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차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코다하라와 아타미 사이에 경편철도부설 공사가 시작된 건 료헤이가 여덟 살일 적의 이야기였다. 료헤이는 매일같이 그 공사를 보러 마을 구석으로 갔다. 공사를――정확히는 단지 광차로 흙을 옮기는 게――그게 재밌어서 보러 간 것이었다.
　광차 위 쌓인 흑 뒤에는 토공 두 명이 자리하고 있다. 광차는 산을 내려가니 사람손을 빌리지 않고 달린다. 바람을 받아 차체가 움직이고 토공이 입은 한텐의 소맷자락이 펄럭거리고 얇은 선로가 굽어지는 등――료헤이는 그런 광경을 바라보며 토공이 되고 싶다 생각한 적이 있다. 하다못해 한 번이라도 토공과 함께 광차를 타보고 싶다 생각한 적도 있다. 광차는 마을 외각의 평지에 오면 자연스레 멈춘다. 그와 동시에 토공들이 가볍게 광차에서 내려와 선로 종점에 차의 흙을 뿌린다. 그리고 이번에는 광차를 밀어 산 쪽으로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료헤이는 타지는 못 하더라도 미는 일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어느 저녁――2월 초순의 일이었다. 료헤이는 두 살 어린 동생과 동생과 같은 나이의 이웃 아이를 데리고 광차가 놓인 마을 외각으로 향했다. 광차는 진흙투성이가 된 채로 어스레함 속에 줄지어 있다. 하지만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토공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세 아이는 머뭇머뭇 가장 끝자락에 있던 광차를 밀었다. 세 사람의 힘이 모이자 광차의 바퀴가 불쑥 돌아갔다. 료헤이는 그 소리에 오싹해졌다. 하지만 두 번째 차바퀴 소리에는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굴렁굴렁――광차는 그런 소리와 함께 세 사람의 손에 밀려 천천히 선로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던 사이 이래저래 20 미터쯤 가자 선로의 경사가 급해졌다. 세 사람의 힘으론 아무리 밀어도 광차가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자칫하면 되려 차에게 떠밀릴 마당이었다. 료헤이는 이쯤이면 되지 싶어 연하인 두 사람에게 신호를 했다.
　"자, 타자!"
　그들은 다시 한 번 손을 때고는 광차 위로 올라탔다. 광차는 처음엔 천천히, 그러나 이윽고 기세 좋게 단숨에 선로를 내려갔다. 그러자 주위의 풍경이 양쪽으로 갈라지 듯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한다. 얼굴에 닿는 저녁 바람, 발아래서 느껴지는 광차의 흔들림――료헤이는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광차는 2, 3분 후 본래의 종점에 멈춰버렸다.
　"자, 다시 밀자."
　료헤이는 두 연하와 함께 다시 광차를 밀었다. 하지만 아직 차륜도 들리지 않은 사이에 등 뒤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뿐 아니라 발소리는 불쑥 이런 노성으로 변했다.
　"이 자식들! 누구 맘대로 광차를 건드려!"
　목소리를 쫓아가니 낡은 시루시반텐에 계절과 엇나간 밀짚모자를 쓴 키가 큰 목공이 자리하고 있었다――그런 모습이 눈에 들어왔을 때, 료헤이는 두 연하와 함께 도망쳐버리고 말았다――그 후로 료헤이는 심부름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인기척이 없는 공사장의 광차를 보아도 두 번 다시 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단지 당시 본 토공의 모습은 지금도 료헤이의 머리 어딘가에 또렷이 남아 있었다. 어스름한 가운데 희미하게 빛난 작고 노란 밀짚모자――하지만 그 기억마저도 나이를 먹음에 따라 색채를 잃어가고 있다.
　그 후 열흘 정도 지났을까. 료헤이는 점심 즈음의 공사장서 광차가 오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흙을 실은 광차 이외에 나무토막을 실은 광차 한 대가 앞으로 본선으로 활용될 두터운 선로를 타고 왔다. 이 광차를 미는 건 두 사람 모두 젊은 남자였다. 료헤이는 그들을 본 순간부터 어쩐지 친해지기 쉬울 거 같았다. '이 사람들이면 혼내지 않을 거야'――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광차 옆으로 다가갔다.
