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개화의 살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7. 4.
728x90
반응형
SMALL

 아래에 실은 건 최근 내가 혼다 자작(가명)에게 빌린 고 닥터 키타바타케 기이치로(가명)의 유서이다. 키타바타케 닥터는 설령 실명이 알려진들 이제와 아는 사람 하나 없으리라. 나 또한 혼다 자작과 친해져 메이지 초기의 이야기를 듣는 걸로 비로소 이 닥터의 이름을 알 기회를 얻었다. 그의 사람 됨됨이는 아래의 유서를 통해 충분히 설명이 될 게 분명하지만 내가 주워들은 두세 사실을 더하면 닥터는 당시 내과 전문의로서 유명했음과 동시에 연극 개량에도 급진적인 의견을 가진 일종의 극통[각주:1]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후자에 관해서는 닥터의 손을 거친 희극마저 있어서, 볼테르의 Candide 중 일부를 도쿠가와 시대의 일로 각색한 두 막짜리 희극이라고 한다.
 기타니와 츠쿠바가 촬영한 사진을 보면 기타바타케 닥터는 영국풍 턱수염을 기른 용모맹위한 신사이다. 혼다 자작에 따르면 체격도 서양인에 맞먹을 정도라서 소년 시절부터 뭘 하더라도 발군이라 알려졌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유서의 글자마저 정섭鄭燮풍의 분방한 글자로, 그 흘러넘치는 듯한 먹흔 안에서도 그의 풍채가 엿보인다.

 물론 나는 이 유서를 공개함에 꽤나 많은 수정을 이루었다. 이를테면 당시엔 아직 작위를 받지 않았음에도 후년의 호칭을 따라 혼자 자작 부인 등의 이름을 이용한 게 그렇다. 단지 그 문장 분위기만은 원문을 되도록 따르며 고스란히 옮겼다 해도 지장이 없다.
       ―――――――――――――――――
 혼다 자작 각하, 또 부인.
 저는 저의 마지막으로 3년 내내 제 가슴 깊은 곳에 저민 꺼림칙한 비밀을 고백하여 경들 앞에 저의 추악한 심상을 폭로하려 합니다. 경들께서 만약 이 유서를 읽은 후에도 고인이 된 저를 기억함에 일말의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면 그건 제가 바라지도 않던 행복일 테지요. 허나 만약 저를 보시고 죽어 마땅한 미치광이로 여기시며 그야말로 시체에 채찍질을 하신다 하더라도 저는 조금의 유감도 느끼지 않을 터입니다. 단지 제가 고백하는 사실이 너무나 의외라도 허투루 저를 꾸미어 신경병 환자에 이름 올리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 저는 요 몇 달 동안 불면증 때문에 괴로워했을지언정 제 의식은 또렷했으며 지극히 민감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경들께서 저를 20년 지기라 여기신다면(저는 굳이 친구란 말을 쓰지 않겠습니다) 부디 저의 정신적 건강을 의심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만약 그리된다면 저의 평생의 오점을 피력하는 이 유서 따위도 결국 불필요한 종이짝이 되고 말 테지요.
 각하, 또 부인. 저는 과거에 살인죄를 범한 데다가 장래에도 같은 범죄를 범하려 한 추하고 위험한 인물입니다. 심지어 그 범죄가 경들과 가장 친한 사람에게 기획되었을 뿐 아니라 기획되려 했음에 이르러서는 경들에게 정말 의외였을 테지요. 저는 여기서 다시 경고할 필요를 느낍니다. 저는 분명히 맨정신이며 저의 고백은 철두철미한 사실입니다. 경들은 부디 이 사실을 믿으시고 제 평생의 유일한 기념인 이 몇 장의 유서를 허무한 미치광이의 헛소리로 만드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저는 더 이상 저의 건전함을 떠들 여유가 없습니다. 제게 남은 얼마 안 되는 시간이 제게 곧장 달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의 살인 동기나 실행은 물론이고 한 발짝 나아가 살인 후의 제 기묘한 심정을 언급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아아, 하지만 저는 이렇게 종이를 앞에 두고도 저의 평온치 못한 무언가가 술렁이는 걸 느낍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과거를 점검하며 기재하는 건 다시 과거의 생활을 겪게 하는 것과 필시 어떠한 차이도 없을 테지요. 저는 다시 살인을 계획하고 다시 실행하고 더욱이 최근 1년 동안의 무섭기 짝이 없는 괴로움을 다시 겪어야 합니다. 과연 선한 제가 이걸 견뎌낼 수 있을까요. 저는 지금 몇 년 동안이나 잊어 온 저의 주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도합니다. 부디 제게 힘을 주시길.
