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소설번역413 백로와 원앙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2, 3년 전의 여름이다. 나는 긴자를 걸으면서 두 여자를 발견했다. 그것도 평범한 여자는 아니었다. 놀랄 만큼 예쁜 뒷모습을 한 두 여자를 발견한 것이다. 한 명은 백로처럼 가늘었다. 다른 한 명은――이 설명은 조금 성가시다. 본래 예쁜 모습이란 건 통통한 사람보다도 초췌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 듯하다. 하지만 한 명은 뚱뚱했다. 평범하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살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몸의 조화를 조금도 훼손하지 않았다. 특히 허리를 휘두르듯 유유히 걷는 모습은 원앙처럼 훌륭했다. 한 쌍을 이루는 줄무늬 기모노에 여름용 오비를 두르고, 당시에 유행했던 망을 걸친 한 쌍의 파라솔을 든 걸 보면 자매 관계일지 모르겠다. 나는 마치 이 두 사람을 무대 위에 세운 것처럼 갖은 면과 선을 감상했다. 본래 여.. 2021. 4. 4. 연못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는 연못 옆을 걷고 있다. 낮인가 밤인가. 그마저도 알 수 없었다. 단지 어디선가 왜가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덩굴로 뒤덮인 나뭇가지 사이로 옅은 빛이 감도는 하늘이 보였다. 연못은 내 키보다 큰 갈대가 수면을 뒤덮고 있다. 물도 움직이지 않는다. 마름도 움직이지 않는다. 물 밑바닥에 사는 물고기도――물고기가 이 연못에 살기는 하는 걸까. 낮인가 밤인가. 그마저도 나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요 대여섯 날 동안 이 연못 옆만을 걸었다. 추운 아침 햇살의 빛과 함께 물냄새나 갈대 냄새를 몸에 두른 적도 있다. 그런가 하면 비개구리의 목소리가 덩굴에 뒤덮인 나뭇가지에서 하나하나 작은 별을 부른 기억도 있었다. 나는 연못 옆을 걷고 있다. 연못에는 내 키보다 큰 갈대가 수면을 뒤덮고 있다. 나는 먼 옛날.. 2021. 4. 3. 개구리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내가 지금 자는 곳 옆에는 오래된 연못이 있는데, 그곳엔 개구리가 잔뜩 있다. 연못 주위에는 갈대와 창포가 무성했다. 그런 갈대나 창포 너머에는 높은 버들 나무들이 기품 있게 바람과 싸웠다. 또 그 너머에는 조용한 여름 하늘이 펼쳐져, 항상 자잘한 유리 조각 같은 구름이 빛났다. 그리고 그 모든 게 실제보다도 훨씬 아름답게 연못의 수면에 비쳤다. 개구리는 연못 안에서 하루도 질리지 않고 개굴굴, 고골골하고 울었다. 살짝 들어 보면 도무지 개굴굴, 고골골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격한 의논을 나누는 중이다. 개구리가 말을 하는 게 꼭 이솝 시대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개중에서도 갈댓잎 위에 자리한 개구리는 대학교수 같은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 "물은 무얼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 개구리가 헤엄.. 2021. 2. 24. 봄의 심장(The Heart of the Spring)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역 한 노인이 명상에 잠긴 채로 바위가 많은 해안가에 앉아 있다. 얼굴은 꼭 새 다리라도 되는 것처럼 살이 없다. 위치는 질 호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암나무속에 둘러싸인 평평한 섬의 끝자락이었다. 그 옆에는 얼굴이 붉은 열일곱 소년이 파리를 쫓아 조용한 수면을 스치는 제비 무리를 바라보며 앉아 있다. 노인은 낡고 푸른 우단을, 소년은 푸른 모자에 라샤 웃옷을 입고 목에는 푸른 구슬 몇 개를 걸고 있다. 두 사람의 뒤에는 반쯤 나무 사이에 숨은 작은 수도원이 있었다. 여왕에 붙은 배교자들이 수도원을 불태운 건 먼 옛날의 일이다. 지금은 이 소년이 다시 골풀 지붕을 깔아, 노인의 여생을 편히 지낼 수 있게 만들었다. 수도원 주위에 자리한 정원에는 소년의 가래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일까. 노인이 심은 백합이나 .. 2021. 2. 23. 책을 모으는 일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본래 나는 어떤 일에나 집착하지 않는 성격이다. 특히 수집이란 건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 곤충 표본을 모은 거 말고는 아직도 열중해본 적이 없다. 따라서 성냥 상표는 물론이요, 오일캔이든 간판이든 내지는 유명 작가의 그림이든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모으는 사람들에게는 경의에 가까운 걸 느끼곤 한다. 때로는 약간의 혐오가 뒤섞인 감탄 가까운 걸 느끼고 있다. 서적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나도 벌어먹는 게 있으니 조금의 서적을 지니고 있다. 허나 그마저도 모은 건 아니다. 되려 저절로 모였다 해야 한다. 만약 모은 서적이라면 무언가 전체를 통트는 맥락 따위가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나의 책장 안 서적은 모은 서적이 아니라는 증거라도 되듯이 굉장히 제각각이며 또 뒤섞여 있다. 맥락 따위는 약으로 쓰고 싶어도 없다... 2021. 2. 22. 이전 1 ··· 66 67 68 69 다음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