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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사토 하루오

단편 소설은 왜 부진한가 - 사토 하루오

by noh0058 2021.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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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 소설은 왜 부진한가.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에는 사실 그런 현상을 아직 깨닫지 못 했다. 그러나 요즘 잡지에는 소위 중간 소설이란 게 늘어서 이전과 같은 단편 소설은 존재감이 많이 희박해졌다. 그런가 하면 새로운 형태의 단편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독자가 단편을 바라지 않는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아쿠타가와의 작품은 여전히 즐겨 읽히고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 문제를 듣고 보니 확실히 그런 사실은 있는 듯했다. 저널리스트의 착안에 감탄함과 동시에 자신의 어리석음도 깨달았다. 굳이 자기변호를 하려는 생각은 없으나 나는 사실 현대 문단에 별 흥미도 관심도 없으며 내가 하고 싶은 일에만 열중하였다. 요즘 들어선 요 일 년 가량 양산박의 호걸들하고만 살아서 현대 문학과 접촉하는 건 거의 아쿠타가와상 후보작품만 훑는 정도가 되었다. 또 그 아쿠타가와상 후보 작품도 근래 들어 평균 백 장이 기준이 되어 같은 편수라도 이전의 두 배나 세 배 가량 노안에 부담을 줌에도 입을 다물고 있었단 사실도 깨달았다.
 정말로 단편 다운 단편(정확히는 서른 장에서 쉰 장 가량의 짧지만 맛이 중후한 작품)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없다. 부진이라고 해야 할까, 유행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여하튼 그런 사실은 분명하다.
 잡지를 소설의 발표 기관으로 삼는 우리나라에선 단편 소설이 편리한 장르이기도 해서 독자 기풍에 맞았는지, 모파상, 체호프, 도데, 나아가서는 포 등 종류는 달라도 같은 단편 작가가 기뻐할 수 있는 게 메이지 중기 이래의 현상이었었는지, 언제부터인가 아니, 딱 잘라 종전 후 중간 소설에 밀려 단편 소설이 오늘날처럼 쇠퇴하게 된 이유가 뭔지 조금 생각해보고 싶어진다. 생각해 보면 알 거 같기 때문이다.
 발표 기관이 잡지가 아니라 소설 특집이 된 게 전후의 유행이며 유행하는 작가를 쭉 줄지은 편집 방법이 인기라고 한다. 단지 짧은 걸 잔뜩 모으지 않고 머릿수는 절반이라도 하나하나가 어느 정도 분량이 갖춰져 있는 게 독자들이 기뻐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백 장이나 백이십 장 같은 장수가 나오거나 연재도 이뤄져 특히 중간 소설이라 불리는 게 소설의 새 바람이 되었다고 한다.
 중간 소설이란 명칭이 어디서 온 건지는 잘 모르겠다. 대중 소설과 예술 소설의 중간이란 뜻인가 아니면 단편과 장편의 중간 정도 되는 분량이란 뜻인가. 그도 아니라면 사실과 문학의 중간이란 뜻인가. 제각기 모두 중간이니 어느 중간 소설인지는 몰라도 종래의 단편과 비교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차이는 단편보다 길어 중편 소설에 가깝고 또 단편으로는 그 길이 때문에 이야기의 줄기는 반드시 필요하지 않고 한 정경 또는 한 성격의 묘사만으로도 작품은 성립하나 중간 소설(혹은 중편 소설) 쯤 되면 그 길이를 끌고 가기 위해 꼭 줄거리가 필요해진다.
 만약 풍속 소설이라 칭해지는 것으로 중간 소설을 만들자면 그 소설의 줄거리는 즉 세상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이런 종류의 애독자는 결코 문학을 읽는 게 아니라 세상 이야기를 즐기고 있을 뿐이다.
 단편 소설은 그 길이의 제약상 결코 세상 이야기는 쓸 수 없다. 허투루 쓰면 그야말로 줄거리 요약으로 그치리라. 마찬가지로 세상을 그리고 풍속을 묘사해도 단편으로는 이야기가 작품 등 뒤에 숨고 표면으로 드러나는 건 모든 종류의 단편 소설과 마찬가지로 항상 일종의 시적 정서의 표현이 목적이 된다. 단편 소설이란 결국 인간의 내면, 외면 양면의 일상생활 속에서 편린을 드러낸 시적 정서를 파악한 산문 예술이다. 그렇게 정의해도 문제는 없으리라.
 현대(전후)의 독자는 거리낌 없이 말하면 문학적으로는 교양이 없으며(자신은 교양 있다 자신하는 분은 예외로 삼아도 좋다.) 시적 정서 따위는 시대에 뒤처진 풍마우(이란 말도 알지 못 할 테지. 그럼 사전을 찾아보라.)이리라. 그런 것보다는 재밌는 세상 이야기 쪽이 알기 쉽고 생각도 많아진다. 독자의 취향이 단편 소설서 엇나간 게 아닐까.
 혹은 쓰는 쪽이 문제일까. 인생의 견해에 개성이 필요하고 착상을 요하며 표현에 또 생각을 거듭해야 하는(사실 진정한 작가는 모두 그런 걸 즐거워 하나) 그러면서도 완성본은 짧아지는 수치가 맞지 않는 일을 하느니 독자도 알기 쉽게 기뻐하고 펜이 척척 움직여 일하는 보람이 느껴지는 세간 소설이야말로 직업으론 수치가 맞는 걸지도 모르겠다.(나는 다르단 작가는 예외로 삼아도 좋다.)
 그 독자에 그 작가인 셈이다. 단편 소설의 부진도 그렇지만 이렇게 나아가면 단편만 아니라 언젠가 현대 문학이 멸망하는 걱정도 해야 하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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