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타가와상의 계절이 되면 항상 다자이 오사무를 떠올린다. 그가 깊은 집념으로 상을 받으려 한 걸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건의 전말을 한 번 쓴 적도 있다. 당시에 그걸 폭로 소설인지 뭔지로 읽은 사람도 있었던 모양이라 한동안 버려둔 채 작품집에도 넣지 않았으나 요번 '분게이'에 재록된 걸 오랜만에 다시 읽고 일언반구의 악의도 없단 걸 스스로 확인했기에 다시 한 번 안심하고 작품집에도 추가했다.
그 작품에는 어떠한 악의도 없고 되려 깊은 우정에서 나온 충고가 담겨 있다. 이는 지금 냉정히 읽어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 작품은 조심스레 돌려 말하는 바 없이 사실을 고스란히 적어두었다. 나는 사실이라면 누구에게도 거리낌 없이 말해도 된다 믿고 있다. 세속인이 아니라 적어도 문학에 발을 걸친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상식이라 생각했는데 너무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 게 다자이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던 걸로 보인다. 허영이 강한 그에겐 거울 앞에 고스란히 비친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는 게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웠던 것이리라. 그런 허영의 기질이나 부끄러움이 다자이의 문학을 다채롭고 세련되게 만드는 반면 어느 정도인가 약한 걸로 만들고 만다.
그는 언제 부터인가 너무나 사실을 보고 말한 내게는 오지 않고 대신에 이부세와 왕래하는 모양이다. 나도 혹여 부서질까 신경 써야 하는 인간은 성가시니 찾아 오지 않게 된 그를 억지로 부를 필요도 없겠다 생각하면서도 그 재능은 처음부터 크게 인정하고 있다. 아쿠타가와상은 받지 못했더라도 훌륭히 한 집을 꾸릴 재능이라 믿고 그걸 그가 자각하길 바란 게 '아쿠타가와상'을 제목으로 삼고 그를 모델로 한 작품을 쓴 동기기도 했다.
세속인이나 평범한 문예인이 그걸 어떻게 읽든 문제는 없었으나 다자이 오사무가 내 뜻을 받아 들여주지 못한 건 내게는 굉장히 아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후로 내게 찾아 오지 않게 된 그에게는 조금 유감을 느끼면서 그 동향을 지켜보고 있었다.
쇼와 십팔 년의 가을, 남부 전선에 나가 있던 나는 십구 년 봄, 쇼난에서 뎅기열에 걸려 일주일 정도 누워만 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우연찮게 호텔 사람이 머리맡에 가져다 준 카이조 안에 담겨 있었던 게 그의 '길일'이라는 단편이었다.
나는 한 번 읽어 보고 새삼스레 그의 문학적 재능에 경탄했다. 정말이지 그의 문학적 재능은 서로 마음을 연 벗 단 가즈오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달리 찾아보기 어렵지 싶다. 물론 그와 단 사이에는 본질적으로는 대척되는 점이 있어서 그게 두 사람의 깊은 우정을 성립시킨 비밀일지 모르겠다.
단은 남국적이며 남성적이여서 사납고 경거망동하는 반면 그는 북국인으로 여성적이고 세심하며 의식광인 점 등등.
나는 병상에 누워서 한사코 머리맡에 놓은 '길일'을 매일 처럼 다시 읽었다. 그 외엔 신문 말고는 읽을 게 없어서 그 신문을 주워 읽은 후에는 반드시 '길일'을 애독한 것이다. 그리고 끝내는 단지 읽는 것만으로는 재미가 없으니 어딘가의 문장 내지는 다른 결점이 없나 하나하나 찾아 보는 짓궂은 과제를 자신에게 준 채로 읽어 보았다. 그런 괜한 마음가짐이나 부끄러움 같은 새삼스럽지도 않은 근본적 불만은 별개로 둬도 그 단편 구성에도 문장의 세련됨에도 나는 다시 읽고 세 번 읽어 허물을 찾듯이 짓궂게 보다 정확히는 옹고집을 부렸지만 결국 어디서도 결점이라 할만한 건 찾지 못했다. 이 사실은 내가 돌아 온 걸 알고 만나러 와줬을 때 그에게 직접 이야기한 거 같다――만약 그렇다면 십구 년 유월 쯤에 그와 만난 게 마지막이다. 혹은 직접 만나 이야기한 게 아니라 그에게 책을 받은 보답으로 서장을 써준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십일 년 봄이었을까. 이제는 기억이 명확하지 않다.
그의 죽음은 신슈의 산속에서 알았다. 언젠가는 그런 마지막을 겪어야 하는 운명을 그가 지녔던 것만 같아서 모처럼 몇 번이나 계획했다 실패한 걸 이번에는 성공하게 두었다는 묘하게 비인정하고 허무적인 생각이 든 나는 단순히 남일이 아니라 내 어깨의 무거운 짐마저 던 듯한 가벼움을 느끼면서도 화가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은 걸 잊을 수가 없다.
"츠가루"는 출판 당시에는 읽지 않고 얼마 전――작년 말이었나 올해 초에 나카타니 타카오에게 책을 빌려 읽어 아주 감탄했다. 그 작품에선 그의 결점이 전혀 눈에 띄지 않고 장점만이 드러나 있는 것 같다. 다른 모든 작품은 잊히더라도 이 작품 하나만 있으면 그는 불후의 작가 중 한 명으로 전해지리라.
그 작품에 드러난 땅은 그의 고향인 카네기 땅 외에는 나도 다녀와 본 적이 있으나 토지의 풍토와 인정을 그렇게나 조합한 그의 재능은 정말로 훌륭하기 짝이 없었다. 생전 이걸 읽고 직접 그에게 찬사를 하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다.
그 전까지는 대부분 신슈에 있어 나가지 않았던 오토키 1의 칠주년 째인 올해, 나는 처음으로 부부로 참석하여 그가 남긴 아이가 성장한 걸 보았다. 그 자리서 이야기한 게 대강 위와 같다.
- 다자이 오사무의 기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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