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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아버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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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중학교 4학년이었을 때의 이야기다.
 그해 가을, 닛코에서 아시오에 걸쳐 삼박의 수학여행이 있었다. "오전 6시 30분 우에노 정차장 앞 집합. 같은 시각 50분 발차……" 그런 내용이 학교에서 배부한 등사판 인쇄물에 적혀 있었다.
 당일이 되어 나는 아침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집을 뛰쳐나왔다. 전철로 가면 정차장까지 20분도 걸리지 않는다――뻔히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마음이 앞섰다. 정차장의 붉은 기둥 앞에 서서 전철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안절부절못했다.
 아쉽게도 하늘은 어두웠다. 곳곳의 공장서 울리는 기적 소리가 회색 수증기를 내뿜으니 그게 안개비가 되어 내리는 건가 싶었다. 그런 지루한 하늘 아래서 기차가 고가 철도를 지났다. 피복소를 지나는 짐마차가 지난다. 가게 문이 하나씩 열린다. 내가 있던 정차장에도 두세 명 사람이 서기 시작했다. 다들 잠이 부족한 얼굴로 어둡게 물들어 있다. 춥다――그때 오전 할인 전철이 왔다.
 북적이는 와중에 겨우 손잡이에 매달려 있자니 누가 뒤에서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놀라서 돌아보았다.
 "안녕."
 돌아보니 노세이 소오였다. 역시 나처럼 남색 교복을 입고 외투를 감아 왼쪽 어깨부터 걸치고, 마로 된 각반을 신고 허리에 도시락 보따리나 수통 따위를 걸치고 있었다.
 노세이는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다 같은 중학교로 올라온 남자이다. 이렇다 잘하는 과목도 없었지만 반대로 이렇다 못 하는 과목도 없었다. 그런 주제에 자그마한 일에 재주가 좋아서 유행가 같은 건 한 번 들으면 곧장 외우고 만다. 그리고 수학여행에서 여관에 머물 때면 의기양양히 그런 걸 자랑한다. 시긴, 사츠마비와, 라쿠고, 코우단, 코와이로, 마술 등 못하는 게 없었다. 그런 데다가 손짓이나 표정으로 남을 웃기는 독특한 재능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반친구들과 사이도 좋고 교사들의 평판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나하고는 서로 왕래는 할지언정 그리 친한 사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너도 일찍 나왔네."
 "나는 항상 일찍 나오잖아." 노세이는 그렇게 말하며 작게 코를 벌렁거렸다.
 "저번엔 지각해놓고."
 "저번에?"
 "국어 시간에."
 "아, 바바한테 혼난 거 말하는 거구나. 그 녀석은 다 좋은데 가끔 그런단 말이지." 노세이는 교사 이름을 막 부르는 버릇이 있었다.
 "나도 그 선생님한테 혼난 적 있는데."
 "지각해서?"
 "아니, 책 까먹어서."
 "은단 걔는 쓸데 없이 성가시단 말야." '은단'이란 건 노세이가 바바 선생님께 붙인 별명이었다――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정차장 앞까지 왔다.
 탔을 때와 마찬가지로 붐비는 전철에서 겨우 내려 정차장에 내려온다. 아직 시간이 이른 탓인지 반친구들은 두세 명 밖에 모여 있지 않았다. 서로 "안녕"하고 인사를 나눴다. 앞다투어 대기실 나무 벤치에 앉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기세 좋게 떠들기 시작했다. 다들 '보쿠' 대신 '오레'를 쓰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나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오레'로 자칭하는 녀석들의 입과 입에선 여행의 예상이니 동기 학생들의 품평, 교사들의 악평들로 떠들썩했다.
 "이즈미는 치사해. 그 녀석 교원용 교재를 가지고 있어서 한 번도 미리 읽고 온 적이 없대."
 "히라노는 더해. 그 녀석은 시험에서 역사 연대를 다 적으라고 한대."
 "그러고 보면 우리 선생님도 그렇단 말이지."
 "누가 아니래. 혼마는 receive에서 i하고 e 중에 뭐가 먼저 오는지 잘 모르면서 교원용 교재로 얼버무려 가며 적당히 가르치고 있잖아."
 하나같이 치사하다 떠들기만 할 뿐 제대로 된 소문은 없다. 그러던 중 노세이가 자기 옆 의자에 앉아서 신문을 읽고 있던 직장인 같은 남자의 구두가 펑킨리라며 평했다. 당시에 매킨리라는 신형 구두가 유행했는데 그 남자의 신발이 광택을 읽고 끝자락이 펑하고 터져 있었기 때문이다.
