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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사토 하루오

넥타이와 지팡이 - 사토 하루오

by noh0058 2021.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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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넥타이와 지팡이. 나는 그런 물건의 애호가가 아니다.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든 건 천하의 가십이다.
 가십에 따르면 나는 삼천 개의 넥타이를 지니고 있다 한다! 잘 생각해 보라. 하나에 오 엔이라 치고 삼천 개면 일만 오천 엔이다. 나는 불행히도 그만큼이나 철저히 비상식적이지 않다. 넥타이 삼천 개란 사실 백발 삼천 개처럼 수많다는 뜻일지 모른다. 그럼 나는 실제로 몇 개나 가지고 있을까. 세어 본 적은 없으나 고작해야 서른 개나 마흔 개. 물론 나는 어떤 것이든 수집하는 취미가 일체 없다――없었다고 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 요즘 들어 조금이나마 수집가의 마음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렇더라도 나는 수집하기보다는 놓아주는 쪽에 더 많은 관심을 느끼고 있다. 그러니 나는 넥타이도 꽤나 많이 놓아주었다. 즉 남이 바란다면 그냥 준 일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런 걸 소중히 하나하나 보존해도 아마 삼백 개는 되지 않을 터이다. 나는 십오 년 동안 양복을 착용하고 있다. 십오 년 동안에 삼백 개의 넥타이를 사는 건 딱히 도락이라 할 정도도 아니지 않을까.

 지팡이는 더욱 그렇다. 나는 이제까지 이십오 엔보다 비싼 지팡이를 사본 적이 없다. 지금 내가 가진 건 세 자루이다. 한 자루는 등나무로 이는 십팔 엔이었다. 하나는 대나무 뿌리로 이는 삼 엔 이십 전이었다. 오 월달에 다른 지방에서 샀다. 또 하나는 역시나 이번 여름 코야산에서 분명 일 엔 이십 전이었으리라――내가 산 것도 아니고 누가 사주었다. 나는 여행 중에는 방해가 되기 때문에 대부분 지팡이를 지참하지 않는다. 그러다 손이 심심해지면 도중에 그만 그런 걸 사고 만다. 그것도 저렴한 것 중에 마음에 드는 게 있을 때나 그렇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세 자루 주 어느 것에도 장식은 은나사 하나 박혀 있지 않다. 물론 이전에 한 번 마노 손잡이가 있는 걸 하나 구입한 적은 있다. 하지만 긴자의 인파 속에서 뒤에서 온 사람이 걷어차는 통에 떨어트려 손잡이가 박살 나 버렸다. 걷어찬 녀석은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돌아보지도 않고 떠나버렸다. 나는 그 녀석의 예의와 무신경함에 화가 났지만 그에 비하면 지팡이가 아쉽지는 않았다. 실제로 슬슬 질리던 참이었다. 한 달 정도 더 버텼다면 누구한테 주었으리라.
 사실은 위와 같다. 그런데 왜 이러한 가십이 생겼는가. 나는 '하루 벌어먹고사는 사람'이란 단편 속에서 넥타이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또 '염세가의 생일' 속에서도 지팡이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어떻게 썼는지는 그쪽을 읽어보길 바란다.
 사람들은 내가 쓴 진짜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떤 바보는 사토 하루오란 남자가 폼 재는 회사원처럼 넥타이만 신경 쓴다고 냉소할 것도 안 된다는 양 자신들의 저능함을 고백했다.
 구태여 말하자면 나는 뭐든지 좋아한다. 넥타이는 물론이요 손톱 때마저 좋아한다 하고 싶다. '내가 만약 왕이 된다면' 나는 그 취향을 철저하게 하리라. 왕이라도 아닌 한 뭐, 한 자루에 삼십 엔이나 십 엔에 살 수 있는 넥타이나 지팡이로 자신의 취향을 주장하고 발휘하는 셈이다. 뭐가 문제일까. 애초에 꾸미지 않는다면 골격 또한 사랑스러우리라. 남들만큼 꾸민다면 조금은 그 사람의 신경도 드러내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가십과 실제가 다른 걸 뭐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되려 삼천 개의 넥타이와 하나에 천 엔 하는 지팡이를 가지고 누추한 마을에 칩거하는 걸 예술가 답다는 생각마저 한다. 발자크는 조끼 한가득 보석을 채웠다고 한다. 어처구니가 없다. 나는 삼천 개의 넥타이에도 미치지 않는 집에 살며 고용인에게 나리 소리를 들으며 산다. 이럼에도 한 시대의 문인 중 하나일까. 자문자답 끝에 입을 다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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