　"아저씨, 내가 밀어줄까?"
　그중 한 사람――줄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는 고개 숙인 채 광차를 밀며 료헤이가 생각한 것처럼 흔쾌히 대답을 했다.
　"오, 잘 밀리네."
　료헤이는 두 사람 사이에 들어가 있는 힘껏 밀기 시작했다.
　"힘 좀 쓰는데."
　다른 한 사람――귀에 담배를 꽂은 남자도 료헤이를 칭찬해주었다.
　그러는 사이 선로의 경사가 점점 편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안 밀어도 돼."――료헤이는 언제 그런 말을 들을지 내심 걱정이었다. 하지만 두 젊은 토공은 허리를 펴가며 묵묵히 광차를 밀었다. 료헤이는 기어코 견디지 못하고 머뭇머뭇 이렇게 물었다.
　"계속 밀어도 돼?"
　"그럼."
　두 사람은 동시에 대답했다. 료헤이는 "착한 사람들이야"하고 생각했다.
　오육백 미터쯤 밀었더니 선로는 다시 한 번 경사가 심해졌다. 양옆의 밀감 밭에선 노란 열매가 햇살을 받고 있다.
　"오르막길이 좋아. 계속 밀게 해주니까."――료헤이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온몸으로 광차를 밀었다.
　밀감밭 사이를 오르자 불쑥 선로가 내리막길이 되었다. 줄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는 료헤이에게 "야, 타라"하고 말했다. 료헤이는 곧장 뛰어올랐다. 광차는 세 사람이 올라 탐과 동시에 밀감 밭의 냄새를 풍기며 하염없이 선로를 달렸다. "미는 것보다 타는 게 훨씬 좋아"――료헤이는 하오리를 바람으로 가득 채우며 당연한 생각을 했다. "갈 때 밀 곳이 많으면 돌아올 때 탈 곳이 많지"――그런 생각 또한 했다.
　대나무숲이 있는 곳까지 오자 광차가 조용히 달리는 걸 멈추었다. 세 사람은 다시 이전처럼 무거운 광차를 밀기 시작했다. 대나무숲은 어느 틈엔가 잡목림이 되었다. 언덕길 곳곳에는 붉게 녹이 슨 선로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낙엽이 쌓인 곳도 있었다. 그 길을 겨우 다 올랐더니 이번에는 높은 절벽 너머서 넓고 쌀쌀한 바다가 펼쳐졌다. 그와 동시에 료헤이의 머리에는 너무나 멀리 온 사실이 불쑥 분명히 느껴졌다.
　세 사람은 다시 한 번 광차에 올라탔다. 차는 바다를 오른쪽에 둔 채 잡목 가지 아래를 달려갔다. 하지만 료헤이는 방금처럼 즐길 수 없었다. "이제 집에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그는 그렇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광차도 두 사람도 목적지까지 가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그도 물론 잘 알고 있었다.
　다음으로 차를 멈춘 건 깎아져 내린 산을 등진 초가지붕의 찻집 앞이었다. 두 토공은 그 가게에 들어가더니 젖먹이를 업은 주인을 상대하며 느긋이 차 같은 걸 먹기 시작했다. 료헤이는 혼자 화가 나서 광차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광차의 튼튼한 밑판자에 튄 진흙도 어느 틈엔가 말라 있었다.
　잠시 후 찻집을 나온 담배를 귀에 꽂은 남자는(당시엔 이미 끼고 있지 않았지만) 광차 옆에 있는 료헤이에게 신문지에 싼 과자를 주었다. 료헤이는 냉담하고 "감사합니다"하고 말했다. 하지만 곧 냉담하게 구는 건 상대에게 미안한 일이지 싶었다. 그는 그 냉담함을 수습이라도 하듯이 포장된 과자를 입에 물었다. 과자에는 신문지의 석유향이 묻어나 있었다.
　세 사람은 광차를 밀면서 느슨한 경사를 올랐다. 료헤이는 차에 손을 얹은 채로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언덕을 다 내려오자 또 찻집이 나왔다. 토공들이 그 안으로 들어 간 후, 료헤이는 광차에 걸터앉아 돌아갈 생각만 했다. 찻집 앞에는 꽃이 핀 매화가 머금은 서쪽 햇살의 빛도 이제 사라지려 하고 있다. "곧 해가 질 거야"――그렇게 생각하니 멍하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광차의 바퀴를 걷어차거나 혼자서는 움직이는 걸 알면서도 끙끙 밀어보기도 했다――그렇게라도 기분을 풀어야 했다.
