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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봄날의 밤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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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나는 콘크리트 건물이 줄지은 마루노우치 뒷골목을 걸었다. 그러자 무언가 냄새가 느껴졌다. 무엇일까?――아니, 야채샐러드의 냄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스팔트 거리에는 쓰레기통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건 참으로 봄날의 밤 같았다.
 


 U――"자네는 밤이 무섭지 않나?"
 나――"딱히 무섭다 느낀 적은 없는데."
 U――"나는 무서워. 어쩐지 커다란 지우개라도 씹는 듯한 기분이 들거든."
 이 또한――이 U의 말 또한 참으로 봄날의 밤 같았다.
 


 나는 중국 소녀 하나가 전차에 올라타는 걸 바라보았다. 계절을 파괴하는 전등불 아래라 하여도, 분명히 봄날의 밤이었다. 소녀는 내게 등을 돌린 채 전차에 발을 걸치려 했다. 나는 담배를 문 채로 소녀의 귀뿌리에 때가 남아 있는 걸 발견했다. 그때는 때라기보다는 '얼룩'에 가까웠다. 전차가 떠난 뒤, 나는 이 귀뿌리에 남은 얼룩에서 무언가 따스한 걸 느꼈다.
 


 어떤 봄날의 밤. 나는 길에 선 마차의 옆을 지났다. 말은 마른 백마였다. 나는 옆을 지나며 말의 목덜미에 손을 얹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다섯


 이 또한 어떤 봄날의 밤이었다. 나는 거리를 걸으며 상어알을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여섯


 봄날 밤의 공상――언젠가 카페 프란탄의 창문은 넓은 목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목장 중앙에는 통구이된 닭 한 마리가 고개를 조아린 채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
 

일곱


 봄날 밤의 말――"야스가 푸른 똥을 쌌습니다."
 

여덟


 어떤 3월의 밤. 내가 펜을 잠깐 놓았을 때 문득 니켈 회중시계가 빨라진 걸 발견했다. 옆방의 벽걸이 시계는 열 시를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회중시계는 열 시 반을 가리킨다. 나는 회중시계를 코타츠 위에 올려놓고 정성스레 바늘을 열 시로 돌렸다. 그리고 다시 펜을 움직였다. 시간이란 의외로 생각만큼 빠르지는 않다. 벽시계가 이번에는 11시를 가리켰다. 나는 펜을 든 채로 회중시계를 보았다.――이번에는 신비하게도 열두 시를 가리키고 있다. 회중시계는 뜨거워지면 바늘이 빨라지는 걸까?
 

아홉


 누군가가 테이블 위에서 손톱을 갈고 있다. 누군가가 창문 앞에 레이스를 걸고 있다. 누군가가 괜히 꽃을 꺽고 있다. 누군가가 몰래 앵무를 목졸라 죽인다. 누군가가 작은 레스토랑의 굴뚝 뒤에서 잠들어 있다. 누군가가 돛단배의 돛을 올리고 있다. 누군가가 부드러운 식빵으로 목탄화의 선을 닦고 있다. 누군가가 가스의 냄새 속에서 삽으로 진흙을 퍼내고 있다. 누군가가――아니, 뚱뚱한 신사 한 명이 시움함영을 펼치며 아직도 봄밤의 시를 생각하고 있다.

'쇼와 2년[각주:1] 2・5'

 

 

 

  1. 1927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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