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시인 바보'란 말이 있다. 시인은 보통 속세 사람으로선 무능력하지만 그 때문에 사람은 순진무구하다. 하늘은 그런 무구함을 보호할 생각으로 시인에게 속세적 재능을 주지 않았단 설이다. "시는 다른 재능이다"란 옛사람의 말도 같은 뜻일까. 이러한 생각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람으로 나는 항상 무로우 사이세이 군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즉 내가 생각하는 천성 시인의 전형이다.
스스로 능력이 없다 말하는 그는 능력이 있네 없네의 문제가 아니라 문명이란 생활 형태하고는 전혀 동조하지 못하는 야생아이다. 시인의 천직은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진 로봇화한 인간 사회에 인간 본연의 원시적인 창조주의 창조 그 자체를 보존하는데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 천성 시인은 당연히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존재이다.
이 천성 시인은 시적 재능 이외엔 시인으로서 유해하고 불필요한 건 하나도 지니지 않았다. 세상을 살아가는 재능은 물론이요 학식적 재능도 없다. 시적 교양도 그리 많이 가진 것 같지는 않다. 그에게는 그런 건 모두 길거리 돌이나 같으리라. 그는 타고난 시적 혼의 신음을 그대로 자신의 말로 뱉어낼 뿐이다.
언젠가 아쿠타가와가 그의 말투를 흉내내며 그의 구를 몇 개인가 설명했다.
도미 가시를 다다미에 주어낸 추운 밤일까
어떠냐. 이런 식으로 연속으로 네다섯 구씩 쌓아 올리면서 전부 뛰어나니 참 대단한 녀석이지 않으냐.
그렇게 놀라서 감탄한 걸 기억하고 있다. 학식적 재능과 세간적 재능에 교양을 덧붙인 우수한 비평가고 또 시를 가장 사랑하는 애호가라도 결코 천성 시인은 아니었던 아쿠타가와가 사이세이의 야생적 시를 감탄한 건 당연한 일로 아쿠타가와가 시를 얼마나 깊게 이해하였는지 증명해주는 격이리라. 그 두 사람이 서로 자신에게 없는 자질을 인정하며 막역한 사이를 맺은 것도 또 예술가 세계의 한 이야기로 전해져야 하리라.
천성 시인인 야생아는 인간보다 되려 그와 마찬가지로 원시적 존재였던 돌과 나무에 인간 이상의 친애를 품었다. 그는 절단된 가지에서 나무의 비명을 듣고 이를 마음 아파했다. 그가 정원을 꾸미는 걸 사랑하는 것 또한 말 못하는 풀이나 나무 돌, 나아가서는 도기까지 인간의 말 이상으로 흥미로운 말을 들어 야생 그대로 문명계에 존재하는 돗포를 위로하기 때문이리라.
사십 년 전, 내가 처음으로 고인 히로카와 마츠고로의 하숙에서 그를 보았을 때 그는 밤마다 취해서 싸움의 씨앗을 뿌려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를 청이(멍청이의 약자일까?)라 매도했다. 그 시절의 날쌔고 용감한 야생아의 그림자는 얼핏 온화하고 우아한 그의 시 안쪽에도 지열처럼 숨어 있다.
언젠가 한 번 그의 카루이자와 집을 찾아 그 아름다운 이끼 정원에 감탄한 적이 있다. 가까이 자연이 있는 산 끝자락 산림의 한 켠인 얼추 칠팔십 평(?) 되는 앞뜰에는 특별히 심어진 나무도 없이 깊게 울창하여 당구대처럼 평평하고 푸른 이끼가 눈에 산뜻함을 주었다. 그는 이따금 외국인도 찾아온다며 의기양양했다. 그 들은 이야기로는 이끼란 건 물을 지나치게 주어 뿌리가 썩은 것이니 이 정원에는 한 부분에 대나무로 짠 평상을 깔고 그 위에 흙을 두어 이끼를 자라게 하니 물은 결코 뿌리에 그치지 않고 또 부리도 썩지 않고 자란다고 한다.
스스로 능력이 없다고 칭하며 그러한 궁리도 거의 없어 보이는 그가 사랑하는 식물을 대할 때면 이만한 관찰력으로 그러한 대책을 고안하는 능력이 있는 것에 나는 처음으로 그의 비범함을 발견하고 경애의 정을 새로 품었다.
그는 그동안 쌓아 온 술 탓에 근래 들어 위병을 앓고 있다. 나이는 나보다 하나인가 둘 정도 많은 걸로 아는데 아직 그리 늙지는 않았다. 요즘의 맹더위에 그가 자중하고 또 잘 챙겨 먹기를 바라며 붓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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