 그림은 성립할 수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소설은 '이야기' 위에 성립된다.(내 '이야기'란 말은 단순히 '줄거리'란 뜻이 아니다) 만약 엄밀히 따지자면 '이야기'가 없는 곳에는 어떠한 소설도 성립하지 않으리라. 따라서 나는 '이야기' 있는 소설에도 물론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 "다프니스와 클로에" 이후로 갖은 소설 혹은 서정시가 '이야기' 위에 성립된 이상, 대체 누가 '이야기' 있는 소설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있을까? "보바리 부인" 또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2021. 11. 6.
기독교인의 죽음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설령 삼백 살의 나이를 가지고 즐거움에 몸을 담는다 하여도 미래영겁 끝없는 즐거움에 비하면 몽환과 다를 바 없다. ―케이쵸역 Guia do Pecador― 선의 길에 들어서려는 자는 가르침을 품은 신비한 단맛을 기억하라. ―케이쵸역 Imitatione Christi― 하나 옛날, 일본 나가시카의 "산타 루치야"라는 "에케레시야ecelesia, 교회"에 "로렌조"라는 이 나라의 소년이 있었다. 이는 어느 해 성탄제 밤, 그 "에케레시야"의 문 앞에 주린 채 지쳐 쓰러져 있던 걸 기도를 드리러 온 기독교인이 간호하고 바테렌padre, 신부이 애처롭게 여겨 교회 안에서 자라게 되었는데 어째서인지 출신을 물으면 고향은 '하라이소paraiso, 천국', 아버지의 이름은 '데우스Deus, 하나님'라고 여느 때나 아.. 2021. 11. 5.
그 시절의 나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이하는 소설로 부를만한 종류는 아닐지 모른다. 그렇다고 뭘로 불러야 하는가 하면 그건 나도 알 수 없다. 나는 단지 네다섯 해 전의 자신과 그 주위를 되도록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써보았다. 따라서 나 혹은 우리의 생활이나 그 심정에 관심이 없는 독자에겐 재미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다. 하지만 그 걱정을 밀고 가면 결국 어느 소설도 마찬가지니 그 사실에 마음을 편히 먹고 발표하기로 했다. 참고로 있는 그대로라 해도 사건의 배열은 반드시 있는 그대로는 아니다. 단지 사실 그 자체만이 대부분 있는 그대로란 걸 덧붙여둔다. 하나 십일 월의 어느 맑은 아침이었다. 오랜만에 갑갑한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니 정문 앞에서 역시나 교복을 입은 나루세와 만났다. 내가 "안녕"하고 말하니 나루세도 "안녕"하고 답했다. .. 2021.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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