 저는 어릴 적부터 저의 사촌 동생인 지금의 혼다 자작 부인(삼인칭으로 부리는 걸 용서해주시길) 왕년의 칸로지 아키코를 사랑했습니다. 제 기억을 거슬러 올라 제가 아키코와 함께한 행복한 시간을 열거해야 할까요. 그건 아마 경들이 글을 읽지 않을 이유가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증명 중 하나로서 지금도 제가 가슴 밑바닥에 담아 둔 한 광경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저는 당시 열여섯 소년이었고 아키코는 아직 열 살 소녀였습니다. 오월 모일, 저희는 아키코가 집에서 기르는 등나무 덩굴 아래서 놀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키코가 제게 묻기를 한 발로 잘 서있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아니라 대답하자 그녀는 왼손으로 왼발목을 잡고는 오른손을 들어 균형을 유지하며 한동안 한 다리로만 서있었습니다. 머리 위 자색 덩굴은 봄볕을 받으며 흔들렸고 덩굴 아래의 아키코는 의연히 동상처럼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그림 같은 몇 분 속 그녀를 이제까지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몰래 스스로 되돌아 보아 제가 마음 깊은 곳에서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에 놀란 것도 실은 그 등나무 아래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후로 아키코를 향한 사랑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강해져 기어코 대부분의 배움을 접는 것에 이르렀지만 저의 소심함은 제 이 마음을 토해내지 못했습니다. 흐림과 맑음이 분명하지 못한 감정의 비천 아래서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으며 어영부영 몇 년 과 몇 달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제가 스물하나가 되자 저희 아버지께서는 제게 대뜸 런던서 오랜 가업인 의학을 배우라 명하셨습니다. 저는 떠남에 아키코에게 제 사랑을 말하겠다 하였지만 엄격한 저희 집안은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또 유교주의 교육을 받은 저 또한 상간복상의 비웃음이 두려워 끝 모를 애수를 품고서 홀로 영국으로 향했습니다.
 영국에서 유학하는 3년 동안, 하이드 파크의 잔디 위에서 덩굴 꽃 아래의 아키코를 얼마나 그리워했을까요. 또 폴 몰 거리를 걸으며 고향에서 멀어진 저 자신을 얼마나 애처롭게 여겼을까요. 그런 걸 여기서 설명할 필요는 없을 테지요. 단지 런던서 지내며 제가 소위 장밋빛 미래 속에서 가능할 법한 우리의 결혼 생활을 몽상하며 같은 이유로 몸부림쳤다는 것만 말하면 충분할 터입니다. 하지만 영국에서 돌아온 저는 아키코가 이미 제X은행 총재인 미츠무라 쿄헤이의 아내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곧장 자살을 결심했지만 제가 타고난 겁 많은 기질과 유학 중에 귀의한 기독교 신앙이 불행히도 저의 손을 마비시켰습니다. 만역 경들께서 당시의 제가 얼마나 상심을 겪었는지 알고 싶다면 제가 귀국 후 열흘 만에 다시 런던으로 떠나려 해 저희 아버지를 화나게 한 일을 떠올려 보시면 됩니다. 당시의 제 심정이란 아키코 없는 일본은 더 이상 고국이되 고국이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고국 아닌 고국에 머물러 마냥 정신적 패자로 평생을 보낼 바에야 되려 칠드 헤럴드 한 권을 품고 먼 만 리의 고독한 손님이 되어 이국의 땅에 뼈를 묻는 게 훨씬 위로가 되리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제 주변 사정은 이미 영국에 가려는 제 계획을 파기하게 만들었고, 그뿐 아니라 제가 아버지의 병원 안에 일개 귀국 의사로서 수많은 환자 진료에 쫓기며 지루한 의자에 앉아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저의 실연의 위안을 신께 찾았습니다. 