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소설번역413 미생의 믿음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미생은 아까부터 다리 아래서 여자가 오는 걸 기다리고 있다. 올려다보니 높은 돌난간에는 담쟁이덩굴에 반쯤 뒤덮여 있고 이따금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소매는 선명한 햇살을 받으며 유유히 바람에 나부꼈다. 하지만 여자는 아직 오지 않는다. 미생은 휘파람을 불면서 가볍게 다리 아래의 주州를 둘러보았다. 노란 진흙으로 된 다리 아래의 주는 두 평 가량의 넓이를 지녀서 곧장 물과 이어져 있다. 물과 갈대 사이에선 분명 게라도 살고 있을 테지. 둥근 구멍이 몇 개나 뚫려 있고 그곳에 파도가 닿을 때마다 작게 철렁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여자는 아직 오지 않는다. 미생은 기다리기 힘들다는 양 물가까지 이동해 배 한 척 지나지 못할 법한 조용한 강줄기를 바라보았다. 강가에는 푸른 갈대가 빼곡히 자라 있다. 그뿐 아니.. 2021. 7. 7. 무도회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메이지 19년 11월 3일 밤이었다. 당시 17살이었던 ――가문의 아가씨 아키코는 머리가 벗겨진 아버지와 함께 오늘밤 무도회가 열린다는 로쿠메이칸의 계단을 올랐다. 밝은 가스등을 받은 폭이 넓은 계단 양쪽에는 거의 인공에 가까운 커다란 국화꽃이 삼중의 바자울을 이루고 있었다. 국화는 가장 안쪽이 옅은 붉은색이었고, 중간이 짙은 노란색, 가장 앞에 하얀 꽃잎을 유소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런 국화 바자울이 끝나는 계단 위 무도실에서는 밝은 관현악 소리가 억누르기 힘든 행복의 숨결처럼 쉼 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아키코는 일찍부터 프랑스어와 무도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정식 무도회에 오르는 건 오늘 밤이 난생처음이었다. 때문에 마차 안에서 이따금 말을 거는 아버지에게도 속이 빈 대답만 할 뿐이었다. 그녀의.. 2021. 7. 6. 창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사와키 코즈에 씨께―― 우리 집 2층 창문은 반대편 집의 2층 창문과 마주하고 있다. 반대편 2층 창문에는 백합이나 장미 화분이 다소곳이 놓아져 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노란 커튼이 무겁게 내려와 있어 방주인의 모습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우리 집 2층 창문에는 낡은 팔걸이의자가 놓여 있다. 나는 매일 그 팔걸이의자에 앉아 멍하니 길가의 소리를 듣는다. 우리 집에도 손님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우리 집 현관에는 전동벨이 달려 있다. 지금도 그 유쾌한 전동벨 소리가 집안에 기세 좋게 울리면 나는 이 팔걸이 의자서 일어나 재빨리 멀리서 온 드문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두 팔을 크게 벌린 채로 현관을 향해 걸어가리라. 나는 이따금 그런 공상을 하면서 멍하니 길거리의 인파가 만드는 소리를 듣는.. 2021. 7. 5. 개화의 살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아래에 실은 건 최근 내가 혼다 자작(가명)에게 빌린 고 닥터 키타바타케 기이치로(가명)의 유서이다. 키타바타케 닥터는 설령 실명이 알려진들 이제와 아는 사람 하나 없으리라. 나 또한 혼다 자작과 친해져 메이지 초기의 이야기를 듣는 걸로 비로소 이 닥터의 이름을 알 기회를 얻었다. 그의 사람 됨됨이는 아래의 유서를 통해 충분히 설명이 될 게 분명하지만 내가 주워들은 두세 사실을 더하면 닥터는 당시 내과 전문의로서 유명했음과 동시에 연극 개량에도 급진적인 의견을 가진 일종의 극통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후자에 관해서는 닥터의 손을 거친 희극마저 있어서, 볼테르의 Candide 중 일부를 도쿠가와 시대의 일로 각색한 두 막짜리 희극이라고 한다. 기타니와 츠쿠바가 촬영한 사진을 보면 기타바타케 닥터는 영국풍 턱.. 2021. 7. 4. 두 친구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는 제일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후쿠마 선생님께 독일어를 배웠다. 후쿠마 선생님은 오가이 선생님의 '두 친구' 속에서 등장하는 F 군이시다. '두 친구'는 당시엔 아직 활자화되어 있지 않았으리라. 적어도 내가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후쿠마 선생님은 평균보다 키가 작은 편이었으리라. 금테 근시 안경을 쓰시고 꽤 긴 콧수염을 기르셨던 걸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후쿠마 선생님께 어떤 친근함을 느꼈다. 그건 선생님이 청년처럼 해악을 즐기셨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어느 시간에 쿠메 마사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말 뜻을 알아 듣지 못 하겠나요?" 쿠메 또한 장난으로 맞받아쳤다. "네, 전혀 모르겠어요.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 후쿠마 선생님께서는 2학기부터 대뜸 우리에게 Gizy.. 2021. 7. 3. 입사인사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는 과거에 2년 동안 해군 기관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이 2년은 내게 결코 불쾌한 2년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공무 틈틈이 창작에 종사할 수 있는――혹은 창작 틈틈이 공사에 종사할 수 있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내 좁은 견문에 의하면 갑 교사는 초인 철학을 소개하려던 탓에 문부당국의 비위를 건드렸다고 한다. 을 교사는 연애 문제의 창작에 빠진 탓에 육군당국의 문책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선생들에 비하면 내가 관립 학교 교사 일과 소설가를 겸업할 수 있었던 건 분명히 보기 드문 상전 대우이며 감사히 받아들여야 할 일이리라. 물론 그러한 갑 선생 을 선생이 당당한 본관 교사였던 반면 나야 일개 위탁 교사에 지나지 않으니 내가 호흡할 수 있었던 자유로운 공기도 사실은 해군 당국이 내게 후했다기보다도 .. 2021. 7. 2. 이전 1 ··· 51 52 53 54 55 56 57 ··· 69 다음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