　그런데 목공들은 가게를 나오더니 차 위의 나무토막에 손을 얹으며 그에게 적당히 말했다.
　"너는 이만 집에 가라. 우리는 오늘 저기서 잘 거니까."
　"너무 늦으면 집에서 걱정할 거야."
　료헤이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이미 충분히 늦은 시간이었다. 작년에 어머니와 함께 이와무라까지 간 적이 있는데 오늘 온 길은 그 서너 배는 된다. 그런 길을 이제부터 홀로 걸어서 돌아가야 한다――그런 사실을 이해해버린 것이다. 료헤이는 거의 울 뻔했다. 하지만 울어본들 의미가 없지 싶었다. 울고 있을 때가 아니란 생각도 했다. 그는 젊은 두 토공에게 마지못해 인사를 하고는 선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료헤이는 한동안 무작정 선로 옆을 달렸다. 그러는 사이 품에 안은 과자 포장지가 방해된다는 걸 알고 선로 옆에 적당히 던졌다. 겸사겸사 신발도 어딘가에 벗어버렸다. 그러자 얇은 양말의 뒤축에 작은 돌이 박혔지만 발걸음은 훨씬 가벼워졌다. 그는 왼쪽에서 바다를 느끼며 급한 언덕길을 올랐다. 이따금 눈물이 올라와 자연스레 얼굴이 일그러졌다――그건 억지로 참을 수 있어도 코만은 계속 훌쩍훌쩍 울렸다.
　대나무밭 옆을 빠져나오자 저녁노을로 물든 히가네야마의 하늘도 서서히 그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료헤이는 본격적으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길을 돌아가는 탓인지 경치가 다른 것도 불안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옷마저 땀으로 젖은 게 느껴져서 역시 필사적으로 달리며 길 옆에 벗어던져 버렸다.
　밀감밭까지 이를 때에는 주위가 어두워져 있었다. "목숨만 건질 수 있으면――" 료헤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미끄러지고 넘어져도 달려갔다.
　겨우 먼 저녁 어둠 속에서 마을 외각의 공사장이 보였을 때, 료헤이는 단숨에 울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때도 울상을 짓지는 않을지언정 끝내 울지 않고 달렸다.
　료헤이가 마을에 들어오자 양옆의 집에는 전등의 불이 들어와 있었다. 료헤이는 그 전등 불빛 덕에 머리서 땀의 증기가 올라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물가에서 물을 뜨는 여자들이나 밭에서 돌아오는 남자들은 료헤이가 신음하며 달리는 걸 보고는 "무슨 일 있니?"하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말도 없이 잡화점이니 마루가게니 빛나는 집 앞을 달려 지나갔다.
　집 현관에 이르렀을 때, 료헤이는 기어코 큰소리로 울 수밖에 없었다. 그 울음소리는 순식간에 어머니나 아버지를 모이게 했다. 특히 어머니는 무어라 말하며 료헤이의 몸을 안아주려 했다. 하지만 료헤이는 손발을 버둥거리며 훌쩍이고 또 훌쩍이며 울었다. 그 목소리가 너무 격했던 탓일까. 근처 여자 서너 명도 어두컴컴한 현관 앞에 모였다. 부모는 물론이요 그 사람들은 口口에게 그가 우는 이유를 물었다. 하지만 그는 무슨 말을 들어도 우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 넓은 선로를 달려 온 이제까지의 서러움을 돌이켜 보면 아무리 울어도 부족한 것만 같아서…………
　료헤이는 스물여섯 먹은 해 아내와 함께 도쿄로 나왔다. 이제는 어떤 잡지사 2층에서 교정용 붉은펜을 쥐고 있다. 하지만 그는 대뜸 이유도 없이 당시의 자신을 떠올릴 때가 있다. 아무 이유도 없이?――일로 지친 그의 앞에는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어두컴컴한 수풀이나 언덕길이 얇게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