당시 츠키지에 머물던 영국 선교사 헨리 다우젠트 씨는 그동안의 제게 잊을 수 없는 친구이자, 아키코를 향한 저의 사랑이 수많은 악전고투 후에 점차 열렬하면서도 평정한 육친적 감정으로 변화한 건 전적으로 이분이 저를 위해 성서 몇 장을 해석해주신 결과입니다. 저는 한동안 이분과 신을 논하고 신의 사랑을 논하고 더욱이 인간의 사랑을 논한 후에 야간 통행인이 적은 츠키지 거주지를 걸어 홀로 집에 돌아 간 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만약 경들께서 제가 아녀자에게 정을 품은 걸 비웃으신다면 저는 거주지의 공허한 반달을 올려다보며 남 몰래 사촌동생 아키코의 행복을 기도하고 감격하여 훌쩍인 걸 말해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사랑이 새로운 방향을 얻은 건 소위 '체념'의 심리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저를 현명하게 하는 용기와 여우에 빈곤했지만 제가 이 육체적 애정을 통해 처음으로 다친 제 마음을 치유한 건 의심할 여지가 없을 터입니다. 때문에 귀국 이후로 아키코 부부의 소식을 듣는 걸 뱀이나 전갈마냥 두려워한 저도 이제는 제가 이 육친적 애정에 의뢰하여 나서서 그들에게 접근하는 걸 바라게 되었습니다. 이는 저로 하여금 그들에게서 행복한 부부의 모습을 발견하는 게 저의 위안을 더더욱 크게 하며 자그마한 고통을 없애주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신념에 움직인 결과, 이미 메이지 11년 8월 3일 료고쿠 교반의 대연화에서 지기의 소개를 통해 게이샤 십수 명과 함께 야나기바시 만파치의 수루서 아키코의 남편 미츠무라 쿄헤이와 처음으로 저녁 한 끼의 친목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친목, 친목이라. 저는 그 괴로움보다 더 강한 걸 알지 못합니다. 제가 일기에 쓴 바로는 "나는 아키코가 그 천박하고 음란한 미츠무라 따위의 아내란 걸 생각하면 뱃가죽의 분노를 뱉어낼지 모른다. 신은 내게 아키코를 보기를 동생처럼 하라고 가르쳐주셨다. 그런 내가 동생을 그러한 금수에게 넘겨야 하는 건 또 무슨 경유랴. 나는 이제 이 잔혹하고 간휼한 신의 장난에 참을 수 없다. 대체 누가 아내와 여동생을 그런 흉악한 사람에게 능욕되게 하고 하물며 하늘을 올려다보며 신의 이름을 들먹이는가. 나는 앞으로 결단코 신에게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의 손으로 나의 여동생 아키코를 이 색귀의 손에게서 구해내리라."
 저는 이 유서를 인정받기 위해 다시 당시의 저주할만한 상황을 눈앞에 방불케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빛바랜 물안개와 만점의 붉은등, 또 줄지어 끝이 보이지 않는 놀잇배 줄――아아, 저는 평생 그날 밤, 그 하늘에서 본 연화의 명멸을 기억함과 함께 우로 게이샤를, 좌로는 그보다 더 어린 게이샤를 품고 외설스럽기 짝이 없어 들어 줄 수 없는 유행가를 노래하며 거나하게 술에 취한 그 추악하고 비대한 미츠무라 쿄헤이 또한 기억할 것입니다. 아뇨, 아뇨 저는 미츠무라의 검은 하오리에 새겨진 양하 미츠몬마저 잊을 도리가 없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제가 그를 살해하겠단 뜻을 품은 게 수루서 연화를 보던 바로 이날 저녁이란 것을. 또 믿습니다. 저의 살인 동기란 발생 당초부터 단순한 질투에 그치지 않고 되려 불의를 가만 보지 못하고 부정을 뿌리 뽑으려는 도덕적 격분에 있음을.
