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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옷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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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꿈을 꿨다.
 보아하니 음식점인 듯했다. 넓은 좌식 자리에 많은 사람이 앉아 있다. 다들 제각기 양복이나 전통 옷을 입고 있다.
 입고 있을 뿐일까. 서로 타인의 옷을 바라보며 멋대로 품평하고 있다
 "자네 원피스는 구식이군. 자연 주의 시대의 유물 아닌가?"
 "그 직물은 걸작인걸. 말로 못 할 인간미가 느껴져."
 "뭔가 그 하오리는,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저 감색 서지의 정장을 보게나. 완연한 프티 브르주아니."
 "오, 자네가 만담가처럼 띠를 두르고 있다니 놀라운걸."
 "역시 자네가 오지마 명주옷을 입고 있으면 산사람 같군."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물이 올라 있다.
 그러자 가장 말석에 묘하게 마른 남자가 있는 게 보였다. 그 남자는 고풍한 옷칠 문양이 된 생모시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옷이 아까부터 표적이 된 듯했다. 지금도 젊고 머리가 긴 선생이,
 "자네 옷은 여전히 장난만 같군."하고 꾸지람을 했다.
 그 선생님은 어떻게 말할 셈인지 도미닉파의 승려 같은 하얀 법복을 입고 있었다. 듣자하니 발자크가 일을 할 때에 그런 옷을 입고 있었다 한다. 물론 입는 사람은 발자크만큼 키가 크거나 덩치가 좋지도 않으니 소매가 많이 널찍하다.
 하지만 마른 남자는 쓴웃음만 짓고는 여전히 묵묵히 앉아 있다.
 "자네는 시종 같은 옷을 입고 있으니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
 명선인지 오지마 명주인지 판별이 가지 않는 옷을 입은 역시나 어린 호걸이 던지다시피 평가한다. 하지만 호걸 본인의 옷 또한 어지간히 오래 입었는지 옷깃의 때가 지독했다.
 그럼에도 생모시를 입은 남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니 어적간히 기개가 없는 듯했다.
 그런데 세 번째로는 어깨폭이 넓은 조잡한 양복남이 히죽히죽 웃으며 반쯤 동정을 담아 이런 평가를 내렸다.
 "자네는 왜 요전 번 옷을 입지 않나. 그래서야 거꾸로 돌아가는 꼴 아닌가. 그래도 생모시도 나쁘지는 않군――제군, 이 남자도 한 번은 옷을 바꿔 입고 나온 걸 떠올리게나. 그리고 앞으로도 옷을 갈아입도록 채찍질 좀 해주게나."
 사람들은 "맞다, 맞아"하고 성원을 보낸다. "좀 더 엄격히 해라, 동료라고 봐주면 안 된다"고 성을 내는 사람도 있다.
 마른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를 뒤로했다. 그러고는 바람이 잘 통하지 않을 듯한 변두리의 2층 집으로 돌아왔다.
 위층에도 아래층에도 여러 옷이 매달려 있다. 마치 일광건조라도 하는 듯했다. 무언가 벌레 비늘처럼 빛나는 게 있다 싶었더니 전쟁 때에 쓴 사슬 갑옷이었다.
 마른 남자는 옷 가운데에 오만불손히 엉덩이를 붙이더니 태연히 담배를 태우기 시작했다.
 그때 무어라 말한 것 같았는데 아쉽게도 눈을 뜬 지금은 기억하지 못 했다. 모처럼 꿈 이야기를 쓰는데 그 한 마디를 잊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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