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은 이후로 매년 조금씩 찌기 시작해서 지금은 항상 십팔 관 1이상 나온다. 속옷도 평범한 건 맞지 않는데 이런 남자 같은 체중이 된 건 마흔 너머로 소년일 적에는 뼈와 가죽뿐인 말라깽이면서 몸은 건강하기 짝이 없는 체질로 오 척 육 촌 2의 키와 십이 관 3의 체중을 유지했다.
마른 탓인지 더위로 고생한 적은 없고 땀도 조금도 흘리지 않았다. 지금은 더위도 싫고 땀도 남들만큼 흘리나 살이 찐 지금도 다르지 않은 건 내 몸은 사 계절을 가리지 않고 항상 마실 걸 요구한다는 것이다. 여름이 되면 더욱 그렇다.
항상 마실 걸 요구한다고 하면 굉장히 애주가일 거 같고 평소에 갈망을 참지 못한다 하면 무언가 정신적 요구처럼 들리나 어느 쪽도 아니다. 마치 식물처럼 수분을 원할 따름이다.
처음에 마실 것에 관해 적겠다 말하자 "술이요?"하고 묻더라. 그제야 그럴 만 하지 싶어서 '음료 이야기'로 제목을 바꾸었다.
술은 스무 살 적에 어른 흉내를 내고 싶어 혈기에 맡겨 마시고는 했다. 하지만 술은 내 희로애락을 부채질해 야생을 격하게 하니까, 그런 반성의 결과가 아니라 단지 체질에 맞지 않았는지 애주가가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술맛 자체는 좋아해서 혼자 홀짝홀짝 조니 워커 한 병을 비운 적도 있었다. 물론 하루를 고스란히 썼다. 그것도 늘 있는 일은 아니다. 평소에는 세 잔 애주가라 불릴 정도라 세 잔까지의 맛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미식이다 싶지만 그 이상은 마시고 싶지 않다. 애당초 닭처럼 얼굴이 붉어지는 게 꼴보기 싫어 나리히라를 닮았다 자부하는 남자다움이 헛수고가 되니까 세 잔 이상은 미인이 권할수록 거절하기로 다짐하고 있다. 대신 맛있는 안주가 있고 세 잔만 마셔도 된다면 언제라도 기꺼이 어울리고 싶다. 단지 명주여야만 한다. 이래 봬도 술맛은 조금 안다고 건방지게 구는 주당이다. 술자리의 정취는 이해하나 주정뱅이를 상대하는 건 사양하고 싶다.
술은 짙은 걸 적게 마시는 게 내게 맞기에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맥주는 내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다. 그 약한 쓴맛과 차가움이 목을 지나는 건 좋으나 그다음이 글렀다. 모처럼 좋게 취했는데 화장실에 가야 하는 건 굉장히 번거로운 일이다. 멋을 모르는 이뇨제이다. 그러니 한동안 맥주는 사양하고 있었으나 근래 부모한테는 닮지 않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닮은 우리 멍청한 아들(아니 똑똑한 아들)이 주당이 되어 이따금 식탁서 맥주를 마실 때가 있다. 그때 혼자 마시는 게 겸연쩍은지 아버지한테도 한 잔 따라주기에 어울리는 사이 이것도 뭐 나쁘지는 않지 싶어졌다. 자식의 은혜란 게 이런 걸까.
하지만 나는 여기서 술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다. 하고 싶은 건 단순한 물이나 차, 주스의 이야기다.
내가 고등 소학교에 다닐 적, 그러니 열하나인가 열둘 먹었을 적(이제는 반세기 전의 일이다!) 친구 중에 라무네 공장을 운영하는 집의 자식이 있어서 이따금 초대를 받아 놀러 간 적이 있다. 그럴 때면 막 나온 라무네를 받아 마셨다. 라무네는 결코 음미할 정도의 맛은 아니었으나 불꽃놀이와 비슷하게 어딘가 즐거운 맛이었다. 이제는 그리운 추억의 맛이다. 그 즐거움을 어른을 위한 맛으로 한 게 샴페인 아닐까.
서양인의 생활 속에는 모든 합리적인 것 이외에 무언가 아이 같은 즐거운 구석이 있는 부분에 나는 언제나 마음이 이끌리는데 이를테면 샴페인이나 라이터나 가로수 같은 것의 착상에는 일용성 이상으로 아이 장난 같은 게 담겨 있어서 나는 거기서 도양인이 모르는 향락적 생활 감각을 찾아내는 걸 기뻐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이국정취와 별개로 내 동심을 자극한다.