 그 후로 저는 마음을 죽이고 미츠무라 쿄헤이의 행방을 주목하였습니다. 그 결과 제가 그날 저녁 본 파렴치성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제 지인 중에 신문기자가 하나둘이 아니었는지라 그의 음행무도 행적이 제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일은 없다고 봐도 됐습니다. 제 선배이자 지인 중에 나루시마 류호쿠 선생님이 계시는데, 그분께서 미츠무라가 사이쿄기엔이란 유곽에서 어린 게이샤의 아직 오지 않은 봄을 짓밟아 죽음에 이르게 했단 추문을 들은 것도 이때의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이런 무뢰한이 온량정숙의 대명사인 부인 아키코를 대하는 게 노비를 대하는 것과 같다니 대체 누가 그를 곱게 볼 것이며, 인간 역병 따위로 보지 않을 이유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는 그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세상의 품격을 떨구고 속세를 흐트러는 일로 알고 그를 없애는 게 노인을 돕고 어린아이를 안타까워하는 일과 같음을 압니다. 따라서 저의 살해 의지란 천천히 살해 계획으로 변모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아마 제 살인 계획을 실행함에 많은 망설임을 겪었습니다. 다행인지 혹은 불행인지 운명은 이 위험한 시기에 저를 저의 어린 시절 벗이었던 혼다 자작과一보쿠죠의 요리점 카시와야에서 만나게 했으며, 또 술이 오가는 동안 그 입으로 한 슬픈 이야기를 듣게 했습니다. 저는 그제야 처음으로 혼다 자작과 아키코가 이미 혼약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미츠무라 쿄헤이가 돈의 위세를 빌려 그 약속을 없었던 일로 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은 더욱 분개해 갈 따름이었습니다. 희미한 불빛 속에서 서로 술을 나누며 혼다 자작과 제 잔을 가득 채워 미츠무라를 매도하던 당시를 생각하면 저는 지금도 저절로 몸이 움찔거려집니다. 하지만 또 동시에 인력거를 타고 카시와야를 뒤로하면서 혼다 자작과 아키코의 약속을 떠올리며 이름 붙일 수 없는 비애를 느낀 것 또한 저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부디 청합니다. 다시 제 일기를 인용하는 걸 용서해주시길. "나는 오늘 저녁 혼다 자작과 만나 기어코 곧 미츠무라 쿄헤이를 죽일 결심이 들었다. 자작이 말하는 바로 추측하길 그와 아키코는 혼약을 나누었을 뿐 아니라 서로 사랑함이 분명하다.(나는 오늘에서야 자작이 독신 생활을 하는 이유를 발견하였다.) 만약 내가 미츠무라를 죽이지 않는다면 자작과 아키코가 이어지는 건 필시 어려운 일일 터이다. 운 좋게 아키코가 아직 미츠무라의 아이를 가지지 못한 건 하늘의 뜻이 내 계획을 돕는 것이리라. 내가 그러한 짐승 같은 거신을 살해한 결과 내가 친애하는 자작과 아키코가 행복한 생활을 펼치게 될 걸 생각하면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걸 금할 수 없다."
 이제 제 살인 계획은 살인 실행으로 옮겨 갔습니다. 저는 몇 번이나 주도면밀히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후 끝내 미츠무라를 살해하기 적당한 장소와 수단을 선정했습니다. 그곳이 어디고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굳이 자세히 진술할 필요는 없겠지요. 경들은 메이지 12년 6월 12일, 독일 황손 전하가 신토미자서 일본극을 보신 밤, 미츠무라 쿄헤이가 같은 극장서 집으로 돌아가는 와중에 마차 안에서 불쑥 병사한 사실을 기억하고 계실 테지요. 그 신토미자서 미츠무라에게 혈색이 좋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고 제가 가진 약의 복용을 권유한 한 장년 닥터가 있었음을 말하면 충분하리라 봅니다. 아아, 경들은 부디 그 닥터의 얼굴을 상상해주시길. 그는 연이어진 붉은등의 빛을 받으며 신토미자의 현관에 선 채로 안개비 속에서 떠나가는 미츠무라의 마차를 떠나보냅니다. 그 순간 그간의 분노와 오늘의 환희가 가슴속에서 한데 모여 입가에는 웃음과 오열이 동시에 넘쳤으며 자신이 자리한 곳이 어디인지, 또 시각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망각해버렸습니다. 하물며 그런 그가 또 울고, 또 웃으며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젖은 진흙을 밟으며 미친 듯이 귀가를 이루었을 때, 그가 아키코의 이름을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단 사실 또한 잊지 말아 주시길――"나는 종일 잠에 들지 못해 서재를 배회했다. 환희랴 비애랴. 나는 그마저도 명확히 하지 못했다. 단지 어떤 말하기 어려운 강렬한 감정은 내 온몸을 지배해 아주 잠깐이라 해도 나를 안도하게 한 건 분명하다. 내 탁상 위에는 샴페인이 놓여 있다. 장미꽃이 놓여 있다. 또 그 약 상자가 놓여 있다. 나는 사실상 천사와 악마를 좌우에 둔 채 기이한 연회를 연 것이나 다름없다……"