 "말 잘하네." 이렇게 말하고는 다 같이 실소했다.
 그렇게 우리는 기세가 등등해져 대기실에 출입하는 사람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하나 도쿄 중학생이 아니면 하지 않을 법한 건방진 악담도 더했다. 그럴 때 걸음을 뺄만한 얌전한 학생은 우리 사이에 없었다. 개중에서도 노세이의 형용이 가장 신랄하며 가장 해학적이었다.
 "노세이, 노세이, 저 아줌마 좀 봐."
 "꼭 복어가 부풀어 오른 듯한 얼굴이네."
 "저 빨간 모자도 뭐 닮았다. 그치 노세이?"
 "저 녀석은 카를 5세네."
 끝내는 노세이 혼자서 악담을 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때, 우리 중 한 명이 시간표 앞에 서서 자잘한 숫자를 살피는 묘한 남자를 발견했다. 그 남자는 양갱색 양복을 입고 체조에 쓰는 구간 같은 얇은 다리를 회색 줄무늬 바지에 담고 있었다. 챙이 넓은 옛된 검은 중절모 아래로 반쯤 하얗게 물든 머리가 삐져나온 걸 보면 꽤나 나이가 되는 듯했다. 그런 주제에 목 주위에는 흑백 체크무늬의 화려한 손수건을 두르고 채찍만 같은 한죽의 긴 지팡이를 옆구리에 끼고 있다. 복장도 그렇고 태도도 그렇고 모두가 펀치 삽화에서 잘라내 그대로 이 정류장의 인파 속에 세운 걸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우리 중 한 명은 또 새로운 악담 거리가 생겨 기쁘다는 양 어깨로 웃으며 노세이의 손을 잡아끌고는
 "야, 쟤는 어때"하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그 묘한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살짝 몸을 굽혀 조끼 주머니에서 자색 끈에 묶인 커다란 니켈 회중시계를 꺼냈다. 시간표와 숫자를 열심히 확인한다. 옆얼굴만 본 나는 그분이 노세이의 아버지란 걸 알았다.
 하지만 우리 중에 누구도 그걸 알지 못했다. 그러니 다들 노세이의 입으로 이 해학적인 인물을 적당히 형용하는 말을 들으려 했고, 들은 후의 웃음을 준비하며 재밌다는 양 노세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중학교 4학년에겐 노세이가 그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추측할 수도 없었다. 나는 자칫하면 "저분 노세이 아버지(파더)야."하고 말할 뻔했다.
 그러자 그때.
 "저 녀석? 저 녀석은 런던 거지야."
 노세이가 그렇게 말했다. 다들 단숨에 뿜은 건 말할 필요도 없다. 개중에는 일부러 몸을 굽혀 회중시계를 꺼내 노세이의 아버지를 흉내 내는 자마저 있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노세이의 얼굴을 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거 딱 맞네."
 "저 모자 좀 봐."
 "히카게쵸에서 샀나 봐."
 "히카게쵸도 너무 새롭지."
 "그럼 박물관이네."
 다들 다시 재밌다는 양 웃었다.
 어두운 하늘 아래의 정차장은 해가 진 저녁보다도 어두웠다. 나는 그 어둠 속에서 가만히 런던 거지 쪽을 보았다.
 그러자 어느 틈엔가 얇은 햇빛이 들어 오기 시작해 높은 천장의 창문에서 폭이 좁은 빛의 띠가 비스듬하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노세이의 아버지는 마침 그 빛의 띠 안에 있었다――주위에선 모든 게 움직이고 있다. 눈이 닿는 곳에서도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그리고 또 그 운동이 목소리인지 소리인지 알 수 없는 게 되어 이 커다란 건물 속을 안개처럼 덮고 있다. 하지만 노세이의 아버지만은 움직이지 않았다. 현대와 인연이 없는 양복을 입은 현대와 인연이 없는 노인은 바쁘게 움직이는 인간 홍수 속에서 이 또한 역시 현대를 초월한 검은 중절모를 쓰고 자색 끈이 달린 회중시계를 오른손바닥 위에 얹은 채로 펌프처럼 의연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중에 슬쩍 물어보니 당시에 대학 약국에 다니던 노세이의 아버지는 노세이가 친구들과 함께 수학여행에 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본인에게도 알리지 않고 출근 시간에 일부러 정차장까지 온 것이라 한다.
 노세이 소오는 중학교를 졸업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폐결액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그 추도식을 중학교 도서실에서 치렀을 때, 나는 교복을 입은 노세이의 사진 앞에서 추도문을 읽었다. "너는 아버지어머니께 효도하여"――나는 그 추도사 중에 그런 문구를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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