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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가장 기분이 내킬 때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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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겨울을 좋아하여 11월, 12월을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건 12월에 보는 자연이나 도쿄의 모습이 좋다는 뜻이다. 자연이 좋다는 건 내가 교외에 살기에 더욱 그렇게 느끼기 때문인데, 11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밤늦게 집에 돌아올 적이면 말로 다 못 할 냄새가 풀풀 풍긴다. 낙옆 냄새나 안개 냄새, 갈라진 꽃향이나 과일이 썩은 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튼 좋은 냄새가 난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나무 사이가 투명하게 비친다. 나뭇잎이 떨어진 후에 가지 사이가 낭랑히 빛나는 것이다. 게다가 이곳에는 지빠귀도 찾아온다. 직박구리가 온다. 이따금 할미새가 올 대도 있다. 밭 구석의 이름 없는 강에는 겨울이 되면 항상 할미새가 찾아온다. 그 녀석이 이 정원까지 찾아오는 것이다. 여름처럼 백로가 하늘을 낮게 날지 않는 건 아쉽지만, 그 아쉬움을 적셔주기에는 충분했다.
 거리는 점점 어두워져 어딘가 뒤숭숭해진다. 술렁이기 시작한다. 그 점이 조금 유쾌하다. 술렁여 유쾌해진다는 건 붉은 등이 켜지거나 악대가 오가는 것도 시끌벅적해 좋지만, 내게는 그렇게 시끌벅적한 만큼 어둡고 쓸쓸한 거리가 괜히 더 눈이 가 좋았다. 이를테면 스다쵸 거리는 굉장히 요란벅적해도 카치쵸나 아오모노 시장 쪽으로 조금만 가면 어둡고 조용해진다. 그런 장소를 모종의 박자로 걷게 되면 '나베야키'나 '화재' 같은 하이쿠의 계절구가 떠오른다. 가끔 연말이 가까워져 벌써부터 카도마츠가 세워진 거리를 걷고 있자면, 마치 쿠보타 만타로 군의 소설 속을 걷는 것만 같이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12월이면 언제나 도쿄에 있고, 다른 곳에 있더라도 교토나 나라 같은 굉장히 평범한 곳에만 머무르는데, 교토에 처음 왔을 때도 마침 12월이었다. 당시에는 시치조의 정차장도 지금보다 작았고, 카라스마루도리나 시조도리도 지금보다 좁았다. 그만큼 낡은 교토를 알고 있단 뜻인데, 그 낡은 교토에 머무는 동안에 두세 번인가 시우時雨를 겪은 적이 있었다. 특히 시모카모의 타다스 숲에서 겪은 시우는 마침 동이 틀 적에 내렸는지라 꽤나 풍류를 느꼈던 기억이 있다. 시우라 하니 생각난 것인데, 언젠가 나라의 카스가 신사에서 시우를 만나, 그칠 때까지 기다리며 카구라를 올렸던 일이 있었다. 고풍적인 거문고나 고토 같은 악기를 연주하면서 히바카마를 입은 작은――정말로 작은――미코가 춤추는 게 역시나 아름다웠단 게 기억에 남아 있다. 물론 그때는 카스가 신사도 지금 같은 수복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였고, 전체적으로 낡고 허름했으니 그만큼 좋았다는 뜻이다. 교토나 나라는 지금도 자주 가지만 겨울에 한해서는 도무지 그런 첫 기억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카마쿠라에 머물며 요코스카의 학교에 다니게 되었으니, 도쿄 이외의 12월에도 익숙해질 수 있게 되었다. 그 시기의 카마쿠라는 피서객 같은 종류의 사람이 적은 것만으로도 좋다. 또, 요즘 시기의 카마쿠라를 보면 인간은 일본인보다 서양인이 겨울에 더 뛰어난 것만 같다. 일본인의 빈약한 얼굴은 모피 외투의 옷자락에 묻어도 묻은 티가 나지 않는 것만 같다. 동청 철도의 종업원은 겨울이 되면 일본인과 러시아인의 얼굴에서 에너지 차이가 눈에 띈다는데, 요즘 시기의 카마쿠라를 오가는 서양인을 보면 맞는 말이지 싶다.

 물론 소설을 쓸 때에는 되려 여름보다는 11월, 12월의 추운 겨울 때가 낫다. 또 쓸 적이 아니라 쓸 때까지의 계단을 화로 곁에 앉아 막연히 생각하기엔 지금이 최고인 듯하다. 잡지 신년호용 원고는 대개 11월 말 혹은 12월 초부터 시작한다. 그런 걸 쓸 때면 다른 사람은 추운데 고생이 많다느니 신경 써주지만 스는 글이 물에 오르면 담배를 피울 때 말고는 화로 따위 잊어버리고 만다. 게다가 그때는 후스마의 장자도 단단히 닫아놓으니, 자신의 사상이나 정서가 방 안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안정된 곳이 되어 잘 써진다. 물론 잘 써진다 해도 완성도에 비례하는 건 아니니, 신년호 소설이라 해서 항상 걸작이 만들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다이쇼 6년[각주:1])

 

 

 

가장 기분이 내킬 때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는 겨울을 좋아하여 11월, 12월을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건 12월에 보는 자연이나 도쿄의 모습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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