 저는 그 후로 몇 달 동안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제 예상대로 경찰의는 미츠무라의 사인을 뇌출혈이라 진단하여 곧장 지하 육 척의 어둠 속에서 벌레들에게 부패한 살을 뜯어 먹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누구도 제게 살인범의 혐의를 씌우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 주워듣기로는 아키코가 남편의 죽음을 접해 비로소 얼굴색이 돌아왔다지 뭡니까. 저는 기쁨을 한가득 머금고 제 환자를 진찰하고 시간만 나면 곧장 혼다 자작과 함께 신토미자서 극을 보고는 했습니다. 그곳은 제게 마지막 승리를 따낸 영광스러운 장소이자 종종 그 꽃가스와 카펫을 보고 싶어지는 신비한 욕망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정말로 몇 달의 일이었습니다. 이 행복한 몇 달이 경과하면서 저는 점차 저의 평생 중 가장 증오해 마땅할 유혹과 싸워야 하는 운명에 이르렀습니다. 이 싸움이 얼마나 혹독했는가. 저를 얼마나 사지로 몰아냈는가. 저는 도저히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용기가 없습니다. 아니, 이 유서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지금마저도 저는 이 히드라 같은 유혹과 죽음을 통해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경들께서 만약 제 번민의 족적을 보고 싶으시다면 아래에 기록하는 저의 일기를 보시길 바랍니다.
 "10월 X일, 아키코가 아이가 없단 이유로 미츠무라 가문에서 쫓겨났다. 나는 곧 혼다 자작과 함께 6년 만에 그녀와 만날 수 있으리라. 귀국 이후로 나를 위해, 또 그녀를 위해 그녀를 보는 걸 참아 끝내 오늘에 이르렀다. 아키코의 명모[각주:2]는 과연 6년 전과 같으랴 다르랴."
 "10월 X일, 나는 오늘 혼다 자작을 찾아 처음으로 함께 아키코의 집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로, 자작은 이미 나보다 앞서 그녀를 세 번이나 보았다고 한다. 자작이 나를 소외하는 게 이리도 참을 수 없다니. 나는 지독히 불쾌해져 환자 진찰을 핑계로 서둘러 자작의 집을 뒤로했다. 자작은 아마 내가 떠난 뒤에 혼자 아키코를 찾지 않았을까."
 "10월 X일, 나는 혼다 자작과 함께 아키코를 찾았다. 아키코의 용모는 많이 빛이 바래긴 했어도 등나무 꽃 아래에 서있던 당시의 소녀를 방불케 하는 게 곡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아아, 나는 드디어 아키코를 보았다. 그렇건만 되려 멈추지 못하는 비애를 느끼는 이유는 무엇이랴.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하기에 괴롭다."
 "12월 X일, 자작은 아키코와 결혼할 뜻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내가 아키코의 남편을 살해한 목적이 처음으로 완성의 영역에 이른다. 하지만――하지만 나는 다시 아키코를 잃어가는 듯한 이상한 고통서 벗어날 수 없었다."
 "3월 X일, 자작과 아키코의 결혼식은 올해 연말에 열린다고 한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이뤄지기를 바란다. 이대로는 나는 영원히 이 멈추기 어려운 고통서 벗어날 수 없다."
 "6월 12일, 나는 홀로 신토미자를 찾았다. 작년 이 날, 내 손으로 이룬 희생을 생각하면 나는 극을 보는 동안에도 회심의 미소를 금할 수 없다. 하지만 같은 자리서 불쑥 내 살인 동기를 떠올리면 나는 사실상 귀착점을 잃은 것처럼만 느껴진다. 아아, 나는 누굴 위해 미츠무라 쿄헤이를 죽였던가. 혼다 자작을 위함인가, 아키코를 위함인가, 혹은 나 자신을 위함인가. 이는 나마저도 대답할 도리가 없었다." 
 "7월 X일, 나는 자작과 아키코와 함께 마차를 타고 스미다가와의 유등 행사를 보았다. 마차 창문으로 들어오는 등불에 더욱 아름답게 빛난 아키코의 명모는 내 옆에 자작이 있다는 사실마저 잊게 했다. 하지만 이는 내가 말하려는 바가 아니다. 나는 마차 안에서 자작이 복통을 호소하는 통에 주머니에 손을 넣어 약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게 '그 약'이란 사실에 놀랐다. 나는 왜 오늘 밤 이 약을 챙겼던가. 우연이랴, 나는 절실히 우연힘을 바라 마지않는다. 하지만 그건 필시 우연이 아니란 뜻이기도 하다."
