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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개구리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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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지금 자는 곳 옆에는 오래된 연못이 있는데, 그곳엔 개구리가 잔뜩 있다.
 연못 주위에는 갈대와 창포가 무성했다. 그런 갈대나 창포 너머에는 높은 버들 나무들이 기품 있게 바람과 싸웠다. 또 그 너머에는 조용한 여름 하늘이 펼쳐져, 항상 자잘한 유리 조각 같은 구름이 빛났다. 그리고 그 모든 게 실제보다도 훨씬 아름답게 연못의 수면에 비쳤다.
 개구리는 연못 안에서 하루도 질리지 않고 개굴굴, 고골골하고 울었다. 살짝 들어 보면 도무지 개굴굴, 고골골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격한 의논을 나누는 중이다. 개구리가 말을 하는 게 꼭 이솝 시대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개중에서도 갈댓잎 위에 자리한 개구리는 대학교수 같은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
 "물은 무얼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 개구리가 헤엄치기 위함이다. 벌레는 무얼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 개구리가 먹기 위함이다."
 "맞다, 맞아." 연못 안 개구리가 말했다. 하늘과 초목을 담은 연못 수면이 거의 매워질 정도의 개구리니 찬성하는 목소리도 물론 큼지막했다. 마침 그때, 버들나무 아래에서 자고 있던 뱀이 이 시끄러운 개굴굴, 고골골하는 소리에 눈을 떴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연못 쪽을 보고는 여전히 졸리다는 양 혀를 날름거렸다.
 "땅은 무얼 위해 존재하는가. 초목이 자라기 위함이다. 그럼 초목은 무얼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 개구리에게 그림자를 주기 위함이다. 따라서 모든 땅은 우리 개구리들을 위해 존재하는 셈이다."
 "맞다, 맞아."
 뱀은 두 번째 찬성을 듣고는 갑자기 몸을 채찍처럼 뻗었다. 그러더니 갈대 안을 기면서 검은 눈동자를 빛내더니 주의 깊게 연못 안 상황을 바라보았다.
 갈댓잎 위 개구리는 태연히 입을 크게 벌리며 논했다.
 "하늘은 무얼 위해 존재하는가. 태양을 담기 위함이다. 태양은 무얼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 개구리의 등을 말리기 위함이다. 따라서 모든 하늘은 우리 개구리를 위해 존재하는 셈이다. 이미 물도 초목도 벌레도 땅도 하늘도 태양도 모두 우리 개구리를 위한 것이다. 삼라만상이 모두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사실은 이제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나는 이 사실을 제군 앞에 선포하는 동시에 모든 우주를 우리를 위해 창조한 신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다. 신의 이름은 여호와이다."
 개구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동자를 굴리고 다시 커다란 입을 벌려 말했다
 "신의 이름은 여호와……"
 그 말이 미처 끝나지 않은 가운데, 뱀의 머리가 부딪히듯이 뻗는다 싶더니 웅변가 개구리가 순식간에 그 입에 삼켜졌다.
 "개굴굴, 큰일이다."
 "고골골, 큰일이다."
 "큰일이다, 개골골, 고골골."
 연못 속 개구리가 놀라서 술렁이는 가운데, 뱀은 개구리를 입에 담은 채로 갈대 안에 숨어버렸다. 그 후의 소란은 아마 이 연못이 생긴 이후로 처음 벌어진 일이리라. 내게는 그 가운데에서 젊은 개구리가 울면서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물도 초목도 벌레도 땅도 하늘도 태양도 모두 우리 개구리를 위한 것이다. 허면 뱀은 또 어떠한가. 뱀 또한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렇다. 뱀 또한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 뱀이 먹지 않았다면 개구리가 늘었을 게 분명하지. 늘어나면 연못이――세계가 반드시 좁아지고 말아. 그러니 뱀이 우리 개구리를 먹는 게지. 먹힌 개구리는 수많은 행복을 위해 희생된 거야. 그래, 뱀 또한 우리 개구리를 위해 존재하지. 세계의 모든 것이 우리 개구리를 위해 존재하는 거야. 신의 이름은 여호와일지니."
 이게 내가 들은 연장자 개구리의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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