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으면 추해진단 말이 있는데 나는 옛날부터 그 말을 무척 싫어했다. 지독히 유치한 관념적인 말로 노인을 무조건 주눅 들게 하는 짓궂은 정치적 치사함이 담겨 지독히 순수하지 못한 점에서 무엇보다도 멍청한 말인 게 싫다. 늙는 게 추하다면 소년도 장년도 인간은 모두 처하리라. 청춘이나 장년만이 아름다움처럼 여겨지는 건 통속적이고 유치한 관념이다. 소년과 장년에 아름다움이 있다면 노년에게도 아름다움은 있으리라. 노년의 아름다움은 소년과 장년의 아름다움과 조금 종류가 다르리라. 이를테면 백발 머리도 그렇다. 그것도 꽤나 아름답다. 그런 걸 소년과 장년의 미의 척도로 보니 추해질 뿐이다. 나는 노년만이 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삶도 죽음도 별달리 추하다 여기지 않는 탓인지 늙음이 죽음을 향해 휘청이며 가는 추함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추함은 나이에 얽혀 있지 않다. 건강하지 않은 것만이 추한 것이리라. 건강한 노년은 조금도 추하지 않다. 그게 내가 소년 적부터 하던 생각으로 누구나 늙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늙음은 요절보다는 훨씬 좋은 일이니) 누구도 늙음을 추하게 여기지 않고 늙음을 싫어하지 않고 되려 친근해지는 게 더 좋다는 식의 생각이었다.
내게는 예나 지금이나 경로의 사상은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친로라고 해야 할 건 있다. 옛날부터 대화 상대로는 노인 쪽이 좋았다.
그리고 나 또한 다행히 요절도 않고 오늘날 노인의 분류에 들어가게 된 모양이다. 다른 사람이 볼 땐 어떨지 몰라도 스스로는 소년이나 장년일 때에 비해 조금도 추해진 자각이 없고 내 소년 시절부터 생각하던 것과 별로 달라진 것도 없이 노년에게는 또 노년 다운 세계가 아름답고 즐겁게 보이기 시작해 천하의 인간에 대한 무한한 은혜를 감사하고 있다. 결코 아쉬워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늙은 게 딱히 좋다고는 안 해도 소년 시절이나 장년일 적과 다를 바 없이 노인의 인생 또한 좋은 거라 생각한다. 어쩐지 어렵게 운을 뗀 거 같지만 실은 자그마한 실화 하나를 적어보고 싶다――노인의 차모임 이야기를.
지금으로부터 십수 년, 혹은 이십 년은 된 일일까. 전시 중의 세월은 묘하게 일그러져 있어 떠올리기가 어렵다. 좋은 기억이 얼마 없으니 무의식 중에 잊으려 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가령 십수 년 전이라 해두겠다. 분명 아쿠타가와상 심사회 자리였을 터이다.
우노 코지 군과 사사키 모사쿠 군, 그리고 나 셋이서 만나 적당히 인사를 마친 후 우노가 내 얼굴을 한참 바라보며 그 벗겨진 머리 위에 가볍게 손을 주면서
"야, 사토. 너도 많이 하얘졌는걸. 나는 전부터 이렇게 벗겨진 마당에 남은 것마저 하얗게 돼서 비관하던 참이야."
우노는 말과 반대로 즐겁게 웃고 있었다. 나도 그의 말에 끌리듯이
"나는 또 이렇게 하얘진 걸로 모자라 중앙이 벗겨지기 시작해서 비관하던 참이야. 언젠가 그렇게 될 바에야 아예 일찍부터 은발이 되면 했으면 하는데 좀처럼 이쁜 은발이 되지 않네. 애당초 노란색이 되더니 은발이 아니라 붉게 탄 금색처럼 되더니 조금씩 은발이 되잖아. 빨리 하얗게 되면 좋겠지 싶은데 주문처럼 되지가 않네. 하얗게 되기 전까지는 정수리 부분이 희미해지나 봐. 하다못해 지금 정도의 밀도로 아예 하얀색이 됐으면 하는데 그렇게 되기 전에 반쯤 벗겨질 듯하네. 결국 너랑 나랑 양쪽에서 접근하는 형태가 될걸――그 사이에 백발이라도 되면 똑같아지는 거고."
사사키는 우노나 나보다는 한 시대 젊은 사람이지만 우리를 위로하기는커녕 끼어들어서
"나이를 먹으면 역시 하얗게 되거나 벗겨지는 게 좋죠. 저는 일찍 백발이 나오면 좋겠지 싶어요. 벗겨지는 쪽은 아닌 듯해서요."
그런 말을 듣고 보니 사사키는 한 시대 젊기는 해도 내가 옆머리서 시작하던 게 네 방향으로 전도되던 년배는 충분히 되었을 터인데 백발 같은 게 하나도 보이지 않고 옻칠이나 검은 바늘처럼 딱딱한 머릿결이 밀집되어 있었다. 내가 사사키의 백발을 확인하는 사이에 우노는 사사키의 벗겨짐을 검사하는 듯해서
"확실히 자네는 백발이 하나도 나오지 않고 검은 게 한 면에 밀집되어 있는걸."
우노의 말투는 꽤 원망스럽게 들렸다.。
"네, 그래서 곤란하네요." 사사키는 쓴웃음을 짓고는 "염색하냐는 소리면 양반이고 개중에는 가발 쓴 거 아니냐고 따지고 드는 녀석도 있어서요."
"흐음." 우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십인십색 제각기 고생이 있는 거지."
우노는 젊을 적부터 머리가 벗겨져 그걸로 고생해 왔는데 늙은 후론 벗겨지는 걸로 모자라 백발까지 겹쳐 남들보다 배는 괴로워한 듯했다. 그런 감개를 몰래 품은 듯한 말에 세 사람은 각자의 머리에 손을 주면서 다 같이 웃은 적이 있다.
그로부터 적어도 십오 년은 지난 작년, 사사키의 머리를 보자 옆머리에 띄엄띄엄 백발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전 번 대화를 떠올려 조금 축하의 뜻을 표하려
"꽤나 듬직해졌는데요."
하고 내 머리를 손으로 잡아당겨 보자 사사키도 떠올렸는지
"아직 남들처럼은 아니지만 희미하게 구색은 갖춘 모양입니다"
하고 웃었다.
"욕심을 부리면 끝이 없지만 지금 기세로 네 방향으로 가면 어디도 벗겨지지 않고 훌륭한 은발이 될 거야. 내가 옛날부터 바라던 거였는데 도무지 실현될 거 같지 않으니까 하다못해 자네라도 내 이상이 실현되는 걸 봐야겠어."
"너무 훌륭한 은발이 되면 또 백발 가발 쓴 거 아니냔 소리 들을 거 같네요."
사사키는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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