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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입사인사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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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과거에 2년 동안 해군 기관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이 2년은 내게 결코 불쾌한 2년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공무 틈틈이 창작에 종사할 수 있는――혹은 창작 틈틈이 공사에 종사할 수 있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내 좁은 견문에 의하면 갑 교사는 초인 철학을 소개하려던 탓에 문부당국의 비위를 건드렸다고 한다. 을 교사는 연애 문제의 창작에 빠진 탓에 육군당국의 문책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선생들에 비하면 내가 관립 학교 교사 일과 소설가를 겸업할 수 있었던 건 분명히 보기 드문 상전 대우이며 감사히 받아들여야 할 일이리라. 물론 그러한 갑 선생 을 선생이 당당한 본관 교사였던 반면 나야 일개 위탁 교사에 지나지 않으니 내가 호흡할 수 있었던 자유로운 공기도 사실은 해군 당국이 내게 후했다기보다도 단순히 내 존재가 미미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해석하는 건 어제의 상관에게 실례일 뿐 아니라 내게 교사의 입을 가르쳐준 선생들께도 굉장히 유감스러운 일이지 싶다. 그러니 나는 다른 일이 없는 한 해군 당국의 바다와 같은 도량에 눈물을 흘리고, 그 요코스카 공창의 갑갑한 매연을 폐 밑바닥까지 빨아들이며 영구히 "그건 개이다"하는 강의를 계속해도 되었을 터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2년간의 경험을 돌아보았을 때, 나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교육자로서, 특히 미래의 해군 장교를 육성해야 할 교육자로서 그 그릇이 되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적어도 현대 일본의 교육 방침을 둥근 약처럼 복약하지 못하는 점만으로도 바로 쫓아내 마땅할 불량교사이다. 물론 이만한 자각이 있음에도 한 가족의 입이 말라비틀어질 우려가 있는 이상은 나의 빈곤한 어학 자본을 굴려가며 교육자 다운 모습을 갖출 각오였다. 아니, 설령 먹고 살 돈이 궁하지 않더라도 부족하면 부족한 나름의 창작을 밀어붙일 생각이 없었다면 나는 한사코 명예로운 해군 교수 간판을 얌전히 걸고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미 과거의 나와 달리 모든 능력을 창작에 소비하지 않는 인생에도 또 나 자신에게도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려면 단순히 시간문제만으로도 일주일에 다섯 날, 오전 여덟 시부터 오후 세 시까지 기계처럼 학교에 출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때문에 나는 유감스럽게도 당국 및 동료인 문무교관들의 애정을 뒤로한 채 기어코 오사카마이니치신분에 입사하게 되었다.

 신문은 내게 일반적인 봉급을 제공한다. 그뿐 아니라 매일 출근해야 하는 의무마저 강요하지 않는다. 이는 관등의 높고 낮음을 확실히 하지 않는 나로선 늙은이들과 같이 임관하는 것보다 훨씬 마음 편한 위치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진심으로 나의 입사를 축하하고 싶다. 또 동시에 우리 제국 해군을 위해서도 나 같은 불량 교사가 내부서 발을 끊은 일을 마찬가지로 축하해주고 싶다.
 옛 중국인은 "자 돌아가자, 고향 밭이 황폐하구나"하고 노래했다. 나는 아직 그만한 도정을 얻은 인간이지는 않다. 하지만 어제의 잘못을 후회하고 지금의 도리를 깨달았단 관점에서 보면 나 또한 같은 귀거래[각주:1]인이다. 봄바람은 이미 내 우리 집 처마로 불었다. 이제 나도 가벼운 걸음으로 슬슬 정도에 오르려 한다. 

  1. 관직(官職)을 물러나서 고향(故鄕)으로 돌아간다는 말. 진(晉)나라 때의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나왔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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