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년모월모일――이 날자는 당시 그가 보낸 편지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시절의 편지는 두 통이나 세 통――전집에도 미수록된 게 보존되어 있다――단지 홋카이도에 있는 동생이 소중히 가져가서 돌려주지 않는다.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아직도 돌려주지 않는다. 곤란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 남자는 무엇이든 남의 걸 가지려 드니 곤란하다. 이번 호에도 이 편지의 사본이라도 제공하면 유익할 터인데 화가 나기 시작했다.(이 부분을 발췌해 어리석은 동생에게 보내줄 생각이다.) 어찌 되었든 어느 날, 해는 또렷이 기억나지 않지만 2월인가 3월 봄의 아직 추운 날이었다. 처음 아쿠타가와를 방문했다. 그전에 두세 번 편지를 주고받은 에구치를 통해 간접으로 교우 관계는 만들어져 있었나 직접 만나는 건 이 날이 처음이었다. 집에 없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집에 있었다. 손님이 있는지 문 앞에는 차가 놓여 있었다. 손님을 맞는 여종이 요령이 없는 듯했다.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라 그러려니 하며 명함을 건네고 안으로 전달해달라 부탁했다. 그러자 그가 일부러 현관까지 나와서 정중히 2층으로 불렀다. 주객들에게 인사만은 정성스레 했지만 처음 만나 하는 인사 같은 딱딱함은 없었다. 하지만 아쿠타가와는 어쩐지 내키지 않는 기미였다. 그는 물었다.
"여종이 나 없다고 안 했어?"
"아니, 단지 좀 애매한 태도긴 했지."
"그럼 좀 낫나. 실은 없는 걸로 해달라 했거든――원고 마무리가 안 돼서 타키타가 아래에 눌러 앉아 재촉 중이라서 말야."
아쿠타가와가 그렇게 말하니 내가 서둘러 돌아가겠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그는 안타깝다는 양
"그래? 아니, 방해된다는 건 아냐. 네가 돌아간다고 술술 쓸 자신도 없고. 나로선 아예 너랑 한바탕 떠들어두는 게 편하지만 마음이 진정이 되지가 않네. 이런 어색함이 너한테도 전해져 우리의 첫 만남의 기회를 원활하고 즐거운 걸로 만들 수 없는 게 아쉬우니 말야."
아쿠타가와의 말은 대강 이런 식이었다. 나는 그 뜻을 이해하고 다음 번 방문을 기약하며 만족스레 자리를 떴다.
이때 그가 무엇을 쓰는 중이었는지 물론 제목 정도는 들었지만 잊어버렸다――그럴만한 게 스무 해 전 일이다. 아마 '손수건'이었을 테지.
방구석에 놓인 책상 앞에 주객 의자를 두고 책상 위에 뒤러의 멜랑콜리아를 펼쳐두고 그가 그 틈 없는 구상의 묘를 절찬하고 그 금속적으로 투명한 선을 논하고 또 그의 예술상 의견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설명한 건 두 번째 방문이었지 싶다. 첫 방문에는 그만한 여유를 지니지 못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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