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열 개의 바늘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2. 24.
728x90
반응형
SMALL

    하나 어떤 사람들.

 우리는 이 세계에 어떤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 사람들은 어떤 것이든 보고 느끼는 동시에 해부하고 만다. 즉 그 사람들에게 한 송이 꽃은 아름다운 동시에 필시 식물학 교과서에 실린 장미과 식물로 보이리라. 설령 그 장미꽃이 꺾여 있더라도. ……
 단지 보고 느낄 줄 아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보다 행복하다. 성실함이라 불리는 미덕 중 하나는 그런 사람들(보고 느끼는 동시에 해부하는)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평생을 무서운 장난에 써먹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갖은 행복이란 해부하기에 감소하고, 동시에 갖은 고통 또한 해부하기에 증가하리라. "태어나지 않았다면' 운운하는 건 그야말로 그런 사람들을 위한 말이다.

     둘 우리

 우리는 반드시 우리가 아니다. 우리의 선조는 다들 우리 안에서 숨 쉬고 있다. 우리 안에 있는 우리의 선조를 따르지 않으면 우리는 불행해지고 만다. '과거의 업보'란 말은 이런 불행을 비유하기 위한 것이리라.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는 건 즉 우리 안에 있는 우리의 선조를 발견하는 일이다. 동시에 우리를 지배하는 천상의 신들을 발견하는 일이다.

     셋 까마귀와 공작과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사실은 우리가 항상 우리를 넘어야 한다는 점이다. 갖은 낙천주의적 눈속임을 배제하면 까마귀는 결단코 공작이 될 수 없다. 어떤 시인이 적은 한 줄의 시는 항상 그의 시의 전부였다.

     넷 공중의 꽃다발

 과학은 갖은 걸 설명한다. 미래에도 갖은 걸 설명하리라. 하지만 우리가 중시해야 하는 건 그저 과학 그 자체이자 혹은 예술 그 자체이다. ――즉 우리의 정신적 비약의 공중에 놓인 꽃다발만이다. L'home est rien이라 할 생각은 없지만, 우리는 '사람으로서'는 큰 차이를 지니지 않았다. '사람으로서'의 보들레르는 갖은 정신병원으로 가득했다. 단지 '악의 꽃'이나 '작은 산문시'는 한 번도 그들의 손을 타지 않았다.

     다섯 2+2=4

 2+2=4는 진실이다. 하지만 사실상 + 사이에 무수한 인자가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즉 갖은 문제는 이 + 안에 담겨 있다.

     여섯 천국

 만약 천국을 만든다면 단지 지상에만 존재해야 한다. 이 천국은 물론 가시 안에 장미꽃을 피운 천국이리라. 그곳에는 "체념"이라는 절망에 머무른 사람들 이외에는 개들이 잔뜩 걷고 있다. 물론 개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일곱 참회

 우리는 갖은 참회에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하지만 갖은 참회의 형식은 '내가 한 일을 하지 않도록. 내가 하는 말을 따르도록."이다.

     여덟 어떤 사람

 나는 또 어떤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일에나 간단히 질리지 않는다. 한 여인이나 한 마음(이데아)이나 한 패랭이꽃이나 한 조각 빵을 어떻게든 얻으려 한다. 때문에 그런 사람의 대다수는 호화롭게 살지 못 한다. 동시에 그런 사람들만큼 비참하게 사는 사람도 없다. 그런 사람들은 어느 틈엔가 여러 것의 노예가 되어 있다. 때문에 타인에게는 천국을 주어도――혹은 천국에 이르는 길을 주어도 천국은 끝내 그 사람들 본인의 것이 될 수 없다. '다욕상신'이란 말은 그런 사람들에게 주어졌으리라. 공작 꼬리로 된 부채나 모유를 마신 아기 돼지 요리마저 단지 그것만으로는 그런 사람들을 결코 만족시킬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슬픔이나 괴로움마저 추구하게 된다.(추구하지 않더라도 쥐여지는 당연한 슬픔이나 괴로움 외에도) 그곳에 그러한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떼어내는 한 줄기 도랑이 파져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하지만 바보 이상의 바보다. 그러한 사람들을 구하는 건 단지 그러한 사람들 이외의 사람들로 변하는 것뿐이리라. 때문에 도저히 구해낼 도리가 없다.

     아홉 목소리

 수많은 사람들이 외치는 와중에 한 사람이 이야기하면 결코 들리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사실상 반드시 들리기 마련이다. 자신들의 마음속에 한 줄기 불이 남아 있는 한은――물론 때때로 그들의 목소리는 후대의 마이크를 지닐지 모른다.

     열 말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간단히 타인에게 전할 수 없다. 그건 단지 전달받는 타인에게 달렸다. '염화미소' 같은 과거는 물론이요 백수십 행에 이르는 신문기사마저 타인의 마음에 와닿지 않을 때는 도무지 맞닥뜨리는 법이 없다. '그'의 말을 이해하는 건 언제나 '제2의 그'이리라. 하지만 '그'도 반드시 식물처럼 오래간다. 때문에 어떤 시대의 그의 말은 제2의 어떤 시대의 '그' 이외에는 이해할 수 없으리라. 아니, 어느 시대의 그 자신마저 다른 시대의 그 자신에게는 타인처럼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제2의 그'는 '그'의 말을 이해하리라 믿고 있다.

 

 

 

열 개의 바늘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어떤 사람들. 우리는 이 세계에 어떤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 사람들은 어떤 것이...

blog.naver.com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