샴페인이라 하니 생각난 건데 처음에는 샴페인 사이다라 불린 사이다가 만들어진 것도 내가 열둘, 열셋 먹었을 적으로 아마 라무네에서 발달한 유행이지 싶으나 처음 팔기 시작했을 때에는 별개로 진저에일이란 게 있었다. 그 시절 맥주라면 한 다스 이상 마시던 아버지가 마흔을 넘어 금주(건강을 위해 또 아이들에게 모범이 된단 의미에서)를 단행했을 때 맥주 대용으로 매년 환자들에게 받던 명절용 맥주를 모조리 술집에 부탁해 사이다나 진저로 바꾼 걸 다 같이 마신 게 처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 집에선 사이다를 좋아하는 사람과 진저를 좋아하는 둘로 나뉘었는데 나는 단연코 진저 취향이었다. 그 후 진저에일은 매년 존재감이 옅어져 오늘날에는 거의 사이다만 남아 진저에일은 그런 것도 있었지 하는 정도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나는 지금도 이따금 진저에일의 맛을 떠올려 찾고 싶어질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게 세상에는 유행하지 않는 아이러니함에 외로움을 금할 수 없다. 진저에일은 마지막으론 츠바메 식탕칸서 코끼리 라벨이 붙어 있었던 걸 기억하나 지금도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 후 여러 음료가 나왔지만 나는 탄산수를 가장 좋아했다. 이는 단순한 물에 가까우니 좋은 물이 있으면 좋겠지 싶다. 로한은 아사마 산기슭, 코모로시 외각에 좋은 물이 흐르는 곳에 별장이 있어 천하제일의 명수라 부르며 이걸 맛보기 위해 매년 여름 별장에 오는 걸 기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에도 사람의 과장이라 말 같지는 않을지 모르나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그 물을 떠먹어 보고 싶다.
좋은 물로 차를 끓이는 게 가장 좋으나 요즘에는 좋은 차를 만나기 힘들다. 도쿄의 수도로는 차 맛이 좋아질 리가 없다.
요즘 내 일상 속 음료는
아침 일어나면 당근과 사과를 강판으로 간 수제 주스를 큰 컵에 마시고 있다. 위생적인 건 물론이요 당근이나 사과가 신선하면 맛이 굉장히 좋다. 지금은 사과철이 아니라 맛은 없지만 영양 때문에 관둘 수가 없다. 이 당근 주스에 이어 커피를 두세 잔 가량 마신다.
오전에는 끝없이 냉장고에 비축해두는 코카콜라를 애용하고 있다. 코카콜라는 이제까지 없었던 신기한 맛이라 마음에 든다. 이 또한 일본에서는 별로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모양이니 진저에일과 같은 운명을 따르지 않으면 좋을 텐데. 이전에 미적지근한 코카콜라를 마셨을 땐 기분이 불쾌해질 정도였다. 차가워야 진정한 맛이 나는 점도 청량음료 다워 좋다.
저녁 식사 후 음료수론 믹서에 간 여름밀감을 우유에 섞은 걸 좋아한다. 믹서로는 여러 가지를 시도해봤는데 결국 여름밀감이 가장 좋다.
처음 믹서에 간 건 맛이 좋지 않다. 아침의 당근이나 사과도 믹서로는 맛이 나오지 않아 강판을 사용하고 있다.
요즘 들어 믹서를 애물단지 취급하는 게 통설인 듯하나 괜히 문명의 이기(?)가 아닌지 궁리하기에 따라선 재밌는 용법도 가능하다. 믹서만 있으면 설탕이나 콩도 일류의 가루로 만들어주는 묘술이 있다. 이는 우리 자식들한테만 알려준 비법인데 애독자에게만 몰래 공개하겠다. 양갱을 믹서로 갈아 뜨신 물로 녹이는 것이다. 양갱은 좋은 양갱일수록 좋다. 이걸 비웃는 건 콜럼버스의 계란을 욕하는 것이다. 이야기가 또 엉뚱한 길로 샜다.
'고전 번역 > 사토 하루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 제각기의 고생 - 사토 하루오 (0) | 2021.11.10 |
---|---|
보기 드문 문학적 천재 - 사토 하루오 (0) | 2021.11.08 |
넥타이와 지팡이 - 사토 하루오 (0) | 2021.11.03 |
우노 코지 군을 생각한다 - 사토 하루오 (0) | 2021.11.01 |
천성 시인 - 사토 하루오 (0) | 2021.10.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