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무로우 군의 편지를 머리맡에 받아서 몸도 일으키지 않고 펼쳐 보니 망춘시집에 서문을 써달라고 한다. 읽으면서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어떤 대화이다. 그건 불과 일주일 전에 나를 찾은 어떤 사람과 내가 나눈 것이다――
"저번에 무로우 씨를 찾아서 나쁜 일인 줄 알면서도 직접 시를 칭찬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 시를 칭찬하는 건 자기 소설엔 감탄하지 못 했다는 말 아니냐고 하더군요. 그런 나쁜 지혜는 선생님이 주신 거 아닙니까?"
"아니, 나는 무로우 군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하지만 기다려달라. 내가 오 월에 그와 만났을 때 '신조'에 오른 그의 신작 시를 칭찬하며 그게 진짜 네 것이다. 네 소설의 전부를 보느니 그 시 중 한 편을 읽는 게 너를 한 층 더 친하게 접하는 일이다――그런 말을 한 건 기억하다. 그 소설을 폄하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어쩌면 무로우 군은 내 생각을 듣고 그런 식으로 해석한 걸지 모르겠다."
나는 정말 그런 건가 싶었지만 그럼에도 무로우 군이 나 같은 사람의 한 마디를 그렇게나 신경 써 준 사실을 고맙게도 여겼다.
생각해 보면 무로우 군은 문학적 사업면에서도 또 연령면에서도 나의 선배이다. 무로우 군과 사교하는 이상 나는 무로우 군한테 형 대접을 해야 한다. 또 고백하자면 사실 나는 무로우 군의 천성적인 청아한 인간성을 항상 존경하면서도 오만하게 태어난 내 성품 탓에 이 기분을 솔직히 드러낸 적이 없다. 심지어 겸허한 무로우 군은 그런 나를 용서해주었을 뿐 아니라 지금은 이 시집에, 가장 자신에 차있을 이 시집에 서문을 써달라는 부탁마저 했다.
무로우 군의 시집에 나 같은 것의 문장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나는 단지 오랜 우정의 증거로 이렇게만 남길뿐이다.
하지만 무로우 군, 이 문장은 시집 권두가 아니라 되도록 권말에 실어주세요. 왜냐하면 이 조잡한 문장 바로 뒤에 마치 가을 하늘처럼 깊고 조용하며 음영이 절묘해 구석구석까지 촉촉한 무로우 군의 시가 이어지는 건 설령 무로우 군 본인이 참더라도 내게는 나 자신의 괴로움보다 되려 일개 독자의 관점으로 눈에 거슬려 모처럼 맑아진 공기가 흐트러지는 것만 같을 테니까요.
다이쇼 11년 10월 중순
사토 하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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