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얼마 전에 N 씨라는 간호사에게 들은 이야기다. N 씨는 꽤나 지기 싫은 기질을 가진 듯했다. 항상 건조한 입술 뒤로 날카로운 송곳니를 보이는 사람이었다.
나는 당시 동생의 전근처 숙소 2층서 장염으로 누워 있었다. 설사는 일주일 내내 이어졌다. 때문에 본래는 동생을 위해 온 N 씨가 간호를 맡아주기로 했다.
오월 장마철 오후, N 씨는 유키하라냄비에 죽을 끓이며 참 적당히 그 이야기를 했다.
× × ×
어느 봄, N 시는 어느 간호사 모임으로 우시고메의 노다 일가에 가게 되었다. 노다 일가에는 남자 주인이 없었다. 키리가미 1를 한 여주인 한 명, 시집가기 전의 처녀가 한 명, 또 그 처녀의 동생이 한 명――그리고 여종이 전부였다. N 집에 들어가면서 묘하게 기운이 빠지는 걸 느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누나도 동생도 폐결핵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또 하나는 네 첩 반가량 떨어진 디딤돌 하나 깔리지 않은 정원에 속새만 울창했기 대문이다. N 씨가 말하길 그 엄청난 숫자의 속새는 "돗자리를 얹어 둔 툇마루마저 뚫고 올라올 정도로" 무성했다고 한다.
여주인은 딸을 유키 씨라고 부르고 아들만을 세이타로라 편하게 불렀다. 유키 씨는 드센 여자로 보여서 열을 잴 때마저 N 씨가 보고 있는 것도 아랑곳 않고 검온기를 뚫어져라 바라봤다고 한다. 세이타로는 유키 씨와 반대로 N 씨를 번거롭게 하는 법이 없었다. 무슨 말이든 잘 따라준 데다가 N T씨니 무언가를 말할 땐 얼굴을 붉힐 정도였다. 여주인은 그런 세이타보다도 유키 씨를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그런 주제에 병이 무거운 건 유키 씨보다도 세이타로였다.
"저는 저런 얼간이로 키운 기억은 없는데 말이죠."
여주인은 별거로 올 때마다(세이타로가 별거에서 지냈다.) 항상 이런 잔소리를 했다. 하지만 스물하나 먹은 세이타로는 제대로 말대답 한 번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가만히 눈만 감고 있었다. 그런 얼굴 또한 마치 투명하게 비치듯이 희었다. N 씨는 얼음 자루를 바꾸면서 이따금 그 뺨 주위에 정원 한가득 핀 속새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는 것만 같았다 말했다.
열 시쯤 된 어느 밤. N 씨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등불이 많은 거리에 얼음을 사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인기척 없는 주택가의 언덕길을 오르자 누군가가 비틀거리 듯이 N 씨의 뒤에서 안겼다고 한다. N 씨는 물론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보다 놀란 건 저도 모르게 몸부림치며 어깨너머로 상대를 돌아 보니 어둠 속에서 힐끔 보인 얼굴이 세이타로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고 한다. 아니, 다를 바 없는 건 얼굴뿐이 아니었다. 밀어버린 민머리도 콘가스리로 보이는 옷도 세이타로와 똑닮아 있었다. 하지만 그제도 각혈한 환자인 세이타로가 바깥에 나와 있을 리 없다. 하물며 이런 짓을 할 리도 없다.
"누나, 돈 좀 주라."
그 소년은 역시 안긴 채로 조르듯이 말했다. 그 목소리 또한 신기하게도 세이타로의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기가 드센 N 씨는 왼손으로 상대의 손을 꽉 잡으면서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저, 저기 살거든요? 빨리 안 놓으면 사람 부를 거예요"하고 말했다.
하지만 상대는 여전히 "돈 좀 주라"하고 반복한다. N 씨는 질질 밀어내면서 다시 한 번 이 소년을 돌아보았다. 이번에도 상대의 얼굴은 분명히 "부끄럼쟁이" 세이타로였다. N 씨는 불쑥 꺼림칙해져 누르고 있던 손을 풀지 않고 되도록 큰 소리를 냈다.
"누가 좀 나와봐요!"
상대는 N 씨의 목소리와 함께 눌리던 손을 떨쳐내려 했다. 동시에 N 씨 또한 왼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상대가 비틀거리는 동안 열심히 달렸다.
N 씨는 숨을 헐떡이며(돌이켜 보니 보자기에 싼 얼음을 착실히 가슴 위에 얹고 있었다고 한다) 노다 일가의 현관으로 달려들었다. 집안은 물론 고요했다. N 씨는 토코노마 찾아 석간을 보고 있던 여주인을 조금 불편하게 했다.
"N 씨, 무슨 일 있었어요?"
여주인은 N 씨를 보고는 거의 캐묻듯이 했다. 그게 꼭 큰 발소리에 놀랐기 때문만은 아니다. N 씨가 웃고는 있을지언정 몸을 계속 벌벌벌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뇨, 지금 언덕을 오르는데 누가 장난을 쳐서……"
"당신한테요?"
"네, 뒤에서 매달리더니 '누나, 돈 좀 줘'라면서……"
"그러고 보니 이 주변에 코보리라는 불량소년이 있어서요……"
그러자 토코노마에서 말을 건 건 역시 마루에 누워 있는 유키 씨였다. 심지어 N 씨는 물론이고 여주인도 의였을 정도로 묘하게 험악한 말투였다.
"엄마, 좀 조용히 해줘."
N 씨는 유키 씨의 말에 가벼운 반감――좀 더 정확히는 굴욕을 느끼면서 그걸 기회 삼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세이타로와 닮은 불량소년의 얼굴은 여전히 눈앞에 남아 있었다. 아니, 불량소년의 얼굴이 아니었다. 단지 어딘가 윤곽이 희미한 세이타로 본인의 얼굴이었다.
오 분 가량 지난 후, N씨는 다시 툇마루를 돌아 별거에 얼음주머니를 옮겼다. 세이타로는 그곳에 없을지 몰랐다. 혹시 죽은 건 아닐까――N 씨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별거에 들어가 보니 세이타로는 어두컴컴한 전등 아래서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얼굴 역시 변함없이 투명하게 비치듯이 희었다. 마치 정원에 한 가득 솟은 속새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처럼.
"얼음주머니 바꿔드릴게요."
N 씨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뒤가 신경 쓰였다.
× × ×
나는 그 이야기가 끝났을 때, N 씨의 얼굴을 바라보며 살짝 짓궂게 말했다.
"세이타로?――였던가요. 그 사람을 좋아하셨나 보죠?"
"그럼요, 좋아했다마다요."
N 씨는 내 예상보다도 더 하게 딱 잘라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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