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시대의 여명에서, 한 노인과 한 토끼가 혀잘린 참새의 작은 날개 소리를 들으며 노인의 아내의 죽음을 조용히 슬퍼했다. 멀리서 울적히 울리는 건 오니가시마로 통하는 꿈속 바다의 영원히 그칠 일 없는 파도 소리였다.
아내의 시신이 묻힌 땅 위에는 꽃이 없는 벚나무가 얄팍한 청동가지를 공중으로 뻗고 있었다. 나무 위 하늘에선 여명의 반투명한 빛이 맴돌고 있어 숨소리 정도의 바람마저 불지 않았다.
이윽고 토끼는 노인을 위로하면서 앞발을 들어 해변가에 놓인 두 척의 배를 가리켰다. 한 척은 새하얗고, 한 척은 먹을 끼얹은 것처럼 검었다.
노인은 눈물로 젖은 고개를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동화 시대의 여명에서, 한 노인과 한 토끼는 꽃이 없는 벚나무 아래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힘없이 작별을 고했다. 노인은 주저 앉은 채 울고 있다. 토끼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면서 배 쪽을 향해 걸었다. 하늘에선 혀잘린 참새의 작은 날개 소리가 들렸고, 여명의 반투명한 빛도 조금씩 퍼져 갔다.
검은 배 위에선 아까부터 너구리 하나가 조용히 파도 소리를 듣고 있었다. 용궁의 등불 기름이라도 훔칠 셈일까. 혹은 또 물속에 사는 붉은 생선의 사랑을 질투하는 걸까.
토끼는 너구리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렇게 둘은 천천히 먼 옛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들이 불타는 산과 모래가 흐르는 강 사이에서 엄숙히 동물들의 목숨을 지키던 '옛날 옛적' 이야기였다.
동화 시대의 여명에서, 한 토끼와 한 너구리는 제각기 하얀 배와 검은 배를 타고 조용히 꿈 속 바다를 갈랐다. 영원히 그치지 않을 파도는 선악의 배를 흔들며 울적한 자장가를 노래했다.
꽃이 없는 벚나무 아래에 있던 노인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바다 위를 보았다.
어두워지면서도 하얗게 빛나는 바다 위에선 두 짐승이 마지막 싸움을 거듭하고 있다. 천천히 기울어 가는 검은 배에는 너구리가 타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가까이에 떠올라 있는 하얀 배에는 토끼가 타고 있지 않을까.
노인은 눈물 젖은 눈동자를 빛내며 해상의 토끼를 구하기라도 하듯이 두 팔을 높이 들었다.
보아라. 그와 함께 꽂이 없는 벚나무에는 조개가 열리듯이 꽃이 피었다. 여명의 반투명한 빛으로 가득하던 하늘에도 새파랗게 질린 금빛의 태양이 올랐다.
동화 시대의 여명에――동물의 동물성을 지우는 싸움에 환희하는 인간을 상징할 태양은, 그리고 그 아래에서 핀 도자기 문양 같은 벚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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