 "8월 X일, 나는 자작과 아키코와 함께 우리 집에서 저녁밥을 먹었다. 하지만 나는 시종 내 주머니 밑바닥에 그 약이 있다는 걸 잊지 못했다. 내 마음은 이제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괴물을 기르고 있다."
 "11월 X일, 자작은 이미 아키코와 결혼식을 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이름 붙이기 어려운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 분노란 마치 한 번 도주한 병사가 자신의 겁 많음에 느끼는 수치심과 닮아 있었다."
 "12월 X일, 나는 자작의 부탁을 따라 그 병상을 보러 갔다. 아이코 또한 옆에 있었으며 밤중에 발열이 있었다고 한다. 나는 진찰 후 감기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고 곧장 집으로 돌아와 자작을 위해 스스로 약을 조제했다. 그 두 시간 동안 '그 약' 상자는 시종 내게 무서운 유혹을 계속했다."
 "12월 X일, 나는 어젯밤 자작을 살해하는 악몽에 사로잡혔다. 시종 가슴속에서 불쾌함을 떨쳐낼 수 없었다."
 "12월 X일, 아아 나는 이제야 처음으로 깨닫는다. 내가 자작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살해할 수밖에 없음을. 허나 아키코는 어쩌면 좋은가."
 자작 각하 또 부인, 이상이 제 일기의 대략입니다. 대략이라 할지라도 제 나날의 고통은 경들께서 반드시 이해하리라 봅니다. 제가 혼다 자작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는 저를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제가 저를 구하려 했다면 혼다 자작을 죽이거나 제가 미츠무라 쿄헤이를 죽이기 위한 다른 이유를 찾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를 독살한 이유가 제가 자각하지 못하는 이기주의에 숨어 있다면 저의 인격, 저의 양심, 저의 도덕, 저의 주장은 전부 땅에 흩뿌려져 소멸할 것이 분명할 테지요. 애당초 저는 숨겨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되려 저 자신을 죽이는 게 저의 정신적 파산보다 훨씬 낫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저의 인격을 수립하기 위해 오늘밤 '그 약' 상자를 통해 과거에 제 손으로 저질렀던 희생과 동일한 운명을 지려 합니다.
 혼다 자작, 또 부인. 저는 이상의 이유로 경들이 이 유서를 손에 받았을 즘에는 이미 시체가 되어 제 침대에 누워 있을 테지요. 죽음에 이르며 이 저주해 마땅할 반생의 비밀을 이렇게 길게 고백하는 것은 단지 경들을 위한 저 자신을 깔끔히 드러내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경들께서 만약 저를 미워하시겠다면 미워해주시고 불쌍히 여기실 거라면 불쌍히 여겨주시길. 저는――스스로를 미워하고 스스로를 연민하는 저는 기꺼이 경들의 증오와 연민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펜을 내려놓고 마차에게 명해 신토미자로 향하겠습니다. 그리고 반나절짜리 극을 다 보고 난 후, 저는 '그 약' 몇 알을 입으로 씹으며 다시 저의 마차에 올라타겠습니다. 보이는 경치야 다르겠지만 자잘한 이슬비는 다행히도 제게 매화가 붉어지는 그 여름철의 하늘을 방불케 합니다. 그렇게 저는 그 추하고 볼품없는 미츠무라 쿄헤이와 같이 차창 밖으로 오가는 등불 빛을 바라보고, 차 뚜껑 위로 내리는 밤비 소리를 들으며 신토미자를 저 멀리하면서 반드시 저의 마지막 숨을 호흡할 생각입니다. 경들 또한 분명 제 유서를 접하기 앞서 신문을 통해 닥터 키타바타케 기이치로가 뇌출혈로 귀갓길 마차 안에서 사망한 걸 읽으셨을 터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경들의 행복과 건전을 절실히 기도합니다. 경들의 충실한 종복, 키타바타케 기이치로가.

  1. 극계(劇界)의 사정(事情)에 잘 통(通)함, 또는 그런 사람 [본문으로]
  2. 밝은 눈동자. 맑고 아름다운 눈동자. 미인(美人)을 형용(形容)하는 말 [본문으로]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